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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트릭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이치하라 교도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범인은 사라졌다.
시체의 얼굴은 강산성 용액으로 다 녹아내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으며
팔을 위로 뻗은 이상한 형체를 하고 있었다.
수사본부장 다케다 경시는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 있는 것도 그렇고
곧 출소할 거면서 굳이 교도소 안에서 살인을 저지른 동기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보도로 뜻밖의 비극이 벌어진 뒤 기자를 그만두고 보험회사에서 일해 온 시게노는
이치하라 교도소 살인사건이 과거 자신의 보도와 관련 있음을 깨닫곤 진실 찾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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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55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꽤 많은 기성 작가들로부터 격찬을 들은 것으로 소개됐는데,
아무래도 교도소 내 밀실트릭이라는 설정 자체가 올드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매력적으로 그려진 덕분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초반의 지루한 ‘교도소 생활’에 대한 묘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꽤 빠른 속도로 전개됩니다.
밀실 미스터리에 의문을 갖는 교도관 노다,
성과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다케다 경시 및 지바 현경의 전방위적 수사,
과거 자신의 보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에 깊이 개입하는 시게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이 비춰지면서 단순해보였던 초반 설정이 점점 복잡하게 꼬여갑니다.
단순한 원한 살인으로 추정되던 교도소 내 밀실살인은
동일범에 의한 소행으로 보이는 연이은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고,
결국 수사의 폭 역시 다른 현으로까지 확대됩니다.
4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이라 빨리 읽히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상황들이 바뀌기 때문에 지루해질 틈 없이 읽히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아쉬운 점은 ‘너무 산만하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분량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등장인물들입니다.
피의자와 피살자, 그의 가족들, 그들이 수감되기 전 저지른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
또, 적잖은 경찰들과 언론까지 등장하면서 인물간의 관계나 연결고리가 너무 방대해졌고,
그로 인해 사건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작품에 담으려 했던 작가의 과욕 때문이었을까요?
교도소 내 밀실살인에서 출발한 미스터리지만,
그 안에는, 가해자와 그의 가족, 피해자와 그의 유족 간의 구원(舊怨)과 용서에 관한 문제,
사법제도가 외면한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적 복수, 한 개인의 삶을 파탄 낸 언론보도의 문제,
또, 미시적이긴 하지만, 성과와 보신에 집착하는 경찰 시스템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제일 의외였던 것은 이 작품의 원제가 ‘39조의 과실’이었다는 점인데,
일본 헌법 39조는 ‘동일 범죄에 대해 거듭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즉,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담고 있는 조항입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원래 취지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의 과실’이었다는 뜻인데,
물론 그런 내용이 담겨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라고 할 만한 비중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작가의 원래 의도는 제대로 안 보인 반면,
밀실 미스터리, 화해와 용서, 매스컴의 문제, 경찰 시스템의 문제 등
부차적인 주제와 소재들이 복잡하게 뒤엉켰고,
그런 점 때문에 몰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한 내용이 됐다는 생각입니다.
대형 기성작가들의 호평 속에 에도가와 란포상까지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이후 8년이 되도록 국내에 더는 소개된 작품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매력적인 후속작이 없었다는 뜻 같기도 하지만,
한 권쯤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반가운 출간 소식이 들리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