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홀로 아이를 키우며 병원에서 파트타임 비서 일을 하는 루이즈는

어느 날 바에서 데이비드라는 남자를 만나 잠깐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 상사로 재회한 그는 유부남이었고 꿈꾸던 사랑은 시작되지 못했다.

씁쓸한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우연히 조각처럼 아름다운 데이비드의 아내 아델을 만난다.

루이즈는 데이비드와 아델 모두와 점차 가까워지면서

이 멋진 부부 사이에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왜 데이비드는 그렇게 고압적일까? 그리고 아델은 무슨 비밀을 갖고 있는 걸까?

두 사람의 과거에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비밀은 셋 중 둘이 죽었을 때에만 지킬 수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

 

본편이 시작되기 직전 책머리에 인용된 의미심장한문장입니다.

본편을 다 읽고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느 작품들의 머리글과 달리

곧바로 독자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명료한 한 줄 카피입니다.

 

독자는 당연히 죽게 되는 둘이 누굴까?’라는 의문을 품고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면서 동시에 그 아내의 절친이 되는 싱글맘 루이즈,

싱글맘 루이즈와 불륜을 저지르지만, 자신의 아내와 그녀가 절친인지 모르는 데이비드,

싱글맘 루이즈와 절친이 되지만, 그녀가 남편의 불륜의 상대인지 모르는 아델 등

셋 가운데 죽는 둘은 누구이며, 죽이는 한 명은 누구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작가는 간혹 아델의 과거를 다룬 짧은 챕터들을 삽입합니다.

과거 10대 시절의 아델은 정신적 문제로 인해 시설에 수용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의지처이자 절친인 롭과의 특별한 인연이 꽤 비중 있게 그려집니다.

특히 과거 속 아델과 롭은 물론 현실의 루이즈까지 모두 야경증이라는 독특한 병을 앓는데

이쯤 되면 왠지 이 야경증이 평범한 설정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 작가가 아델의 과거야경증에 꽤 공을 들이는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이 단순히 불륜을 매개로 벌어지는 셋 중 둘이 죽어야 하는복수극만은 아니며,

뭔가 큰 비밀과 거짓말이 행간에 숨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막장 복수극심리스릴러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독자를 계속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절친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루이즈는 독자의 혼란을 대변하는 인물인데,

한편으론 아내를 속박하고 억지로 독한 약을 먹이는 데이비드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남편과의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는 아델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둘 사이에 뭔가 알 수 없는 비밀과 거짓말이 있는 게 분명한데,

액면대로면 데이비드가 나쁜 놈이지만, 아델의 행동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

, 위화감을 내뿜는 아델의 현재의 행동과 과거의 행적들 때문에

루이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두 사람 모두에게 끌려다는 꼴이 되고 맙니다.

 

독자 역시 루이즈처럼 뭐지?” 하면서 혼란스러운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데,

그 행보가 너무 길어져서 인내심이 바닥 날 무렵쯤 이야기는 갑자기 급물살을 탑니다.

그리고 앞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단서들이 한곳으로 모여들면서

머리글에서 선언한대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셋 중 둘이 죽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독자들은 전혀 예상 못한 충격적인 엔딩과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그제야 작가가 왜 막장복수극심리스릴러의 경계선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했는지,

아델의 과거야경증에 적잖은 공을 들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서평 쓰기 전 출판사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뒤늦게 이 작품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우선 다수의 문학상에서 판타지 부문 수상 경력이 있는 작가의 이력이 눈에 들어왔고,

이어, 띠지에 실린 추천사가 다른 누구도 아닌 스티븐 킹의 것이란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이 정보들을 알고 읽었더라도 클라이맥스와 엔딩의 충격은 여전했겠지만,

초반만 해도 길리언 플린의 작품들을 연상시켰던 스토리가

막판에 이르러 스티븐 킹의 폭주 스타일로 변신한 대목이 뒤늦게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이 작품을 길리언 플린과 스티븐 킹의 공동집필이라 해도 전 믿었을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한 가지만 고백하자면, 실은 중도포기를 여러 번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같은 이야기가 계속 동어반복되거나, 설명 부족 또는 모호한 대목들이 너무 많아서였는데,

솔직히, 이미 읽은 부분이 아깝기도 하고, 어떤 엔딩이 기다릴지 궁금한 나머지

조금은 고역이라 느끼면서 읽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100여 페이지부터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지고 빨라지더니

버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전과 충격, 홍수 같은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앞에서 장황하게 펼쳐진 이야기들이 과잉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으론, 3(333페이지)가 시작되기 전의 분량을 슬림하게 정리했더라면

정말 알찬 작품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제가 야박하게 별 3.5개에 그친 것은 순전히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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