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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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매물로 나온 교외 저택을 방문한 이선과 트리샤 부부는 폭설과 통신 두절로 인해 부득이 아무도 없는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곳이 3년 전 실종된 유명한 정신과 의사 헤일의 저택이란 걸 알게 된 트리샤는 음울한 분위기에 압도된 것은 물론 누군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듯한 흔적을 발견한 탓에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이선은 자신이 찾던 저택이라며 만족감을 표합니다. 새벽녘 잠에서 깬 트리샤는 책장 뒤편의 비밀공간에서 헤일이 환자와의 면담을 녹음한 대량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곤 호기심에 사로잡힙니다. 이선 몰래 테이프를 듣던 트리샤는 3년 전 헤일의 실종 전후 상황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자 큰 충격에 빠집니다.

 


‘연쇄살인마의 자식’인 유능한 외과의사가 주인공인 ‘핸디맨’과 저택의 가사도우미로 들어간 가석방 전과자가 주인공인 ‘하우스메이드’에 이은 프리다 맥파든의 세 번째 한국 출간작입니다. 각각 연쇄살인 스릴러, 도메스틱 스릴러인 두 작품에게 모두 별 4개의 평점을 줬지만,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은데다 반전의 매력도 뛰어나서 뇌손상 전문의이자 스릴러 작가인 그녀의 신작 소식을 기다려왔습니다.

 

이선과 트리샤 부부가 3년 전 실종된 헤일의 저택에 갇힌 채 불안한 이틀 밤을 보내는 현재의 이야기와, 실종되기 전 헤일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을 그린 과거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됩니다. 안 그래도 불온한 기운을 내뿜는 저택에 두려움을 느끼던 트리샤가 헤일의 녹음테이프를 통해 3년 전의 진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이야기와 그 당시 헤일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배턴 터치하듯 이어지는 구조라서 독자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는 물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며 접점을 이룰지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특히 폭설로 고립된 저택은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을 연상하게 만들어서 초반부터 호러의 향기를 진하게 피우는데, 재미있는 건 ‘샤이닝’이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소품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p340)

 

본문 중간에도 두어 번 등장하지만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줄을 장식한 이 문장은 ‘네버 라이’의 매력과 미덕을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과 거짓말이 난무하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손에 넣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을 죽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수고들은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설계된 이야기 속에서 뜻밖의 접점을 이뤄내는데, 작가는 그 지점까지 숱하게 독자의 헛발질을 유도하곤 합니다.

 

저택의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헤일의 녹음테이프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트리샤, 아내가 겁에 질린 걸 알면서도 당장에라도 저택을 사들일 듯 만족감을 느끼는 이선, 유명한 정신과 의사지만 정작 본인의 정신세계가 일그러지고 비틀렸던 헤일, 그런 헤일에게 오랜만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 루크,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과 협박을 일삼던 헤일의 몇몇 환자 등 ‘네버 라이’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속내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미묘하게 설정됐거나 노골적으로 악의를 내뿜는 위험인물로 그려집니다. ‘다른 한 사람’을 죽여서라도 비밀을 지키려는 건 과연 누구인지, 그렇게 지킨 비밀이 과연 끝까지 봉인될 수 있을지, 그 봉인이 해제된다면 어떤 사태가 초래될지 등 작가는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한국에 소개된 두 편의 전작들에 비해 속도감이나 스릴러의 묘미나 반전의 짜릿함 모두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핸디맨’과 ‘하우스메이드’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낀 독자라도 ‘네버 라이’에선 전혀 다른 맛을 만끽할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다만,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 꽤 상세한 줄거리를 공개하고 있으니 가급적이면 헤드라인 정도만 참고한 상태에서 본편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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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제
츠네카와 코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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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출간된 쓰네카와 고타로의 여섯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못 읽은 ‘초제’를 작년 이맘때 중고서점을 통해 어렵게 구했지만, 아껴 읽겠다는 생각에 미뤄뒀다가 뒤늦게 책장에서 구해주게 됐습니다.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알라딘 ‘판매자 중고’로는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혹은 환상문학은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장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네카와 고타로의 작품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게 된 건 우연히 접했던 ‘야시’와 ‘금색기계’ 덕분입니다. 현실 속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이고 신비한 이야기에서부터 요괴와 죽은 자들의 공간에 스며든 인간이 겪는 애틋하거나 끔찍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폭과 깊이를 품은 쓰네카와 고타로의 판타지는 그 방면으론 문외한인 제게도 너무나 매력적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초제’ 역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인 듯 아닌 듯한 신비한 공간 비오쿠(美奧)를 무대로 갖가지 감정과 여운을 담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지명의 어원은 아름다운 산속(美しい山奧)이지만, 비오쿠는 신비하거나 두렵거나 끔찍하거나 비밀스러운 사연을 지닌 이세계의 도시처럼 묘사됩니다. 생명체의 형질을 바꿔버리는 기이한 들판,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지만 유유히 거리를 돌아다니는 괴생물체, 생사를 좌우하거나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신비의 약물, 그곳을 방문한 사람의 기억에 따라 형태를 바꿔버리는 거리 등 비오쿠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기이한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형상 비오쿠는 평범한 도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직장과 학교가 있고 카페와 술집이 존재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곳입니다. 말하자면 공존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과 비현실’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뜻인데, 그로 인해 이야기가 발산하는 신비감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로를 통해 연결된 이세계의 공간을 무대로 두 중학생이 겪은 비극(짐승의 들판), 비오쿠 내에서도 과거의 풍습과 신화가 진하게 남아있는 오네자키 마을의 특별한 비밀(지붕 위 성성이), 오래 전 비오쿠가 탄생하게 된 전말을 그린 가슴 아픈 이야기(풀의 꿈 이야기), 인간의 뿌리 깊은 괴로움을 풀어주는 능력을 지닌 일가족과 그들에게 의지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텐게의 집), 그리고 7년 전 비오쿠에 들어오게 된 애잔한 사연을 들려주는 한 여자의 이야기(아침의 몽롱한 마을) 등 쓰네카와 고타로 특유의 ‘불안과 공포와 애틋함을 동시에 품은 판타지’가 수록돼있습니다. 일부 인물이 여러 수록작에 등장하기도 하고, 몇몇 수록작은 비오쿠의 전설과 신화를 공통 소재로 삼고 있기도 해서 독립 단편의 모음집이라기보다는 연작 단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척 기대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별 4개라는 평범한 별점을 준 이유는, 이야기 곳곳에서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모호하게 그려진 대목들을 자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한 줄만 더 설명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여러 차례 느끼곤 했는데, 아이러니한 건 그런 대목들이 실은 쓰네카와 고타로가 가장 공을 들이고 가장 많이 고민했던 대목이란 걸, 즉 일부러 불친절하게, 일부러 덜 설명했다는 걸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마다 몇 번씩 되읽으며 작가의 진의를 파악해보려 애써봤지만, 아무래도 저의 부족한 이해력으로는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아쉬움은 몇 배나 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멸망의 정원’을 제외한 다른 작품에선 그런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다 보니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그래선지 언젠가 한번쯤은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초제’에 재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야시’와 ‘금색기계’에 별 5개를, ‘천둥의 계절’에 별 4.5개를, 그리고 ‘초제’, ‘멸망의 정원’, ‘가을의 감옥’에 별 4개를 줬는데, 아직 쓰네카와 고타로를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야시’와 ‘금색기계’로 시작해볼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그의 데뷔작인 ‘야시’는 무서우면서도 애틋한 호러 판타지가 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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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살인
엔도 가타루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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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를 무대로 활동하는 ‘베이비★스타 라이트’는 애초 7인조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23살의 루이, 19살의 델마와 이즈미로만 활동하는 비인기 3인조 ‘지하’ 아이돌 그룹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프로듀서인 소속사 대표 하우라는 지금은 멤버들을 술자리 접대에 불러내 일감을 따내려 할 정도로 밑바닥을 전전하는 무능악덕의 진상입니다. 더구나 멤버들 간의 트러블도 점점 심각해지자 유일한 원년 멤버인 루이는 곧 있을 4주년 공연을 끝으로 아이돌 생활을 접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예의 추잡한 술 접대가 벌어진 어느 날, 소속사 사무실에서 하우라가 살해당합니다. 그를 죽인 건 그룹의 센터 역할을 맡고 있는 이즈미. 루이와 델마는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내 하우라의 시체를 산속에 매장하기로 뜻을 모읍니다.

 


‘최애’가 들어간 제목과 ‘아이돌이 저지른 살인사건’이라는 띠지 카피만 봤을 땐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 시리즈’처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가벼운 템포의 블랙코미디나 소동극이 아닐까, 짐작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출판사 소개글대로 아이돌 누아르 또는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긴박한 전개를 품은 범죄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비인기 아이돌 멤버들이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는 생존기이자 인간으로서, 아이돌로서, 여성으로서 좀더 큰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후반에 실린 해설에서도 언급되지만, 읽는 내내 리들리 스콧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이 생각나는 건 비단 저만의 경험은 아닐 텐데, 그래선지 자매애 또는 여성의 연대라는 서사도 진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아이돌이 됐고 지향점도 제각각인 탓에 루이와 델마와 이즈미 사이엔 언제 갈라서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과 트러블이 상존합니다. 하지만 무능하고 악독한 대표 하우라의 사체 앞에서 세 사람은 (역시 각기 다른 이유로) 뜻을 모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범이 된 이후 세 사람은 진정한 톱 아이돌이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합니다. 트러블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엔 한 배를 탔다는 연대감이 강하게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사체를 유기한 직후부터 이들에겐 쉴 새 없이 위기가 닥칩니다. 언제 범행이 들킬지 모른다는 공포감, 자신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매니저, 누구든 마음이 약해져 자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완전범죄의 완성을 기원하며 4주년 공연을 준비합니다.

 

어둡고 무겁고 빠르고 긴박한 이야기지만 역시 아이돌이 주인공이다 보니 때때로 가볍고 통통 튀는 대목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비인기 아이돌의 현실, 그 또래만이 품고 있는 고민, 한없이 약하지만 어떻게든 강한 척 보이려는 안쓰러운 모습 등 숨 가쁜 위기 속에서도 19~23살 특유의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데뷔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건과 해프닝과 반전을 뜻밖의 타이밍에 적절히 뒤섞어가며 폭주시키는 작가의 필력입니다. 위기와 안도의 순간이 소소한 반전들을 통해 번갈아 찾아드는가 하면, 누가 진짜 폭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조연들의 등퇴장 역시 전광석화처럼 이뤄집니다. 그 와중에 화자이자 원년 멤버인 루이의 과거사가 끼어들기도 하고, 델마와 이즈미의 각별한 사연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막판에 이르러 대반전과 함께 최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독자의 호흡을 더욱 가쁘게 만듭니다.

 

‘아이돌이 주인공인 범죄소설’이라 이런저런 선입견을 품었던 독자라도 다 읽고 나면 이 작품이 22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문고 그랑프리 수상작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강렬한 누아르와 스릴러를 만끽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 여운처럼 남은 ‘아이돌다운 가벼운 분위기’를 떨쳐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서평 초반에 언급한 다양한 매력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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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바라는 기도 ㅣ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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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6개월 전 스토커 피해를 호소했던 카렌이 알몸으로 투신자살했다는 뉴스를 본 사립탐정 켄지는 의문에 사로잡힙니다. 당시 스토커는 확실히 제압했었고, 자신이 기억하는 카렌은 이런 식으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의뢰인도 없는 조사를 시작한 켄지는 그녀의 가족과 정신과 의사 등 주변 인물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9개월 전 파트너였던 제나로와 헤어진 뒤 탐정으로선 밑바닥을 전전하던 켄지는 혼자 힘으론 이 사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 제나로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폭력의 화신인 부바까지 가세하여 범인의 뒤를 쫓던 켄지 일행은 결정적 단서를 포착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큰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그 어느 스릴러 시리즈보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강렬한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아껴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실은 한없이 게으름을 부린 탓에 전작인 ‘가라, 아이야 가라’ 이후 7년 만에 읽게 됐는데, 그래선지 이 시리즈의 폭력성과 선정성에 새삼 여러 차례 놀라며 페이지를 넘기곤 했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야박한 평점을 매긴 서평 대부분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시리즈 첫 편부터 설정됐던 주인공 패트릭 켄지의 캐릭터(폭력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폭력에 잠식돼버린 인물)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서 별 저항감 없이, 오히려 재미있게 읽어온 게 사실입니다.

 

9개월 전, 그러니까 전작인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 때문에 결별했던 켄지와 제나로가 재결합하여 로맨스는 물론 추리와 액션에서도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데다 두 사람의 동료이자 뼛속까지 폭력의 DNA로 가득 찬 전직 군인 부바가 그 어느 때보다 광폭 행보를 보여서 읽는 내내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작인 ‘작은 자비들’에서 인종차별을 소재 삼아 묵직한 사회파 스릴러를 선보였던 데니스 루헤인의 필력도 너무 좋았지만, 제겐 피와 살이 난무하는 거친 액션 스릴러 속에 풍자와 비아냥과 진한 블랙 유머를 자유자재로 섞어 넣는 그의 재능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비교적 사이즈도 크고 ‘조직’이 등장하는 큰 사건들을 다뤘던 전작들에 비해 ‘비를 바라는 기도’는 의뢰인도 없고 보수도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한 여자의 죽음의 진상을 조사하는 켄지의 범죄 미스터리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역대급 사이코패스가 등장하여 연이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켄지 일행에게 닥치는 위기 역시 결코 소소하다고 할 순 없지만, 사립탐정 본연의 역할과 임무에 어울리는 사건이라 더 현실감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의 비극적인 사고로 풍비박산이 난 가족, 그 가족의 비밀을 파고들어 살인과 갈취를 일삼는 것은 물론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범인, 그리고 추리와 상상력과 폭력을 적절히 버무려가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켄지와 제나로 등 선악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생생하면서도 극단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롤러코스터 같은 이야기는 마지막 반전에 도달할 때까지 잠시도 쉬어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켄지와 제나로의 애틋한 재회 로맨스가 끼어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부바의 웃지 못 할 코미디까지 가세해서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한나절이면 금세 마지막에 이를 수 있습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이 다음 작품인 ‘문라이트 마일’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매번 “왜 데니스 루헤인이 이 시리즈를 여섯 편밖에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서평에 담곤 했는데, ‘문라이트 마일’이 미국에서 2010년에 출간됐으니 신작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그래도 언젠가 프리퀄이든 스핀오프든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켄지와 제나로의 이야기를 한번쯤은 더 읽어보고 싶은 욕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과도한 폭력성과 선정성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제겐 애정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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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 ㅣ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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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전문 필자인 ‘나’ 우케쓰는 도쿄에 집을 마련하려다 고민에 빠진 지인이 보여준 평면도 때문에 호기심에 사로잡힙니다. 1층 한 곳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공간이 있는데, 지인은 그 공간이 찜찜한 나머지 구매를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케쓰는 미스터리 마니아인 건축설계사 구리하라와 함께 평면도를 분석하던 중 수수께끼의 공간 외에도 상식적이지 않은 곳들이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그 공간들에 대한 구리하라의 추리를 듣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저 구리하라의 지나친 망상이라고 치부하려 했지만, 지은 지 1년 만에 그 집을 매물로 내놓은 주인의 과거를 조사하던 우케쓰는 평면도 속 수수께끼의 공간이 어쩌면 실제로 참혹한 살인이 벌어진 사건현장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2022년에 출간됐을 당시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보곤 왠지 과도한 ‘특수설정 미스터리’라는 선입견이 들어서 관심목록에서 제외시켰던 작품인데, 3년 만에 후속작(‘이상한 집 2’)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해서 뒤늦게나마 찾아 읽게 됐습니다.

 

평면도 속 수수께끼 공간에 대한 막연한 추리로 시작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확장되다가 끝내 잔인하고 끔찍한 비극의 정체를 폭로하는 호러 서사로 발전되는 구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초반에 우케쓰와 구리하라가 2층 주택의 평면도를 보며 막연한 추리를 주고받는 장면을 읽을 때만 해도 ‘평면도에 관한 해프닝에 가까운 단편 호러물’이라고 짐작했는데, 집을 내놓은 주인의 과거, 또 다른 기이한 평면도의 존재, 제3의 인물이 들려주는 평면도에 얽힌 일가족에 관한 이야기 등 예상치 못한 설정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과연 서사의 두께와 깊이가 어디까지 늘어날지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창문이 없는 아이의 방, 설치 목적을 알 수 없는 이중문, 비합리적으로 증축된 방, 비밀통로처럼 보이는 공간 등 우케쓰와 구리하라가 들여다보는 평면도 속엔 일상과는 거리가 먼 기이함과 위화감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평면도 자체만으로 그곳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을 유추하는 건 실은 과대망상에 가까운 일입니다. 특히 수수께끼의 공간이 은밀한 살인과 시신 유기에 쓰였을 거라는 구리하라의 추리는 이 작품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독자에겐 ‘코믹하고 황당한 호러 미스터리’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과대망상에 가까운 추리를 현실 속 참극과 교묘하게 연결시킴으로써 ‘평면도 호러 미스터리’라는, 어디에도 없던 특별한 이야기를 자아냈습니다.

 

우케쓰와 구리하라의 막연한 추리 내용도 그렇고, 이들의 추리를 현실과 결부시켜주는 제3의 인물의 신상도 그렇고 거의 모든 게 스포일러라 스토리에 관한 한 서평에서 소개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기이한 평면도에 얽힌 일가족의 비극적인 사연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매력적인 미스터리지만 워낙 복잡하게 짜인데다 짧은 소개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역시 이 자리에서 언급하기가 곤란합니다.

다만 평면도 속의 아주 작은 수수께끼의 공간에 대한 추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점차 몸집을 불려가며 미쓰다 신조 스타일의 호러 미스터리로 발전하는 독특한 서사는 새롭고 신선한 장르물을 찾는 독자에겐 뜻밖의 재미를 선사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기이하고 위화감 넘치는 평면도 말고도 얼마든지 새로운 소재가 가능하다는 점, 그래서 후속편에 대한 기대가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후속작인 ‘이상한 집 2’에는 모두 11채의 이상한 집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소개글을 일부러 안 봐서 장편인지 11개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독자 입장에서 스스로 추리를 해볼 수 있는 단서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니 모두 3채의 이상한 집이 등장한 첫 편보다 좀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깊고 어두운 심연에 빨려드는 듯한 느낌을 줬던 ‘이상한 집’을 넘어서는, 좀더 오싹하고 소름 돋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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