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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매물로 나온 교외 저택을 방문한 이선과 트리샤 부부는 폭설과 통신 두절로 인해 부득이 아무도 없는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곳이 3년 전 실종된 유명한 정신과 의사 헤일의 저택이란 걸 알게 된 트리샤는 음울한 분위기에 압도된 것은 물론 누군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듯한 흔적을 발견한 탓에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이선은 자신이 찾던 저택이라며 만족감을 표합니다. 새벽녘 잠에서 깬 트리샤는 책장 뒤편의 비밀공간에서 헤일이 환자와의 면담을 녹음한 대량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곤 호기심에 사로잡힙니다. 이선 몰래 테이프를 듣던 트리샤는 3년 전 헤일의 실종 전후 상황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자 큰 충격에 빠집니다.

‘연쇄살인마의 자식’인 유능한 외과의사가 주인공인 ‘핸디맨’과 저택의 가사도우미로 들어간 가석방 전과자가 주인공인 ‘하우스메이드’에 이은 프리다 맥파든의 세 번째 한국 출간작입니다. 각각 연쇄살인 스릴러, 도메스틱 스릴러인 두 작품에게 모두 별 4개의 평점을 줬지만,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은데다 반전의 매력도 뛰어나서 뇌손상 전문의이자 스릴러 작가인 그녀의 신작 소식을 기다려왔습니다.
이선과 트리샤 부부가 3년 전 실종된 헤일의 저택에 갇힌 채 불안한 이틀 밤을 보내는 현재의 이야기와, 실종되기 전 헤일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을 그린 과거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됩니다. 안 그래도 불온한 기운을 내뿜는 저택에 두려움을 느끼던 트리샤가 헤일의 녹음테이프를 통해 3년 전의 진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이야기와 그 당시 헤일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배턴 터치하듯 이어지는 구조라서 독자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는 물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며 접점을 이룰지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특히 폭설로 고립된 저택은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을 연상하게 만들어서 초반부터 호러의 향기를 진하게 피우는데, 재미있는 건 ‘샤이닝’이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소품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p340)
본문 중간에도 두어 번 등장하지만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줄을 장식한 이 문장은 ‘네버 라이’의 매력과 미덕을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과 거짓말이 난무하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손에 넣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을 죽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수고들은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설계된 이야기 속에서 뜻밖의 접점을 이뤄내는데, 작가는 그 지점까지 숱하게 독자의 헛발질을 유도하곤 합니다.
저택의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헤일의 녹음테이프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트리샤, 아내가 겁에 질린 걸 알면서도 당장에라도 저택을 사들일 듯 만족감을 느끼는 이선, 유명한 정신과 의사지만 정작 본인의 정신세계가 일그러지고 비틀렸던 헤일, 그런 헤일에게 오랜만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 루크,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과 협박을 일삼던 헤일의 몇몇 환자 등 ‘네버 라이’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속내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미묘하게 설정됐거나 노골적으로 악의를 내뿜는 위험인물로 그려집니다. ‘다른 한 사람’을 죽여서라도 비밀을 지키려는 건 과연 누구인지, 그렇게 지킨 비밀이 과연 끝까지 봉인될 수 있을지, 그 봉인이 해제된다면 어떤 사태가 초래될지 등 작가는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한국에 소개된 두 편의 전작들에 비해 속도감이나 스릴러의 묘미나 반전의 짜릿함 모두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핸디맨’과 ‘하우스메이드’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낀 독자라도 ‘네버 라이’에선 전혀 다른 맛을 만끽할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다만,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 꽤 상세한 줄거리를 공개하고 있으니 가급적이면 헤드라인 정도만 참고한 상태에서 본편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