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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살인
엔도 가타루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2월
평점 :
오사카를 무대로 활동하는 ‘베이비★스타 라이트’는 애초 7인조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23살의 루이, 19살의 델마와 이즈미로만 활동하는 비인기 3인조 ‘지하’ 아이돌 그룹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프로듀서인 소속사 대표 하우라는 지금은 멤버들을 술자리 접대에 불러내 일감을 따내려 할 정도로 밑바닥을 전전하는 무능악덕의 진상입니다. 더구나 멤버들 간의 트러블도 점점 심각해지자 유일한 원년 멤버인 루이는 곧 있을 4주년 공연을 끝으로 아이돌 생활을 접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예의 추잡한 술 접대가 벌어진 어느 날, 소속사 사무실에서 하우라가 살해당합니다. 그를 죽인 건 그룹의 센터 역할을 맡고 있는 이즈미. 루이와 델마는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내 하우라의 시체를 산속에 매장하기로 뜻을 모읍니다.

‘최애’가 들어간 제목과 ‘아이돌이 저지른 살인사건’이라는 띠지 카피만 봤을 땐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 시리즈’처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가벼운 템포의 블랙코미디나 소동극이 아닐까, 짐작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출판사 소개글대로 아이돌 누아르 또는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긴박한 전개를 품은 범죄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비인기 아이돌 멤버들이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는 생존기이자 인간으로서, 아이돌로서, 여성으로서 좀더 큰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후반에 실린 해설에서도 언급되지만, 읽는 내내 리들리 스콧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이 생각나는 건 비단 저만의 경험은 아닐 텐데, 그래선지 자매애 또는 여성의 연대라는 서사도 진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아이돌이 됐고 지향점도 제각각인 탓에 루이와 델마와 이즈미 사이엔 언제 갈라서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과 트러블이 상존합니다. 하지만 무능하고 악독한 대표 하우라의 사체 앞에서 세 사람은 (역시 각기 다른 이유로) 뜻을 모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범이 된 이후 세 사람은 진정한 톱 아이돌이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합니다. 트러블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엔 한 배를 탔다는 연대감이 강하게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사체를 유기한 직후부터 이들에겐 쉴 새 없이 위기가 닥칩니다. 언제 범행이 들킬지 모른다는 공포감, 자신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매니저, 누구든 마음이 약해져 자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완전범죄의 완성을 기원하며 4주년 공연을 준비합니다.
어둡고 무겁고 빠르고 긴박한 이야기지만 역시 아이돌이 주인공이다 보니 때때로 가볍고 통통 튀는 대목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비인기 아이돌의 현실, 그 또래만이 품고 있는 고민, 한없이 약하지만 어떻게든 강한 척 보이려는 안쓰러운 모습 등 숨 가쁜 위기 속에서도 19~23살 특유의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데뷔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건과 해프닝과 반전을 뜻밖의 타이밍에 적절히 뒤섞어가며 폭주시키는 작가의 필력입니다. 위기와 안도의 순간이 소소한 반전들을 통해 번갈아 찾아드는가 하면, 누가 진짜 폭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조연들의 등퇴장 역시 전광석화처럼 이뤄집니다. 그 와중에 화자이자 원년 멤버인 루이의 과거사가 끼어들기도 하고, 델마와 이즈미의 각별한 사연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막판에 이르러 대반전과 함께 최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독자의 호흡을 더욱 가쁘게 만듭니다.
‘아이돌이 주인공인 범죄소설’이라 이런저런 선입견을 품었던 독자라도 다 읽고 나면 이 작품이 22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문고 그랑프리 수상작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강렬한 누아르와 스릴러를 만끽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 여운처럼 남은 ‘아이돌다운 가벼운 분위기’를 떨쳐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서평 초반에 언급한 다양한 매력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