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 스트리트 ㅣ 베라 스탠호프 시리즈
앤 클리브스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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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뉴캐슬의 눈보라 치는 성탄 전야, 딸 제시와 함께 복잡한 열차에 탑승한 형사 조 애쉬워스는

혼란스런 열차 안에서 딸이 발견한 살해된 노파 마가렛의 시신에 경악한다.

현장에 도착한 조의 상관 베라 스탠호프 경감은 이 복잡하고 특이한 사건에 의문을 느끼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며칠이 지나가고 두 번째 피해자가 발생한다.

사건의 단서는 첫 피해자 마가렛에게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주변을 철저히 탐문하던 베라에게

하버 스트리트의 주민들은 누구도 증언을 꺼려하고

그럴수록 베라는 마가렛의 과거에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보진 못했지만) 영국 인기 범죄드라마 ‘베라’의 원작소설이며,

노섬벌랜드의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경감 베라 스탠호프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모두 8편의 시리즈가 출간됐고, ‘하버 스트리트’는 그중 6번째 작품입니다.

 

소도시 마들에 자리한 항구거리 하버 스트리트에서 연이어 두 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베라를 비롯 그녀가 가장 아끼는 후배 조 애쉬워스, 홀리, 찰리 등이 수사를 벌입니다.

작고 폐쇄적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하버 스트리트’ 역시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그래서 애증으로 복잡하게 엮인 여러 사람들이

용의자 혹은 방관자 혹은 고발자 등의 역할을 맡아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특히 베라가 첫 희생자의 비밀투성이 과거에 집착하면서

수십 년 전 하버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꽤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데,

문제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그 과거사를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베라와 팀원들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번갈아 집요하게 탐문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단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굳게 닫힌 하버 스트리트 사람들의 입은 거의 요지부동입니다.

 

베라는 딱히 과학수사에 목을 매지도, 직감이나 본능에 의지하지도 않는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단서가 가리키는 대로 지시를 내리고 스스로도 기꺼이 발품을 파는 모범적 상관입니다.

수사가 끝나면 아침저녁으로 회의를 열어 결과를 보고받고 후속 수사를 계획합니다.

말하자면, 스마트폰 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라와 그녀의 부하들은 어딘가 시대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탐문형 수사팀’의 모습입니다.

물론 사건 자체가 소도시 항구에서 벌어진데다 개인적 원한이 바탕에 깔린 듯한 사건이라

‘크리미널 마인드’나 ‘CSI’ 같은 수사기법이 어울릴 리 없지만

‘지시하고 지시받고, 수사하고 보고하고, 회의하고 계획 짜고’ 식의 루틴이 반복되는데다

베라를 비롯 모든 경찰 캐릭터 자체가 눈에 띄는 개성이 부족한 탓인지

이야기 전체에서 올드함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 베라 스탠호프는 분명 드라마 주인공이 될 만한 특이한 캐릭터이긴 합니다.

옆집 아줌마 같으면서도 부하들이 알아서 쩔쩔 매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감이기도 한 그녀는

여성성이 강조된 기존의 여자 경찰 캐릭터와는 거의 180도 반대의 모습을 지닌데다

작가의 말대로 “현실적이고 진짜 살아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영웅처럼 그려지지도 않고, 누구나 저지를 법한 실수도 ‘현실감 있게’ 저지릅니다.

탐문 대상이나 부하들을 대할 때에도 대체로 능숙한 심리전을 구사하는 편이지만,

때론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훅 앞질러 나가기도 하는 평범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시리즈를 첫 편부터 읽었다면 베라의 진면목을 좀더 잘 알 수 있었겠지만,

‘하버 스트리트’만 놓고 보면 베라의 ‘현실감’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오히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보였다는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두 번째 주인공처럼 보인 조 애쉬워스나 톡톡 튀는 홀리도 대체로 평면적이었습니다.)

 

사건은 역시나 독자의 예상을 한참 빗나간 방식으로 해결되는데,

문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보다 ‘좀 억지 같다’는 기분이 강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 읽은 뒤에 생각해보면 작가가 곳곳에 단서를 뿌려놓았다는 게 떠오르긴 하지만

막판에 드러난 범인의 정체나 동기는 앞서 펼쳐진 이야기들을 좀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고,

하버 스트리트의 30여 년 전의 과거사와 작위적으로 엮인 느낌도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베라와 조가 범인의 윤곽을 떠올리는 과정이 비약적이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아무리 앞뒤를 다시 읽어봐도 ‘그럴 만한’ 계기나 단서가 보이지 않았는데,

딱 한 가지 추정할 만한 근거는 (스포일러라 언급하긴 어렵지만) 너무 쉽고 안이하게 보여서

‘설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곧 시리즈 최신 편인 ‘The Seagull’을 출간할 계획이며,

이어 1편부터 차례대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심리’를 다뤘다는 걸 보면

대체로 ‘하버 스트리트’와 비슷한 서사의 작품들일 것으로 보이는데,

베라의 매력이나 부하들의 캐릭터가 궁금해서라도 한 편 정도는 더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영국추리작가협회의 평생공로상인 다이아몬드 대거 상 수상자’인 작가의 이력만 보면

단 한 편의 작품으로 지레 선입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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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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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중생 샤오원(小雯)이 죽었다. 22층에서 뛰어내려 온몸이 부서졌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샤오원의 언니 아이(阿怡)는 알고 있다. 동생은 ‘살해’된 것이다.

샤오원은 세상을 떠나기 전, 성추행 사건을 꾸며냈다며 인터넷에 신상이 공개되어

수많은 누리꾼의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억울하게 희생된 샤오원을 위해 아이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맹세한다.

그를 위해 기인에 가까운 해커 겸 탐정 아녜(阿涅)의 도움을 받게 된 아이.

그러나 SNS, 인터넷, 스마트폰 등 네트워크 속에 감춰졌던 진실이 베일을 벗을수록,

아이는 자신이 알던 동생 샤오원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13.67’로 홍콩 경찰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줬던 찬호께이가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소재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로 돌아왔습니다.

전반부가 천재적인 해커이자 까칠한 명탐정 아녜의 도움을 받은 아이가 진실을 찾는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찾아낸 ‘범인’을 향한 두 사람의 가차 없는 복수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망내인’은 단순한 ‘진실찾기-복수’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네트워크가 지배한 세상에서 악의가 얼마나 쉽게 싹을 틔우고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네트워크에 의지한 ‘소통’이란 얼마나 가볍고 이기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네트워크에 가둔 인간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한 것인지 등

찬호께이다운 묵직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두 주인공은 ‘구시대적 컴맹’과 ‘전지전능한 해커’라 할 만큼 대조적인 인물들입니다.

아이는 20대 초반의 여성이지만 도서관 대여프로그램 외엔 컴퓨터와 담을 쌓은데다

스마트폰은 만져본 적도 없고,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이란 문자메시지가 전부입니다.

반면, 아이를 도와 진실 찾기에 나선 아녜는 네트워크 세상의 지배자입니다.

그는 타인의 네트워크에 마음껏 파고들 수 있는 건 물론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불가능 자체를 모르는 지상 최고의 해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녜가 네트워크 속에 숨은 진실들을 하나씩 파헤칠 때마다 아이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드러나는 진실들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 사람이 접하는 정보를 통제할 수 있으면 생각과 감정도 통제할 수 있는”(548p)

네트워크의 파멸적인 힘을 지켜보는 일이 아이에겐 더욱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비열한 익명성을 겸비한 탓에 쉽게 찾아낼 수도, 단죄할 수도 없는 대상이거니와

그저 가학의 희열과 끝없이 샘솟는 관음증만 조장하는 허깨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증오해야 할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인터넷 뒤에 숨은 인간성의 어두움”(685p)이지만

독자는 아이의 눈을 통해 네트워크가 지배한 세상의 끔찍한 단면을 새삼 재인식하게 됩니다.

사건은 단순하고, 용의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설정됐지만,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설정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네트워크가 지배한 디스토피아’라는 철학적 주제에만 천착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 속 미스터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양파껍질처럼 새 진실을 드러냅니다.

자살한 동생은 내가 알던 동생이 맞는가?

동생을 조롱과 모욕의 장으로 내몬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들의 동기는 무엇인가?

진실찾기는 물론 복수의 대리인까지 자처하는 아녜의 정체는 무엇인가? 등

작가는 크고 작은 미스터리를 사방에 뿌려놓고 아주 천천히 그것들을 풀어나갑니다.

또, 그 과정에서 화려한 홍콩의 이면, 안타까운 가족사, 사적 복수의 문제까지 언급되면서

이야기의 볼륨감은 분량에 걸맞게 점차 커져갑니다.

 

이야기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두 주인공 역시 시리즈를 기대하게 할 만큼 매력을 발산합니다.

까칠한 안하무인 성격, 천재적인 해커이자 명탐정, 복수를 상징하는 네메시스라는 필명 등

다양한 캐릭터가 부여된 아녜는 비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시리즈 주인공의 미덕을 모두 갖췄고,

아녜 덕분에 점차 강인한 인물로 성장하는 아이 역시 뒷이야기가 기대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녜와 아이가 콤비를 이룬 후속작을 써달라고 작가에게 조르고 싶을 정도인데,

‘망내인’이 호응을 얻는다면 불가능한 기대도 아닐 거란 생각입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역시 ‘분량의 문제’입니다.

작가 스스로 “원래는 ‘기억나지 않음, 형사’와 비슷한 분량(312p)으로 쓸 생각이었다. (중략)

탈고했을 때는 30만 자를 넘어 ‘13.67’보다도 길었다. 망했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망내인’의 핵심 스토리는 이만한 분량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규모입니다.

하지만 “각 인물의 입장과 생각, 그들의 희로애락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의도대로

작가는 꽤 많은 분량을 내밀한 묘사를 위해 할애했고,

해킹이나 네트워크의 원리에 대한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도 그에 못잖게 곁들이고 있습니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100p 안팎 정도만 줄였다면

지레 분량에 질려서 ‘망내인’을 읽을까 말까 주저하는 독자는 없을 거란 생각입니다.

물론, 저처럼 찬호께이의 팬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숙명(?)처럼 받아들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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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책이좋아 2018-01-0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시리즈였으면 좋겠어요!!!!
 
기룡경찰 ㅣ LL 시리즈
쓰키무라 료에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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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 전투에 맞게 개발된 2족 보행형 병기인 기갑병장이 발달한 근미래.

신형 기갑병장인 ‘드래군’을 도입한 경시청은 총감 산하 직속의 특수부를 구성하고

드래군의 탑승 요원으로서 세 명의 용병을 영입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다.

불법으로 제조된 기갑병장으로 무장한 농성범들이 막심한 피해를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지자,

특수부 대원들은 경찰 내부의 다른 조직들의 반발과 견제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하지만 사건의 배후에는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암흑이 펼쳐져 있었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경찰소설의 대가 요코야마 히데오 또는 사사키 조가 집필한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는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의 초기 버전”이라고 할까요?

작품의 외형은 분명 ‘인간형 전투병기를 타는 경찰’이 등장하는 SF물이지만,

핵심 내용은 ‘경찰의 정의’ 또는 ‘경찰조직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시청 특수부 폴리스 드래군, 통칭 기룡경찰은 경찰 내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는 조직입니다.

수장은 경찰 출신이 아닌 전직 외무성 관료가 맡고 있고,

형사부나 공안부와 척을 질 정도로 독립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으며,

경찰이 운영하는 일반 기갑병장과는 차원 자체가 다른 차세대 기갑병장 드래군의 조종은

프리랜서 용병, 전직 모스크바 경찰, 전직 테러리스트 등

엄청난 계약금을 받은, 범죄자에 가까운 ‘이상한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 내부에서는 그런 특수부를 한편으론 시기와 질투의 눈길로 바라보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곳으로의 발령 자체를 좌천이라 여길 만큼 하찮게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시선들이 모여 결국엔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고 공개적으로 멸시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매크로한 경찰 조직 내의 갈등이 한 축이라면,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 명의 용병의 내적 갈등이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합니다.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며 프리랜서 용병으로 살아온 스가타,

전직 모스크바 경찰이었지만 도망자 신세 끝에 용병이 된 유리 오즈노프,

그리고 사신(死神)이라 불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테러리스트 라이저 라드너가 그들인데,

이들은 단순히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용병 캐릭터뿐 아니라

절대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로 설정돼있습니다.

시리즈 첫 편 격인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이 다 설명되진 않지만,

그들의 압도적인 캐릭터는 분명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페이지 터너로서 작동합니다.

 

이들을 지휘, 관리하는 기룡경찰의 수장 오키쓰 부장은 상대적으로 덜 소개가 된 편인데,

오히려 그런 미스터리함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들조차 그 속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주의적 캐릭터인 그는

외무성 관료 출신이지만 누구보다 탁월한 판단력과 지휘력을 발휘하는데다

경찰조직 전체와 갈등을 벌이는 특수부를 정치적으로도 유연하게 이끌어나갑니다.

그 외에도 동료들의 온갖 멸시에도 불구하고

오키쓰 휘하에서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여러 조연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역시 후속작에서의 활약이 궁금해질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입니다.

 

사건 자체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기갑병장을 이용한 정체불명의 조직의 대규모 테러가 발생하고,

오키쓰가 이끄는 기룡경찰이 그 배후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테러를 일으킨 자들은 아무런 요구사항도 전하지 않은 채 현장에서 도주했고,

오키쓰는 결국 그들의 목적이 ‘경찰 궤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이 위험천만한 테러에 한때 스가타와 동료였던 용병이 가담한 것이 밝혀지고,

그를 단서 삼아 테러를 일으킨 조직을 밝히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분량도 그리 길지 않은데다 그야말로 ‘재미’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라

SF물에 거부감이 있는 독자라도 한 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이유 때문에 ‘기룡경찰’을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많은 분들의 서평에서 ‘경찰소설의 매력을 갖췄다’라는 대목을 읽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작품을 읽어보기로 작심하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는 SF와 경찰소설의 미덕이 잘 섞인 재미있는 작품을 만났다는 생각이고,

여운을 잔뜩 남긴 엔딩 덕분에 일본SF대상을 받았다는 후속작 ‘기룡경찰-자폭조항’에서

오키쓰와 세 용병의 운명, 경찰조직과 특수부의 갈등이 어떻게 이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기룡경찰 시리즈’가 3편까지 나온 것 같은데

부디 모든 시리즈가 국내에서 꼭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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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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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무라 미즈키는 만나는 작품마다 색깔이 달랐던 작가입니다.

‘나의 계량스푼’은 내 뜻대로 상대의 행동을 좌우할 수 있는 판타지적 캐릭터가 등장하여

죄와 벌, 복수와 악의 등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을 다룬 작품입니다.

‘테두리 없는 거울’은 각기 색다른 다섯 편의 괴담이 실린 작품집이고,

‘츠나구’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능력을 가진 남자가 등장한 판타지입니다.

또, ‘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죽여 달라는 여중생이 등장하는

특이한 성장기이자 미스터리입니다.

 

이처럼 굉장히 특별한 설정이 들어있는 판타지-괴담-미스터리를 겪은 탓에

‘아침이 온다’는 “정말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좀 과하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여자’와 ‘아이를 낳았으나 키울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오랜 난임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입양을 선택한 40대 여자 구리하라와

반항기로 가득 찬 불장난 끝에 임신을 하게 된 여중생 히카리가 그녀들입니다.

초반부가 구리하라의 고통스런 불임의 나날과 입양 결심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중반부터는 히카리의 혼란스러운 사춘기 시절과 임신-출산의 과정,

그리고 출산 후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히카리의 신산스런 삶이 그려집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입양한 아이와 함께 평온한 삶을 살던 구리하라가

생모인 히카리로부터 “아이를 내놓거나 돈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독자는 아이 또는 돈을 요구하는 히카리가 ‘생모 히카리’가 맞는지도 혼란스럽고,

맞다면 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지금에 와서 그런 요구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런 설정 때문에 출판사는 ‘사회파 · 가족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소개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아침이 온다’는 순수한 휴머니즘 소설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불임녀 구리하라의 심적 고통과 입양 결심 과정의 갈등이라든가

임신과 출산, 연인의 배신, 가족과 친지들의 싸늘한 시선을 겪다가

결국 막장이나 다름없는 차가운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10대 소녀 히카리의 혼란은

간결하지만 바늘 끝처럼 아프게 느껴지는 츠지무라 미즈키의 문장들 속에서

극단적일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독자들의 공감을 충분히 얻긴 합니다.

 

다만,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극성이 강한 작품인 건 맞는데,

솔직히 평가하자면 익히 예상 가능한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구조라서

츠지무라 미즈키만의 강렬한 한 방을 기대한 독자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작가의 이름과 장르에 기대지 말고 ‘극단적인 삶을 부여받은 두 여자의 이야기’로 읽어야만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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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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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해외다큐 채널에서 불법적인 수렵이나 낚시행위를 감시하는

‘제복 입은 자’들을 팔로우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습니다.

제목에 Warden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제복 입은 자’들은 (방송이니까 그렇겠지만) 공정하고 단호하게 위법행위를 적발하며,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소중히 여기는 믿음직한 감시관들입니다.

위험한 현장 업무이다 보니 남녀를 불문하고 대체로 마초적인 캐릭터로 보이곤 했는데,

‘오픈 시즌’의 주인공이자 와이오밍 주 새들스트링 지구의 수렵 감시관 조 피킷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수렵 감시관’과는 거리가 한참 먼 꽤 얌전한 인물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렵 감시관이 되길 꿈꾼 타고난 ‘자연주의자’이며,

아내와 두 딸과의 소소한 행복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선한 인물입니다.

비록 사격솜씨는 형편없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좀 부족하지만,

박봉과 격무에도 불구하고 천직이라는 신념 하나로 와이오밍의 대자연을 누비고 다닙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이은 살인사건과 영문 모를 상황들이 한꺼번에 닥칩니다.

자신과 악연이던 한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집 뒷마당에서 발견되는가 하면,

그를 조사하기 위해 정찰나간 사냥캠프에서는 예기치 못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또, 과거 그의 멘토였던 자는 침체된 마을을 부활시킬 대규모 개발 사업을 언급하며

조에게 박봉의 수렵 감시관을 그만두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 합류할 것을 권합니다.

살인사건에 대한 의문과 박봉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갈등 때문에

조의 머리는 여러 갈래로 복잡해집니다.

그러던 중, 진실을 찾기 위해 살인사건 조사를 시작한 조에게 연이어 재앙이 몰려옵니다.

일과 가족 모두가 위태로워진 조는 위험을 무릅쓴 탐문 끝에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읽어보니 이 작품의 장르를 ‘에코 스릴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선한 수렵 감시관, 멸종위기종, 보호지를 개발해 이권을 챙기려는 세력 등의 소재만 봐도

왜 그런 장르로 분류됐는지, 또 대략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분명 스릴러지 계몽극은 아닙니다.

아마 ‘난개발을 막고 자연을 지키자’는 주제가 과하게 부각됐다면

조 피킷 시리즈가 17편까지 출간됐을 리는 절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렵 감시관 주변에서 17편까지 출간될만한 사건이 계속 벌어졌다고?”라는 점은

저 역시도 무척 궁금한 점이지만 그건 후속작을 읽어봐야 답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저절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광활한 대자연에 대한 세세한 묘사,

소심하지만 선하고 정의로운 조 피킷과 그의 개성 만점 가족들,

그리고 뻔한 듯 보이지만 결코 뻔하게 읽히지 않는 에코 스릴러로서의 매력 등

‘오픈 시즌’은 그 나름의 미덕을 충분히 갖춘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시리즈 첫 편이다 보니 조 피킷의 캐릭터에 관한 설명이 많았고,

사건 역시 분량(300페이지)에 딱 맞게끔 비교적 단선적으로 전개돼서

어중간한 중편소설을 읽다 만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명탐정도 아니고 형사사건에 관해 조사할 수도 없는 ‘일개’ 수렵 감시관이라

‘행동’에 의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꽤 많은 목숨이 날아간 사건임에도 범인의 욕망이 손에 잡힐 듯 읽히지 않았다는 점 등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와 배경 설정에 비해 몇몇 아쉬운 점이 남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시리즈가 17편까지 나왔다면 보통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부터 소개되기 마련인데

과감하게(?) 시리즈 첫 편부터 출간된 걸 보면 머잖아 후속작이 나올 것이 분명해 보이고,

그렇다면 조 피킷이 점차 ‘진짜 수렵 감시관’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을 테니

첫 편에서 느낀 아쉬움도 조금씩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에코 스릴러라는, 어쩌면 장르 자체가 소재를 제한할 수도 있는 불리한 입장에서

작가가 앞으로 어떻게 조 피킷을 유능한 수렵 감시관이자 스릴러 주인공으로 성장시켜갈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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