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룡경찰 LL 시리즈
쓰키무라 료에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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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 전투에 맞게 개발된 2족 보행형 병기인 기갑병장이 발달한 근미래.

신형 기갑병장인 드래군을 도입한 경시청은 총감 산하 직속의 특수부를 구성하고

드래군의 탑승 요원으로서 세 명의 용병을 영입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다.

불법으로 제조된 기갑병장으로 무장한 농성범들이 막심한 피해를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지자,

특수부 대원들은 경찰 내부의 다른 조직들의 반발과 견제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하지만 사건의 배후에는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암흑이 펼쳐져 있었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경찰소설의 대가 요코야마 히데오 또는 사사키 조가 집필한

신세기 에반게리온또는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의 초기 버전이라고 할까요?

작품의 외형은 분명 인간형 전투병기를 타는 경찰이 등장하는 SF물이지만,

핵심 내용은 경찰의 정의또는 경찰조직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시청 특수부 폴리스 드래군, 통칭 기룡경찰은 경찰 내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는 조직입니다.

수장은 경찰 출신이 아닌 전직 외무성 관료가 맡고 있고,

형사부나 공안부와 척을 질 정도로 독립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으며,

경찰이 운영하는 일반 기갑병장과는 차원 자체가 다른 차세대 기갑병장 드래군의 조종은

프리랜서 용병, 전직 모스크바 경찰, 전직 테러리스트 등

엄청난 계약금을 받은, 범죄자에 가까운 이상한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 내부에서는 그런 특수부를 한편으론 시기와 질투의 눈길로 바라보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곳으로의 발령 자체를 좌천이라 여길 만큼 하찮게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시선들이 모여 결국엔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고 공개적으로 멸시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매크로한 경찰 조직 내의 갈등이 한 축이라면,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 명의 용병의 내적 갈등이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합니다.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며 프리랜서 용병으로 살아온 스가타,

전직 모스크바 경찰이었지만 도망자 신세 끝에 용병이 된 유리 오즈노프,

그리고 사신(死神)이라 불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테러리스트 라이저 라드너가 그들인데,

이들은 단순히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용병 캐릭터뿐 아니라

절대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로 설정돼있습니다.

시리즈 첫 편 격인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이 다 설명되진 않지만,

그들의 압도적인 캐릭터는 분명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페이지 터너로서 작동합니다.

 

이들을 지휘, 관리하는 기룡경찰의 수장 오키쓰 부장은 상대적으로 덜 소개가 된 편인데,

오히려 그런 미스터리함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들조차 그 속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주의적 캐릭터인 그는

외무성 관료 출신이지만 누구보다 탁월한 판단력과 지휘력을 발휘하는데다

경찰조직 전체와 갈등을 벌이는 특수부를 정치적으로도 유연하게 이끌어나갑니다.

그 외에도 동료들의 온갖 멸시에도 불구하고

오키쓰 휘하에서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여러 조연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역시 후속작에서의 활약이 궁금해질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입니다.

 

사건 자체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기갑병장을 이용한 정체불명의 조직의 대규모 테러가 발생하고,

오키쓰가 이끄는 기룡경찰이 그 배후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테러를 일으킨 자들은 아무런 요구사항도 전하지 않은 채 현장에서 도주했고,

오키쓰는 결국 그들의 목적이 경찰 궤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이 위험천만한 테러에 한때 스가타와 동료였던 용병이 가담한 것이 밝혀지고,

그를 단서 삼아 테러를 일으킨 조직을 밝히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분량도 그리 길지 않은데다 그야말로 재미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라

SF물에 거부감이 있는 독자라도 한 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이유 때문에 기룡경찰을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많은 분들의 서평에서 경찰소설의 매력을 갖췄다라는 대목을 읽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작품을 읽어보기로 작심하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는 SF와 경찰소설의 미덕이 잘 섞인 재미있는 작품을 만났다는 생각이고,

여운을 잔뜩 남긴 엔딩 덕분에 일본SF대상을 받았다는 후속작 기룡경찰-자폭조항에서

오키쓰와 세 용병의 운명, 경찰조직과 특수부의 갈등이 어떻게 이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기룡경찰 시리즈3편까지 나온 것 같은데

부디 모든 시리즈가 국내에서 꼭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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