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그린 초상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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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1940~50년대에 출간된 고전(에 가까운) 작품들을 많이 읽게 됐는데,

세련미나 화려함에서는 현대 작품들에 비해 다소 투박해 보이긴 해도

그윽한 아날로그의 정취와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인간미는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연기로 그린 초상’(1950년)은 ‘이와 손톱’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빌 밸린저의 작품입니다.

치밀한 복수극과 정교한 법정 공방전이 전개되는 ‘이와 손톱’은

웰 메이드 흑백영화처럼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읽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연기로 그린 초상’은 큰 틀이나 전개방법에서 ‘이와 손톱’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 작품입니다.

 

시카고에서 영세 수금대행업으로 먹고 사는 대니 에이프릴에겐 평생의 로망이 있습니다.

16살 때 우연히 목격한 또래의 아름다운 소녀를 꼭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입니다.

어느 날, 10년 전 한 지역신문이 개최한 미인대회 수상자의 사진을 보게 된 대니는

그 사진 속 여인 크래시 알모니스키가 자기가 찾던 바로 그 소녀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난 10년간 그녀가 살던 집들, 그녀가 다녔던 학원과 회사 등을 찾아다니며

크래시의 10년간의 발자취를 쫓는 대니의 집요한 탐문이 시작됩니다.

 

한편, 번갈아 전개되는 챕터에서는 크래시의 지난 10년의 시간이 소개됩니다.

크래시는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인대회를 이용했고

그 뒤로는 여러 남자를 전전하며 사기와 거짓말을 통해 한 계단씩 신분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런 크래시 앞에 집요하게 그녀를 찾아 헤매던 대니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나타나고

두 사람은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격정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작품 속에서 대니 스스로 고백하듯 ‘크래시 찾아 헤매기’는 다소 엉뚱한 구석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 스치듯 지나간 한 소녀를 평생 마음에 품은 일도,

미인대회 수상자 사진 속의 크래시를 그 소녀라고 여기곤 일도 내팽개친 채 찾아 헤매는 일도

어쩌면 환상의 여자를 찾는 무모하고 어이없는 행각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16살의 희미한 기억과 신문 속 사진이 전부일 뿐인 크래시는 대니에겐 연기 같은 존재입니다.

떠올리려 해도, 그려보려 해도 금세 허공으로 사라지고 마는 연기로 그린 초상처럼 말이죠.

하지만 대니는 크래시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순수하고, 사랑스런 여자라 확신합니다.

그런 심정으로 크래시가 남긴 아주 작고 희미한 흔적들에 목매는 대니를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다가도 안쓰러움과 애절함까지 느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독자 입장에선 대니의 챕터에 이은 크래시의 챕터를 읽으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크래시는 대니의 기대나 로망과는 180도 다른 욕망덩어리 같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본명 외에 캐서린 앤드루스, 캐런 앨리슨, 캔디스 오스틴, 워터베리 부인, 캔디스 파워스 등

상황에 따라 이름을 바꿔 위장하며 새 신분을 얻곤 했던 크래시는

남자를 이용하는 것 외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끝에

몸과 마음을 이용하여 팜므 파탈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이고 지독하고 캐릭터로 발전하는데,

“과연 대니가 크래시의 실체를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크래시는 영세 수금대행업자에 불과한 대니의 ‘짝사랑’을 어떤 표정과 심정으로 대할까?”

이런 궁금증 때문에라도 두 사람의 만남을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28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둘의 만남은 그중에서도 아쉬울 만큼 짧게 그려집니다.

물론 짧긴 해도 엄청 굵고 두껍고 긴장감 넘치는 클라이맥스와 엔딩이 그려지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론 수십 페이지 정도는 더 할애됐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 게 사실입니다.

약간은 동어반복 같았던 대니의 ‘크래시 찾기’ 과정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 점과 함께

이 짧고 급한 클라이맥스와 엔딩 때문에 별 0.5개를 빼고 말았는데,

둘의 만남 이후 사건도 좀 더 많고, 우여곡절도 좀 더 겪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습니다.

 

아무튼...

‘이와 손톱’에서도 맛봤던 빌 밸린저 특유의 ‘막판 뒤통수치기’는 이번에도 여전했는데

덕분에 속도감과 긴장감과 반전의 매력이 가득한 단편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여러 개의 이름으로 가린 채 거짓말투성이의 인생을 살아온 크래시도,

또, 잡히지 않는 연기 같은 환상의 여인을 쫓아 집요한 추격전을 펼친 대니도

엎치락뒤치락 롤러코스터를 탄 끝에 그들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엔딩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니와 크래시를 기다리는 건 끔찍한 비극일까요? 달달한 해피엔딩일까요?

궁금한 독자라면 빌 밸린저의 매력적인 작품을 통해 꼭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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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앨리 ㅣ 스토리콜렉터 91
윌리엄 린지 그레셤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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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유랑극단에서 마술 무대를 담당하는 영리하고 야심 찬 청년 스탠턴 칼라일.

그는 속임수로 독심술을 부리는 동료 지나에게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요령을 배운다.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하여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낸 스탠은

유랑극단 동료인 몰리와 함께 카니발을 떠나 독심술 쇼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한 발 더 나아가 속임수를 통해 죽은 자와의 교신을 중개하는 영매 노릇을 자행하던 스탠은

몰리의 반대를 뿌리치고 더 많은 돈을 위해 심령술 목사가 되어 부자들을 갈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점차 심신이 무너지고 수면장애와 불안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고 만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과 죄책감,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 감정들을 위로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미리 보여준다면

기꺼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또, 이 작품이 출간된 1940년대는 예지, 심령, 영매 등 비현실적 개념들이

(지금보다) 설득력도 있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잘 먹히던 시대였고,

특히 저택의 귀부인이나 대기업의 총수 등 이른바 배울 만큼 배운 상류층들조차

그럴듯해 보이는 ‘심령 쇼’에 돈과 마음을 갖다 바칠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시대였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스탠은 타고난 재능에다 유랑극단 동료로부터 전수받은 ‘비법’과 함께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면 누구든 조종할 수 있다.”는 좌우명을 앞세워

평범한 사람들부터 부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홀리며 돈을 뜯어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박진감 넘치는 사기꾼 스릴러도 아니고 권선징악을 다룬 작품도 아닙니다.

물론 유랑극단에서 출발하여 독심술사와 영매로 진화하는 스탠의 사기행각이

빠른 템포와 긴장감 넘치게 그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건 위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심리, 심령, 트라우마, 정신분열 등

내밀하고 복잡한 코드들이 다소 낯선 문장과 언어들 속에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 즉 ‘악몽의 골목’이라는 제목은 그런 코드들의 집합체라는 생각인데

그래서인지 다 읽은 뒤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사건이나 기승전결 자체보다는

심신이 천천히 붕괴되다가 결국 ‘악몽의 골목’에 빠지고 마는 스탠의 비극적인 여정이었습니다.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다소 쉽지 않은 책읽기가 된 건 독특하고 낯선 문장들 때문입니다.

심리적 서사가 강한 작품들은 몽환적이고 모호한 단어와 문장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데

윌리엄 린지 그레셤이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본인 스스로 정신분석과 타로에 몰두해있었고

실제로 정신과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는 ‘서문’의 내용을 보면

‘독특하고 낯선 문장들’이 탄생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스탠의 심신이 붕괴되는 과정은 작가 본인의 그것과 비슷한 비극이었을지도 모르고

그 때문에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톤도 결도 전혀 다른 작품이 창조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이런 독특한 서사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제법 갈릴 수도 있지만

출간된 직후인 1947년과 2021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 제작된 것은 물론

미국 클래식 누아르로 불리며 작가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줬다는 소개글을 보면

나름 충분히 대중성을 지닌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론 194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유랑극단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심리 혹은 심령 쪽 서사가 강했던 점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좀처럼 맛보기 힘든 특별한 간식을 즐겼다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다만, 다 읽고도 흐릿한 안개 속에 서있는 듯 애매하고 모호한 지점들이 꽤 있었는데,

그에 대한 해설이나 해석을 기대했던 ‘옮긴이의 말’과 ‘서문’이 욕심만큼 친절하지 않아서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통해서라도 이 작품에 대한 의견을 두루두루 찾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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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묘촌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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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다시 읽기’의 다섯 번째 작품인 ‘팔묘촌’입니다.

“본격 추리가 가미된 일본 공포의 원점”이라는 평과 함께

영화로 세 번, 드라마로 여섯 번이나 제작돼서 인지도에선 으뜸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전 작품인 ‘밤 산책’에서 귀수촌을 무대로 사건을 마무리한 긴다이치 코스케는

가까운 이웃마을인 팔묘촌의 어떤 인물로부터 수사의뢰를 받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가 마주한 건 도무지 동기를 알 수 없는 무차별 살인사건으로,

팔묘촌의 세력가인 다지미 家의 일족을 포함 여러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상황입니다.

마을사람들은 다지미 家의 후계자라며 최근 마을에 나타난 젊은 남자 타츠야를 의심하지만

코스케는 타츠야는 물론 그 누구도 좀처럼 용의자로 지목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돕니다.

 

줄거리는 코스케의 행적을 중심으로 정리했지만 실은 이 작품의 1인칭 화자는

다지미 家의 후계자로 지목돼 느닷없이 팔묘촌으로 불려온 평범한 회사원 타츠야입니다.

말하자면 사건이 모두 마무리된 뒤 타츠야가 남긴 팔묘촌에서의 몇 달간의 기록이란 뜻인데,

그래선지 코스케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대목은 아주 드물게만 눈에 띌 뿐입니다.

하지만 타츠야는 피해자이자, 용의자이자, 진실을 쫓는 자 등 다양한 역할을 통해

그가 팔묘촌에서 겪은 참혹한 시간과 사건, 그리고 무자비한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야기 시작과 동시에 팔묘촌에 관한 두 개의 전설적인 사건이 소개됩니다.

하나는 팔묘촌이라는 이름의 기원으로, 16세기 중반, 황금을 지닌 8명의 무사들을 참살한 뒤

끔찍한 저주와 악몽을 겪은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묘를 짓고 수호신으로 모시게 된 이력이고,

또 하나는 불과 26년 전, 다지미 家의 당주이자 미치광이 병에 걸린 요조라는 남자가

마을사람들 32명을 무차별로 살해하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희대의 대량살인사건입니다.

 

다지미 家의 후계자로 지목돼 팔묘촌에 불려온 타츠야는 바로 이 요조의 첩의 아들입니다.

본처가 낳은 남매가 건강상의 이유로 가문을 잇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현재 가문의 실질적 주인인 쌍둥이 고모할머니가 첩의 아들인 타츠야를 찾아낸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팔묘촌에 도착한 타츠야는 도착과 동시에 불길한 분위기를 감지하는데,

더 큰 문제는 그가 도착한 직후 의문의 독살사건이 연이어 터진다는 점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외지인에다 미치광이 살인마 요조의 핏줄이란 점 때문에 타츠야를 의심합니다.

살인이 벌어질 때마다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 탓에 스스로 좌불안석이던 타츠야 역시

자신의 핏줄이 사람들의 의심을 증폭시키는 기폭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보나 미치광이의 짓이라면 마을사람들의 의혹이 내게 쏟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몸에는 서른두 명을 살해한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p349)

 

1인칭 화자인 타츠야는 씩씩하지도, 영민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젊은 남자입니다.

자기 주위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자신이 용의자로 몰리는 상황에 처하자

본능적으로 범인과 진실을 찾으려 애쓰지만 그렇다고 용한 탐정노릇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할 수 없는 몇몇 인물들의 도움을 통해

팔묘촌과 다지미 家 저택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둘씩 알아가는 것은 물론

전설에 등장하는 엄청난 양의 황금 찾기, 저택의 비밀통로와 연결된 복잡한 종유동굴 탐험,

생사를 넘나드는 동굴 속 추격전, 그리고 그 안에서 싹틔운 미묘한 로맨스 등

말 그대로 호러, 미스터리, 어드벤처를 롤러코스터 타듯 오가는 액티브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다 보니 정작 긴다이치 코스케는 그다지 할 일이 없습니다.

물론 그는 팔묘촌에 머물며 나름대로 단서와 증거를 찾아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가끔 타츠야 앞에 나타나 선문답 같은 질문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마지막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관련자들 앞에서 진범의 정체를 ‘발표’할 뿐입니다.

물론 “심증은 있으나 물증과 동기를 몰라서 미리 범인으로 지목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지만

아무래도 중간중간 그가 펼치는 활약이 구체적으로 묘사됐더라면

독자에게 사뭇 즐거운 팬서비스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은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워낙 등장인물도 많고 이야기도 복잡해서 내용 소개는 변죽만 울리다 말았는데,

직접 읽어보면 그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 전에 읽은 탓에 마치 처음 읽는 듯한 기분이었고

덕분에 이 시리즈 어느 작품에서도 맛보지 못한 다양한 장르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팔묘촌의 미션을 완수한 코스케의 다음 여정은 ‘이누가미 일족’입니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전후 과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전통과 근대성의 충돌,

그리고 인습과 미신으로 불거져 나오는 불쾌한 살의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은” 명성대로

코스케는 또다시 이누가미 가문이라는 불길한 범죄무대로 발길을 옮깁니다.

역시 오래 전에 읽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이누가미 일족’에서는

코스케가 좀더 많이, 자주 그 매력적인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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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ㅣ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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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짝 촌스러운 느낌의 제목에 의미를 알기 어려운 애매한 표지를 지닌 작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점 때문에 먼저 시선을 뺏겼고,

이어 작가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괴이 현상을 쫓는 이야기라는 소개글을 보곤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가 훅 떠올라 호기심이 급 발동한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작가인 ‘나’ 아시자와 요는 괴담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얼룩’이라는 괴담 소설을 발표하게 됩니다.

자신이 직접 겪었지만 너무나도 기괴한 나머지 오랜 시간 봉인해뒀던 그 사건을 소설로 쓴 뒤

아시자와는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서 괴담을 듣는 처지가 됐고,

그 가운데 일부를 살을 붙여 단편소설로 발표하면서 점점 괴담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특이한 건, 그가 쓴 다섯 편의 괴담들은 하나같이 직전에 쓴 괴담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인데,

말하자면, 누군가 그가 쓴 괴담을 보곤 “나도 해줄 얘기가 있다.”며 들려준 괴담이

결국 그의 손을 거쳐 소설로 발표됐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섯 편의 괴담을 묶어 단행본으로 발표할 계획을 세웠을 무렵

아시자와는 자신이 쓴 괴담에 공통적으로 깃든 그 ‘무언가’를 깨닫곤 충격에 빠집니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여섯 편인데, 굳이 분류하자면 5+1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자와가 2년에 걸쳐 띄엄띄엄 발표한 다섯 편의 괴담에

아시자와의 막판 깨달음과 충격을 그린 ‘총정리’ 한 편이 추가된 구성이라고 할까요?

 

다섯 편의 괴담 모두 제각각 다른 사연과 인물들을 다루고 있어서 전혀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아시자와의 직전 작품을 본 누군가가 자신이 겪은 괴담을 그에게 들려주고

그 괴담이 곧 소설로 발표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독자는 마지막에 분명 다섯 편을 꿰뚫는 ‘교집합’이 등장할 거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즉, 매 작품에 긴장하면서 동시에 마지막 ‘총정리’ 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는 뜻인데,

솔직히 첫 수록작인 ‘얼룩’을 본 뒤 ‘교집합’이 너무 쉽게 노출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같은 괴담이긴 해도 다섯 편 모두 워낙 성격들이 달라서 함부로 예단할 순 없었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괴담을 무척 좋아해서 그런지 이 작품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시자와 요의 괴담은 미쓰다 신조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 다른 색깔의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무섭긴 해도 나에겐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라는 게 미쓰다 신조의 색깔이라면

아시자와 요의 괴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 속 공포의 위력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이나 ‘꿈’ 같은 전형적인 코드들이 동원되긴 하지만

그것들이 지닌 생생한 일상성과 사실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섬뜩함을 발휘합니다.

 

작가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괴이 현상을 탐문하고 소설로 쓰는 설정도 흥미로운데,

단지 ‘남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관찰자 역할’을 넘어

마지막 ‘총정리 편’에서는 본인이 쓴 괴담들 속에 빨려 들어감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공포와 의문에 휩싸인 주인공은 자신이 쓴 괴담 하나하나를 뜯어보기 시작하고

뒤늦게 다섯 편을 꿰뚫는 ‘교집합’의 실체와 함께 자신이 한 ‘짓’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괴담 속의 괴담 또는 괴담 위의 괴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설정 덕분에 마지막 ‘총정리 편’은 미스터리와 괴담이 뒤섞인 특별한 맛을 지니게 됩니다.

 

작가의 분신 못잖게 흥미로운 캐릭터는 오컬트 작가인 사카키 깃페이인데,

초보 괴담작가인 아시지와에게 괴담의 본질에 대한 원론적 강의와 함께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괴담 뒤에 숨은 논리적인 미스터리를 간파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어서

어딘가 왓슨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시자와에겐 그야말로 셜록 홈즈 같은 존재로 비칩니다.

 

개인적으론 첫 수록작인 ‘얼룩’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전형적인 괴담이긴 해도 집에 깃든 원령을 다룬 ‘인연’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마지막 수록작이자 ‘총정리 편’인 ‘금기’는 살짝 이해가 덜 된 대목도 있긴 했지만

괴담의 본질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어느 수록작보다도 섬뜩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 이전에 유일하게 한국에 소개된 아시자와 요의 작품은 ‘아마리 종활 사진관’입니다.

읽진 못했지만 “영정사진을 둘러싼 네 가족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연작 미스터리”라는데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보면 꽤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작가로 보입니다.

그의 ‘본업’이 괴담 쪽은 아닌 듯 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뒤의 솔직한 느낌은

다음에 만날 그의 작품 역시 괴담이었으면 좋겠다, 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작가의 분신인 아시자와 요가 활약하는 시리즈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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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리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나현진 옮김 / 아름다운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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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소개된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여섯 작품 중 다섯 번째로 만난 ‘딜리버리’입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매번 만족도나 매력이 달리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다섯 번을 만나는 동안 그 편차가 꽤 큰 편에 속하는 작가입니다.

아주 간략하게 이 작품까지의 한 줄 소감을 출간순서대로 요약해보면...

 

‘사라진 소녀들’ - 매력 없는 형사와 범인. 설정에 비해 이야기와 캐릭터 모두 무리수.

‘창백한 죽음’ – 아직 못 읽었음.

‘지옥계곡’ – 앞서 전개된 장점을 모두 덮어버린 막판의 뜬금없는 진실.

‘물의 감옥’ – 2016년 베스트 11으로 꼽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

‘쉐어하우스’ – 읽다가 1/3도 못 가서 포기.

‘딜리버리’ - 앞으로 빙켈만을 계속 읽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작품.

 

‘물의 감옥’을 제외하곤 대부분 실망감을 많이 느낀 셈인데

특히 전작인 ‘쉐어하우스’는 초반부터 “빙켈만의 작품이 맞나?”싶을 정도로 놀란 끝에

결국 1/3도 못 읽고 중도에 포기했던 일이 있어서

신작인 ‘딜리버리’의 출간이 반갑거나 기대되기보다는 잠시 주저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일단 ‘쉐어하우스’의 실망 대신 ‘물의 감옥’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안드레아스 빙켈만을 만나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빼어난 미모의 금발 여성들이 감쪽같이 실종되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하지만 함부르크 경찰인 옌스 케르너가 이 연쇄실종사건을 처음부터 인지한 건 아닙니다.

숲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창백한 여인과 강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한 여인을 조사하던 그는

행정요원(?)인 레베카 오스발트의 꼼꼼한 자료조사 덕분에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특히 최근 스토킹을 당하고 있던 한 여성이 실종되면서 결정적인 실마리를 붙잡은 옌스는

탐문과 함께 레베카가 찾아낸 단서들을 통해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연쇄실종사건이

지독하고 악랄한 소시오패스에 의한 계획적인 납치사건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쉐어하우스’에 이은 ‘옌스 케르너 & 레베카 오스발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중도 포기했던 작품의 시리즈 후속편이란 걸 초반부에 알게 되자 살짝 맥이 빠졌지만,

(‘쉐어하우스’에서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책을 덮었던 탓인지)

‘딜리버리’의 초반부에 소개된 두 사람은 흡입력과 매력을 골고루 갖춘 캐릭터로 보였습니다.

53세의 옌스는 반골 기질이 다분한 거구의 형사지만 동시에 부드러움도 함께 갖춘 인물이고

어릴 적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레베카는 그런 옌스를 흠모하는 경찰 행정요원입니다.

경찰공무원이지만 전혀 공무원 같지 않은 옌스와 그와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레베카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오히려 견원지간에 어울릴 것 같은 인물들이지만

두 사람의 ‘일과 사랑’에 걸친 미묘한 케미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스릴러 자체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빙켈만의 작품 대부분이 그랬듯) 미모의 여성들이 참혹한 범죄의 희생자로 설정됐고

범인 역시 일반인의 기준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소시오패스로 그려졌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이라 페이지는 잘 넘어간 게 사실이지만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소시오패스가 미모의 여성들을 향해 증오와 복수를 내뿜는다는 설정은

뭔가 ‘특별한 것’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더 이상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든 클리셰입니다.

그런 점에서 두 주인공의 케미 외에 어디에서도 ‘특별한 것’을 찾아볼 수 없었던 ‘딜리버리’는

읽는 동안의 긴장감도, 막판 반전의 충격도, 다 읽은 뒤의 여운도 부족했던 작품입니다.

 

물론 범인의 독특한 범행수법이라든가 피해자들의 충격적인 상황들은 나름 개성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옌스와 레베카가 어떻게 진실에 접근해갈지, 그들에게 어떤 위기가 닥칠지,

또, 범인은 물론 (헛발질로 그치게 될) 주요 용의자들의 행보는 어떻게 그려질지 등

남은 이야기들의 향방이 빤히 내다보일 정도로 쉽고 평범한 스릴러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엇비슷한 재료들을 뻔한 조미료로 버무린, 전에 많이 먹어본 듯한 진부한 요리라고 할까요?

 

크게 눈에 거슬린 대목은 없었지만 수시로 책읽기를 멈칫하게 만든 번역도 다소 아쉬웠는데

편집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던 매끄럽지 못한 일부 문장들은

안 그래도 긴장감 없이 읽히는 이야기를 더 밍밍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출판사와 관계된 아쉬움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를 보면 스포일러 정도가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개하고 있는데

사건의 실체와 범인의 정체 등 굳이 책을 볼 필요가 없게끔 완벽한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제겐 무척 낯선 이름의 출판사지만 그래도 다양한 장르의 책을 206편이나 출간한 곳이던데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해도 되는 건지 그저 의문일 뿐입니다.

 

앞서 ‘빙켈만 작품에 대한 한 줄 평’에서도 밝혔듯

‘딜리버리’는 앞으로 빙켈만을 계속 읽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쉐어하우스’를 중도 포기했던 게 오독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간접적으로 입증해준 셈인데

다음 신작이 나오게 되면 일단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먼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못 읽은 채 책장에 방치해놓은 ‘창백한 죽음’은 어찌됐든 읽긴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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