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살짝 촌스러운 느낌의 제목에 의미를 알기 어려운 애매한 표지를 지닌 작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점 때문에 먼저 시선을 뺏겼고,

이어 작가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괴이 현상을 쫓는 이야기라는 소개글을 보곤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가 훅 떠올라 호기심이 급 발동한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작가인 아시자와 요는 괴담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얼룩이라는 괴담 소설을 발표하게 됩니다.

자신이 직접 겪었지만 너무나도 기괴한 나머지 오랜 시간 봉인해뒀던 그 사건을 소설로 쓴 뒤

아시자와는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서 괴담을 듣는 처지가 됐고,

그 가운데 일부를 살을 붙여 단편소설로 발표하면서 점점 괴담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특이한 건, 그가 쓴 다섯 편의 괴담들은 하나같이 직전에 쓴 괴담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인데,

말하자면, 누군가 그가 쓴 괴담을 보곤 나도 해줄 얘기가 있다.”며 들려준 괴담이

결국 그의 손을 거쳐 소설로 발표됐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섯 편의 괴담을 묶어 단행본으로 발표할 계획을 세웠을 무렵

아시자와는 자신이 쓴 괴담에 공통적으로 깃든 그 무언가를 깨닫곤 충격에 빠집니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여섯 편인데, 굳이 분류하자면 5+1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자와가 2년에 걸쳐 띄엄띄엄 발표한 다섯 편의 괴담에

아시자와의 막판 깨달음과 충격을 그린 총정리한 편이 추가된 구성이라고 할까요?

 

다섯 편의 괴담 모두 제각각 다른 사연과 인물들을 다루고 있어서 전혀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아시자와의 직전 작품을 본 누군가가 자신이 겪은 괴담을 그에게 들려주고

그 괴담이 곧 소설로 발표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독자는 마지막에 분명 다섯 편을 꿰뚫는 교집합이 등장할 거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 매 작품에 긴장하면서 동시에 마지막 총정리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는 뜻인데,

솔직히 첫 수록작인 얼룩을 본 뒤 교집합이 너무 쉽게 노출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같은 괴담이긴 해도 다섯 편 모두 워낙 성격들이 달라서 함부로 예단할 순 없었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괴담을 무척 좋아해서 그런지 이 작품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시자와 요의 괴담은 미쓰다 신조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 다른 색깔의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무섭긴 해도 나에겐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라는 게 미쓰다 신조의 색깔이라면

아시자와 요의 괴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 속 공포의 위력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나 같은 전형적인 코드들이 동원되긴 하지만

그것들이 지닌 생생한 일상성과 사실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섬뜩함을 발휘합니다.

 

작가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괴이 현상을 탐문하고 소설로 쓰는 설정도 흥미로운데,

단지 남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관찰자 역할을 넘어

마지막 총정리 편에서는 본인이 쓴 괴담들 속에 빨려 들어감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공포와 의문에 휩싸인 주인공은 자신이 쓴 괴담 하나하나를 뜯어보기 시작하고

뒤늦게 다섯 편을 꿰뚫는 교집합의 실체와 함께 자신이 한 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괴담 속의 괴담 또는 괴담 위의 괴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설정 덕분에 마지막 총정리 편은 미스터리와 괴담이 뒤섞인 특별한 맛을 지니게 됩니다.

 

작가의 분신 못잖게 흥미로운 캐릭터는 오컬트 작가인 사카키 깃페이인데,

초보 괴담작가인 아시지와에게 괴담의 본질에 대한 원론적 강의와 함께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괴담 뒤에 숨은 논리적인 미스터리를 간파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어서

어딘가 왓슨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시자와에겐 그야말로 셜록 홈즈 같은 존재로 비칩니다.

 

개인적으론 첫 수록작인 얼룩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전형적인 괴담이긴 해도 집에 깃든 원령을 다룬 인연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마지막 수록작이자 총정리 편금기는 살짝 이해가 덜 된 대목도 있긴 했지만

괴담의 본질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어느 수록작보다도 섬뜩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 이전에 유일하게 한국에 소개된 아시자와 요의 작품은 아마리 종활 사진관입니다.

읽진 못했지만 영정사진을 둘러싼 네 가족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연작 미스터리라는데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보면 꽤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작가로 보입니다.

그의 본업이 괴담 쪽은 아닌 듯 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뒤의 솔직한 느낌은

다음에 만날 그의 작품 역시 괴담이었으면 좋겠다, 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작가의 분신인 아시자와 요가 활약하는 시리즈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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