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앨리 스토리콜렉터 91
윌리엄 린지 그레셤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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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유랑극단에서 마술 무대를 담당하는 영리하고 야심 찬 청년 스탠턴 칼라일.

그는 속임수로 독심술을 부리는 동료 지나에게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요령을 배운다.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하여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낸 스탠은

유랑극단 동료인 몰리와 함께 카니발을 떠나 독심술 쇼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한 발 더 나아가 속임수를 통해 죽은 자와의 교신을 중개하는 영매 노릇을 자행하던 스탠은

몰리의 반대를 뿌리치고 더 많은 돈을 위해 심령술 목사가 되어 부자들을 갈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점차 심신이 무너지고 수면장애와 불안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고 만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과 죄책감,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 감정들을 위로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미리 보여준다면

기꺼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 이 작품이 출간된 1940년대는 예지, 심령, 영매 등 비현실적 개념들이

(지금보다) 설득력도 있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잘 먹히던 시대였고,

특히 저택의 귀부인이나 대기업의 총수 등 이른바 배울 만큼 배운 상류층들조차

그럴듯해 보이는 심령 쇼에 돈과 마음을 갖다 바칠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시대였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스탠은 타고난 재능에다 유랑극단 동료로부터 전수받은 비법과 함께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면 누구든 조종할 수 있다.”는 좌우명을 앞세워

평범한 사람들부터 부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홀리며 돈을 뜯어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박진감 넘치는 사기꾼 스릴러도 아니고 권선징악을 다룬 작품도 아닙니다.

물론 유랑극단에서 출발하여 독심술사와 영매로 진화하는 스탠의 사기행각이

빠른 템포와 긴장감 넘치게 그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건 위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심리, 심령, 트라우마, 정신분열 등

내밀하고 복잡한 코드들이 다소 낯선 문장과 언어들 속에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 악몽의 골목이라는 제목은 그런 코드들의 집합체라는 생각인데

그래서인지 다 읽은 뒤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사건이나 기승전결 자체보다는

심신이 천천히 붕괴되다가 결국 악몽의 골목에 빠지고 마는 스탠의 비극적인 여정이었습니다.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다소 쉽지 않은 책읽기가 된 건 독특하고 낯선 문장들 때문입니다.

심리적 서사가 강한 작품들은 몽환적이고 모호한 단어와 문장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데

윌리엄 린지 그레셤이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본인 스스로 정신분석과 타로에 몰두해있었고

실제로 정신과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는 서문의 내용을 보면

독특하고 낯선 문장들이 탄생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스탠의 심신이 붕괴되는 과정은 작가 본인의 그것과 비슷한 비극이었을지도 모르고

그 때문에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톤도 결도 전혀 다른 작품이 창조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이런 독특한 서사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제법 갈릴 수도 있지만

출간된 직후인 1947년과 2021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 제작된 것은 물론

미국 클래식 누아르로 불리며 작가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줬다는 소개글을 보면

나름 충분히 대중성을 지닌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론 194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유랑극단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심리 혹은 심령 쪽 서사가 강했던 점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좀처럼 맛보기 힘든 특별한 간식을 즐겼다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다만, 다 읽고도 흐릿한 안개 속에 서있는 듯 애매하고 모호한 지점들이 꽤 있었는데,

그에 대한 해설이나 해석을 기대했던 옮긴이의 말서문이 욕심만큼 친절하지 않아서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통해서라도 이 작품에 대한 의견을 두루두루 찾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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