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버리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나현진 옮김 / 아름다운날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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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소개된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여섯 작품 중 다섯 번째로 만난 딜리버리입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매번 만족도나 매력이 달리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다섯 번을 만나는 동안 그 편차가 꽤 큰 편에 속하는 작가입니다.

아주 간략하게 이 작품까지의 한 줄 소감을 출간순서대로 요약해보면...

 

사라진 소녀들’ - 매력 없는 형사와 범인. 설정에 비해 이야기와 캐릭터 모두 무리수.

창백한 죽음아직 못 읽었음.

지옥계곡앞서 전개된 장점을 모두 덮어버린 막판의 뜬금없는 진실.

물의 감옥2016년 베스트 11으로 꼽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

쉐어하우스읽다가 1/3도 못 가서 포기.

딜리버리’ - 앞으로 빙켈만을 계속 읽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작품.

 

물의 감옥을 제외하곤 대부분 실망감을 많이 느낀 셈인데

특히 전작인 쉐어하우스는 초반부터 빙켈만의 작품이 맞나?”싶을 정도로 놀란 끝에

결국 1/3도 못 읽고 중도에 포기했던 일이 있어서

신작인 딜리버리의 출간이 반갑거나 기대되기보다는 잠시 주저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일단 쉐어하우스의 실망 대신 물의 감옥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안드레아스 빙켈만을 만나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빼어난 미모의 금발 여성들이 감쪽같이 실종되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하지만 함부르크 경찰인 옌스 케르너가 이 연쇄실종사건을 처음부터 인지한 건 아닙니다.

숲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창백한 여인과 강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한 여인을 조사하던 그는

행정요원(?)인 레베카 오스발트의 꼼꼼한 자료조사 덕분에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특히 최근 스토킹을 당하고 있던 한 여성이 실종되면서 결정적인 실마리를 붙잡은 옌스는

탐문과 함께 레베카가 찾아낸 단서들을 통해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연쇄실종사건이

지독하고 악랄한 소시오패스에 의한 계획적인 납치사건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쉐어하우스에 이은 옌스 케르너 & 레베카 오스발트 시리즈두 번째 작품입니다.

중도 포기했던 작품의 시리즈 후속편이란 걸 초반부에 알게 되자 살짝 맥이 빠졌지만,

(‘쉐어하우스에서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책을 덮었던 탓인지)

딜리버리의 초반부에 소개된 두 사람은 흡입력과 매력을 골고루 갖춘 캐릭터로 보였습니다.

53세의 옌스는 반골 기질이 다분한 거구의 형사지만 동시에 부드러움도 함께 갖춘 인물이고

어릴 적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레베카는 그런 옌스를 흠모하는 경찰 행정요원입니다.

경찰공무원이지만 전혀 공무원 같지 않은 옌스와 그와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레베카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오히려 견원지간에 어울릴 것 같은 인물들이지만

두 사람의 일과 사랑에 걸친 미묘한 케미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스릴러 자체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빙켈만의 작품 대부분이 그랬듯) 미모의 여성들이 참혹한 범죄의 희생자로 설정됐고

범인 역시 일반인의 기준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소시오패스로 그려졌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이라 페이지는 잘 넘어간 게 사실이지만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소시오패스가 미모의 여성들을 향해 증오와 복수를 내뿜는다는 설정은

뭔가 특별한 것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더 이상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든 클리셰입니다.

그런 점에서 두 주인공의 케미 외에 어디에서도 특별한 것을 찾아볼 수 없었던 딜리버리

읽는 동안의 긴장감도, 막판 반전의 충격도, 다 읽은 뒤의 여운도 부족했던 작품입니다.

 

물론 범인의 독특한 범행수법이라든가 피해자들의 충격적인 상황들은 나름 개성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옌스와 레베카가 어떻게 진실에 접근해갈지, 그들에게 어떤 위기가 닥칠지,

, 범인은 물론 (헛발질로 그치게 될) 주요 용의자들의 행보는 어떻게 그려질지 등

남은 이야기들의 향방이 빤히 내다보일 정도로 쉽고 평범한 스릴러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엇비슷한 재료들을 뻔한 조미료로 버무린, 전에 많이 먹어본 듯한 진부한 요리라고 할까요?

 

크게 눈에 거슬린 대목은 없었지만 수시로 책읽기를 멈칫하게 만든 번역도 다소 아쉬웠는데

편집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던 매끄럽지 못한 일부 문장들은

안 그래도 긴장감 없이 읽히는 이야기를 더 밍밍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출판사와 관계된 아쉬움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를 보면 스포일러 정도가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개하고 있는데

사건의 실체와 범인의 정체 등 굳이 책을 볼 필요가 없게끔 완벽한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제겐 무척 낯선 이름의 출판사지만 그래도 다양한 장르의 책을 206편이나 출간한 곳이던데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해도 되는 건지 그저 의문일 뿐입니다.

 

앞서 빙켈만 작품에 대한 한 줄 평에서도 밝혔듯

딜리버리는 앞으로 빙켈만을 계속 읽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쉐어하우스를 중도 포기했던 게 오독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간접적으로 입증해준 셈인데

다음 신작이 나오게 되면 일단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먼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못 읽은 채 책장에 방치해놓은 창백한 죽음은 어찌됐든 읽긴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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