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3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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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참 다양합니다. 한여름의 피서지, 내쳐진 자의 유배지, 고독을 원하는 자의 은둔지, 도망자의 은닉처 등등. 하지만 이런 느낌들은 대부분 섬 외부인이 갖게 되는 것들이고,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해서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이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삶을 옥죄는 감옥처럼 답답해서 틈만 나면 탈출하고 싶은 곳이거나...

 

망향은 세토 내해(內海)에 자리 잡은 섬 시라쓰나지마를 배경으로 이런 극단적인 느낌을 가진 인물들이 펼쳐나가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불행한 기억만 간직한 채 야반도주하듯 섬을 도망쳤던 사람, 도망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 한번 떠난 적이 있지만 자의든 타의든 자신을 낳아준 섬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 등 시라쓰나지마에서 삶을 얻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일방적으로 동정 받거나 일방적으로 미움 받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도망친 사람은 도망친 사람대로 다들 타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나름만의 사연과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동정하거나 미워하다가도 이면의 사연과 이유를 알고 나면 그들의 선택에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미나토 가나에답게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죽음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살인, 사고, 병사 등 여러 가지 죽음이 등장하지만,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안타깝거나 애틋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지만, 섬에서의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애증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과 뭉클함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보통 단편집의 표제는 수록작 가운데 대표작으로 삼기 마련인데, ‘망향이라는 제목은 수록작의 제목이 아니면서도 실려 있는 여섯 작품을 모두 아우르고 있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이후에 새삼 눈길이 가는 제목이었습니다. 마치 등장인물 모두가 나란히 서서 멀리 바다 위에 떠있는 시라쓰나지마를 바라보는 그림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랄까요?

미나토 가나에의 새로운 면모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고, 이틀 반나절 정도, 따뜻한 책읽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더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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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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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흥미롭게 읽은 덕분에 진작부터 그의 신작을 기대했는데, 스파이 스릴러(또는 첩보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다시 만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에서 보여준 호러작가로서의 진면목과 지푸라기~’에서 만끽했던 탁월한 디테일 라이터로서의 진가가 과연 스파이나 첩보라는 코드들과 잘 맞아떨어질까 하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침저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몇 차례의 반전과 곳곳에 설치된 트랩들 때문에 줄거리를 정리하기가 쉽진 않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일본의 기밀을 중국에 넘긴 것으로 추정되는 거물 스파이 침저어 맥베스 - 를 잡기 위해 경시청 외사 2과에 수사팀이 꾸려집니다. ‘고독한 솔로 스타일인 후와는 낙하산으로 내려온 도쓰이의 의견에 동조하며 수사를 진행하고, 후배 와카바야시와 함께 도쿄와 베이징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금씩 캐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수사를 진행할수록 배후는 점점 깊은 곳으로 숨어들고, 파헤쳐진 진실은 쉴 새 없이 후와와 와카바야시의 뒤통수를 두들기며 어딘가 석연치 않은, 또는 불온하기까지 한 음모의 기운을 내뿜습니다. 더구나 수사가 중대한 국면을 맞이할 즈음 살인과 납치사건이 발생하면서 후와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들은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스파이 스릴러 치곤 길지 않은 분량(346p)이라 읽기 전부터 아쉬운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소네 게이스케는 적잖은 규모의 이야기를 불필요한 사족들 없이 깔끔하게 구현해냈습니다. 화려하기보다는 소탈하다고 할 정도로 평이한 문장들, 쉽게 읽히면서도 허투루 넘어가게 만들지 않는 치밀한 구성, 그러면서도 독자들의 기대를 번번이 무너뜨리는 반전 등 흔히 스파이 스릴러나 첩보 미스터리 하면 떠오르는 전형성을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잘 살려냈습니다.

 

또한 캐릭터 하나하나에 디테일한 사실감을 부여하는 소네 게이스케의 필력 덕분에 주인공은 물론 말단 조연에 이르기까지 생동감 있는 활약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후와와 와카바야시도 매력적이지만, 이른바 외사 2과에 일가(一家)를 거느린 보스형 캐릭터 고미, 그런 고미를 추종하는 소리마치, 낙하산 도쓰이, 소심한 과장 안도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자신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활약합니다.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우선 조금은 부족한 개연성을 들 수 있습니다. 작가가 여기저기 설치한 트랩 가운데 독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것들도 많았지만, 어떤 것들은 뜬금없이, 어떤 것들은 억지스럽게 설치된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느껴지는 지점도 있고, 좀 심하게 말하면 (극히 일부지만) ‘말장난이라는 느낌을 받은 지점도 있습니다.

또한, 앞서 불필요한 사족들 없이 깔끔하게라는 표현을 썼는데, 때론 너무 지나친 나머지 이야기를 건조하게 만든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적당히 먼지도 쌓여있고, 흐트러진 물건들도 있어야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침저어는 너무 깨끗하게 잘 닦인 대리석 바닥 같은 느낌이 더 강한 작품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소네 게이스케의 작품이라 반가움이 컸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지푸라기~’처럼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에 더 매력을 느끼다 보니 다음에는 그런 스타일의 작품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족이지만, 옥의 티라고 하기엔 오타가 꽤 많은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와카바야시는 와카바야’, ‘아카바야시등으로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고, 심지어 같은 문장이 반복 인쇄된 경우(262p 하단 세 줄 ~ 263p 상단 첫 줄)도 있습니다. 출간 전 마지막 마무리가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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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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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약간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난징대학살을 다룬 책을 읽었던 그레이는 10년이 지난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스충밍이라는 중국인 교수가 대학살과 관련된 필름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무작정 일본으로 찾아갔지만 필름은커녕 인터뷰조차 거절당합니다. 땡전 한 푼 없던 그레이는 우연히 만난 제이슨이라는 정체불명의 미국인 덕분에 숙소와 클럽 호스티스 일자리를 구합니다.

하지만 클럽에서 만난 후유키라는 야쿠자 보스 덕분에 스충밍과의 접점이 생깁니다. 만남을 거부하던 스충밍은 그레이가 후유키를 접대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곤 특이한 요구를 합니다. , 노년의 후유키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구체적으로는 그가 복용하는 약의 비밀을 캐온다면 그녀의 청을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제안을 받아들인 그레이는 후유키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를 통해 조금씩 약의 비밀에 다가가지만, 그것이 목숨까지 위태롭게 할 만큼 위험천만한 미션이라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레이가 후유키의 약의 비밀과 그의 은밀한 과거를 좇는 이야기와 함께 스충밍이 1937년 난징대학살의 현장을 헤쳐나온 이야기가 병행됩니다. 아내 슈진의 충고를 무시하고 국민당에 대한 믿음만으로 난징에 남기를 고집했던 그에게 난징의 악마는 평생 잊히지 않을 화인(火印)을 남겼습니다.

 

전무후무한 희생자와 그 참혹함으로 인해 일본이 저지른 만행 가운데에서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최악의 사건으로 알려진 난징(南京) 대학살은 영화나 소설, 다큐 등을 통해 수없이 조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르에 관계없이 그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모 헤이더의 난징의 악마1937년 당시의 상황을 정면으로 다뤘던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현재(1990)와 과거(1937)를 오가는 구성, 이방인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영국 여성의 시점, 충격적인 엔딩을 품은 스릴러 형식 등 독특한 설정을 통해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그날의 상처를 철저히 개인의 시각에서 들여다봅니다.

 

출간 직후부터 이곳저곳에서 호평이 이어졌고, 네이버 카페 러니의 스릴러 월드에서도 2013년 베스트10에 꼽히는 등 스릴러 마니아들에게는 필독 목록에 오른 작품이라 기대감이 무척 컸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오래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점도 많았지만, 동시에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쉬운 부분도 그만큼 많았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잔혹함이나 선정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일기 형식의 담담한 기록과 스릴러 형식의 진실 찾기로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후반부에 가면 그레이가 좇던 진실이 드러나면서 여느 작품 못잖은 잔혹함이 묘사되지만, 작품 전반의 기조는 기존의 난징대학살을 다룬 작품들에 비해 좀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합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런 시선 덕분에 오히려 당시의 공포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스충밍의 일기와 그레이의 스릴러를 교차시킨 구성은 20대의 스충밍과 70대의 스충밍 사이에 존재하는 세월만큼이나 큰 간극과 변화를 그레이의 눈을 통해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단순히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 이상의 긴장감과 사실감을 전해줍니다.

 

또한, 거창한 이념이나 역사에 대한 일방통행식 설명보다는 그날을 살아온, 또 그날의 진실을 좇는 개인들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좀더 사실감을 부여하고, 공감할 여지를 준 점도 호평의 한 이유였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물론 규모에 관계없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역사적 사건 속에서 개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이지 이념의 옳고 그름 따위는 아니었습니다. 스충밍의 일기가 일본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면 이 작품의 미덕은 상당부분 사라졌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내 슈진과 그녀의 뱃속에 있는 2세의 생존을 갈망하는 절절한 묘사가 학살의 공포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 것입니다.

 

작품성과 대중성이 잘 버무려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던 첫 번째 이유는 주로 그레이에 관한 것입니다. 우선, 어린 시절 우연히 접한 책 한 권으로 인해 난징대학살에 10년 가까이 집착했으며,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무작정 도쿄로 찾아와 스충밍에게 필름을 요구한다는 도입부부터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는, 그녀가 도쿄에서 만나게 된 인물들입니다. 제이슨은 도쿄에서 처음 만난 노숙자그레이에게 숙소와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우연한 만남이나 과도한 친절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의 캐릭터와 성적 취향이 그레이의 그것과 마치 약속된 퍼즐처럼 딱 들어맞는다는 점은 공감하기 어려운 설정이었습니다. 차라리 스충밍이 그레이를 이용하기 위해 제이슨을 보냈다는 설정이 더 설득력이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그 외에 일부 조연은 불필요하게 범상치 않은 캐릭터로 그려지거나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그레이와 스충밍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적시에 전달해줍니다.

 

하지만, 우연과 작위의 절정은 하필 그레이가 일하는 클럽의 단골인 야쿠자 보스 후유키입니다. 그레이가 제이슨이라는 인물을 만나 호스티스가 된 것도 아이러니한데, 마침 스충밍이 오랜 시간 쫓았던 후유키가 손님으로 나타나 그레이의 접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레이를 일언지하에 내쳤던 스충밍은 (물론 본색은 따로 있었지만) 후유키의 비밀을 알아내면 필름을 공개하겠다는, 앞뒤가 기가 막히게 딱 떨어지는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후유키의 과거와 스충밍의 진의가 드러나는 순간 이 우연과 작위의 절정은, 좀 심하게 말하면, 막장드라마의 절정을 방불케 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사실, 이런 우연, 억지, 작위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대목에 이를 때마다 , 이건 소설이지... , 소설이니까 이럴 수도 있지..’라는, 감동과 몰입을 방해하는 잡생각이 수시로 떠올랐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그 어떤 진실이 드러나더라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 같은, 말하자면, 이쯤 됐으면 더 이상 못 나올 우연 같은 건 없겠군, 이라는 시니컬한 느낌까지 갖게 되면서 많은 독자들과 평론가의 호평이 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만행과 그 안에서 사선을 넘어온 평범한 한 개인의 이야기를 독특한 시각으로 버무린 필력 덕분에 의미 있는 책읽기의 시간을 가졌지만 아쉬운 점도 무척 많았던 작품입니다. 좀더 평범한 개인의 삶을 통해 그 시대의 상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좀더 개연성 있는 설정과 사실감 있는 캐릭터들이 스충밍의 주변에 포진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남긴 난징의 악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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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케이스 속의 소년 니나보르 케이스 (NINA BORG Case) 1
레네 코베르뵐.아그네테 프리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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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질감과 다양한 캐릭터로 무장한 북유럽 스릴러의 관심 목록에 새롭고 독특한 여성 트리오가 추가됐습니다. 레네 코베르뵐과 아그네테 프리스는 여성 듀오 스릴러 작가라는 보기 드문 명함을 내밀었고,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난민과 불법체류자를 위해 일하는 간호사 니나 보르는 웬만한 액션 스릴러 여주인공 못잖은 활약을 펼칩니다.

 

작품 속에는 네 명의 주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아이의 유괴를 의뢰한 부도덕한 남자, 의뢰받은 유괴를 성사시켰으나 아이는 사라지고 돈도 받지 못하게 된 남자, 뜻하지 않게 유괴된 아이를 맡게 된 여자, 그리고 유괴된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여자.

네 명 모두 평탄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삶을 사는 인물들입니다. 유괴를 의뢰한 자는 그릇된 이기심으로 인해, 유괴를 의뢰받은 자는 탐욕으로 인해 타인의 삶을 파괴시키거나 무너뜨립니다. 아이를 잃은 여자는 유년의 불행을 되밟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빠지고, 아이를 맡게 된 여자는 오로지 신념 하나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갖은 위험을 감수합니다.

 

작품 속 공간은 크게 덴마크와 리투아니아로 나눠지는데, 돈과 직업을 위해 부유한 이웃나라로 흘러들어온 동유럽인들이 겪는 참상과 그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부유한 이웃나라들의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공간 뿐 아니라 인물들도 두 나라로 나뉘는데 그 대비가 무척이나 극단적입니다.

유괴를 의뢰한 자와 아이를 맡게 된 여자는 같은 덴마크인이지만, 전자가 동유럽 사람들을 하찮은 물건이나 소모품처럼 여기는 반면 후자는 그들을 동정하고, 보호하고, 간호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유괴를 실행한 자와 아이를 잃은 여자는 같은 리투아니아인이지만, 한 사람이 가난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악의 행보를 걷게 된 반면 한 사람은 부유한 이웃나라 사람은 물론 동족에게까지 착취당하는 운명에 처합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유괴의 목적을 알게 된 뒤 새삼 인간의 그릇된 이기심과 탐욕은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로 인해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이 어디까지, 얼마나 파괴될 수 있는지 자문해봤습니다. 조금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현실에서 일어날만한 일이었고, 특히 어린 아이의 생명이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다 보니 독자 입장에서 씁쓸함과 혐오스러움이 더욱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인 니나 보르가 형사나 탐정처럼 전문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두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하진 않지만) 가정주부였던 점도 이야기의 긴장감과 사실감을 높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위험한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아이를 손에서 놓지 않는 니나의 행보는 모성애와 간호사로서의 헌신적인 태도가 아니라면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은 행동들입니다.

 

인터넷 서점 소개글에 휴머니즘 스릴러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마 이 작품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설명한 문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이를 잃은 여자와 아이를 맡은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두 작가는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하는 악인들을 위해서조차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수준에서 어쩔 수 없는 사연을 대변해줍니다. 덕분에 단순한 선의 승리, 악의 구축이라는 구도에 머물지 않고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여러 종류의 캐릭터 하나하나에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미덕이나 장점 못잖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들 때문에 페이지가 좀처럼 넘어가지 않은 점입니다. 중후반에 이르러 사건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점은 많이 개선되지만, 초중반의 인물과 상황 소개에서 너무 무겁고 진지하게보이려고 했던 것인지 적절치 못하거나 문맥에 안 맞는 어휘들이 툭툭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비유하자면, 너무 힘을 주느라 불필요한 포장을 이중삼중으로 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 문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힘들어 그냥 넘겨버리기도 했습니다.

 

니나 보르 시리즈 1’이라는 부제대로 이 작품의 엔딩은 새로운 사건의 발발을 예고하며 마무리됩니다. 주인공 니나 보르가 느닷없이 덴마크전천후 슈퍼우먼으로 변신하지만 않는다면 그녀의 두 번째 활약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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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케어
구사카베 요 지음, 현정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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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이도 다케루 스타일의 메디컬 미스터리라고 기대하고 읽어나가다가 ? 이거 소설 맞아?” 하며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특이한 이력을 지닌 우루시하라 다다스라는 노인클리닉 원장이 1인칭 서술을 통해 자신이 고안한 A케어의 증례를 설명하는, 말하자면 르포 형식의 서술이 중반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르포가 마무리되고 편집부 주라는 소제목으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사전 정보 없이 읽을 경우 성격 급한 독자는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책을 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 책의 원제는 폐용신(廢用身)’입니다. 폐용신은 말 그대로 손상을 입어 영구적으로 불구가 된 신체, 특히 사지(四肢)를 뜻합니다. 우루시하라의 A케어는 폐용신에 대한 혁신적인 치료 방법을 뜻하는데, 워낙 과격하고 충격적인 요법이라 대외적으로 알리거나 발표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원장으로 있는 클리닉에서만 실시되고 있습니다. 시술을 받은 노인들이 폐용신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긍정적인 효과까지 보이자 우루시하라의 A케어는 클리닉 내의 노인들과 스탭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얻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클리닉 밖으로 소문이 퍼지고 충격적인 폐용신 요법에 관심을 가진 매스컴이 달려들면서 사태는 급전됩니다. A케어의 긍정적인 효과는 제쳐두고 비인간적인 시술 형태만 집요하게 파고든 탓에 우루시하라의 A케어는 순식간에 전국적인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일부 매스컴이 우루시하라의 특이한 이력들까지 들춰내면서 비난을 거듭하자 클리닉 경영자는 우루시하라에게 클리닉 폐쇄를 통보하기에 이르고 얼마 후우루시하라는 종적을 감춥니다.

 

우루시하라가 출간을 위해 준비했던 원고가 중반까지의 르포 형식의 서술입니다. 심각한 일본의 노인 의료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루시하라가 제시한 A케어는 동기나 방법, 효과에 있어서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 못했던 대안을 제시합니다. 처음엔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기록을 찬찬히 읽다보면 이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A케어에 대한 믿음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벌떼같이 달려든 매스컴은 당연히 주인공을 못 살게 구는악당처럼 보이고, 우루시하라의 A케어가 제대로 인정을 받아 해피한 엔딩이 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반부터 이어지는 편집자(우루시하라의 원고를 출간하려 했던)의 주석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과연 A케어가 폐용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노인들에게 효과적인 요법인가? 우루시하라의 진정성은 그가 집필한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선하고 인도적이기만 했는가? 의사로서 특이했던 그의 이력을 보면 매스컴의 공격이 악의로 가득찬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사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A케어의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됩니다. 잠든 채 편하게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적잖은 노년의 삶이 치매, 뇌졸중, 전신마비 등으로 얼룩집니다. 특히 내 몸에 달린 사지가 폐용신이 되었을 때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루시하라의 A케어는 심각한 고령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노인 의료문제의 대안 가운데 하나입니다. 작가는 A케어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런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일종의 경고 또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동시에 독자들에게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A케어를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묻습니다.

 

가이도 다케루가 메디컬과 엔터테인먼트를 잘 결합한 미스터리를 지향했다면, 구사카베 요는 좀더 넓은 의미의 사회적 문제, 특히 당면한 노인 의료문제에 초점을 맞췄고, 결과적으로 A케어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르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특징 때문에 리얼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후반부로 갈수록 우루시하라 개인의 과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A케어를 다뤄온 앞부분의 내용을 무색하게 만든 점입니다. , 너무 앞서나간 나머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현명한 대안으로서의 A케어가 아니라, 한 개인의 특이한 성격 덕분에 우연히 또는 불행하게 탄생한 A케어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어쩌면 작가가 작품의 성격이 너무 르포 쪽으로 흐른 나머지 소설의 맛을 가미하기 위해 무리하게 설정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기대했던 미스터리는 아니었지만 독특한 형식과 충격적인 내용 덕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세 명을 죽이고서 처음으로 한 사람의 의사가 된다.”라는 내용을 담은 구사카베 요의 또 다른 작품 파멸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물론 요약된 줄거리를 보면 형식과 내용 모두 ‘A케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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