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케이스 속의 소년 니나보르 케이스 (NINA BORG Case) 1
레네 코베르뵐.아그네테 프리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이색적인 질감과 다양한 캐릭터로 무장한 북유럽 스릴러의 관심 목록에 새롭고 독특한 여성 트리오가 추가됐습니다. 레네 코베르뵐과 아그네테 프리스는 여성 듀오 스릴러 작가라는 보기 드문 명함을 내밀었고,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난민과 불법체류자를 위해 일하는 간호사 니나 보르는 웬만한 액션 스릴러 여주인공 못잖은 활약을 펼칩니다.

 

작품 속에는 네 명의 주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아이의 유괴를 의뢰한 부도덕한 남자, 의뢰받은 유괴를 성사시켰으나 아이는 사라지고 돈도 받지 못하게 된 남자, 뜻하지 않게 유괴된 아이를 맡게 된 여자, 그리고 유괴된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여자.

네 명 모두 평탄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삶을 사는 인물들입니다. 유괴를 의뢰한 자는 그릇된 이기심으로 인해, 유괴를 의뢰받은 자는 탐욕으로 인해 타인의 삶을 파괴시키거나 무너뜨립니다. 아이를 잃은 여자는 유년의 불행을 되밟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빠지고, 아이를 맡게 된 여자는 오로지 신념 하나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갖은 위험을 감수합니다.

 

작품 속 공간은 크게 덴마크와 리투아니아로 나눠지는데, 돈과 직업을 위해 부유한 이웃나라로 흘러들어온 동유럽인들이 겪는 참상과 그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부유한 이웃나라들의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공간 뿐 아니라 인물들도 두 나라로 나뉘는데 그 대비가 무척이나 극단적입니다.

유괴를 의뢰한 자와 아이를 맡게 된 여자는 같은 덴마크인이지만, 전자가 동유럽 사람들을 하찮은 물건이나 소모품처럼 여기는 반면 후자는 그들을 동정하고, 보호하고, 간호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유괴를 실행한 자와 아이를 잃은 여자는 같은 리투아니아인이지만, 한 사람이 가난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악의 행보를 걷게 된 반면 한 사람은 부유한 이웃나라 사람은 물론 동족에게까지 착취당하는 운명에 처합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유괴의 목적을 알게 된 뒤 새삼 인간의 그릇된 이기심과 탐욕은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로 인해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이 어디까지, 얼마나 파괴될 수 있는지 자문해봤습니다. 조금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현실에서 일어날만한 일이었고, 특히 어린 아이의 생명이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다 보니 독자 입장에서 씁쓸함과 혐오스러움이 더욱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인 니나 보르가 형사나 탐정처럼 전문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두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하진 않지만) 가정주부였던 점도 이야기의 긴장감과 사실감을 높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위험한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아이를 손에서 놓지 않는 니나의 행보는 모성애와 간호사로서의 헌신적인 태도가 아니라면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은 행동들입니다.

 

인터넷 서점 소개글에 휴머니즘 스릴러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마 이 작품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설명한 문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이를 잃은 여자와 아이를 맡은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두 작가는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하는 악인들을 위해서조차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수준에서 어쩔 수 없는 사연을 대변해줍니다. 덕분에 단순한 선의 승리, 악의 구축이라는 구도에 머물지 않고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여러 종류의 캐릭터 하나하나에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미덕이나 장점 못잖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들 때문에 페이지가 좀처럼 넘어가지 않은 점입니다. 중후반에 이르러 사건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점은 많이 개선되지만, 초중반의 인물과 상황 소개에서 너무 무겁고 진지하게보이려고 했던 것인지 적절치 못하거나 문맥에 안 맞는 어휘들이 툭툭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비유하자면, 너무 힘을 주느라 불필요한 포장을 이중삼중으로 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 문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힘들어 그냥 넘겨버리기도 했습니다.

 

니나 보르 시리즈 1’이라는 부제대로 이 작품의 엔딩은 새로운 사건의 발발을 예고하며 마무리됩니다. 주인공 니나 보르가 느닷없이 덴마크전천후 슈퍼우먼으로 변신하지만 않는다면 그녀의 두 번째 활약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