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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코’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흥미롭게 읽은 덕분에 진작부터 그의 신작을 기대했는데, 스파이 스릴러(또는 첩보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다시 만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코’에서 보여준 호러작가로서의 진면목과 ‘지푸라기~’에서 만끽했던 탁월한 디테일 라이터로서의 진가가 과연 스파이나 첩보라는 코드들과 잘 맞아떨어질까 하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침저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몇 차례의 반전과 곳곳에 설치된 트랩들 때문에 줄거리를 정리하기가 쉽진 않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일본의 기밀을 중국에 넘긴 것으로 추정되는 거물 스파이 – 침저어 맥베스 - 를 잡기 위해 경시청 외사 2과에 수사팀이 꾸려집니다. ‘고독한 솔로 스타일’인 후와는 낙하산으로 내려온 도쓰이의 의견에 동조하며 수사를 진행하고, 후배 와카바야시와 함께 도쿄와 베이징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금씩 캐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수사를 진행할수록 배후는 점점 깊은 곳으로 숨어들고, 파헤쳐진 진실은 쉴 새 없이 후와와 와카바야시의 뒤통수를 두들기며 어딘가 석연치 않은, 또는 불온하기까지 한 음모의 기운을 내뿜습니다. 더구나 수사가 중대한 국면을 맞이할 즈음 살인과 납치사건이 발생하면서 후와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들은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스파이 스릴러 치곤 길지 않은 분량(346p)이라 읽기 전부터 아쉬운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소네 게이스케는 적잖은 규모의 이야기를 불필요한 사족들 없이 깔끔하게 구현해냈습니다. 화려하기보다는 소탈하다고 할 정도로 평이한 문장들, 쉽게 읽히면서도 허투루 넘어가게 만들지 않는 치밀한 구성, 그러면서도 독자들의 기대를 번번이 무너뜨리는 반전 등 흔히 스파이 스릴러나 첩보 미스터리 하면 떠오르는 전형성을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잘 살려냈습니다.
또한 캐릭터 하나하나에 디테일한 사실감을 부여하는 소네 게이스케의 필력 덕분에 주인공은 물론 말단 조연에 이르기까지 생동감 있는 활약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후와와 와카바야시도 매력적이지만, 이른바 외사 2과에 일가(一家)를 거느린 보스형 캐릭터 고미, 그런 고미를 추종하는 소리마치, 낙하산 도쓰이, 소심한 과장 안도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자신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활약합니다.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우선 ‘조금은 부족한 개연성’을 들 수 있습니다. 작가가 여기저기 설치한 트랩 가운데 독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것들도 많았지만, 어떤 것들은 뜬금없이, 어떤 것들은 억지스럽게 설치된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느껴지는 지점도 있고, 좀 심하게 말하면 (극히 일부지만) ‘말장난’이라는 느낌을 받은 지점도 있습니다.
또한, 앞서 ‘불필요한 사족들 없이 깔끔하게’라는 표현을 썼는데, 때론 너무 지나친 나머지 이야기를 건조하게 만든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적당히 먼지도 쌓여있고, 흐트러진 물건들도 있어야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침저어’는 너무 깨끗하게 잘 닦인 대리석 바닥 같은 느낌이 더 강한 작품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소네 게이스케의 작품이라 반가움이 컸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지푸라기~’처럼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에 더 매력을 느끼다 보니 다음에는 그런 스타일의 작품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족이지만, 옥의 티라고 하기엔 오타가 꽤 많은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와카바야시는 ‘와카바야’, ‘아카바야시’ 등으로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고, 심지어 같은 문장이 반복 인쇄된 경우(262p 하단 세 줄 ~ 263p 상단 첫 줄)도 있습니다. 출간 전 마지막 마무리가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