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망향 ㅣ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3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섬’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참 다양합니다. 한여름의 피서지, 내쳐진 자의 유배지, 고독을 원하는 자의 은둔지, 도망자의 은닉처 등등. 하지만 이런 느낌들은 대부분 섬 외부인이 갖게 되는 것들이고,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해서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이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삶을 옥죄는 감옥처럼 답답해서 틈만 나면 탈출하고 싶은 곳이거나...
‘망향’은 세토 내해(內海)에 자리 잡은 섬 시라쓰나지마를 배경으로 이런 극단적인 느낌을 가진 인물들이 펼쳐나가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불행한 기억만 간직한 채 야반도주하듯 섬을 도망쳤던 사람, 도망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 한번 떠난 적이 있지만 자의든 타의든 자신을 낳아준 섬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 등 시라쓰나지마에서 삶을 얻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일방적으로 동정 받거나 일방적으로 미움 받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도망친 사람은 도망친 사람대로 다들 타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나름만의 사연과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동정하거나 미워하다가도 이면의 사연과 이유를 알고 나면 그들의 선택에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미나토 가나에답게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죽음’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살인, 사고, 병사 등 여러 가지 죽음이 등장하지만,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안타깝거나 애틋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지만, 섬에서의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애증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과 뭉클함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보통 단편집의 표제는 수록작 가운데 대표작으로 삼기 마련인데, ‘망향’이라는 제목은 수록작의 제목이 아니면서도 실려 있는 여섯 작품을 모두 아우르고 있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이후에 새삼 눈길이 가는 제목이었습니다. 마치 등장인물 모두가 나란히 서서 멀리 바다 위에 떠있는 시라쓰나지마를 바라보는 그림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랄까요?
미나토 가나에의 새로운 면모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고, 이틀 반나절 정도, 따뜻한 책읽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더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