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케어
구사카베 요 지음, 현정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가이도 다케루 스타일의 메디컬 미스터리라고 기대하고 읽어나가다가 ? 이거 소설 맞아?” 하며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특이한 이력을 지닌 우루시하라 다다스라는 노인클리닉 원장이 1인칭 서술을 통해 자신이 고안한 A케어의 증례를 설명하는, 말하자면 르포 형식의 서술이 중반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르포가 마무리되고 편집부 주라는 소제목으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사전 정보 없이 읽을 경우 성격 급한 독자는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책을 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 책의 원제는 폐용신(廢用身)’입니다. 폐용신은 말 그대로 손상을 입어 영구적으로 불구가 된 신체, 특히 사지(四肢)를 뜻합니다. 우루시하라의 A케어는 폐용신에 대한 혁신적인 치료 방법을 뜻하는데, 워낙 과격하고 충격적인 요법이라 대외적으로 알리거나 발표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원장으로 있는 클리닉에서만 실시되고 있습니다. 시술을 받은 노인들이 폐용신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긍정적인 효과까지 보이자 우루시하라의 A케어는 클리닉 내의 노인들과 스탭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얻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클리닉 밖으로 소문이 퍼지고 충격적인 폐용신 요법에 관심을 가진 매스컴이 달려들면서 사태는 급전됩니다. A케어의 긍정적인 효과는 제쳐두고 비인간적인 시술 형태만 집요하게 파고든 탓에 우루시하라의 A케어는 순식간에 전국적인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일부 매스컴이 우루시하라의 특이한 이력들까지 들춰내면서 비난을 거듭하자 클리닉 경영자는 우루시하라에게 클리닉 폐쇄를 통보하기에 이르고 얼마 후우루시하라는 종적을 감춥니다.

 

우루시하라가 출간을 위해 준비했던 원고가 중반까지의 르포 형식의 서술입니다. 심각한 일본의 노인 의료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루시하라가 제시한 A케어는 동기나 방법, 효과에 있어서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 못했던 대안을 제시합니다. 처음엔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기록을 찬찬히 읽다보면 이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A케어에 대한 믿음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벌떼같이 달려든 매스컴은 당연히 주인공을 못 살게 구는악당처럼 보이고, 우루시하라의 A케어가 제대로 인정을 받아 해피한 엔딩이 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반부터 이어지는 편집자(우루시하라의 원고를 출간하려 했던)의 주석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과연 A케어가 폐용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노인들에게 효과적인 요법인가? 우루시하라의 진정성은 그가 집필한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선하고 인도적이기만 했는가? 의사로서 특이했던 그의 이력을 보면 매스컴의 공격이 악의로 가득찬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사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A케어의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됩니다. 잠든 채 편하게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적잖은 노년의 삶이 치매, 뇌졸중, 전신마비 등으로 얼룩집니다. 특히 내 몸에 달린 사지가 폐용신이 되었을 때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루시하라의 A케어는 심각한 고령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노인 의료문제의 대안 가운데 하나입니다. 작가는 A케어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런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일종의 경고 또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동시에 독자들에게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A케어를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묻습니다.

 

가이도 다케루가 메디컬과 엔터테인먼트를 잘 결합한 미스터리를 지향했다면, 구사카베 요는 좀더 넓은 의미의 사회적 문제, 특히 당면한 노인 의료문제에 초점을 맞췄고, 결과적으로 A케어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르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특징 때문에 리얼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후반부로 갈수록 우루시하라 개인의 과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A케어를 다뤄온 앞부분의 내용을 무색하게 만든 점입니다. , 너무 앞서나간 나머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현명한 대안으로서의 A케어가 아니라, 한 개인의 특이한 성격 덕분에 우연히 또는 불행하게 탄생한 A케어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어쩌면 작가가 작품의 성격이 너무 르포 쪽으로 흐른 나머지 소설의 맛을 가미하기 위해 무리하게 설정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기대했던 미스터리는 아니었지만 독특한 형식과 충격적인 내용 덕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세 명을 죽이고서 처음으로 한 사람의 의사가 된다.”라는 내용을 담은 구사카베 요의 또 다른 작품 파멸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물론 요약된 줄거리를 보면 형식과 내용 모두 ‘A케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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