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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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밤새 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맡을 수 있는 고유한 향기가 물씬 배어있지만,

동시에 일종의 위화감(?) 같은 것도 곳곳에 숨어있는 듯한 작품입니다.

 

● ● ●

 

자정을 코앞에 둔 도시의 밤.

마치 드론 같은 존재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체 없는 의식이며, 어느 곳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일 뿐입니다.

자칭 우리라고 하는 그 시점은 어둠이 내린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찰합니다.

 

두꺼운 책과 담배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밤을 새우는 19살의 아사이 마리,

아마추어 밴드에서 트럼본을 연주하며 사법고시에 관심을 둔 21살의 다카하시 데쓰야,

한때 잘 나가는 여자레슬러였지만 지금은 러브호텔의 매니저 일을 하는 가오루,

도망자 신세로 가오루의 러브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특이한 이름의 고오로기,

마리와 동갑이지만 불법체류 신세로 매춘 조직에 얽힌 중국여자 궈돈리,

IT회사에 근무하며 철야를 밥 먹듯이 하는 수상쩍은 직장인 시라카와,

그리고 마리의 언니이자 무한 수면(睡眠) 상태에 빠져 있는 아사이 에리 등

도시의 이곳저곳에 머물러 있는 다양한 군상들이 우리의 눈에 비칩니다.

 

● ● ●

 

이야기는 인물 별로 토막토막 분절돼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리들을 통해 정교한 원의 형태를 지닌 것 같기도 합니다.

밤이라는 특별한 시공간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물들끼리 사소한 소품을 통해 촘촘히 연결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켜보는 사람은 크게 마리와 그녀의 언니 에리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마리와의 하룻밤 인연 때문에 우리의 시점에 포착되지만,

에리는 조금은 차원이 다른, 판타지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목격됩니다.

마치 별개의 이야기처럼, 그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영원히 잠든 백설공주입니다.

에리의 이야기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판타지에 가까워서

독자에 따라 공감과 이입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런 불편함은 이야기의 끝에 가서 마리와 에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지면서 해소됩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난 마리와 다카하시가 해가 뜰 무렵 나름 각별한 관계가 되는 것 외엔

일반적인 소설의 서사를 따르는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등장인물이

밤에만 어울리는, 밤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낮에는 전부 사라질 것 같은

그런 특별한 이야기와 생각들을 풀어놓습니다.

밤은 혼자서만 간직해온 비밀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 훌쩍 털어놓게 해주기도 하고,

모두가 아는 이야기임에도 새삼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게 만들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에게라도 낮에는 결코 내보일 수 없는 표정이나 행동이

밤의 영역에서는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터져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애프터 다크는 읽는 내내 왕가위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화려함과 빈곤, 타락과 쓸쓸함으로 가득 찬 밤의 도시 안에서

때론 무게감 없는 부유물처럼, 때론 폭발직전의 폭탄처럼 떠다니는 인물들을 그려냈던

‘2046’이나 중경삼림의 이미지들이 수시로 파편처럼 머릿속을 날아다녔습니다.

캐릭터나 스토리가 비슷한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야누스 같은 밤 풍경과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이 깃든 인물들의 눈빛만큼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들처럼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많고,

다 읽고 난 후에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읽은 거야?’라고 자문할 독자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프터 다크는 어떤 교훈이나 특별한 인상,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마리와 에리를 지켜보는 우리의 시점처럼 독자는 그저 그들을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늦은 시간, 번화한 거리 속 외진 계단 같은 곳에 앉아서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을 배경삼아

쾌락이나 고통, 사랑이나 슬픔 따위에 푹 빠진 다양한 군상들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요?

, 그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몰래 감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저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다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누군가에게는 한심함, 누군가에게는 애증을 느끼면 그만입니다.

어떤 때는 그런 무심한 바라보기 자체가 너무나도 매력적일 때가 있으니까요.

애프터 다크는 그런 식의 바라보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키는 집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이니시에이션 스토리라고 얘기했는데,

솔직히 읽으면서도 이니시에이션 스토리,

즉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고통스런 통과의례의 이야기라는 느낌은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고통은 성장통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진짜 어른으로 막 진입한 후에야 비로소 마주치게 되는 현실들 그것이 제도이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간에 때문에 파생된 것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 좀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루키의 마니아는 절대 아니지만,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작품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음험하게 숨어있던 관음증의 일부가 묘한 방식으로 충족됐기 때문입니다.

소음과 음란함에 빠진 도시라도 좋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도시도 좋고,

그 어디에서든 우리같은 관찰자가 돼서 하룻밤쯤 차분히 이런저런 사람들을 지켜본다면

내 안에 숨어있던 건전한(?) 관음증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누구든 애프터 다크같은 이야기 한 편쯤 뽑아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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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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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의 대공황 시대, 시카고에서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아가던 하퍼 커티스는

우연히 찾아들어간 낡은 집 더 하우스에서 낯설고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더 하우스는 하퍼에게만 들리는 특별한 목소리를 통해

각자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9명의 빛나는 소녀를 살해하라고 지시합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명령에 순종한 하퍼는 더 하우스의 출입문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며

멀리는 1993년까지 날아가 소녀 9명을 잔혹하게 살해합니다.

하지만 단 한 명, 커비 마즈라치에 관한 한 그는 미션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우연과 행운 덕분에 하퍼가 남긴 치명적인 상처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이제 신문사 인턴기자가 되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남자가 연쇄살인범임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뒤늦게 커비의 생존을 알게 된 하퍼는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또다시 1993년으로 돌아오고

커비는 자신의 멘토인 왕년의 사건기자 댄과 함께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칩니다.

 

● ● ●

 

시간여행을 하는 연쇄살인범이라는 독특한 설정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만든 작품입니다.

더구나 일반적인 연쇄살인범의 설정과는 달리 하퍼 커티스는 어떤 영적인 힘,

더 하우스가 내뿜는 기괴한 힘에 이끌려 목적과 이유도 모른 채 소녀 살해에 나섭니다.

더 하우스는 제목도 비슷한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을 연상시킵니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전지전능한 신처럼 존재하며 하퍼를 조종하는 더 하우스

악마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섬뜩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범행의 대상이 된 소녀들은 샤이닝 걸스, 즉 빛나는 소녀들이라 지칭되지만

그녀들이 빛나는 이유에 대해 더 하우스는 특별히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하퍼 역시 왜 하필 그녀들을 죽여야 하냐고 더 하우스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더 하우스가 제공한 시간여행 속에서 그녀들을 난자하고 훼손할 뿐입니다.

마치 신 내림과 비슷한 과정이라 할까요?

 

유일한 생존자인 커비가 자신의 사건을 취재했던 왕년의 사건기자 댄의 인턴이 되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탐문과 자료조사를 통해 범행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스릴러 공식을 따르고 있어 나름의 재미를 전해줍니다.

하지만 무려 60년 이상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하퍼의 꼬리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 하퍼의 비현실적인 시간여행 연쇄살인을 알아낸다고 해도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스스로 이해 불가능한 현상을 파트너인 댄은 물론 세상에게 어떻게 납득시킬지 등

커비 앞에 놓인 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실 속 수사와 판타지 속 연쇄살인이 병행되면서 결말에 대한 궁금함은 최대한 증폭됩니다.

 

목차를 보면 1929년부터 1993년까지의 에피소드가 무질서하게 배치돼있는데,

처음엔 꽤나 혼란스러운 책읽기가 되겠다고 생각됐지만,

읽다 보면 그런 배치가 의외의 재미를 준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끔 목차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연대를 확인하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그런 행위 자체가 과거와 현재, 인물과 인물, 사건과 사건의 관계를 되새기게 만들면서

색다른 긴장감은 물론 독자의 주의를 수시로 환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더 하우스라는 신비로운 존재, 그로부터 부여받은 하퍼의 욕망이 배제된 연쇄살인,

그리고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단서들을 쫓는 커비와 댄의 콤비 플레이 등

여느 스릴러와도 차별화되는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뭔가 모호하고 설명되지 않는 더 하우스의 존재와 범행 동기는

장점이면서 동시에 아쉬운 점으로 남은 것이 사실입니다.

스티븐 킹이 오버룩 호텔의 캐릭터를 위해 적잖은 분량과 에피소드를 준비한 반면,

로런 뷰커스는 더 하우스의 캐릭터를 독자들의 상상력에 전적으로 맡겼다고 할까요?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면 아마 이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처음 만난 작품이지만 그래픽노블과 시나리오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을 해온

작가 로런 뷰커스의 독특한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이 돋보였고,

그녀의 또 다른 판타지 역시 기대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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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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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카일러 굿윌과 머시 스톤 사이에서 태어나

80여 년의 삶을 살다 간 데이지 굿윌 플렛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다이어리라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일기, 편지, 독백, 3인칭 서술 등

각 챕터마다 내용에 어울리는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산업과 과학, 사회와 문화 등 전 분야에서 격변을 겪던 20세기의 시작 무렵에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인생을 출발한 한 여자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어쩐지 지금의 시대를 사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에피소드들 부부, 가족, 친구, 사랑, 애증 등 이 등장합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보이는 엄청난 가계도(家系圖)가 암시하듯

이야기는 데이지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평범한 채석꾼에서 최고의 석공 자리에 올랐지만 딸에게는 가깝고도 먼 존재였던 아버지,

데이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줬지만 정작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고 숨을 거둔 어머니,

오갈 데 없던 데이지를 보살피며 키워준 양어머니,

20년 이상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데이지의 인연이 된 남편,

그리고 늦은 나이에 얻은 좌충우돌 세 자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고,

동시에 데이지의 평생의 절친들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맛깔난 조연 역할을 해줍니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거나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린 사람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여자의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서 더 공감과 이입의 폭이 넓었던 것 같습니다.

,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고, 이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맞이하겠구나, 라는 공감,

, 딱히 본받거나 존경할만한 미덕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내 어머니, 아내, 딸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이입이

잔잔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꾸준히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 바커 플렛이 식물과 정원을 사랑했던 사람이라 당연한 결과겠지만

자연과 식물에 관한 상세하고 꼼꼼한 문장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녀가 태어난 캐나다 작은 마을이나 삶의 터전을 잡은 여러 곳의 자연 풍광,

또 남편을 잃은 뒤 그녀의 삶을 빛나게 해줬던 꽃과 식물에 대한 애정은 특히나 각별한데

그것들은 단지 소품이 아니라 데이지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들이 돼줍니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성실한 자료조사의 결과라고만 볼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가의 애정 어린 묘사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를 깊게 음미하며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장르물의 빠른 책읽기에 익숙해져서 처음엔 좀 곤혹스러웠지만,

일부러 읽는 속도를 줄이자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느린 책읽기가 어려운 독자들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롤러코스터 같은 진폭이나 극적인 갈등보다는 제목처럼 다이어리에 충실한 내용인데다,

20세기 초반의 올드함 또는 고전미를 연상시키는 아날로그 식 문장들로 쓰인 탓에

폭풍 같은 서사와 어느 정도 막장스러운 가족사를 기대한 독자들이나

쉽고 간결한 현대의 문장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겐 자칫 지루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잔잔한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듯 차분하게 데이지의 삶을 지켜볼 준비가 돼있다면,

또 작심하고 안전속도이하로 읽어갈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평 가운데 삶에 대한 긍정과 찬미라는 찬사가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론 이 작품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평이라는 생각입니다.

데이지는 아주 찰나의 몇몇 순간을 제외하곤 결코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삶에 대해 긍정하거나 찬미하기 보다는

그때그때 자신 앞에 주어진 고난과 고비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며

그 결과에 대해 때론 웃기도, 때론 눈물짓기도 하면서 8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낙관주의자도, 희망론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삶을 전반적으로 지배한 것은 작가의 말처럼 슬픔의 정서였고,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아주 많이 닮아있습니다.

만약 데이지가 고난 속에서도 삶을 예찬하는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미화됐더라면

아마 이 작품의 미덕은 상당 부분 훼손됐을 것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언젠가는 이만한 깊이와 굴곡까지 지니진 못하더라도

내 곁을 지나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다이어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기억을 파내려가다 보면 스스로도 깜짝 놀랄 별의별 해프닝들이 많이 떠오를 것이고

거기에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도 떠오를 것입니다.

그들과 나눴던 희로애락을 평범한 문장으로라도 엮어놓고 두고두고 읽어볼 수만 있다면

그저 미미한 삶일지라도 나름의 의미를 찾고 잠시나마 빙긋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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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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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신 양윤옥 님은 옮긴이의 말에서 일본 블로거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이 작품의 제목이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그런 생각일랑 접게 해줄 테니.”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기꺼이 도와줄 테니.”

 

저 역시도 그랬지만,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후자 쪽의 이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역시 읽는 내내 등장인물이나 줄거리 모두 기대한 대로 전개됐지만,

마지막까지 읽은 후에는 전자와 후자가 절묘하게 섞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훤칠한 외모와 달리 굼뜨고 요령 없고 덤벙대는 결점을 지닌 데다

친구도 없고, 똑똑하고 잘난 가족들과는 절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이며,

입시를 코앞에 둔 삼수생이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까지 챙겨야 하는 도쿠야마 히사시는

머리도 나쁘고, 인내심도 없고, 게을러터지기만 한 내 인생은 절망적이야.”라고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21살 청년입니다.

 

그런 도쿠야마가 우연히 들른 단란주점에서 19살의 야마나카 하쓰미를 만납니다.

그녀가 준 명함에는 힘들거나 죽고 싶어지면 전화주세요. 언제든지.”라고 적혀있습니다.

도쿠야마는 대량학살, 고문, 강간 등을 다룬 책들과 호러DVD를 좋아하는 하쓰미가

처음엔 낯설고 기이하게 여겨지지만 금세 그녀에게 마음을 사로잡히고 맙니다.

 

죽음을 지상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며 온통 악의로 둘러싸인 염세주의의 화신인 하쓰미는

조금씩 도쿠야마의 몸과 마음을 잠식해갑니다.

거절하는 법도, 자신의 생각이나 소신을 당당히 밝힐 줄도 모르던 도쿠야마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인격을 짓밟는 화법으로 상대방의 치부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희망이나 노력 등 긍정적인 가치관이란 그저 맹목적이고, 허무하고, 무의미하며,

식욕과 성욕 등 모든 욕구는 그저 짜증나고 꼴사나운 일이라는 하쓰미의 지론에 동조합니다.

, 죽음만이 고통과 상처, 과거와 미래로부터 단절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에 물들어갑니다.

 

하쓰미가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기꺼이 도와줄 테니.”라고 말하는 인물이라면,

직장 상사인 가타오카는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그런 생각일랑 접게 해줄 테니.”라고 말하며,

도쿠야마를 밝은 쪽으로 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인물입니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두 여신을 연상시키는 하쓰미와 가타오카 사이에서

도쿠야마는 어느 쪽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아야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렇듯 이야기는 한없이 어둡고, 엽기적이고, 파국을 향해서 치닫기만 하지만,

약해진 사람이 베갯머리에 놓고 되풀이해서 읽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변()

책 내용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떠올라서 잠시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읽은 뒤에 저만의 방식으로 내린 해석을 풀어놓자면,

작가의 변은 여러분에게 파멸의 끝을 보여주겠지만 오히려 거기에서 희망을 찾아내라.”

속뜻이 담긴 역설이라는 생각입니다.

 

오래 전 스무 살 무렵,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중 마지막 수록작 그해 겨울을 읽고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

한겨울 눈 덮인 산맥을 넘어 바다에 뛰어든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은 뒤

죽음에의 동경과 삶에 대한 애착이 동시에 몰려와 혼란스러운 한때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혼란을 종식시킨 것은 결국 역설의 힘이었는데,

말하자면 제대로 된 바닥을 쳐야 비로소 올라갈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작가는 파멸의 끝 또는 진짜 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희망이라는 자신의 의도를 역설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하쓰미 식 염세주의도, 가타오카 식 희망론도 믿지 않는 나이가 된 탓에

19살의 하쓰미와 21살의 도쿠야마의 절박함 또는 확신이 크게 와 닿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의 파멸과 죽음에 대한 지론은 제법 솔깃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서,

자칫 작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깨달음을 얻는 독자가 있을까봐 은근히 걱정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요...^^;)

 

독자에 따라 하쓰미의 캐릭터나 신념, 가치관에 대해 공감 못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입니다.

, 부연 안개 속을 걷는 느낌으로 마지막 장에 이른 독자도 적잖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름의 성찰과 고민 끝에 하쓰미의 몸과 마음이 죽음과 염세주의에 녹아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19살의 치기처럼 읽힌 점은 꽤나 아쉬웠습니다.

그녀의 천재성과 심오한 사고를 강조하기 위해 설정된 소품들은 조금은 작위적이었고,

그녀를 막다른 벽까지 몰아붙인 죽음을 갈망하게 만드는 에너지나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가 내린 최종 선택의 이유도 쉽게 이해하긴 어려운 대목이었습니다.

 

사실 곳곳에서 ?”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특성 상 왠지 그렇게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강박도 느껴졌고,

또 그에 대한 선명한 대답이란 존재해서도, 존재할 수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창조적 발상과 도전 정신이 깃든 완전한 신인을 대상으로 한 문예상 수상작이기에

일부 아쉬운 점들이 있더라도 이해하고, 용인하면서 차기작을 기대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일 한국인 3세 작가라 좀더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다음엔 발상과 도전을 넘어 한 단계 성장한 작품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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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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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부부를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이 잠적합니다. 그의 이름과 사진이 언론과 인터넷에 공개되고

전방위적인 수사가 진행되지만 범인은 성형수술까지 받으며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갑니다.

그리고 세 남자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촌 마을에 흘러들어와 불우한 이력을 지닌 소녀 아이코와 인연을 맺는 청년 다시로,

게이들이 모이는 사우나에서 광고회사 직원 유마를 만나 그의 집에서 동거하게 되는 나오토,

그리고 엄마의 바람기로 오키나와로 도망 온 이즈미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다나카.

 

하나같이 본명도, 이력도 분명치 않은 존재들이라 그들과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들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습니다.

우연처럼 그들의 이미지는 공개수배 프로그램에 등장한 범인의 인상과 비슷합니다.

의심은 사소한 데서 출발하게 되고,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절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공포는 의심을 무한대로 증폭시키고, 증폭된 의심은 예상치 못한 파국을 초래하고 맙니다.

 

● ● ●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항간에 떠도는 살인사건 수배범과 비슷한 인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그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가 의심스럽고 무섭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작품의 제목은 부부 살인범이 현장에 피로 남긴 두 글자 분노에서 따온 것이지만,

정체를 밝히지 않는 상대방에게 드는 분노라는 감정,

그런 상대방을 계속 의심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라는 감정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부부 살인범을 쫓는 미스터리의 골격을 지니고 있지만

주된 서사는 이처럼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인간의 딜레마입니다.

 

가출을 밥 먹듯 하며 몸과 마음을 망쳐버린 아이코의 아버지 요헤이는

딸에게 희망과 안식을 주는 다시로를 믿고 그가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지만

과거를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 그에 대한 의심이 자라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살인범이라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딸의 인생은 복구불능이 되기 때문입니다.

쾌락에 몸을 내맡기고 살던 유마는 겉으론 당당해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게이입니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 싶어진 나오토를 만나 삶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나오토가 살인범이라면, 그래서 그가 체포된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기득권은 물론 삶 자체가 파탄날 수도 있습니다.

엄마의 바람기 때문에 야반도주하듯 오키나와로 흘러들어온 이즈미에게

외딴 섬에서 만난 다나카는 신비하면서도 의지처가 되는 인물입니다.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이지만 이즈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머물던 외딴 섬에 남겨놓은 흔적은 이즈미를 큰 혼란에 빠뜨립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의심이 야기하는 딜레마는 거의 도박에 가깝습니다.

어중간한 타협이란 없으며 전적으로 도 아니면 모인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세 남자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은 결과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 게임 앞에서

때로는 무력감을, 때로는 자기혐오감을 느끼며 선뜻 베팅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세 남자의 이야기는 제각각의 궤도를 위태롭게 달리다가

마지막에 살인범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동시에 각각의 엔딩을 맞이하게 됩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범인을 쫓는 형사에게도 비슷한 딜레마를 던져줌으로써

세 남자의 이야기와 병행하는 또 다른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유기 고양이 때문에 인연을 맺은 여자와 점차 깊은 관계에 빠져들지만

그는 그녀에 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찰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알아낼 수도 있지만 그녀를 믿어보기로 결심합니다.

세 남자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채 수사에 참여하는 그를 지켜보는 것은

한편으론 그 끝이 궁금해지면서도 어쩐지 안쓰러워 견딜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요시다 슈이치가 펼쳐놓은 설정은 이해하기 어렵지도, 예상하기 힘들지도 않습니다.

이야기는 짐작한 대로 흘러가지만,

막상 엔딩에 이르러 마음에 와 닿는 무게감은 짐작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수배범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특별한 설정이지만

그로 인해 겪는 딜레마나 갈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그런 감정들을 억지로 쥐어짜지 않으면서도 120%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분노를 다루되 분노 자체를 문장 속에 우겨넣지 않습니다.

분노는 고스란히 독자 스스로 느낄 몫으로 남겨놓습니다.

마음이 느끼는 무게감이 짐작 이상으로 묵직해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역시 요시다 슈이치, 라는 평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그의 고유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날이 조금 서늘해졌을 때 읽었다면 엔딩에서 느낀 묵직함이 조금은 덜 부담스러웠겠지만

고온다습한 날씨 덕분에 분노라는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친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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