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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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의 대공황 시대, 시카고에서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아가던 하퍼 커티스는

우연히 찾아들어간 낡은 집 더 하우스에서 낯설고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더 하우스는 하퍼에게만 들리는 특별한 목소리를 통해

각자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9명의 빛나는 소녀를 살해하라고 지시합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명령에 순종한 하퍼는 더 하우스의 출입문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며

멀리는 1993년까지 날아가 소녀 9명을 잔혹하게 살해합니다.

하지만 단 한 명, 커비 마즈라치에 관한 한 그는 미션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우연과 행운 덕분에 하퍼가 남긴 치명적인 상처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이제 신문사 인턴기자가 되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남자가 연쇄살인범임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뒤늦게 커비의 생존을 알게 된 하퍼는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또다시 1993년으로 돌아오고

커비는 자신의 멘토인 왕년의 사건기자 댄과 함께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칩니다.

 

● ● ●

 

시간여행을 하는 연쇄살인범이라는 독특한 설정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만든 작품입니다.

더구나 일반적인 연쇄살인범의 설정과는 달리 하퍼 커티스는 어떤 영적인 힘,

더 하우스가 내뿜는 기괴한 힘에 이끌려 목적과 이유도 모른 채 소녀 살해에 나섭니다.

더 하우스는 제목도 비슷한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을 연상시킵니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전지전능한 신처럼 존재하며 하퍼를 조종하는 더 하우스

악마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섬뜩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범행의 대상이 된 소녀들은 샤이닝 걸스, 즉 빛나는 소녀들이라 지칭되지만

그녀들이 빛나는 이유에 대해 더 하우스는 특별히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하퍼 역시 왜 하필 그녀들을 죽여야 하냐고 더 하우스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더 하우스가 제공한 시간여행 속에서 그녀들을 난자하고 훼손할 뿐입니다.

마치 신 내림과 비슷한 과정이라 할까요?

 

유일한 생존자인 커비가 자신의 사건을 취재했던 왕년의 사건기자 댄의 인턴이 되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탐문과 자료조사를 통해 범행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스릴러 공식을 따르고 있어 나름의 재미를 전해줍니다.

하지만 무려 60년 이상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하퍼의 꼬리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 하퍼의 비현실적인 시간여행 연쇄살인을 알아낸다고 해도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스스로 이해 불가능한 현상을 파트너인 댄은 물론 세상에게 어떻게 납득시킬지 등

커비 앞에 놓인 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실 속 수사와 판타지 속 연쇄살인이 병행되면서 결말에 대한 궁금함은 최대한 증폭됩니다.

 

목차를 보면 1929년부터 1993년까지의 에피소드가 무질서하게 배치돼있는데,

처음엔 꽤나 혼란스러운 책읽기가 되겠다고 생각됐지만,

읽다 보면 그런 배치가 의외의 재미를 준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끔 목차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연대를 확인하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그런 행위 자체가 과거와 현재, 인물과 인물, 사건과 사건의 관계를 되새기게 만들면서

색다른 긴장감은 물론 독자의 주의를 수시로 환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더 하우스라는 신비로운 존재, 그로부터 부여받은 하퍼의 욕망이 배제된 연쇄살인,

그리고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단서들을 쫓는 커비와 댄의 콤비 플레이 등

여느 스릴러와도 차별화되는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뭔가 모호하고 설명되지 않는 더 하우스의 존재와 범행 동기는

장점이면서 동시에 아쉬운 점으로 남은 것이 사실입니다.

스티븐 킹이 오버룩 호텔의 캐릭터를 위해 적잖은 분량과 에피소드를 준비한 반면,

로런 뷰커스는 더 하우스의 캐릭터를 독자들의 상상력에 전적으로 맡겼다고 할까요?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면 아마 이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처음 만난 작품이지만 그래픽노블과 시나리오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을 해온

작가 로런 뷰커스의 독특한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이 돋보였고,

그녀의 또 다른 판타지 역시 기대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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