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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번역하신 양윤옥 님은 ‘옮긴이의 말’에서 일본 블로거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이 작품의 제목이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그런 생각일랑 접게 해줄 테니.”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기꺼이 도와줄 테니.”
저 역시도 그랬지만,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후자 쪽의 이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역시 읽는 내내 등장인물이나 줄거리 모두 기대한 대로 전개됐지만,
마지막까지 읽은 후에는 전자와 후자가 절묘하게 섞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훤칠한 외모와 달리 굼뜨고 요령 없고 덤벙대는 결점을 지닌 데다
친구도 없고, 똑똑하고 잘난 가족들과는 절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이며,
입시를 코앞에 둔 삼수생이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까지 챙겨야 하는 도쿠야마 히사시는
“머리도 나쁘고, 인내심도 없고, 게을러터지기만 한 내 인생은 절망적이야.”라고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21살 청년입니다.
그런 도쿠야마가 우연히 들른 단란주점에서 19살의 야마나카 하쓰미를 만납니다.
그녀가 준 명함에는 “힘들거나 죽고 싶어지면 전화주세요. 언제든지.”라고 적혀있습니다.
도쿠야마는 대량학살, 고문, 강간 등을 다룬 책들과 호러DVD를 좋아하는 하쓰미가
처음엔 낯설고 기이하게 여겨지지만 금세 그녀에게 마음을 사로잡히고 맙니다.
죽음을 지상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며 온통 악의로 둘러싸인 염세주의의 화신인 하쓰미는
조금씩 도쿠야마의 몸과 마음을 잠식해갑니다.
거절하는 법도, 자신의 생각이나 소신을 당당히 밝힐 줄도 모르던 도쿠야마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인격을 짓밟는 화법으로 상대방의 치부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희망이나 노력 등 긍정적인 가치관이란 그저 맹목적이고, 허무하고, 무의미하며,
식욕과 성욕 등 모든 욕구는 그저 짜증나고 꼴사나운 일이라는 하쓰미의 지론에 동조합니다.
또, 죽음만이 고통과 상처, 과거와 미래로부터 단절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에 물들어갑니다.
하쓰미가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기꺼이 도와줄 테니.”라고 말하는 인물이라면,
직장 상사인 가타오카는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그런 생각일랑 접게 해줄 테니.”라고 말하며,
도쿠야마를 ‘밝은 쪽’으로 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인물입니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두 ‘여신’을 연상시키는 하쓰미와 가타오카 사이에서
도쿠야마는 어느 쪽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아야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렇듯 이야기는 한없이 어둡고, 엽기적이고, 파국을 향해서 치닫기만 하지만,
“약해진 사람이 베갯머리에 놓고 되풀이해서 읽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변(辯)이
책 내용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떠올라서 잠시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읽은 뒤에 저만의 방식으로 내린 해석을 풀어놓자면,
작가의 변은 “여러분에게 파멸의 끝을 보여주겠지만 오히려 거기에서 희망을 찾아내라.”는
속뜻이 담긴 역설이라는 생각입니다.
오래 전 스무 살 무렵,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중 마지막 수록작 ‘그해 겨울’을 읽고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
한겨울 눈 덮인 산맥을 넘어 바다에 뛰어든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은 뒤
죽음에의 동경과 삶에 대한 애착이 동시에 몰려와 혼란스러운 한때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혼란을 종식시킨 것은 결국 ‘역설의 힘’이었는데,
말하자면 제대로 된 바닥을 쳐야 비로소 올라갈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작가는 파멸의 끝 또는 진짜 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희망’이라는 자신의 의도를 역설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하쓰미 식 염세주의도, 가타오카 식 희망론도 믿지 않는 나이가 된 탓에
19살의 하쓰미와 21살의 도쿠야마의 절박함 또는 확신이 크게 와 닿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의 파멸과 죽음에 대한 지론은 제법 솔깃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서,
자칫 작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깨달음’을 얻는 독자가 있을까봐 은근히 걱정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요...^^;)
독자에 따라 하쓰미의 캐릭터나 신념, 가치관에 대해 공감 못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입니다.
또, 부연 안개 속을 걷는 느낌으로 마지막 장에 이른 독자도 적잖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름의 성찰과 고민 끝에 하쓰미의 몸과 마음이 죽음과 염세주의에 녹아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19살의 치기처럼 읽힌 점은 꽤나 아쉬웠습니다.
그녀의 천재성과 심오한 사고를 강조하기 위해 설정된 소품들은 조금은 작위적이었고,
그녀를 막다른 벽까지 몰아붙인 죽음을 갈망하게 만드는 에너지나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가 내린 최종 선택의 이유도 쉽게 이해하긴 어려운 대목이었습니다.
사실 곳곳에서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특성 상 왠지 그렇게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강박도 느껴졌고,
또 그에 대한 선명한 대답이란 존재해서도, 존재할 수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창조적 발상과 도전 정신이 깃든 완전한 신인을 대상으로 한 문예상 수상작’이기에
일부 아쉬운 점들이 있더라도 이해하고, 용인하면서 차기작을 기대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일 한국인 3세 작가라 좀더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다음엔 발상과 도전을 넘어 한 단계 성장한 작품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