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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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줄거리 정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방대한 탓도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행방을 감춘 동생 찾기를 중심으로

쇠락한 명문가의 지저분한 유산상속전, 윤리적 문제를 내포한 위험한 뇌 연구,

오래 전 의문사한 어머니의 비밀 등 다양한 서사가 한데 엮여 있어서

어디서부터 줄거리를 정리해야할지 곤란한 지경이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비너스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심지어 띠지나 뒷표지조차 읽지 않고 바로 본 내용부터 시작했는데,

고백하자면, 이 작품이 과학의 영역을 다룬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 라플라스의 마녀처럼 애초에 목록에서 제외시켰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작품마다 편차가 큰 편이라

신작이 나올 때마다 주위의 평을 참고한 뒤에야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곤 했지만,

특히 과학이나 SF를 소재로 삼은 경우에는 워낙 저와 코드가 맞지 않아서

어지간히 재미있다는 소문이 돌기 전에는 다시는 읽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전 정보가 없었다고 해도 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된 이유는,

거의 절반 이상의 분량이 지나도록 이 작품의 핵심 미스터리가 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간혹 프랙털 도형이나 서번트 증후군 등 수상한(?) 개념들이 언급되긴 했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중심은 사라진 동생의 미스터리와 지저분한 유산상속전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또 다른 목표,

, 어머니의 죽음의 비밀이라든가 유상상속전을 벌이는 쇠락한 명문가와의 갈등,

그리고 동생의 아내라 자처한 여인에 대한 부도덕한 호기심에 쏠려 있어서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탓에 어느 새 절반 넘게 페이지가 넘어가버렸고,

드디어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려던 과학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에는

이대로 덮기엔 읽어온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역시 히가시노의 이과적 상상력은 저와는 절대 맞지 않는다, 였습니다.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 프랙털 도형, 울람 나선, 리만 가설, 뇌 과학 등 난해한 소재들이

막판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꽤 심오한 주제를 피력하고 있는데,

동생 찾기, 유산상속전, 어머니의 비밀 등 다양한 서사들의 조합이

어떻게 이런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밝혀진 모든 사건의 진상은 왠지 억지로 끼워 맞춘느낌이 강했고,

범인의 수법이나 목표 모두 허술하거나 공허하게 읽혔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왜 이런 제목이 붙었나, 궁금했는데,

번역하신 양윤옥 님의 친절한 설명을 읽고도 저의 몰이해는 여전했습니다.

 

인위적으로 천재를 만들어내려는 인류의 꿈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미의 여신 비너스를 동경하는 것처럼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일이다.

 

뭐랄까, ‘꿈보다 해몽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히가시노가 정말 이런 취지에서 위험한 비너스라는 제목을 붙였다면

그건 과욕이거나 오버센스거나 자만심(?)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최근에 읽은 히가시노의 작품이 기린의 날개였는데,

아무래도 제겐 미스터리와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가 잘 배합된 가가 형사 시리즈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백야행’, ‘방황하는 칼날처럼

눈물을 쏙 빼놓거나 마음을 후벼파는 이야기가 제격이란 생각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라플라스의 마녀를 볼 때마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곤 했는데,

역시 히가시노의 과학책은 제겐 무리한 도전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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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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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의 투톱 주인공 중 한 명인 진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 어둠의 변호사고진도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지만,

진구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법과 무법을 오가는 자유로운 영혼(?)이란 점에서

어느 장르물의 주인공과도 차별화되는 특이한 인물입니다.

진구 시리즈의 첫 작품인 순서의 문제를 읽은 뒤에 쓴 서평을 일부 인용하면,

 

정의감으로 뭉친 명탐정인가 하면, 법을 우습게 여기는 불량시민의 면모도 있고,

세상을 달관한 백수인가 하면, 돈에 관한 한 절대 뒤지지 않는 욕심도 지니고 있다.

 

심지어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서는 진구를

법망의 허점을 이용하는 데 일말의 주저도 없는 소시오패스라고까지 설명합니다.

말 그대로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모래바람은 진구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작품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수학 천재 중학생이던 진구를

명탐정이자 소시오패스라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닌 인물로 변질시킨 과거의 사건과

그 사건이 우연과 필연을 거쳐 10여 년 후인 현재 시점에 일으킨 또 하나의 사건을 다룹니다.

앞의 이야기가 진구의 비극적인 프리퀄이라면,

뒤의 이야기는 그 프리퀄로부터 파생된 안타까운 현재진행형 비극입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에는 과거 진구의 중학교 친구이자 선의의 라이벌이며

로맨스의 분위기까지 풍겼던 유연부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 ● ●

 

실크로드 조사단인 아버지들을 따라 험한 사막 원정에 참여했던 중학생 진구와 연부.

하지만 살인적인 모래바람 속에 진구와 연부의 아버지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현재.

진구는 창투사 회장으로부터 망나니 아들의 연인을 뒷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그 연인은 다름 아닌 연부였고, 진구는 고민에 빠집니다.

진구에게 있어 연부는 철저하게 봉인했던, 그래서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은 과거이며,

모래바람 속에서 죽어간 아버지들의 죽음의 비밀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부가 연루된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진구는 운명처럼 연부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구는 곧 그 살인사건이 모래바람 속 비극의 연장임을 깨닫게 됩니다.

 

● ● ●

 

진구와 연부가 흑풍이라 불리는 끔찍한 모래바람을 마주했던 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입니다.

진구가 아버지는 물론 연부와 수학을, 그리고 예정돼있던 안온한 삶을 잃어버린 곳이

하필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뜻의 타클라마칸이란 점은 비극적인 아이러니입니다.

 

모래바람은 진구로 하여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만들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게 만듦으로써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악몽에 가뒀습니다.

상실과 악몽 속에서 성장한 진구가 극단적인 양면성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처럼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엉뚱하게도 뒷조사의 대상으로 재회한 연부 덕분에

진구는 단단히 봉인해온 과거를 스스로 해제시켜야 하는 얄궂은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은 연부라는 접점 외에는 전혀 별개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약간의 억지와 약간의 신파 코드를 동원하여 두 이야기를 연결시킵니다.

 

창투사 회장과 그 아들, 그리고 연부가 연루된 살인사건은 전형적인 미스터리인데 반해,

진구와 연부를 비극에 빠뜨린 아버지들의 죽음의 비밀은 일종의 고해성사처럼 전개됩니다.

현재 사건의 미스터리는 그리 새롭거나 충격적이지 않지만,

과거에 대한 고해성사는 첫 맛은 담담하지만 곱씹을수록 씁쓸해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팩트 자체도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한 사람의 삶이 찰나의 순간에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작가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해소될 수 없는 악연의 안타까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비극적인 프리퀄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이전의 진구 시리즈와 달리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착잡한 기분이 더 강하게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페이지에서 묘사된 진구와 연부의 만남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두 사람의 서글픈 악연을 예고하는 것 같아

한편으론 기대감을, 또 한편으론 안쓰러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다음의 진구 시리즈에 또다시 연부가 등장한다면 꽤나 센 비극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진구에게 있어 연부는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봉인돼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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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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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백하자면, 제 책장에는 존 버든의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2권인

‘658 우연히악녀를 위한 밤이 몇 년째 대기상태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손이 갔다가도 늘 다음을 기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단은 분량이었습니다.

물론 해리 홀레 시리즈를 탐독했던 걸 생각해보면, 저의 변명이 좀 구차해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앞선 시리즈를 읽지 못한 상태에서

시리즈 3권인 기꺼이 죽이다가 출간됐다는 소식에, 저도 모르게 손이 가고 말았습니다.

책장에서 자기 순서만 기다리고 있던 1, 2권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 ● ●

 

2000년 봄. 자칭 착한 양치기라는 자에 의한 희대의 연쇄살인극이 벌어집니다.

그는 벤츠의 플래그쉽 모델을 소유한 부자들을 죽인 뒤 세상을 향해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돈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부자를 죽이는 것으로 정의를 이룩할 수 있다.”

10명의 희생자가 나왔지만, 경찰과 FBI는 단서조차 잡지 못한 채 무력하게 물러서고 맙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착한 양치기 사건의 유족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가 기획됩니다.

한 야심찬 여대생의 기획에서 출발한 이 다큐멘터리의 자문을 맡은 퇴직형사 데이브 거니는

유족들을 만나고, 당시 사건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의문을 갖게 됩니다.

FBI의 반박과 은근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데이브 거니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자마자 유족들이 차례로 살해당하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동시에 데이브 거니와 그의 가족에게도 명백한 위협이 가해지기 시작합니다.

 

● ● ●

 

- 내성적이고 사색적이지만, 동시에, 섬세하고 끈질기게 분석하는 퇴직 형사

- 부당한 권위와 권력에 저항하는 합리적인 반골

- 가족들의 소소한 위로에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하고 소심한 남자

 

출판사의 소개글과 제가 받은 인상을 편집해서 정리해본 데이브 거니의 캐릭터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적이면서도 제대로 일할 줄 아는 형사랄까요?

많은 영웅적 캐릭터들이 그렇듯 그에게도 아버지와 가족으로 인한 상처가 있지만,

그것이 스스로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하거나 작위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영웅적 캐릭터들과 달리 그는 마초 같은 기질도 없고, 자학적인 고뇌도 없습니다.

냉소적이지도 않고, 비관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영웅 대접이 불편한 겸손한 인물입니다.

어쩌면 주인공 캐릭터로서는 좀 심심해 보이는, 심지어 건전해보이기까지 한 데이브 거니지만

그가 가진 또 다른 일면, 즉 끈질긴 분석과 과감한 결정, 그리고 합리적인 반골 기질 덕분에

그가 이끄는 이야기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차분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전개됩니다.

 

본의 아니게 착한 양치기 사건의 유족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 자문을 맡게 됐지만,

거니는 그 과정에서 그동안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착한 양치기 사건의 이면을 발견합니다.

그 당시 수사 관련자 대부분이 FBI와 범죄심리학자가 가리킨 한쪽 방향만 쳐다보느라

정작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는 점을 간파합니다.

 

왜 벤츠를 소유한 부자들만, 그것도 어마어마한 총으로 얼굴을 날려버렸을까?

왜 희생자들 근처에 동물 인형을 놓아뒀을까?

6건의 사건으로 10명의 사상자를 내곤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착한 양치기는 정말 돈과 부자를 혐오한 로빈 후드였을까?

 

거니는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조심히 움직입니다.

퇴직형사라는 신분상의 제약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FBI의 결론을 뒤집거나 심지어 정면대결을 할 수도 있다는 부담 때문입니다.

이런 핸디캡 때문에 독자에 따라 거니의 조사가 무척 답답하고 느려 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범인과 FBI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퇴직형사설정은 무척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그는 현직에 있는 동료로부터 정보를 얻어내고, 유족들의 인터뷰에서 단서를 구합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발견되지 않은 퍼즐들을 찾기 위해 느리지만 집요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끈질긴 분석을 통해 확신을 얻은 거니는 이제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범인과 FBI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것입니다.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에 어울리게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포진돼있습니다.

전작의 사건에서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로 인해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는 중년의 거니가

아내와 아들과 겪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도 크진 않지만 묵직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살인사건마저 시청률의 제물로 바치려는 쓰레기 같은 미디어의 횡포라든가,

연쇄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트라우마 등

작가는 메인스토리와 연결된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굳이 아쉬움을 꼽자면, 우선, 데이브 거니가 외부의 도움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동료였던 잭 하드윅이 정보원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거니의 수사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퇴직형사라는 핸디캡 때문이긴 하지만, 때론 과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더불어, 착한 양치기가 거니의 수사를 돕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위적인 설정이나 장치들이 간간이 등장하는데,

크게 거슬리진 않지만 왠지 거니의 수사가 편의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작품 내용과는 무관한 것인데, 번역 제목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원제가 ‘Let the Devil Sleep’인데, ‘기꺼이 죽이다라는 번역 제목이

과연 원제의 의미를 잘 담아냈는지, 작품 내용과 매끄럽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꺼이 죽이다덕분에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시리즈 1, 2권을 곧 꺼내 읽게 될 것 같습니다.

기꺼이 죽이다속에 데이브 거니가 겪은 예전 사건들이 종종 언급되곤 하는데,

그 짧은 언급만으로도 호기심과 기대감이 불쑥불쑥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죽이다가 작가 나이 70에 집필됐다고 하니, 후속작을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데이브 거니의 활약을 좀더 맛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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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본다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클레어 맥킨토시의 전작인 너를 놓아줄게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스포일러 때문에) 줄거리 소개하기가 참 어려운 작품입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자체 스포라도 있으면 마음 편하게 인용하려고 했지만,

출판사 역시 애매한 오프닝까지만 소개하고 말아서

일단 그 대목까지만 일부 인용하고 제 나름대로 몇 줄 덧붙인 줄거리를 정리해봤습니다.

 

● ● ●

 

런던에 사는 40세 여성 조 워커는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보다가

소위 조건만남을 암시하는 듯한 광고란에서 자신과 닮은 얼굴을 발견한다.

광고에는 어떤 설명도 없이 여성의 얼굴 사진과 전화번호, 웹사이트 주소만 적혀 있다.

조는 광고에 실린 여성이 연이어 범죄의 희생자가 된 사실을 알게 되곤 나날이 불안해한다.

한편, 용의자 폭행으로 일선에서 배제됐던 여순경 켈리 스위프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살인사건전담 팀에 합류한 뒤 혼신을 다해 수사에 임한다.

하지만 살인과 성폭행, 성추행 등 광고에 실린 여성들의 피해는 런던 곳곳에서 속출한다.

그러던 중 켈리는 광고 속 웹사이트의 정체와 함께 운영자의 끔찍한 의도까지 알아내게 된다.

 

● ● ●

 

제목인 나는 너를 본다에서 얼핏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일상을 의도적으로, 또 은밀하게 지켜보던 누군가의 시선이

단순한 관음증을 넘어 무자비한 폭력의 기폭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합니다.

미행과 CCTV와 스마트폰의 결합을 통해 거의 전지적인 힘을 갖게 된 그 시선

대부분이 여성인 목표물의 일상과 습관은 물론 특별한 비주얼까지 데이터로 축적함으로써

그녀들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연약한 먹잇감으로 전락시킵니다.

 

먹잇감들은 광고를 통해 사냥꾼들에게 공개되고,

사냥꾼들은 적잖은 대가를 지불하고 먹잇감들의 데이터를 손안에 넣습니다.

먹잇감들은 어느 날인가부터 기분 나쁜 시선과 악취 나는 콧김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언제라도 뒤를 돌아보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누군가를 발견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물론 사냥꾼들은 선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위장(?)하고 있기에,

그녀들은 실제 피해를 입기 전까지는 그 모든 것을 망상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얼굴 사진이 음란한 조건만남 광고에 도용된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조 워커는 우연히 광고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발견했고,

또 우연히 광고에 실렸던 다른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스스로 망상이라 여기면서도 조는 출퇴근 때마다 불안과 공포를 지울 수 없습니다.

경찰은 물론 가족들조차 조의 불안과 공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켈리 스위프트라는 여순경만은 그녀의 진술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녀는 교통경찰 성범죄과와 지하철 소매치기 검거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다,

여동생이 성범죄에 희생됐던 탓에 조의 이야기에 이끌렸던 것입니다.

 

이야기의 발단부는 독자의 호기심을 잡아당깁니다.

설정도 제법 신선하고, 주인공 조의 공포심도 충분히 공감되며,

여순경 켈리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라 어떤 활약을 보일지 기대감을 갖게 만듭니다.

조의 가족에 관한 장황한 설명이 좀 지루하게 읽히긴 하지만,

그 역시 이후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 중요한 토대처럼 보여서 그저 후루룩 넘기지 못합니다.

메인 스토리도 나름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만드는 힘을 발휘합니다.

희생자는 계속 발생하지만, 경찰의 탐문과 각종 조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눈에 용의자가 한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절정부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작가는 결정적 증거를 대놓고 공개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부터 작가는 독자의 추리를 수차례 무너뜨리며 연이은 반전을 내놓습니다.

 

일단, 전작인 너를 놓아줄게와 비교하면

나는 너를 본다는 속도감이나 재미 면에서 앞선 작품이 분명합니다.

사건의 성격이 달라서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페이지도 빨리 넘어갔고,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미스터리에 대한 몰입도도 훨씬 강합니다.

하지만, ‘너를 놓아줄게와 마찬가지의 약점을 지닌 것도 사실입니다.

, 반전은 납득하기 어렵고, 드러난 진실은 작가의 변명이나 핑계처럼 읽힌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추리가 허술했다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억지스럽게 비틀어가면서까지 만들어낸 반전과 엔딩은

다분히 억지스럽다는 느낌과 함께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또한, ‘누구든 지켜볼 수 있는 범인의 능력자체가

무한하고 전지적으로 설정된 점도 절정부 이후의 책읽기를 방해한 요소였는데,

작가가 범인의 능력을 무리하게 부풀리기 위해 리얼리티를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줄거리를 제대로 소개할 수 없다 보니 읽지 않은 분은 잘 이해할 수 없는 서평이 됐습니다.

경찰 출신 작가로 나름 독특한 서사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한번쯤 클레어 맥킨토시의 작품을 읽는 것은 스릴러 마니아에겐 괜찮은 경험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 모두 치명적인 아쉬움을 느낀 탓에

그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혹 출간되더라도 독자들의 평을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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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지 마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아랍인이며 장애인이란 이유로 편견 속에 살아온 서른 살 청년 자말.

어느 겨울, 노르망디 작은 해안마을의 절벽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투신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말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빨간 스카프를 건넸지만 그녀는 스카프를 쥔 채 추락하고 만다.

문제는 추락사 한 그녀의 목에 자말이 건넨 스카프가 단단히 묶여있었다는 점,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스카프에서 자말의 DNA가 무수하게 발견됐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본인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자말은 당황하지만, 그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10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두 건의 미제사건까지 뒤집어쓰게 될 운명에 처한다.

똑같은 수법, 똑같은 흉기, 똑같은 범행대상.. 모든 게 동일범의 소행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 그에게 과거 사건의 정보가 담긴 이상한 편지를 연이어 보내온다.

마치 그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듯, 또는, 그에게 진실을 밝혀내라고 요구하듯 말이다.

 

● ● ●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독자는 ?’, ‘어떻게?’, ‘말도 안 돼!’라는

의아함을 가지고 질주하는 수밖에 없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작가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까지 주인공 자말은 물론

독자까지 현실과 망상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세워놓고 마음껏 뒤흔들기 때문입니다.

 

추락하던 여자가 불과 몇 초 사이에 자기 목에 스카프를 묶은 것인가?

왜 이 끔찍한 사고는 작은 지역마을의 언론에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는 것인가?

자말에게 10년 전에 발생한 미제사건의 정보를 익명 우편으로 보내는 자는 누구인가?

왜 하필 평생 이곳에 와본 적도 없는 자말이 이런 황당한 상황을 겪어야 하는가?

 

분명 미셸 뷔시가 판타지 스릴러를 집필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현실세계로의 틈새를 발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자말에게 쳐놓은 망상의 그물은 너무나 촘촘하고,

경찰과 검시관과 목격자들의 증언은 자말이 전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갈래로 전개됩니다.

누구도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자말이

경찰서를 빠져나와 직접 수사에 나서는 이야기가 하나이고,

10년 전 살해당한 두 여인의 이야기와 수사기록이 나머지입니다.

하지만 자말의 직접 수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꼬여만 갑니다.

사람을 만나고, 기록을 접할수록 진실은 점점 현실세계에서 멀어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절벽에서 투신한 여자의 정체도, 10년 전 희생자들의 정체도,

그리고 그녀들의 유가족은 물론 자말과 함께 해안가에서 시신을 지켜본 목격자들조차

자말에게서 현실감을 잃은 채 신기루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자말은 정말 내가 그녀들을 죽인 건 아닐까?’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독자 역시 진짜 자말이 범인인 건가?’라는 의문을 수차례 반복하게 됩니다.

그나마 누군가자말에게 계속 보내오는 이상한 편지들만이

이 이야기가 판타지나 망상이 아님을 독자와 자말에게 환기시켜줄 뿐입니다.

 

자말의 직접수사는 결국 장벽에 부딪히고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기 속에서 자말은 드디어 끔찍한 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과연 자말은 혐의를 벗고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될까요?

10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두 여인의 죽음은 진상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세 여인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똑같은 수법으로 참혹하게 살해당해야 했을까요?

미셸 뷔시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 절대 쉽게 답을 내주지 않습니다.

사소한 장치들까지 철저히 계산에 넣어둔 그의 정교한 설계 덕분에

독자는 함부로 예단하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막판의 짜릿함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자말을 현실과 망상의 경계선 위에 올려놓았던 덫의 실체는

어쩔 수 없는 작위감과 함께 결과에 대한 변명처럼 느껴져 무척 아쉽게 읽혔습니다.

그 덫은 진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기 위해선 과거를 뒤흔들어야 했어.”라는,

나름의 대의명분을 갖고 있지만, 100% 공감하기 어려운 억지스러움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 부분만 매끄럽게 전개됐다면 절대 잊지 마

5개와 함께 제 독서목록에서 2017년 상반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까지 국내 출간된 미셸 뷔시의 네 작품을 모두 읽었는데,

개인적인 호감은 그림자소녀’ - ‘절대 잊지 마’ - ‘검은 수련’ - ‘내 손 놓지 마순입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림자소녀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수작이라면,

절대 잊지 마는 대중성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고,

검은 수련은 예술을 소재 삼아 무게감과 작품성을 중시한 작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내 손 놓지 마는 별 3.5개에 그칠 정도로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노르망디를 배경으로 매번 색다른 분위기의 스릴러를 내놓는 미셸 뷔시가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고 찾아올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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