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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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의 투톱 주인공 중 한 명인 진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 어둠의 변호사고진도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지만,

진구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법과 무법을 오가는 자유로운 영혼(?)이란 점에서

어느 장르물의 주인공과도 차별화되는 특이한 인물입니다.

진구 시리즈의 첫 작품인 순서의 문제를 읽은 뒤에 쓴 서평을 일부 인용하면,

 

정의감으로 뭉친 명탐정인가 하면, 법을 우습게 여기는 불량시민의 면모도 있고,

세상을 달관한 백수인가 하면, 돈에 관한 한 절대 뒤지지 않는 욕심도 지니고 있다.

 

심지어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서는 진구를

법망의 허점을 이용하는 데 일말의 주저도 없는 소시오패스라고까지 설명합니다.

말 그대로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모래바람은 진구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작품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수학 천재 중학생이던 진구를

명탐정이자 소시오패스라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닌 인물로 변질시킨 과거의 사건과

그 사건이 우연과 필연을 거쳐 10여 년 후인 현재 시점에 일으킨 또 하나의 사건을 다룹니다.

앞의 이야기가 진구의 비극적인 프리퀄이라면,

뒤의 이야기는 그 프리퀄로부터 파생된 안타까운 현재진행형 비극입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에는 과거 진구의 중학교 친구이자 선의의 라이벌이며

로맨스의 분위기까지 풍겼던 유연부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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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조사단인 아버지들을 따라 험한 사막 원정에 참여했던 중학생 진구와 연부.

하지만 살인적인 모래바람 속에 진구와 연부의 아버지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현재.

진구는 창투사 회장으로부터 망나니 아들의 연인을 뒷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그 연인은 다름 아닌 연부였고, 진구는 고민에 빠집니다.

진구에게 있어 연부는 철저하게 봉인했던, 그래서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은 과거이며,

모래바람 속에서 죽어간 아버지들의 죽음의 비밀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부가 연루된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진구는 운명처럼 연부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구는 곧 그 살인사건이 모래바람 속 비극의 연장임을 깨닫게 됩니다.

 

● ● ●

 

진구와 연부가 흑풍이라 불리는 끔찍한 모래바람을 마주했던 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입니다.

진구가 아버지는 물론 연부와 수학을, 그리고 예정돼있던 안온한 삶을 잃어버린 곳이

하필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뜻의 타클라마칸이란 점은 비극적인 아이러니입니다.

 

모래바람은 진구로 하여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만들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게 만듦으로써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악몽에 가뒀습니다.

상실과 악몽 속에서 성장한 진구가 극단적인 양면성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처럼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엉뚱하게도 뒷조사의 대상으로 재회한 연부 덕분에

진구는 단단히 봉인해온 과거를 스스로 해제시켜야 하는 얄궂은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은 연부라는 접점 외에는 전혀 별개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약간의 억지와 약간의 신파 코드를 동원하여 두 이야기를 연결시킵니다.

 

창투사 회장과 그 아들, 그리고 연부가 연루된 살인사건은 전형적인 미스터리인데 반해,

진구와 연부를 비극에 빠뜨린 아버지들의 죽음의 비밀은 일종의 고해성사처럼 전개됩니다.

현재 사건의 미스터리는 그리 새롭거나 충격적이지 않지만,

과거에 대한 고해성사는 첫 맛은 담담하지만 곱씹을수록 씁쓸해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팩트 자체도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한 사람의 삶이 찰나의 순간에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작가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해소될 수 없는 악연의 안타까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비극적인 프리퀄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이전의 진구 시리즈와 달리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착잡한 기분이 더 강하게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페이지에서 묘사된 진구와 연부의 만남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두 사람의 서글픈 악연을 예고하는 것 같아

한편으론 기대감을, 또 한편으론 안쓰러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다음의 진구 시리즈에 또다시 연부가 등장한다면 꽤나 센 비극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진구에게 있어 연부는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봉인돼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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