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줄거리 정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방대한 탓도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행방을 감춘 동생 찾기를 중심으로

쇠락한 명문가의 지저분한 유산상속전, 윤리적 문제를 내포한 위험한 뇌 연구,

오래 전 의문사한 어머니의 비밀 등 다양한 서사가 한데 엮여 있어서

어디서부터 줄거리를 정리해야할지 곤란한 지경이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비너스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심지어 띠지나 뒷표지조차 읽지 않고 바로 본 내용부터 시작했는데,

고백하자면, 이 작품이 과학의 영역을 다룬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 라플라스의 마녀처럼 애초에 목록에서 제외시켰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작품마다 편차가 큰 편이라

신작이 나올 때마다 주위의 평을 참고한 뒤에야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곤 했지만,

특히 과학이나 SF를 소재로 삼은 경우에는 워낙 저와 코드가 맞지 않아서

어지간히 재미있다는 소문이 돌기 전에는 다시는 읽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전 정보가 없었다고 해도 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된 이유는,

거의 절반 이상의 분량이 지나도록 이 작품의 핵심 미스터리가 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간혹 프랙털 도형이나 서번트 증후군 등 수상한(?) 개념들이 언급되긴 했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중심은 사라진 동생의 미스터리와 지저분한 유산상속전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또 다른 목표,

, 어머니의 죽음의 비밀이라든가 유상상속전을 벌이는 쇠락한 명문가와의 갈등,

그리고 동생의 아내라 자처한 여인에 대한 부도덕한 호기심에 쏠려 있어서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탓에 어느 새 절반 넘게 페이지가 넘어가버렸고,

드디어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려던 과학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에는

이대로 덮기엔 읽어온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역시 히가시노의 이과적 상상력은 저와는 절대 맞지 않는다, 였습니다.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 프랙털 도형, 울람 나선, 리만 가설, 뇌 과학 등 난해한 소재들이

막판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꽤 심오한 주제를 피력하고 있는데,

동생 찾기, 유산상속전, 어머니의 비밀 등 다양한 서사들의 조합이

어떻게 이런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밝혀진 모든 사건의 진상은 왠지 억지로 끼워 맞춘느낌이 강했고,

범인의 수법이나 목표 모두 허술하거나 공허하게 읽혔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왜 이런 제목이 붙었나, 궁금했는데,

번역하신 양윤옥 님의 친절한 설명을 읽고도 저의 몰이해는 여전했습니다.

 

인위적으로 천재를 만들어내려는 인류의 꿈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미의 여신 비너스를 동경하는 것처럼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일이다.

 

뭐랄까, ‘꿈보다 해몽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히가시노가 정말 이런 취지에서 위험한 비너스라는 제목을 붙였다면

그건 과욕이거나 오버센스거나 자만심(?)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최근에 읽은 히가시노의 작품이 기린의 날개였는데,

아무래도 제겐 미스터리와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가 잘 배합된 가가 형사 시리즈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백야행’, ‘방황하는 칼날처럼

눈물을 쏙 빼놓거나 마음을 후벼파는 이야기가 제격이란 생각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라플라스의 마녀를 볼 때마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곤 했는데,

역시 히가시노의 과학책은 제겐 무리한 도전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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