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게임 2.0 밀실살인게임 2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시리즈의 1편인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의 엔딩은

한참 재미있는 드라마가 다음 이 시간에라는 자막과 함께 끝날 때처럼

독자들의 분노(?)를 사기에 딱 좋은 엔딩이었습니다.

오로지 트릭 게임을 위해 태연히 살인을 저지르는 5명의 살인마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에 잔뜩 촉각이 곤두서있는데,

허망하게 ‘To be continued’라며 이야기가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엔 꽤나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얼른 후속편을 읽으려 했지만,

버전 2.0으로 업그레이드 된 밀실살인게임과 재회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교수라는 표면적 직업과 어수룩한 태도로 늘 공격만 받는 반도젠,

가장 예리한 캐릭터로 보이지만 늘 허방만 짚는 aXe,

다혈질에 험악한 말투로 우격다짐 식 추리만 거듭하는 잔갸,

차분하고 이성적이지만 늘 마지막 결정타 한 방을 놓치고 마는 주인공 격인 두광인,

그리고, 말없이 남들의 추리를 듣다가 항상 마지막 정답을 내놓는 천재 044APD

다섯 명의 게이머들은 1편과 마찬가지로 각자 고난이도의 문제를 준비합니다.

문제는 머릿속에서 자아낸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서 자신이 직접 저지른 살인입니다.

, 평소 자신이 연구하고 설계해온 트릭을 이용하여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뒤

그것을 다른 멤버들이 풀도록 하는 것이 이 모임의 실체인 것입니다.

 

세상에 없을 살인마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그들을 보니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들 사이엔 예전과 다름없이 노골적인 적대감과 경쟁심이 만연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과거의 이야기, 1편의 엔딩에 관해서는 전혀 입에 담지 않습니다.

파국을 목전에 뒀던 그 긴박한 순간에 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태연히 새 게임에만 몰두하며 예의 비난과 욕설, 냉소와 무시만 주고받을 뿐입니다.

그리고 ? 이거 확실히 이상한데?’라는 의문이 구체화될 때쯤

우타노 쇼고는 아주 조금씩, 그다운 서술과 구성을 통해 정보를 흘려주면서

살인마들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의 위화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줍니다.

 

1편에 이어 이번에도 눈의 밀실, 이중밀실, 알리바이 트릭 등이 등장하는데,

현실에서는 좀처럼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번거롭고 복잡한 설정들이지만,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완벽해 보이는 밀실트릭은

미스터리 독자들에겐 매력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묘한 중독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타노 쇼고에게 두 번째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안겨줬지만

개인적으로는 1편인 왕수비차잡기가 좀더 매력적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물론 좀 이야기가 거칠기도 하고, 트릭의 수준도 돌직구 스타일이긴 했지만,

재미나 긴장감, 캐릭터 간의 케미 등 여러 면에서 좀더 쫀쫀함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2편에서 다뤄진 사건과 트릭들은 상대적으로 사이즈도 커지고 잔혹함도 배가됐지만

그만큼 빈틈도 많아 보이고, 어딘가 작위적인 느낌도 커진 게 사실입니다.

 

충격적이긴 해도 2편의 엔딩은 1편에 비해 후속작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내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우타노 쇼고가 시리즈 3편인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에서

이 희대의 살인마들을 어떻게 그려낼지, 어떤 밀실트릭을 들고 나올지,

또 그들에게 어떤 엔딩을 부여할지 사뭇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잠시 잊고 있다가 맛깔난 간식이 생각나면 다시 한 번 이들의 살인게임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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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국내 출간된 누쿠이 도쿠로의 12작품 중 이 작품까지 7편을 읽었으니

나름 팬이라고 자부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의 작품을 꽤 읽은 셈입니다.

물론 작품마다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리곤 했지만,

일단 신간 소식이 들리면 반드시 관심 목록에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작가인 건 분명합니다.

그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라는 낙인(?)이 확실히 찍힌 작가 중 한 사람인데,

나를 닮은 사람은 그런 그의 정체성을 가장 돌직구처럼 드러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 ● ●

 

언젠가부터 불특정 대상을 목표로 한 작은 테러가 일본 각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범인들은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안면은커녕 접점이 전혀 없고 조직화되어 있지도 않다.

자신들의 행동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없다.

다만 목숨을 던져 사회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자칭할 뿐이다.

사람들은 어느덧 그런 신종 테러를 소규모 테러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를 닮은 사람은 소규모 테러와 직간접적으로 얽힌 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소규모 테러는 이렇게 작동됩니다.

빈곤과 소외로 인해 사회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부당한 현실을 비난하고, 증오하고, 원망합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 비난과 증오와 원망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권유합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진 자들에게 그 누군가의 권유는

부당한 사회에 대한 유일하고 최종적인 복수를 약속하는 달콤한 계시로 들립니다.

그리고 그는 실천에 옮깁니다.

트럭을 몰고 인도로 돌진하거나, 시내 한복판에서 칼을 휘두르거나...

 

나를 닮은 사람10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10편의 연작집입니다.

각각 상이한 입장에서 테러와 연관된 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만,

크게 보면 테러에 동조(지휘/행동)하는 자, 반대하는 자, 방관하는 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막판에 소규모 테러의 최초 기획자가 밝혀지긴 하지만,

누쿠이 도쿠로는 누가 범인?’이란 미스터리 자체보다 독자로 하여금 10명의 이야기를 통해

동조-반대-방관이라는 상이한 경험을 겪어보게 하기 위해 이런 구성을 취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권유로 테러에 나선 자들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흙수저로 태어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자들,

거품경제의 후유증과 기업의 탐욕으로 인해 취업은커녕 연애나 결혼마저 뒷전으로 밀린 자들,

전업주부 아니면 윤락녀만이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한 여자들...

 

이들은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소규모 테러를 저지른다.”,

또는 우리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됐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테러를 저지릅니다.

작은 규모지만 지속적인 희생자를 낸다면 언젠가는 사회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따뜻한 사회’, ‘누구나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사회

화자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현실의 불평등이나 부당함이 제거된 평등한 사회입니다.

 

사실, 이쯤 되면 비현실적이고 허황되고 이상적인 꿈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작품 안에서 사회적 부당함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인물 중에도

소규모 테러의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든 일본이든 풍요와 빈곤, 금수저와 흙수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계층과 계급을 양극단으로 구분 짓는 사회적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라고 확신하고 분노하는 사람들 역시

과거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누군가의 권유를 기폭제로 삼아 분노를 폭발시키고자 하는 테러리스트는

그들의 이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것인지와는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맞닥뜨릴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평화와 안정과 신뢰와 행복이라는 설득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요?

그들에겐 비록 미미하더라도 단 한 번의 의미 있는 테러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까요?

 

추석 연휴를 전후로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우울한 소식이 더 많이 실렸습니다.

추석 보너스의 많고 적음, 쉴 수 있는 날의 많고 적음, 폭증하는 고독사 또는 자살,

연일 신기록을 세우는 해외여행자 수, 연휴지만 어디도 갈 곳 없는 빈곤층의 참담함 등

소규모 테러를 위한 토대들이 견고하게 쌓여가는 뉴스들이 널려 있습니다.

나를 닮은 사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무렵, 새삼 이 뉴스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그리고 당장 한국에서 소규모 테러가 벌어져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미스터리 자체로는 아쉬운 점들이 적지 않지만,

나를 닮은 사람은 머지않은 미래에 벌어질 참극에 대한 조용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좀더 강하게 어필하는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여느 작품보다 돌직구의 느낌이 강했던 건 바로 이 점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마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누쿠이 도쿠로지만,

나를 닮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평범한 소설이 아니라서

그 불편함의 무게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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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전건우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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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는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 5’(황금가지)의 수록작 해무를 통해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소용돌이해무모두 25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그 시절 특별했던 연인 혹은 친구의 부고를 들은 주인공이

불편한 심정으로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큰 위기를 겪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해무가 제목 그대로 바다가 뿜어낸 안개의 공포를 배경으로 삼았다면,

소용돌이는 저수지, 태풍, 익사 등 물의 공포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의 힘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극단적인 공포와 죽음을 야기한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닮은꼴로 읽히는 작품들입니다.

 

줄거리를 정리하기 전에 혹시나 하고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연쇄살인범(?)의 정체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아서

서평을 쓰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급하자니 스포일러 같고, 안 하자니 두루뭉술한 이야기 외엔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론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에둘러 요약하자면,

이 작품은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미쓰다 신조의 노조키메를 연상시키는 호러물입니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25년의 간격을 두고 현실로 소환되는가 하면,

어떤 과학적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연쇄살인을 일으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광기에 휩싸인 연쇄살인을 초래했던 광선리의 다섯 소년소녀는

25년이 지나 불혹을 눈앞에 둔 시점에 또다시 비현실적인 연쇄살인사건과 마주합니다.

일명 독수리 오형제라 자칭하던 그들 가운데 한 명의 부고로 인해 광선리에 모인 나머지 넷은

마을 노인들마저 접근하기를 꺼려하는 귀기 어린 산속 저수지 솥뚜껑에서 시작됐던 악몽이

25년 만에 또다시 부활했음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헛소리라 치부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할 길 없기 때문에,

, 애초 이 참극을 초래한 것이 치기어린 13살 시절의 자신들이란 죄책감 때문에

그들은 무력감만 남은 상태에서도 오로지 자신들의 힘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합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 희생자는 쉴 새 없이 발견되고,

역대급 태풍 예보 속에 인력으론 어쩔 수 없는 대규모 참극이 광선리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크게 보면 이야기 구조는 심플합니다.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하겠다는 다섯 소년소녀의 순수한 염원이 야기한 통제불능의 참극,

봉인됐던 참극의 25년만의 부활과 그것을 재봉인하려는 네 명의 중년남녀의 목숨을 건 도전,

그리고 막판에 밝혀지는 참극의 정체와 연쇄살인의 진실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호러와 미스터리, 성장 스토리, 도로건설을 둘러싼 마을의 분란 등이 믹스된 서사는

심플한 구조를 무색하게 할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이런 작품일수록 비현실과 현실, 즉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이 얼마나 매끄럽냐가 핵심인데,

그 점에 관해서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호러를 현실적으로 설명하고 해결하려 한 작가의 의도 때문에

오히려 막판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샤이닝이나 미쓰다 신조의 노조키메는 두 장르가 잘 결합된 작품이면서도

아무리 논리적인 결론이 도출되더라도 결국 호러는 호러라는 점을 견지한데 반해,

소용돌이는 약간은 무리한 방식으로 현실적인 미스터리 해법을 제시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시작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호러인데,

엔딩은 영문을 알 수 없던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미스터리라고 할까요?

 

클라이맥스에서 엔딩에 이르는 대목은 독자에 따라 평이 극단적일 수 있겠지만,

한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캐릭터의 매력이라든가 속도와 강약이 매끄럽게 조절된 문장들은

대부분의 독자에게 호평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적잖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공포와 참혹함 사이로 군데군데 쉬어갈 수 있는 대목도 적절히 배치돼있어서

이쪽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불편하지 않은 책읽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편과 장편에 걸쳐 그만의 매력을 확인한데다,

앞으로도 계속 어두운 이야기에 매진하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후기까지 보고나니

전건우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 벌써부터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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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트릭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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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치하라 교도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범인은 사라졌다.

시체의 얼굴은 강산성 용액으로 다 녹아내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으며

팔을 위로 뻗은 이상한 형체를 하고 있었다.

수사본부장 다케다 경시는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 있는 것도 그렇고

곧 출소할 거면서 굳이 교도소 안에서 살인을 저지른 동기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보도로 뜻밖의 비극이 벌어진 뒤 기자를 그만두고 보험회사에서 일해 온 시게노는

이치하라 교도소 살인사건이 과거 자신의 보도와 관련 있음을 깨닫곤 진실 찾기에 나선다.

 

● ● ●

 

2009년 제55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꽤 많은 기성 작가들로부터 격찬을 들은 것으로 소개됐는데,

아무래도 교도소 내 밀실트릭이라는 설정 자체가 올드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매력적으로 그려진 덕분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초반의 지루한 교도소 생활에 대한 묘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꽤 빠른 속도로 전개됩니다.

밀실 미스터리에 의문을 갖는 교도관 노다,

성과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다케다 경시 및 지바 현경의 전방위적 수사,

과거 자신의 보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에 깊이 개입하는 시게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이 비춰지면서 단순해보였던 초반 설정이 점점 복잡하게 꼬여갑니다.

단순한 원한 살인으로 추정되던 교도소 내 밀실살인은

동일범에 의한 소행으로 보이는 연이은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고,

결국 수사의 폭 역시 다른 현으로까지 확대됩니다.

 

4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이라 빨리 읽히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상황들이 바뀌기 때문에 지루해질 틈 없이 읽히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아쉬운 점은 너무 산만하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분량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등장인물들입니다.

피의자와 피살자, 그의 가족들, 그들이 수감되기 전 저지른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

, 적잖은 경찰들과 언론까지 등장하면서 인물간의 관계나 연결고리가 너무 방대해졌고,

그로 인해 사건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작품에 담으려 했던 작가의 과욕 때문이었을까요?

교도소 내 밀실살인에서 출발한 미스터리지만,

그 안에는, 가해자와 그의 가족, 피해자와 그의 유족 간의 구원(舊怨)과 용서에 관한 문제,

사법제도가 외면한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적 복수, 한 개인의 삶을 파탄 낸 언론보도의 문제,

, 미시적이긴 하지만, 성과와 보신에 집착하는 경찰 시스템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제일 의외였던 것은 이 작품의 원제가 ‘39조의 과실이었다는 점인데,

일본 헌법 39조는 동일 범죄에 대해 거듭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담고 있는 조항입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원래 취지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의 과실이었다는 뜻인데,

물론 그런 내용이 담겨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라고 할 만한 비중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작가의 원래 의도는 제대로 안 보인 반면,

밀실 미스터리, 화해와 용서, 매스컴의 문제, 경찰 시스템의 문제 등

부차적인 주제와 소재들이 복잡하게 뒤엉켰고,

그런 점 때문에 몰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한 내용이 됐다는 생각입니다.

 

대형 기성작가들의 호평 속에 에도가와 란포상까지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이후 8년이 되도록 국내에 더는 소개된 작품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매력적인 후속작이 없었다는 뜻 같기도 하지만,

한 권쯤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반가운 출간 소식이 들리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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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홀로 아이를 키우며 병원에서 파트타임 비서 일을 하는 루이즈는

어느 날 바에서 데이비드라는 남자를 만나 잠깐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 상사로 재회한 그는 유부남이었고 꿈꾸던 사랑은 시작되지 못했다.

씁쓸한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우연히 조각처럼 아름다운 데이비드의 아내 아델을 만난다.

루이즈는 데이비드와 아델 모두와 점차 가까워지면서

이 멋진 부부 사이에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왜 데이비드는 그렇게 고압적일까? 그리고 아델은 무슨 비밀을 갖고 있는 걸까?

두 사람의 과거에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비밀은 셋 중 둘이 죽었을 때에만 지킬 수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

 

본편이 시작되기 직전 책머리에 인용된 의미심장한문장입니다.

본편을 다 읽고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느 작품들의 머리글과 달리

곧바로 독자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명료한 한 줄 카피입니다.

 

독자는 당연히 죽게 되는 둘이 누굴까?’라는 의문을 품고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면서 동시에 그 아내의 절친이 되는 싱글맘 루이즈,

싱글맘 루이즈와 불륜을 저지르지만, 자신의 아내와 그녀가 절친인지 모르는 데이비드,

싱글맘 루이즈와 절친이 되지만, 그녀가 남편의 불륜의 상대인지 모르는 아델 등

셋 가운데 죽는 둘은 누구이며, 죽이는 한 명은 누구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작가는 간혹 아델의 과거를 다룬 짧은 챕터들을 삽입합니다.

과거 10대 시절의 아델은 정신적 문제로 인해 시설에 수용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의지처이자 절친인 롭과의 특별한 인연이 꽤 비중 있게 그려집니다.

특히 과거 속 아델과 롭은 물론 현실의 루이즈까지 모두 야경증이라는 독특한 병을 앓는데

이쯤 되면 왠지 이 야경증이 평범한 설정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 작가가 아델의 과거야경증에 꽤 공을 들이는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이 단순히 불륜을 매개로 벌어지는 셋 중 둘이 죽어야 하는복수극만은 아니며,

뭔가 큰 비밀과 거짓말이 행간에 숨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막장 복수극심리스릴러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독자를 계속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절친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루이즈는 독자의 혼란을 대변하는 인물인데,

한편으론 아내를 속박하고 억지로 독한 약을 먹이는 데이비드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남편과의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는 아델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둘 사이에 뭔가 알 수 없는 비밀과 거짓말이 있는 게 분명한데,

액면대로면 데이비드가 나쁜 놈이지만, 아델의 행동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

, 위화감을 내뿜는 아델의 현재의 행동과 과거의 행적들 때문에

루이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두 사람 모두에게 끌려다는 꼴이 되고 맙니다.

 

독자 역시 루이즈처럼 뭐지?” 하면서 혼란스러운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데,

그 행보가 너무 길어져서 인내심이 바닥 날 무렵쯤 이야기는 갑자기 급물살을 탑니다.

그리고 앞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단서들이 한곳으로 모여들면서

머리글에서 선언한대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셋 중 둘이 죽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독자들은 전혀 예상 못한 충격적인 엔딩과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그제야 작가가 왜 막장복수극심리스릴러의 경계선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했는지,

아델의 과거야경증에 적잖은 공을 들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서평 쓰기 전 출판사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뒤늦게 이 작품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우선 다수의 문학상에서 판타지 부문 수상 경력이 있는 작가의 이력이 눈에 들어왔고,

이어, 띠지에 실린 추천사가 다른 누구도 아닌 스티븐 킹의 것이란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이 정보들을 알고 읽었더라도 클라이맥스와 엔딩의 충격은 여전했겠지만,

초반만 해도 길리언 플린의 작품들을 연상시켰던 스토리가

막판에 이르러 스티븐 킹의 폭주 스타일로 변신한 대목이 뒤늦게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이 작품을 길리언 플린과 스티븐 킹의 공동집필이라 해도 전 믿었을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한 가지만 고백하자면, 실은 중도포기를 여러 번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같은 이야기가 계속 동어반복되거나, 설명 부족 또는 모호한 대목들이 너무 많아서였는데,

솔직히, 이미 읽은 부분이 아깝기도 하고, 어떤 엔딩이 기다릴지 궁금한 나머지

조금은 고역이라 느끼면서 읽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100여 페이지부터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지고 빨라지더니

버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전과 충격, 홍수 같은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앞에서 장황하게 펼쳐진 이야기들이 과잉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으론, 3(333페이지)가 시작되기 전의 분량을 슬림하게 정리했더라면

정말 알찬 작품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제가 야박하게 별 3.5개에 그친 것은 순전히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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