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동영상 스토리콜렉터 90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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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소속의 민간인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는 사상 최악의 동영상을 마주하고 있다.

땅속에 묻힌 채 비명을 지르며 관 뚜껑을 두드리는 한 여자가 등장하고,

분할된 화면에는 하반신만 드러낸 채 관 위로 흙을 퍼붓는 남자가 보인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동영상 제목이다. ‘실험 1.’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예감한 조이는 이 충격적인 동영상 뒤에 숨은 괴물을 잡기 위해

파트너이자 FBI 요원인 테이텀 그레이와 함께 수사에 나선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조금 올드해 보이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제목과 표지, 거기다 처음 듣는 작가의 이름까지,

아마도 출판사가 북로드가 아니었다면 쉽게 선택하지 않았을 작품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스릴러 독자들을 사로잡은 신진들의 첫 작품을 읽었을 때처럼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읽어야 되겠다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올해(2020) 2월에 출간된 이 작품의 전작 살인자의 사랑법을 읽고 쓴 서평의 일부입니다.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와 FBI 행동분석팀 요원 테이텀 그레이를 앞세워

일반적인 수사물과는 사뭇 결이 다른, 범죄 심리에 좀더 주안점을 둔 이야기를 펼쳤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이 상대하는 소시오패스 역시 심리적으로 심히 뒤틀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범행 자체도 엽기의 극치를 달리는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중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조이와 테이텀 콤비의 두 번째 활약을 다룬 살인자의 동영상역시 일관된 경향을 보이는데,

이번에는 텍사스 일대에서 젊은 여자를 생매장하는 소시오패스가 그들의 상대로 등장합니다.

범인은 치밀한 계획 하에 희생자의 집 앞에서 대담한 납치극을 벌인 뒤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관을 묻으며 희생자의 끔찍한 비명에 오르가슴을 느끼는 괴물입니다.

그리곤 자신의 성과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며 명성을 획득하기를 염원하기도 합니다.

 

조이와 테이텀은 메인 사건인 생매장 사건외에도 각자 끔찍한 족쇄에 발이 묶인 상태인데

조이의 경우 동생 안드레아를 위협하고 있는 연쇄 살인마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고,

테이텀은 아동 성범죄자를 사살한 일로 새삼 FBI의 내사를 받게 된 일이 그것입니다.

두 사람의 상관인 맨쿠소 팀장은 이들을 각자의 족쇄에서 좀 떨어져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멀리 떨어진 텍사스에서 벌어진 생매장 사건에 투입한 것인데,

특히 자신 때문에 연쇄 살인마의 표적이 된 동생의 안위가 걱정되는 조이는

텍사스에 온 뒤로도 수시로 버지니아에 홀로 남은 동생 걱정에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문제는,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테이텀과 크게 충돌하는 바람에

조이는 더더욱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수사에 임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생매장은 이어지고 범행 장소는 오리무중이며 범행 동기조차 파악이 안 되는 상태에서

조이는 그야말로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고 맙니다.

 

전작인 살인자의 사랑법의 범인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감금으로 인해 괴물이 됐는데,

이 작품의 소시오패스 역시 비슷한 성장과정을 겪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겪었던 감금의 공포를 희생자에게 되갚음으로써 쾌감을 얻는 그는

복수, 성욕, 탐욕 등 일반적인 연쇄살인마의 범행 동기와 달리

일그러지고 뒤틀린 심리 그 자체를 범행 동기로 갖고 있다는 얘긴데,

바로 이 대목이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가 다른 스릴러 주인공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며

동시에 증거와 단서보단 범인의 심리를 토대로 진실을 쫓는 이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파트너인 테이텀이 경찰과의 협업을 통해 증거와 단서에 좀더 주력한다면,

조이는 범인의 언행이나 그가 이메일에 사용한 단어 등이 상징하는 심리에 더 집중하는데,

이런 프로파일링은 수사과정 중에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범행 동기와 희생자 선정 기준 등 범인의 윤곽이 밝혀질 즈음에는

그녀의 프로파일링이 지닌 섬세함과 정확성의 진가가 여실히 드러나곤 합니다.

 

사건도 특이하고 조이와 테이텀 콤비의 갈등-협력 과정도 무척 흥미롭긴 했지만,

전작에 비해 다소 느슨하고 평평해 보인 이야기 전개 탓에 별 0.5개가 빠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현실적인 소시오패스 캐릭터때문으로 보이는데,

피도 눈물도 없고 감정이라곤 메말라버린 무차별 살인마가 아니라

겁도 많고 소심한데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듯한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 탓에

범행은 갈수록 잔혹해지지만 팽팽한 긴장감은 다소 위축된 느낌이란 뜻입니다.

물론 거꾸로 그런 현실감때문에 훨씬 더 서늘하고 소름 끼쳤던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막판에 다음 이야기를 위한 거대한 떡밥이 투척된 탓에 후속작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했는데,

검색해보니 이미 ‘Thicker than Blood’(2020)가 출간됐고,

요약된 줄거리에 따르면 피해자의 피를 마시는 살인자가 등장한다.”라고 돼있습니다.

조이와 테이텀이 상대했던 소시오패스들보다 좀더 잔혹하게 진화한 범인으로 보이는데,

조급증이 분명하긴 하지만 하루빨리 후속작 소식이 들려오기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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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1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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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저 : 야구의 9회말 마무리 투수. LA경찰국 미해결 사건 전담반을 상징하는 제목

- 콜드 케이스 :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미결로 남은 사건.

- 콜드 히트 : 과거 미결 사건의 DNA나 지문이 최신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되는 경우.

- 하이 징고 (High Jingo) : 경찰 고위층이 개입된 사건. 윗선의 입김이 작용하는 사건.

 

보슈 시리즈또는 영미권 스릴러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친숙한 단어들이겠지만,

시리즈 11편인 클로저의 주요 대목들을 가리키는 개념들이라 한번 잘난 척(?) 해봤습니다.

 

경찰 배지를 반납하고 잠시 사립탐정으로 외도(?)를 저질렀던 보슈가 LA경찰국에 복귀합니다.

신임 경찰국장은 보슈를 콜드 케이스들만 다루는 미해결 사건 전담반에 배치합니다.

관료의 길을 택했다가 다시 형사로 돌아온 옛 파트너 키즈 라이더와 함께 활동하게 된 보슈는

신임 국장과 반장 모두 자신과 호흡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예감에 다소 흥분하기도 합니다.

 

보슈와 키즈에게 배당된 첫 사건은 17년 전인 1988년에 일어난 16세 소녀 살해사건인데,

마치 보슈의 복귀 선물이라도 되는 듯 그 사건은 콜드 히트를 기록한 상태였습니다.

, 흉기인 권총에 남아있던 용의자의 DNA가 최신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슈는 그 용의자를 찾아가 수갑만 채우면 바로 홈런을 날리게 되는 것인데,

사건은 절대 쉽고 녹록하게 보슈의 복귀 후 첫 홈런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특히 수사를 거듭할수록 17년 전에 자행된 하이 징고의 분위기,

즉 경찰 상부의 개입으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듯한 흔적들이 감지되면서

사건을 매듭지어야 할 마무리 투수, 클로저로서의 보슈의 위상도 위기를 맞게 됩니다.

 

보슈의 새 직속상관이 된 미해결 사건 전담반의 반장 에이벌 프랫은

우리가 끝내지 못하면 아무도 끝내지 못한다.”며 보슈의 소명을 고취시키고,

보슈와는 면식도 없던 신임 경찰국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결 사건을 잊힌 목소리들의 합창이라 부르며 보슈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복귀와 동시에 크고 센 충돌을 예상했던 독자에겐 초반부터 위화감을 자아내는 설정인데,

아니나 다를까, 몇 개의 큰 걸림돌이 보슈의 앞을 가로막고 나서면서

너무 쉽게만 보이던 사건은 이리저리 복잡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 사건이 하이 징고일지도 모른다는 점,

그것도 보슈의 가장 큰 숙적인 어빙 부국장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안 그래도 보슈의 복귀를 곧 다시 터질 불량 재생 타이어운운하며 못마땅해 하던 어빙이라

보슈로서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수사를 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없는 셈인데,

결국 그는 자신의 경찰직을 걸고 정면승부를 선택합니다.

물론 사건은 하이 징고뿐 아니라 더 큰 비극을 내재한 채 보슈를 맞이하지만 말입니다.

 

17년이나 미결 상태였던 16세 소녀 살해사건이 보슈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 이유는

다름 아닌 전처 엘리노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매들린의 존재 때문입니다.

살해된 소녀의 부모는 삶 자체가 사건이 일어난 17년 전에 그대로 멈춰버렸고,

아버지는 노숙자로 전락했고, 어머니는 딸의 방을 보존한 채 유령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녀 가족의 비극은 보슈에게 나와 매들린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자각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 범인을 향한 증오심을 동시에 일으키는 기폭제와도 같은 일이기에

복귀 후 첫 사건이란 점보다 훨씬 더 보슈의 소명을 들끓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중단편으로도 소화 가능할 정도로 단선적인 게 사실입니다.

사건의 비극성은 깊고 무겁지만 미스터리는 다소 평범한 수준에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구식 수사기법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보슈와 키즈에게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고,

가끔씩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이야기의 전개에도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평점을 고민하다가 굳이 별 0.5개를 뺀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슈 시리즈가 늘 그래왔듯 마지막 장을 덮은 후의 여운은 깊고 짙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긴 했지만 보슈의 심장엔 또 하나의 무거운 돌덩이가 징벌처럼 놓이게 됐고,

미해결 사건 전담반의 일원으로서의 그의 미래는 마냥 밝고 낙관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 전처인 엘리노어가 홍콩으로 데려간 딸 매들린에 대한 보슈의 그리움과 애정은

보슈 시리즈’ 14편인 나인 드래곤을 읽은 독자라면 더 절절하게 읽혔으리라 생각됩니다.

 

2019년에 출간된 블랙박스까지 치면 한국에 소개된 보슈 시리즈가 모두 16편인데,

2020년이 며칠 안 남은 현재까지도 새 작품 소식이 없어서 무척 아쉽습니다.

해리 보슈 다시 읽기도 이제 다섯 편만 더 읽으면 끝나는데,

그 전에라도 반가운 신간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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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여사는 킬러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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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품 중반부쯤 밝혀지는 중요한 설정 한 가지가 포함된 서평입니다.

다만, 출판사 소개글에도 전부 공개된 내용이라 스포일러는 아니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킬러 또는 살인청부업이라는 소재는 한국에서는 무척 비현실적인 소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현실성 때문에 더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킬러 액션 스릴러는 방진호의 방의강 시리즈입니다.

특전사 출신의 못 말리는 공처가인 그가 전설의 킬러로 활약하는 스토리는

잔혹하고 리얼한 묘사에 액션 스릴러의 미덕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해서도 꽤 불만이 있었는데, 전에 쓴 서평을 그대로 옮기면,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방의강이 킬러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느껴진 위화감이었습니다.

동네 형의 소개로 킬러회사에 취직하는데, 이 이상한 취직이 너무 쉽게 이뤄진 건 아닐까?”

 

심여사는 킬러는 무척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 킬러 스릴러임에 분명합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어렵게 남매를 키우며 정육점에서 일하던 50대 아줌마가

어느 날 흥신소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업계 최고의 킬러로 변신하는 과정은 물론

라이벌 업체와의 치열한 대결 와중에 자신처럼 킬러가 된 아들과 맞붙게 된다는 스토리는

다소 허황된 설정이긴 해도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여사는 킬러는 초반부터 방의강 시리즈와 똑같은 아쉬움을 느끼게 했는데,

그나마 방의강은 (무기 하나 제대로 못 다루긴 해도) ‘특전사라는 그럴듯한 배경이 있지만

심여사에겐 숙련된 정육점 칼잡이라는 이력 외엔 달리 킬러의 자질이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가 일시적이나마 생활고를 해결해줄 3천만 원이란 돈에 킬러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아무래도 납득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여사의 아들 진섭이 라이벌 업체의 킬러가 되는 과정은 더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반듯한 성격에 명문대 재학 중 군대까지 다녀온 그가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일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는 킬러가 된다는 건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섭의 경우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살짝 보완하긴 했지만 여전히 억지스러웠습니다.)

 

일단 심여사가 킬러가 된 이후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고 독특하게 전개됩니다.

심여사는 물론 그녀 주위의 인물들이 번갈아 한 챕터씩 주인공을 맡는데,

살인청부업자, 심여사의 목표물, 심여사의 가족, 흥신소에 위장취업한 경찰의 아내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재미와 긴장을 함께 전해줍니다.

때론 메인 스토리와는 무관한 재미있는 막간극같은 챕터도 있지만,

역시 킬러가 된 심여사 주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읽힙니다.

 

특히 라이벌 관계인 스마일 흥신소와 해피 흥신소의 대결구도가 독자의 눈길을 끄는데,

심여사를 스카웃한 스마일 흥신소의 박태상이 본능적이고 드라마틱한 인물이라면,

아들 진섭을 스카웃한 라이벌 업체 해피 흥신소의 나한철은 계산적이고 냉혹한 인물입니다.

심여사와 나한철의 과거사가 끼어들면서 이 대결구도는 신파적 비극성(?)까지 띠게 되고,

거기에 엄마와 아들의 피할 수 없는 대결까지 덧붙여져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킬러 액션 스릴러지만 애틋한 로맨스, 소중한 가족애, 유쾌한 블랙코미디 등

다채로운 코드들이 맛있고 균형감 있게 잘 버무려져있는 것은 물론

비현실적이지만 오히려 그 비현실성 때문에 재미있게 읽혔던 작품인데,

아무래도 초반의 위화감을 잊지 못하다 보니 내내 목에 가시처럼 불편했던 게 사실입니다.

심여사와 아들 진섭이 킬러의 길을 걷게 된 과정만 설득력을 얻었다면

아무 고민 없이 별 5개를 줬을 작품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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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대 살인귀 스토리콜렉터 88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어른들이 육지로 나간 사이 폭풍으로 고립된 외딴섬의 아동보호시설.

아바시리는 어른들이 없는 사이 그동안 또래 여학생을 괴롭혀온 일당들을 살해하려 하지만

누군가 자기보다 먼저 일당 중 한 명을 끔찍하게 살해한 현장을 목격하곤 충격에 빠집니다.

섬 안에 자신 말고도 또 다른 살인귀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아바시리는 초조해지는데,

문제는 첫 살인을 성공시킨 뒤에도 여전히 정체불명 살인귀의 엽기적 살인이 이어진다는 점.

아바시리는 살인귀에게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남은 살인계획을 수정하는 것은 물론

부모가 탐정이었다는 탄자와 자로와 함께 학생 중 한 명임이 분명한 살인귀 찾기에 나섭니다.

당연히 자신의 살인 행각이 드러나지 않게 나름 몇 겹의 방책을 마련해놓고 말이죠.

 

나를 늘 앞질러 살인하는 살인귀가 있다.”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진수라는 카피는

사실 조금 과장되거나 오류가 있는 홍보 카피입니다.

작은 섬 안에 살인범인 아바시리 외에 또 다른 엽기살인귀가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고,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는 맞지만 진수라고 하기엔 설정과 장치가 다소 약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폭풍 때문에 어른들이 섬에 들어올 수 없고 외부와의 통신마저 두절됐기에

살인범과 살인귀가 활개를 칠 수 있게 됐다는 정도의 고립수준이라고 할까요?

 

섬에서 벌어지는 살인극 사이사이에 살인귀의 과거가 막간극처럼 소개됩니다.

그가 살인귀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참극들이 주된 내용인데,

어쩌면 그 과거 스토리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호러 코드가 다분한 이 챕터들로 인해 독자는 누가 살인귀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이 작품의 장르적 정체성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섬에 고립된 인물 가운데 거울을 통해 인격을 바꾸는 인물도 있는데,

어쩌면 이 작가는 그런 코드에 더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살인범과 살인귀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미스터리들이 풀리는 대목에서는 여러 차례 아쉬움을 느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게 뒷북 또는 변명처럼 읽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딱 떨어지는 반전은 보통 뒤통수를 맞은 듯한 짜릿함을 만끽하게 만드는데,

이 작품에서 막판에 밝혀지는 진상과 진실들은 어딘가 짜맞춘 듯한 인상이 강한데다

마지막 장을 덮고도 그리 개운한 기분이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 흥미롭긴 했지만 호러 코드로 포장된 살인귀의 정체와 살인동기에 대한 설명은

다소 난데없어 보이기 했고 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와도 잘 안 섞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점은 독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겠지만,

어쨌든 아이디어는 기발하지만 그것이 이야기 속에 잘 안 녹았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워낙 다양하고 특이한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게 일본 미스터리의 특징이라서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작품 역시 눈에 띌 정도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인 건 분명하지만,

홍보카피만 보고 배틀로열류의 작품을 기대한 저로서는 아쉬움이 더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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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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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익숙한 동화의 원전이 실은 잔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라는 건 더는 놀라운 사실이 아니고

익숙한 동화를 이리저리 변주한 독특한 미스터리 작품 역시 이젠 그리 낯설지 않지만,

옛날이야기와 본격 미스터리 트릭의 화려한 합주라는 홍보카피가 달린 이 작품은

읽기 전엔 좀 생경했고, 읽으면서는 동화다운 가벼움과 미스터리의 기교의 합주가 신기했고,

다 읽은 뒤엔 웬만한 판타지 스타일의 미스터리보다 깊은 인상을 얻은 별난 작품이었습니다.

 

수록된 다섯 편의 작품은 유명한 전래동화를 제각각의 방식으로 비틀었는데,

익히 아는 해피엔딩이 실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며 그 뒤에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거나

익히 아는 줄거리 한복판에 살인사건을 배치하여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등

발상의 천재라는 별명을 지닌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엄지동자와 명문가 아가씨의 행복한 결혼 뒤엔 끔찍한 살인사건이 도사리고 있었고,

이타심 강하고 선하기만 한 할아버지의 죽음은 가증스러운 탐욕이 초래한 비극이었으며,

두루미의 선한 마음을 악용한 인간의 사악한 욕망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거북이를 구해준 대가로 용궁에 간 어부는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에 경악하며,

도깨비섬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은 수십 년의 업보에 기인한 참혹한 비극이라는 점 등

아름답거나 훈훈한 동화 속 사건과 인물들을 피투성이 참극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특히 각 작품마다 알리바이 트릭, 다잉 메시지, 도서(倒敍) 추리, 밀실 살인, 후더닛 등

본격 미스터리의 대표적인 코드들을 적절히 녹여 넣은 점이 눈길을 끌었고,

판타지 캐릭터(엄지동자, 도깨비) 또는 동물들(, 두루미, 거북이, 갈매기)

미스터리의 중심에서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거나 비판하는 역할을 맡은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래도 동화 또는 고전이라고 하면 권선징악이나 보편적인 교훈을 강조하기 마련인데,

그 미덕들을 미스터리를 통해 전복시킨 설정들은 위화감 대신 묘한 공감을 끌어냅니다.

 

일본 전래동화라서 쉽게 이입할 수 있을까, 살짝 우려도 했지만,

아무래도 보편적인 정서나 캐릭터 덕분인지 그리 낯설거나 생소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 제목이나 설정 때문에 다소 가볍게 읽힐 미스터리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게 사실인데,

작품에 따라 그런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체로 그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히려 현실의 사건을 다룬 일반 미스터리보다 더 오싹하거나 깊은 여운을 남기곤 했습니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 덕분에

서양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빨간 망토, 여행길에서 시체를 만나다라는 후속작이 나왔다는데

한국에서도 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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