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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1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 클로저 : ①야구의 9회말 마무리 투수. ②LA경찰국 미해결 사건 전담반을 상징하는 ‘제목’
- 콜드 케이스 :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미결로 남은 사건.
- 콜드 히트 : 과거 미결 사건의 DNA나 지문이 최신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되는 경우.
- 하이 징고 (High Jingo) : 경찰 고위층이 개입된 사건. 윗선의 입김이 작용하는 사건.
‘보슈 시리즈’ 또는 영미권 스릴러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친숙한 단어들이겠지만,
시리즈 11편인 ‘클로저’의 주요 대목들을 가리키는 개념들이라 한번 잘난 척(?) 해봤습니다.
경찰 배지를 반납하고 잠시 사립탐정으로 외도(?)를 저질렀던 보슈가 LA경찰국에 복귀합니다.
신임 경찰국장은 보슈를 ‘콜드 케이스’들만 다루는 미해결 사건 전담반에 배치합니다.
관료의 길을 택했다가 다시 형사로 돌아온 옛 파트너 키즈 라이더와 함께 활동하게 된 보슈는
신임 국장과 반장 모두 자신과 호흡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예감에 다소 흥분하기도 합니다.
보슈와 키즈에게 배당된 첫 사건은 17년 전인 1988년에 일어난 16세 소녀 살해사건인데,
마치 보슈의 복귀 선물이라도 되는 듯 그 사건은 ‘콜드 히트’를 기록한 상태였습니다.
즉, 흉기인 권총에 남아있던 용의자의 DNA가 최신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슈는 그 용의자를 찾아가 수갑만 채우면 바로 홈런을 날리게 되는 것인데,
사건은 절대 쉽고 녹록하게 보슈의 ‘복귀 후 첫 홈런’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특히 수사를 거듭할수록 17년 전에 자행된 ‘하이 징고’의 분위기,
즉 경찰 상부의 개입으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듯한 흔적들이 감지되면서
사건을 매듭지어야 할 마무리 투수, 즉 ‘클로저’로서의 보슈의 위상도 위기를 맞게 됩니다.
보슈의 새 직속상관이 된 미해결 사건 전담반의 반장 에이벌 프랫은
“우리가 끝내지 못하면 아무도 끝내지 못한다.”며 보슈의 소명을 고취시키고,
보슈와는 면식도 없던 신임 경찰국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결 사건을 “잊힌 목소리들의 합창”이라 부르며 보슈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복귀와 동시에 크고 센 충돌을 예상했던 독자에겐 초반부터 위화감을 자아내는 설정인데,
아니나 다를까, 몇 개의 큰 걸림돌이 보슈의 앞을 가로막고 나서면서
너무 쉽게만 보이던 사건은 이리저리 복잡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 사건이 ‘하이 징고’일지도 모른다는 점,
그것도 보슈의 가장 큰 숙적인 어빙 부국장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안 그래도 보슈의 복귀를 “곧 다시 터질 불량 재생 타이어” 운운하며 못마땅해 하던 어빙이라
보슈로서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수사를 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없는 셈인데,
결국 그는 자신의 경찰직을 걸고 정면승부를 선택합니다.
물론 사건은 ‘하이 징고’뿐 아니라 더 큰 비극을 내재한 채 보슈를 맞이하지만 말입니다.
17년이나 미결 상태였던 16세 소녀 살해사건이 보슈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 이유는
다름 아닌 전처 엘리노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매들린의 존재 때문입니다.
살해된 소녀의 부모는 삶 자체가 사건이 일어난 17년 전에 그대로 멈춰버렸고,
아버지는 노숙자로 전락했고, 어머니는 딸의 방을 보존한 채 유령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녀 가족의 비극은 보슈에게 “나와 매들린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자각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 범인을 향한 증오심을 동시에 일으키는 기폭제와도 같은 일이기에
복귀 후 첫 사건이란 점보다 훨씬 더 보슈의 소명을 들끓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중단편으로도 소화 가능할 정도로 단선적인 게 사실입니다.
사건의 비극성은 깊고 무겁지만 미스터리는 다소 평범한 수준에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구식 수사기법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보슈와 키즈에게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고,
가끔씩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이야기의 전개에도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평점을 고민하다가 굳이 별 0.5개를 뺀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슈 시리즈’가 늘 그래왔듯 마지막 장을 덮은 후의 여운은 깊고 짙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긴 했지만 보슈의 심장엔 또 하나의 무거운 돌덩이가 징벌처럼 놓이게 됐고,
미해결 사건 전담반의 일원으로서의 그의 미래는 마냥 밝고 낙관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전처인 엘리노어가 홍콩으로 데려간 딸 매들린에 대한 보슈의 그리움과 애정은
‘보슈 시리즈’ 14편인 ‘나인 드래곤’을 읽은 독자라면 더 절절하게 읽혔으리라 생각됩니다.
2019년에 출간된 ‘블랙박스’까지 치면 한국에 소개된 ‘보슈 시리즈’가 모두 16편인데,
2020년이 며칠 안 남은 현재까지도 새 작품 소식이 없어서 무척 아쉽습니다.
‘해리 보슈 다시 읽기’도 이제 다섯 편만 더 읽으면 끝나는데,
그 전에라도 반가운 신간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