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트 원티드 맨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6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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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홀연히 함부르크에 나타난 '지상 최대의 지명수배자' 이사 카르포프. 온몸에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고,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아 보이는 이 무슬림 청년을 민권단체에서 일하는 변호사 아나벨 리히터가 돕게 됩니다. 오래 전, 자신의 판단착오로 한 불법체류자를 정부기관에 빼앗겼던 아나벨은 사선을 넘어 독일에 온 이사의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를 노리는 기관들과 맞서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사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부담스러운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한편 러시아 장성 카르포프와 아버지 에드워드가 연루된 거액의 검은 돈을 관리해온 개인은행가 토미 브뤼는 어느 날 카르포프의 아들을 자처하며 검은 돈에 관해 물어오는 이사와 아나벨을 만나곤 갈등에 빠집니다. 여기에 이사를 이용하여 이슬람 테러조직을 소탕하려는 독일 헌법수호부 요원 귄터 바흐만까지 합세하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스파이물의 거장이라는 존 르 카레와 처음 만난 작품입니다. 장르물을 좋아하면서도 스파이물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에 어울린다는 생각에 자주 접하지 못했습니다. ‘모스트 원티드 맨역시 독일, 영국, 미국의 첩보기관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놓고 각축전을 벌인다는 소설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 설정 때문에 읽을까 말까를 꽤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의 선입관은 초반부터 깨졌습니다. 적절한 비유와 생략이 곁들여진 고급스러운 영국식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문장과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의 입담을 듣는 듯한 경쾌한 리듬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기관 측 대표선수로 설정된 귄터 바흐만과 에르나 프레이는 데니스 루헤인의 명품 시리즈 주인공인 켄지와 제나로를 연상시킬 만큼 유쾌한 반골의 면모를 물씬 내뿜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모든 기관이 주목하는 '지상 최대의 지명수배자'인 이사 카르포프, 그를 돕는 명문가 출신의 반골 민권 변호사 아나벨 리히터, 그의 유산을 보관한 탓에 사건에 휘말리면서 아나벨에게 연정을 품는 은행가 토미 브뤼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 덕분에 재미있는 전개와 엔딩이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처럼 거칠게 달려갈 거란 예상과 달리 초반부를 벗어나자마자 이야기는 의외로 차분하고 정적인 형태로 흘러갑니다. 이사를 차지하려는 각국의 기관들의 암투와 두뇌 싸움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긴 하지만 실제 그들의 충돌은 의외로 단순한 전략과 대리전 양상을 띨 뿐입니다. 주인공인 이사-아나벨-토미의 미묘한 3각 관계 역시 같은 자리를 맴돌며 관념적인 대화와 내적 갈등의 토로 혹은 느릿한 줄다리기를 반복할 뿐입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민권변호사 아나벨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행동에 관한 독자들의 ?”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선을 넘어 독일까지 왔지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사, 은행가로서의 직업적 의무와 개인적 양심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주관보다는 주변 상황에 의해 떠밀려 다니는듯한 토미, 소신과 경험을 두루 갖췄을 뿐 아니라 마초 기질까지 다분한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도 결국 그런 능력들을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한 채 조연 수준에 머무른 귄터, 그리고 이사에게 테러리스트의 낙인을 찍기 위해 엄청난 인력과 계획을 준비하지만 딱히 그래야만 하는 근거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각국의 정보기관 등 등장인물들의 선명하지 못한 동기와 수동적인 태도들은 마지막 장까지 답답한 책읽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서방 문명과 이슬람을 단순한 선악의 구도로 포장하지 않은 점, 무의미하고 공상적인 해피엔딩보다 냉혹한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 전개, 이미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냉전시대에 관한 사실적인 묘사, 테러리즘을 악용하는 사악한 서방의 실체와 그 와중에 무력하게 희생당하는 개인들을 적나라하게 조명한 점 등은 이 작품을 얼마 안 가 기억에서 사라지고 마는 가벼운 스파이물과 차별화시키는 장점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 장점들은 소재나 서사에서만 빛났을 뿐 실제 이야기 속에선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그런 장점들이 좀더 재미와 대중성으로 포장되어 이야기에 반영됐더라면, 즉 작가가 조금은 통속적이고 친절했더라면, 또 사건의 한복판에 선 개인들이 좀더 자신의 의지에 의해 능동적으로 움직였더라면, 그래서 테러리즘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엔딩을 맞이했더라면 아마 출판사의 홍보카피처럼 전통적 스릴러에 현실의 현안을 결합한 묵직한 주제와 이야기적 재미가 완벽하게 결합된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단 한 편으로 스파이물의 거장을 판단할 순 없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면 더 이상은 존 르 카레의 작품을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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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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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편치 않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잔학기는 매서운 직설과 적절한 비유를 겸비한 기리노 나쓰오 특유의 문장을 통해 10살 소녀 게이코가 25살 청년 겐지에게 유괴, 감금당한 참혹한 1년의 시간과 구출된 이후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살아온 25년의 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 유괴범 겐지와 피해자 게이코 간의 비틀어진 악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명백한 현실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판타지를 읽은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사실보다는 상상이, 현실보다는 꿈이 이 작품의 서사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게이코가 1년여 동안의 끔찍한 일들 가운데 분명한 사실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겐지가 자신을 유괴한 이유도 확실하지 않고, 그가 소아성애자인지 연쇄살인범인지 다중인격자인지 그 정체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옆방의 야타베가 정말 야쿠자 출신의 청각장애인이 맞는지, 밤마다 구멍을 통해 자신을 엿보던 관음증 환자인지, 겐지와는 무슨 관계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저 확실한 것은 폭력을 휘두르며 성적인 수치심을 안겨주던 낮의 겐지가 밤이 되면 자기 또래의 여학생처럼 굴면서 마냥 소심한 존재로 급변했다는 점뿐입니다. 결국 상상은 공포를 증식시켰고, 공포는 새로운 상상을 야기한 악순환의 1년이었던 것입니다.

 

1년이 지난 후 구출된 게이코도, 체포된 겐지도 모든 심문자에게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경찰, 검사, 정신과 의사 등 심문자들은 그저 제각기 게이코가 당했을 끔찍한 일에 대해 상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살아 돌아온 게이코를 맞이한 가족, 맨션 주민, 선생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상상은 자유를 되찾은 게이코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으로 다가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시선들, 제멋대로 자신의 지난 1년을 상상하는 음란한 눈빛들, 그리고 기어이 언어로 날아오는 비수들 - “범인한테 무슨 짓을 당한거야?” - 로 인해 게이코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을 끊어버린 삶을 택합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게이코는 감금됐던 1년여의 시간 속에서 이곳저곳 불분명한 채로 남아있던 여백들을 자신만의 상상으로 채워 넣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밤의 꿈또는 ()의 꿈이라 이름 붙인 그 상상 속에서 게이코는 겐지가 자신을 유괴한 이유, 겐지의 성장기, 옆방 남자 야타베의 정체, 심지어 밀폐된 방 곳곳에 남아있던 괴이한 흔적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공상을 펼치며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갑니다.

그것은 악몽을 떨쳐내기는커녕 오히려 악몽의 한복판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게이코에게 지옥 같은 외부 세계에 대항할 힘을 준 것은 상상뿐이었습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런 행동에 대해 불합리한 경험을 겪었던 아이는 반드시 뭔가로 정신의 결함이나 마음의 상처를 메우려는 일을 시도하지.”라고 설명합니다. 게이코의 경우, 겐지와 야타베에 관해 자신만의 독살스러운 상상을 층층이 쌓음으로써 자신이 겪은 악몽 같은 시간들과 깊게 패인 상처의 골을 메우려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고생 무렵, ‘밤의 꿈또는 독의 꿈에서 웃자란 상상을 풀어서 쓴 글이 젊은 남자의 폭력적인 성()을 파격적으로 묘사했다는 찬사와 함께 세상에 공개되면서 게이코는 10대의 나이에 주목받는 소설가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처럼 잔학기는 사실 또는 진실이 모호하게 가려진 상태에서 10살 소녀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 상상과 꿈을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입니다. 독자마저 어떤 지점에 이르러서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 겐지에 대한 게이코의 감정마저 어떤 종류, 어떤 색깔인지 불분명하게 느껴집니다.

 

겐지와 게이코의 기이하고 비틀어진 관계는 이 작품의 중요한 또 하나의 축입니다. 범인과 피해자가 일종의 유대관계를 맺는다는 스톡홀름 신드롬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두 사람의 나이나 감금된 환경 때문에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또한, 다중인격자처럼 낮과 밤의 두 얼굴을 지닌 겐지와 게이코 사이의 위태로운 기류가 끝까지 애증의 경계 위에서 미묘하게 묘사되고 있어 독자의 궁금증을 한껏 고조시킵니다.

 

단순히 비극적인 감금 사건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에 관한 픽션에 그쳤다면 잔학기는 평범한 작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섬뜩할 정도로 디테일한 심리 묘사는 독자에게 작품 속 한 인물이 되어 사건의 한복판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게이코를 훔쳐보고, 그녀의 불행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상상하는 인물들을 비난하면서도 독자는 어느새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게이코를 엿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잔학기는 겐지와 게이코에 대한 보편적이고 공통된 감정이입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상상에 의해 자신만의 결론과 감정이입에 이르게 하는, 낯설고 불편하지만 특이하고 오래 기억될만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기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작품에 따라 업다운이 심한 편이라 한동안 손이 잘 안 가던 기리노 나쓰오였지만, ‘잔학기는 그녀의 장점과 미덕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수작이었습니다. 깔끔한 엔딩과 개운한 뒷맛을 원하는 독자에겐 쉽지 않은 작품일 수도 있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팬은 물론 처음 그녀를 만나려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사족으로, 책읽기를 마친 후 (앞부분에 실린) 겐지가 게이코에게 보낸 편지를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냥 덮지 말고, 꼭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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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소녀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 / 크롭써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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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여름, 사고로 부모를 잃은 10대 소녀 맥 로린은 여동생 수전과 함께 소도시 로럴 애버뉴의 루스 챈들러 아줌마 집에 머물게 됩니다. 루스의 옆집에 사는 12살 데이비드는 맥에게 특별한 호감을 갖습니다. 계곡에서 함께 가재를 잡는가 하면, 카니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데이비드는 루스가 맥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친절한 아줌마였던 루스의 폭력은 데이비드에게 큰 충격을 안깁니다. 루스의 폭력은 점차 강도가 심해졌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들과 로럴 애버뉴의 10대들까지 끌어들이며 위험수위를 넘나듭니다. 데이비드는 지하 방공호에 감금된 채 끔찍한 고문과 폭력에 노출된 맥을 보며 그녀를 구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녀를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습니다.

루스의 폭력은 아무런 제약 없이 폭주를 거듭하지만 폐쇄적인 소도시의 사람들은 마치 공범인 양 무관심과 불간섭으로 일관합니다. 경찰마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듯 무시하거나 외면할 따름입니다. 한편 무력감과 성적 호기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데이비드는 맥을 위해 위험한 선택을 감행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불에 기름을 퍼붓는 꼴이 되고 맙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밀하지만, 동시에 무관심과 불간섭이 공존했던 1950년대 미국의 소도시에서 벌어진 한 소녀에 대한 끔찍한 폭력일지를 지켜보는 일은 정말 고통스럽고 참담한 경험이며 심지어 역겨움까지 느낄 정도였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억압과 히스테리라는 정치적 분위기와 함께 보수적인 가족주의가 만연했고, 계층과 종교와 지식의 수준에 관계없이 아이들에 체벌은 당연히 여겨졌습니다. 그런 경향이 한층 두터웠던 소도시 로럴 애버뉴는 루스와 그녀를 따르는 어린 악마들’, 그리고 맥 같은 희생자를 낳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전성기를 코앞에 둔 맥에 대한 루스의 폭력은 여성으로서 늙고 초라해진 자신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조카들을 떠맡게 된 짜증과 한탄도 한몫 거들긴 했지만 분노의 본질은 자신에게 쏟아지던 관심을 빼앗아간 것은 물론 거역과 저항을 일삼는 아름답고 못된 맥을 향한 참을 수 없는 증오심입니다. 그 증오심은 (루스 본인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본성을 공격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발현됩니다. 구체적으로는 맥 로린은 창녀!”라는 일관된 신념이 루스의 의식을 지배합니다.

 

너도 우리 엄마나 내가 했던 짓거리를 그대로 하게 될 거야. 이브의 저주, 그게 바로 여자의 약점이고, 여자는 다 매춘부나 짐승에 지나지 않아. 아랫도리에 구멍을 가진 멍청하고 패배의식에 젖은 창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너의 그 더러운 천성을 태워 없애버리는 거지.”

 

맥에 대한 최악의 폭력을 앞두고 루스가 질러댄 악마의 일성은 그녀가 맥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을 잘 설명해줍니다. 한마디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 중에서도 극단적인 사례인 셈입니다.

 

루스만큼이나 (아니면 훨씬 더) 독자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고문과 폭행에 가담한 잡티 하나 없는 순수 악으로서의 10대 아이들의 집단 광기입니다. 애초 아름다운 이방인 맥에 대해 품었던 선하고 순수했던 호기심은 루스의 지원 하에 순식간에 아무런 죄의식 없는 폭력성으로 전화됐고, 맥의 육체를 마음껏 유린하고 짓밟은 두 달간의 지하실의 카니발로 이어집니다. 특히 만 10살 밖에 안 된 루스의 막내아들 우퍼의 잔혹한 행위는 폭력에 대한 원시적이고 끝없는 갈망그 자체라서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화자로 등장하는 나, 데이비드의 무력한 태도는 시종 독자의 분노를 자아내지만, 극도의 폭력 앞에 노출된 12살 소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밀고자나 배신자가 되지 못한 것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두려움이나 호기심이 뒤엉킨 그 또래의 혼란이 안타깝게 여겨질 뿐입니다. 엔딩에서 그가 선택한 마지막 저항이 앞서 무력했던 태도를 상쇄해주긴 하지만, 그는 결코 맥을 만나기 전의 데이비드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독자는 읽는 내내 잘못을 저지른 자와 이를 묵인한 자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쁜가?’라는 행간에 숨은 질문을 받곤 어느 쪽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번역 전에 이 작품을 읽은 뒤 처음엔 작가를 미친놈이거나 성도착증 환자거나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로 예단했다.”라는 번역자의 고백처럼 저 역시 작가에 대한 분노와 함께 왜 이런 작품을 썼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들은 언제나 나를 두렵고 분노하게 한다. 오래전부터 이런 몹쓸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라고 밝힙니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 달리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 작품을 스너프 소설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의도결과가 조금은 엇나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웃집 소녀1965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 - 30대 여자가 올바른 여성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16살 소녀를 고문하다가 살해한 실화에 근거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이 소설의 가치는 폄하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번역자 역시 실화라는 점을 들어 미친놈이라고 예단했던 작가에게 면죄부를 내줬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참이나 착잡함을 피할 수 없었던 독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변명처럼 들렸습니다.

 

어지간히 잔혹한 이야기들을 많이 봐왔지만, 10대 소녀에게 가해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악마적 폭력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출판사의 홍보 카피 - “당신은 악의 심연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 가 이 작품처럼 피부에 와 닿은 적도 없던 것 같습니다. 공포 그 자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평범한 장르물 독자에게 추천했다간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작품입니다. 물론 그런 쪽의 취향을 가진 독자에게는 거꾸로 강추하고 싶은 작품인 것도 사실입니다. 호기심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나름 단단한 각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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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1 - 팥알이와 콩알이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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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을 심플한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낸 만화 에세이입니다. 순둥이인데다 소심하기까지 한 콩알()과 말괄량이 팥알()이 입양되는 프롤로그부터 독특한 일가족과 함께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며 벌어지는 24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습니다.

 

1시간도 안 돼 마지막 페이지까지 후루룩 넘어갈 정도로 이야기는 소소하고, 그림은 많은 여백을 갖고 있습니다. 딱히 어떤 스토리를 기대할 작품도 아니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을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빙긋 웃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쁘고 여유 없는 일상 속에서 만난 잠시의 휴식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 역시 곧 만 5살이 되는 강아지 시추를 키우고 있다 보니 콩알과 팥알의 횡포(?)나 식탐, 사람과 함께 살면서 생기는 해프닝들이 남달리 느껴졌지만, 특히 고양이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콩알과 팥알의 모습 하나하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일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양이 주인의 할아버지인 내복씨와 두 고양이가 인연을 맺어가는 모습은 왜 애완동물이란 호칭 대신 반려동물이란 표현이 등장했는지 쉽게 이해하게 해줄 뿐 아니라 누구나 나도 고양이를 입양해볼까?’라는 욕심을 갖게 만들 정도로 따뜻하고 정겨워 보입니다.

가끔 소파에 늘어져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또는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로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한 번씩 꺼내 읽다보면 피로와 분노, 상처와 상심이 저절로 달래질 것 같기도 합니다.

 

마네키 네코(복고양이)를 비롯하여 문화와 일상 곳곳에 고양이가 스며들어있는 일본에서 이 작품이 꽤 화제를 모은 것은 당연한 일로 보입니다. 2, 3권이 연이어 출간됐다고 하니 국내에도 곧 소개가 될 것 같습니다. 연말연시, 애묘가들에게 선물하기에 딱 좋은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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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시력 매드 픽션 클럽
카린 포숨 지음, 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글래스 키 상(Glass Key Award,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에서 북유럽 작가의 최우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상)을 수상한 작가의 이력과 인격 장애를 겪는 사이코패스가 벌이는 살인사건이라는 내용만 놓고 보면 분명 스릴러로 분류되는 것이 맞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느낌은 독특한 심리물 한 편을 읽은 듯한 복잡다단한 심경이었습니다. 화려한 표현이나 속도감을 앞세우지도 않은데다 누가 범인인가?’라는 미스터리보다는 내게 여자가 있다면...”을 끊임없이 되뇌며 사랑을 갈구하는 고독한 사이코패스 릭토르의 불안정한 심리와 기이한 행동들을 느린 속도로 파고드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릭토르는 뢰카 요양원에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을 돌보는 간호사입니다. 동료인 안나를 흠모하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순정남이기도 하지만, 그는 노인들의 약을 변기에 버리고 무력한 그들을 고문하는 사이코패스이기도 합니다. 또 쉬는 시간엔 공원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한없는 고독에 빠지는 고독남이기도 합니다.

그런 릭토르가 세 건의 죽음에 휘말립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목격하지만 직접 돕지도, 경찰에 연락하지도 않습니다. 우발적이긴 해도 직접 사람을 살해하고 매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 입원해있던 한 노인의 죽음을 수사하던 경찰에게 살인범으로 체포되기에 이릅니다.

미스터리는 릭토르의 살인-매장이 어떻게 밝혀질 것인가요양원의 노인을 죽인 자는 누구인가?’ 등 두 갈래로 진행되는데, 책을 읽는 내내 이 두 개의 미스터리에 대한 궁금증은 그리 크게 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 건의 죽음을 대하는 릭토르의 불안정하고 변화무쌍한 심리 상태가 독자의 눈길을 훨씬 더 강하게 잡아당깁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을 고문하고 시신 앞에서 광기어린 춤을 추는 등 죽음에 이끌리는 일그러진 본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스로 극한의 고독을 택했으며, 특별한 트라우마도 없이 악의와 선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가슴 설레는 모순된 면모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명백히 악마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그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기를, 그래서 그가 꿈꾸는 사랑이 이뤄지기를 응원하게 되는 묘한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좀 과장된 해석일 수도 있지만, ‘릭토르의 모순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공통된 기질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나 악의와 선의를 조금씩은 공유하고 있기 마련이고, 폭력을 통해 자기보다 약한 자를 지배하려는 욕구가 있는가 하면, 거기에서 자라난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필하고 싶어 합니다.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한순간 이성이 무너지기도 하고, 한없이 강한 척 허세를 부려보지만 돌아서선 이내 겁에 질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누구나 다 조금씩은 릭토르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릭토르는 공동체가 허락하는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사이코패스로 분류된 것이고,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공동체에 의해 제재당한 것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번역 후기의 마지막 문장에 특히 공감할 수 있었는데...

 

릭토르가 몰랐던 것은 누구나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어둠이 얇은 얼음과 같다는 것을 알고 그 속에 발을 내딛지 않을 뿐이다. 모두가 고독을 알지만 그 안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다 읽고도 이 작품의 원제 나는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다’ (I can see in the dark)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그 의미를 다 이해했다고 할 순 없지만, 번역 후기의 이 마지막 문장 덕분에 조금이나마 작가의 의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스릴러를 기대했던 독자에겐 좀 고통스러운 책읽기가 될 수도 있지만,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을 지닌 북유럽의 스산한 심리물이라고 생각하고 읽다보면 의외로 매력적인 캐릭터나 줄거리와 만나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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