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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시체를 부탁해
한새마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편 미스터리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로 처음 만났던 한새마의 미스터리 단편집입니다. 여러 편의 앤솔로지나 수상작품집에서 자주 이름을 목격했던 터라 큰 기대를 갖고 읽었던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은 여러 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그에 반해 ‘엄마, 시체를 부탁해’는 단편 미스터리의 미덕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 자칫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한새마의 내공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돼있는데, 여러 장르의 미스터리와 스릴러(도메스틱, SF, 호러, 본격+사회파 등)를 맛볼 수 있습니다. 여성노숙자, 10대의 집단 괴롭힘과 성매매, 이식용 장기 배양, 산후우울증, 간병살인,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관종 등 다양한 소재도 눈길을 끌지만 서사와 주제도 묵직하고 문장의 깊이와 찰진 맛도 매력적이어서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의 서평 때 “묘사가 가볍거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듬성듬성 이뤄지는 미스터리”라고 지적했던 일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표제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작품에 극과 극에 달할 정도로 캐릭터가 상반된 ‘엄마’들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폭력과 불행에 굴복한 채 어린 딸에게 ‘환상’을 강요한 엄마, 명탐정 못잖은 추리력과 대범함을 지닌 엄마, 모성이 파괴된 상태에서도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엄마, 욕망과 탐욕에 찌들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엄마 등 다소 파격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일부 작품에서 ‘엄마’의 영향을 받은 ‘딸’이 태연한 얼굴로 누군가의 목숨을 가볍게 훔치는 소시오패스로 그려진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상 깊게 읽은 작품들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낮달’은 정유정의 ‘28’을 연상시키는 디스토피아로 막을 연 뒤 참혹한 현실 이야기로 마무리되면서 깊은 여운을 남겼고, ‘마더 머더 쇼크’는 반전을 품은 도메스틱 스릴러의 찐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시점을 바꿔가며 전개되는 ‘엄마이자 살인자’의 이야기입니다.(수록작 가운데 저의 원픽입니다) 자살로 종결된 사건이 한 기자의 집요한 탐문을 통해 뜻밖의 진상을 드러내며 타살로 입증되는 과정을 그린 ‘어떤 자살’은 형식과 내용 모두 독특해서 좋았고, 사고 후 기억을 잃은 여자가 조금씩 진실을 눈치 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잠든 사이에 누군가’는 단편만의 매력과 짜릿한 반전이 일품인 스릴러입니다.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의 아쉬움 때문에 읽을까 말까 주저했던 게 사실인데, ‘엄마, 시체를 부탁해’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과 함께 단편에서만이 가능한 ‘작지만 알찬 미스터리’의 힘과 미덕을 맛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아직 한새마와 만난 적 없는 독자라면, 또 탄탄한 한국 단편 미스터리를 찾는 독자라면 ‘엄마, 시체를 부탁해’를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