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죽은 것 찰리 파커 시리즈 (오픈하우스) 1
존 코널리 지음, 강수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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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쯤, ‘무언의 속삭임이라는 작품으로 존 코널리를 처음 만났습니다.

이라크전쟁에서 돌아온 퇴역 군인들의 연이은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그 안에 전쟁 중 이라크 박물관에서 약탈된 신비한 궤(?)의 이야기가 뒤섞인 작품입니다.

주인공 찰리 파커는 아내와 딸을 잃은 트라우마로 만신창이가 돼있어서 너무나 안쓰러웠고,

퇴역 군인들의 자살 사건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영매의 영역처럼 다뤄지면서

무척이나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던 끝에 결국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개운치 않은 첫 만남 덕분에 그 이후로 존 코널리의 작품은 제 관심에서 벗어났습니다.

 

예전에 알라딘에서 중고서적을 한꺼번에 주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저도 모르게 집어 들었던 것이 찰리 파커 시리즈의 첫 편인 모든 죽은 것입니다.

무언의 속삭임의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첫 편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책장에서 꺼내 읽게 됐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역시 존 코널리는 내 취향은 아니군.’이었습니다.

 

공포의 극한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라.”는 띠지의 홍보카피대로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잔혹함과 공포감은 역대 최강급입니다.

떠돌이라 지칭된 연쇄살인범은 출판사 홍보글대로 - 인간의 몸을 캔버스 삼아

붓 대신 메스를 휘두르며 잔혹하게 살해한 뒤 희생자들의 얼굴을 전리품으로 챙깁니다.

그는 약품으로 희생자를 취하게 한 뒤 산 채로 몸과 장기를 분리하는 것은 물론

그 모습을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희생자로 하여금 직접 지켜보게 만듭니다.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이 등장하고, 그 묘사는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소름이 돋습니다.

심지어 희생자들 가운데에는 주인공 찰리 파커의 아내와 딸도 포함돼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미덕(?)이라면 극한으로 치닫는 잔혹함과 공포가 전부입니다.

 

뜬금없는 사건과 인물들이 별다른 개연성도 없이 메인 스토리 속으로 스리슬쩍 끼어드는 점,

주인공이 우연히 접하거나 얻은 정보를 연쇄살인범과 (과할 정도로) 밀접히 관련시키는 점,

드러난 연쇄살인범의 실체가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점,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가운데, 최소한 100페이지 정도는 딴 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

출판사가 홍보한 심오한 문학성은 오히려 이야기에의 몰입을 방해하기만 한다는 점 등

이런저런 아쉬운 점들로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요 네스뵈, 테스 게리첸,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방대한 페이지를 자랑하는 일군의 작가들의 매력은

그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전개와 인물들의 행태가 한 방향으로 수렴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고 을 잃지 않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도 애써 메모나 기억에 의존할 필요 없게끔 캐릭터를 잘 살려놓고,

분위기 설명을 위한 주변 풍광의 묘사 역시 적절한 선에서 그칠 줄 압니다.

벌어지는 사건들은, 때론 무관해 보이면서도, 분명 하나의 궤도 안에서 벌어지고 있고,

반전은, 그것이 진범의 정체든 사건 뒤에 감춰진 진실이든,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모든 죽은 것은 아내와 딸을 잃고 한때 알코올에 중독됐던 찰리 파커의 정신처럼

계속 갈지자걸음을 걷거나 엉뚱한 설명을 하고 있거나 무리한 설정에 함몰돼있습니다.

 

스토리도, 서사도, 캐릭터도 필요 없고 오직 잔혹함만 즐기고 싶은 독자에게는

모든 죽은 것은 상상 이상의 재미를 선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를 위해 인내해야 할 페이지가 너무 많습니다.

만일 이 작품이 (개연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사건에만 충실했더라면,

즉 불필요한 인물을 배제하고 현란한 수사(修辭)를 어떻게든 조금만 자제했더라면

그나마 잔혹함에 관한 한 최고라는 영예를 얻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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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1-24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런 식의 소설이 너무 많아요 . 그게 마치 카메라 위크가 불안정하게 어떤이의 일상을 담듯 종일 , 사건만 생기지 않는다는 설정 ㅡ 카메라 밖의 풍경까지 책에 드러내려는 욕심 때문이 아닌가 했어요 .
덕분에 몰입도는 떨어지고 , 그 와중에도 챙겨가는 몰입지점이 있고 그게 높을 수록 좋은 책인냥 보인다는것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