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들어 엄마의 외가댁 행이 더 잦아지셨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리니 좀 띄엄띄엄 가시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시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기에 선뜻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한다. 엄마가 외가댁에 자주 가시는 까닭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사라지지 마!', 바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외침이 엄마의 가슴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걸 머리로는 알지만 정작 당신이 아닌 외손녀로서는 절절히 와 닿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아직 젊은 할머니고, 예전과 다름이 건강하셔서 '엄마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나로부터 저만치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책 속의 사진들을 찬찬히 넘기다 보니 외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섬'이라고 부르는 고요한 집에서 홀로 식사하시고, 앉아 계시고, 잠들어 계신 누군가의 엄마를 통해 엄마가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모습, 언젠가 내가 만나게 될 엄마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엄마, 사라지지 마>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하며 내게 있어서도 효력있는 선물로 다가왔다. 비록 한 권의 책으로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 마음을 향해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이제 엄마와 나는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p.125)

 

무언가를 사이에 두고 바라본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따른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바라볼 때, 얇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볼 때, 혹은 굳게 닫힌 철문을 사이에 두고 보이지 않는 상대방 쪽으로 바라볼 때,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만일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친밀함을 전제로 한다. 성능 좋은 줌 카메라로 먼 곳의 상대방을 가까이 불러오지 않는 이상, 투철한 기자정신을 발휘해 현장 가까이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갈 때는 다가간 거리만큼 친밀한 사이인 것이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 일은 서로의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는 일'이라는 문장에서 흠칫 놀란다. 엄마의 사진을, 그것도 클로즈업으로 가까이 찍을 정도라면 애초부터 매우 돈독한 모녀지간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두 사람에게도 용서와 화해의 과정이 필요했음을 알게 된 탓이다. 그래서 페이지를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엄마 사랑만 간절한 이상적인 딸이 아니라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려 노력했던 평범하고도 성숙한 딸의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엄마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저 남길만한 장면을 찾아내는 눈의 일이 아님을, 그것은 엄마의 상처와 허물마저 감싸 안는 마음의 일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진만을 간직하고 있다. 좋은 데 여행 갔을 때, 생일, 졸업, 크리스마스와 같은 아름답고 특별한 날들이 우리가 사진기를 드는 대표적인 순간들이므로. 요즘 들어 일상을 사진에 담는 일이 빈번해졌다 해도 그런 스냅사진 마저 우울하거나 슬픈 모습을 담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사진 속의 엄마들은(그리고 아빠들도) 일명 ‘코닥 모멘트’라는 의무적인 웃음과 함께 늘 행복한 표정만을 짓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엄마 모습도, 엄마 모습의 전부도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소파에서 잠든 모습, 걸레질하는 모습, 면봉으로 귀 파는 모습까지 사소하고 추레한 모든 장면들이 모여 엄마의 모습 안에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엄마의 모습들이, 비록 주름지고, 무료하고, 연약한 모습들이 끼어들지라도 진정한 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어머니께서 간혹 예쁜 척 하시기도 했다지만). 이런 사진 속의 엄마에는, 비록 작가에겐 나만의 엄마이겠지만 동시에 누구의 엄마도 될 수 있는 공감대가 너그럽게 자리하고 있다. 특히 '병원에 안 가시겠다', '이렇게 앉는 것이 제일 편하다', 고집 부리시는 엄마, 은근히 새 화장품을 사두신 엄마의 이야기에선 누구나 각자의 엄마를 보는 것처럼 슬며시 웃음이 날 것이다.

 

<엄마, 사라지지 마>에는 엄마의 사진들도 많지만 엄마의 물건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묘사하고 기억으로 남긴다는 게 오직 그 사람의 모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주변을 둘러싼 물건들은 마치 엄마의 분신인양 비춰진다. 엄마가 쓰는 서랍, 거울, 물그릇, 텅 빈 방의 이불자락에선 일상의 체취와 동시에 다가올 엄마의 부재가 교차되기도 한다.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건들이 모두 '남기고 가실 것'이라는 사실이 떠오르고 그것이 모두 추억이 될 것임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엄마의 역사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는 엄마의 외로움이 묻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들은 대체적으로 어두운 톤이거나 흑백의 대비가 눈에 띄는(어둠 속에서 빛이 뚜렷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소멸'이라는 단어가 언뜻 연상되지만 나로서는 '침묵'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고요한 가운데 남은 시간들을 감당해내시는 엄마. 여기에 간혹 흘러 드는 강한 빛 줄기, 혹은 빛의 면적들이 때론 화사하게, 때론 쓸쓸하게 침묵과 화음을 이루는 것 같다. 어쩌면 엄마는 자궁과도 같은 아늑한 침묵 속에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아내는 딸의 사랑을 만끽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사진 중에서는 추상화처럼 물결치는 엄마의 거친 손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출렁이는 것이 엄마의 지나 온 세월 같기도 하고, 엄마의 숨겨진 마음 구석 같기도 하고, 하얀 머리 결 같다가도 입가 같다가도...무엇을 상상해도 삶의 흔적을 상상케 하는 결들이 좋다. 나무껍질인 것처럼 보이는 옷(사실은 깔깔이, 혹은 지지미라는 불리는 옷감일 것이다)을 입고 지팡이를 짚으신 사진도 마음 깊이 다가오는 사진이다. 처음엔 보통 할머니들께서 잘 입으시는 울긋불긋하고 때론 촌스러워 보이는 옷감을 나무껍질처럼 포착해 낸 사진가의 썰미가 눈에 띄었던 사진이었는데, 그것이 딸이 사준 지팡이를 짚고 찍은 사진임을 글을 통해 아는 순간, 나무처럼 묵묵히 곁을 지켜주시던 엄마와 지금 엄마를 지켜주는 지팡이 같은 딸이 교차되면서 더 큰 감동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딸의 사랑을 엄마는 비단이불보다 더 깊숙한 곳에 감추고 계실 것이다. 소중한 것은 더 꽁꽁 숨겨두신다는 저자의 엄마이므로. 아마도 이 사랑은 몰래 감춰두셨다가 영원의 힘이 필요한 시점에서 홀로 꺼내 보실 거라 생각한다. 그분의 딸이 엄마의 사진집을 꺼내보는 그 마음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은 영원(영생)을 갈망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영원 속으로 들어가면 그 긴 시간을 뭘 하며 보낼까, 지루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들이 영원을 꿈꾸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영원에 대한 바램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나 홀로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 바로 이 책의 엄마와 딸처럼 언제나 곁에 있고픈 바램이 영원을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영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 곁에서 '찰칵'이라고 동의하며 이생에서 이룰 수 있는 영원에 최선을 다해줄 것이다.

 

 


* 본 리뷰에 삽입된 사진들은 사진집을 카메라로 다시 찍는 과정에서 빛이 반사되었으므로 톤과 질의 면에서 원본에 미치지 못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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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1-0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있네요.
카메라를 사서 뭐부터 찍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답이 여기 있었네요.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동안 무척 행복했을 것 같애요. 딸과 엄마의 사랑의 매개자였으니까요.

탄하 2013-01-03 18:14   좋아요 0 | URL
엄마는 참, 여러모로 도움이 되시죠?^^
보통 사진수업을 들으면 '거리'나 '시장'을 찍게 하던데
이 추운 날씨에 그럴 필요없이 옆에 계신 엄마가, 말씀대로 정답입니다.

요즘엔 사진에 취미를 붙이셨나봐요.
달사르님...여러모로 재능이 많으시네요.

라로 2013-02-1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추천만 했는데(그때는 아이폰으로 읽었는데) 다시 읽어보려고 컴으로 들어오니 글자가 흐릿해서 읽기 힘드네요,,ㅠㅠ
스마트폰이 좋은 점도 있어요. 그래서 가끔 알라딘 지기님들이 쓴 글은 스맛폰으로 읽으려고 할 때도 있어요,,ㅎㅎ
암튼 분홍신님 이 글 당선될 줄 알았어요,,,알라딘은 멋진 글을 잘 찾아내더라구요.^^
이 책은 꼭 읽어볼래요.

탄하 2013-02-13 18:42   좋아요 0 | URL
스맛폰으로 글 읽으면 일단 몸이 자유로와서 좋죠.
어디든 가서 엎드리고, 기대서 읽는게 약간 편지(지기님들의 글이라면) 읽는 느낌도 나요.

나비님 이 책 읽으시면서 펑펑 우시면 어쩌나..
하지만 엄마에 대한 사랑이 더 애틋해지고 작가에게서 배우는 점도 있어서 마음에 힘이 되긴해요.
하하..나비님은 멋진 칭찬을 잘 찾아내시더라구요.
피로가 몰려오는 저녁이지만 발이 붕붕 땅에 안 닿네요.^^

라로 2013-02-1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께 땡투하고 샀어요!!! 그냥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책이었는데 좋은 리뷰 덕분에 원하는 책을 얻게 되었어요!! 다시 감사해요~.^^

탄하 2013-02-18 20:47   좋아요 0 | URL
꺄~~! 정말 감사해요.
제 똑딱이 카메라가 자꾸 반사광을 만들어 무지 낑낑거렸는데
땡스투 해주시는 덕에 보람이 왈칵~ 밀려옵니다.^^
리뷰에도 썻지만 원본 사진은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겁니다.

해라 2013-02-2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홍신 님의 리뷰, 추천합니다 :) 트윗에서도 소개했어요.

탄하 2013-02-26 22:12   좋아요 0 | URL
아코! 트윗에까지요?
어쩐지 방문자수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추천도, 댓글도, 감사합니다.
 
양철곰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7
이기훈 글.그림 / 리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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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은 아름드리 이야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조금 딱딱한 정식 명칭으로 말하자면 '단군신화'이다. 단군신화에는 우리가 익히 알듯 곰이 등장한다. 어둠 속에서 백 일 동안 쑥과 마늘로 견디며 마침내 사람, 즉 웅녀가 되었던 곰은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어머니이자 은근과 끈기의 표상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상상의 미래를 그린 동화 <양철곰>을 두고 단군신화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다소 뜬금없이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책 속의 양철곰과 신화 속의 웅녀는 '오랫동안 참아내며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점에서 참 많이 닮았다. 더불어 그림의 배경도 낯설고 기이한 먼 나라 풍경이 아니라 달동네와 판자촌 철거를 연상시키는 우리네 풍경을 담고 있기에 양철곰은 그 옛날 그 곰의 마음을 더욱 연상시킨다. 지금은 4천년 전과 같은 '시작'은 아니지만 나날이 병들고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시작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양철곰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양철곰은 비록 차갑고 무감각한 쇠붙이로 만들어졌지만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마을을 지키려는 뜨거운 마음의 소유자이다. 날카로운 톱날 기계와 포크레인, 성난 사람들이 밀려와도 그저 묵묵히 버텨내기만 한다. 작은 마을이 양철곰에게 그토록 중요한 까닭은 이곳이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녹색 지대이자 순박하고 선량한 이웃들과 함께 사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새들이 서둘러 양철곰의 몸 속에 열매 같은 것을 숨기는 걸 보니 아주 긴박한 상황인가보다. 점점 침식당하는 자연인 듯, 고갈되는 자원인 듯, 먼 발치에 보이는 작은 녹색 동그라미가 안타깝기만 하다.

 

 

 

사람들이 떠나간다.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모두 다 써버리고, 더 이상은 얻을 게 없는 황폐한 땅이라고 그렇게 버리고 떠나간다. 살만한 새 별을 찾아 떠나는 발 빠른 사람들은 자기 마을의 양철말에게 기차를 메우고 서둘러 우주정거장을 날아오른다. 힘차게 하늘 위로 솟는 양철말들은 욕심을 채우는데 빠르고 강한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 이들의 모습은 우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들 중 누구라고 황폐해진 지구에서 더 살고 싶을 것인가! 그리고 황폐해질 앞날을 위해 최첨단 과학이 새 별을 찾아주리라 기대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이 아니던가! 강하고 빠른 사람들은 떠나가고 약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황폐한 이 땅에 남겨질 수 밖에 없는 비정한 세상.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들에게서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양철곰은...이 긴박한 순간에 웬 목욕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양철곰은 참으로 정성스레 목욕을 한다. 강물을 바가지에 담아 제 몸에 붓고 강가에 앉아 기다리고, 또 붓고 기다리고,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서 머리에 눈이 하얗게 쌓여도, 양철곰은 이 이상한 목욕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찾아와 황금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년은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 다 함께 황금별에 가자. 거기 가면 너도 반짝이는 황금곰이 될 수 있어. 그러면 낡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거야." 판자촌 지붕처럼 낡아빠진 양철곰에게 멋진 황금곰은 커다란 유혹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소년은 양철곰을 유혹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친구로서, 희망을 불어 넣어주려 했을 뿐. 어린 소년에겐 새롭고 멋진 것이 행복한 것이었고, 강하고 오래 가는 것이 영원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양철곰이 생각하는 행복과 영원은 황금 속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말없이 빙그레 웃음짓는 양철곰의 얼굴에서 인자한 현자(賢者)의 모습이 떠오른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양철곰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길, 그리고 외침. 양철은 쇠붙이라 물을 부으면 안 되는데, 양철곰은 왜 이리 고집스레 목욕을 하는 것일까? <양철곰>은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 읽는 이가 하고픈 말을 한껏 담아 읽어 내릴 수 있다. 대체적으로 글자 없는 그림책들은 상상력을 북돋우도록 신비스럽거나 잔잔한 그림들이 많은 편인데, 이 책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상상력 보다는 그림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하고픈 말을 한껏 하고 양철곰이며 소년, 마을 사람들의 입장을 공감하며 느낌을 표현해 보기에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러기에 충분할 만큼 소년의 표정은 생생하며 곰의 몸짓도 묵묵하지만 깊이가 있다.

 

 

끝내 목욕을 멈추지 않았던 양철곰이 드디어 최후를 맞는다. '이 낡고, 힘없고, 미련하고, 느려터진 곰아! 그러나, 그러나, 끝까지 우리들을 지키려 했던 용감하고 사랑스런 나의 곰아! 제발, 이렇게 죽으면 안돼!' 소년이 목놓아 외쳤을 말들이 소리 없이 내 마음을 크게 두드린다. 무너져버린 양철곰에 꼭 붙어서 소년이 가슴으로 끌어안은 것은 희망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다 봤을 양철곰의 창문 같은 눈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소통의 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양철곰은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한다. 황금의 별은 커녕 눈 앞의 소년도 볼 수가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다.

 

 

소년의 슬픔을 알기라도 하듯 비가 내린다. 아니, 여기서 이 비를 슬픔의 비로 읽고 싶지 않다. 이것은 양철곰이 남기고 간 선물을 빨리 확인하라고 재촉하는 기쁨의 비, 환희의 비다. 빗방울에 정신을 차린 소년이 눈을 떴을 때, 양철곰의 선물인 새싹들이 생명의 고개를 바짝 세운다. 이제 이 황폐한 땅에 초록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서 우리는 양철곰의 고집스런 목욕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양철곰은 제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정작 양철곰 자신은 그가 품었던 초록 새싹 한 잎도 다시 볼 수 없었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사랑...이 사랑에 대한 보상인 듯 자연은 양철곰을 생명이 가득한 숲의 시작으로 삼았다.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이가 된 것이다. 생명 없이 반짝이기만 하는 황금곰보다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초록곰이 된 것이다. 한낱 양철덩어리 기계에 불과한 양철곰에게 펄떡이는 심장을 가진 인간들이 배울 것이 더 많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 하나가 양철곰처럼 큰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위해 오래 참으며 희생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사랑의 마음을 넓혀 누군가의 오랜 견딤을 나눠 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 모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그루의 나무로 다시 살자.


* 상기 이미지들은 리뷰를 위해 재조합되었으므로 본 도서의 이미지와는 크기와 순서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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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1-0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왜이리 슬픈거죠? 무엇이진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거꾸로 가는 나라의 현실과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더딘 세상 때문인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분홍신님. 건강하시구요. 자주 들려서 더욱 많이 배우도록 할게요.

탄하 2013-01-01 11:52   좋아요 0 | URL
트란님 댓글 보니까 더 슬퍼요.
멀리서도 이 나라를 애틋하게 생각해 주시는데 어찌 이렇게 흘러가는지..ㅠ.ㅠ

허걱, 제게 배울건 별거 없을텐데..그래도 새해엔 더 자주뵙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나머지 얘기는 건너가서~!
 
미의 기원 - 다윈의 딜레마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종대 옮김 / 플래닛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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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공작이 부채같은 꼬리깃을 한껏 펼치고 녹색 바탕에 군청색과 하늘색, 갈색 그리고 옅은 연둣빛이 어우러진 신비스런 무늬를 자랑할 때 우리는 탄성을 지르고 옆 사람의 어깨를 치며 즐거워한다.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 공작의 꼬리깃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윈만큼은 이 꼬리깃을 바라보는 눈길이 석연치 않다. 몸을 가릴 만큼 크지만 위장술의 기능도 못하는 것이 비행할 때 사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달릴 땐 오히려 버겁기까지 하니, 도대체 수컷 공작은 이런 무용지물의 사치품을 가지고도 어떻게 생태계의 적자(適者)로 살아남았단 말인가! 이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자연선택설'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이론의 완성도에도 흠집을 내는 골치덩어리 난제였다. 수컷 사슴의 뿔처럼 우아하고 버겁더라도 싸움에 도움이 된다면야 눈감아 줄 만 하지만 공작의 꼬리깃은 도대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다윈은 고심 끝에 '성선택'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비록 생존에 불리한 형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형질이 번식에 유리할 경우 살아남고 개체수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성선택은 자연선택과 하나의 체제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후대 생물학자들(예를 들면 '사회선택'을 주장하는 메리 웨스트에버하드)이 있어 딜레마에 빠진 다윈을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정작 다윈 자신은 딜레마를 끌어안은 채 두 이론을 별개의 체제로 보았다. 아마도 다윈에게 있어 성선택은 자연선택을 보완해 주는데 여전히 불충분한 이론이었나 보다.

 

이후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연구와 논쟁을 거듭해왔다. 런어웨이 가설, 유전자모델,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핸디캡 이론' 등이 이에 해당되며 <미의 기원> 역시 같은 맥을 이어가는 성과물이다. 저자는 다윈이 한참 동안 바라다봤을 공작의 무리들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며 쓸모없이 아름답기만 한 것들의 존재의 이유를 파헤쳐간다. 그리고 공작을 필두로 암컷과 수컷의 깃털이 모두 수수한 조류, 암컷은 수수하지만 수컷은 화려한 조류, 소리가 아름다운 조류, 뿔 달린 사슴, 춤추는 초파리 등 다양한 동물들의 구애 및 양육, 생활 습성을 대조하고 먹이, 열량소비, 배설물, 털갈이, 깃털의 성분까지 분석하면서 현대 과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꼬리깃은 그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으며 수컷의 대사작용에도 꼭 필요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이 밝여졌다. 또한 공작들은 밀림의 주변부에 서식하기에 맹수들을 만날 기회가 극히 드물며, 혹여 만난다 해도 그들에겐 힘센 발톱이 있고, 버거운 꼬리는 여차하면 도마뱀처럼 떼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작이 자연선택에 의해 생태계의 적자(適者)로 살아있음은 그리 특이한 예외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연구와 주장은 핸디캡을 가지고도 살아남았기에 능력과 건강이 증명된 우월한 개체라는 핸디캡 이론보다 훨씬 더 정교하며 타당한 설명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비록 공작을 비롯, 동물세계의 아름다움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인간세계에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여타 동물들과는 분명 다르다. 비록 인간과 가장 유사한 눈(시각)을 가진 것이 조류라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근육 형태나 피부의 윤기, 얼굴의 좌우 대칭에 전적으로 연연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홀딱 반한 이성이 내게도 같은 마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에 빠져들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는 매우 주관적인 관점으로 외모에 매혹되고, 동시에 외모 이외의 다른 요소가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름다움과 직결된 성관계에 있어서도 동물들처럼 번식만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만일 건강한 배우자를 골라 적자(適者)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면 생리적인 효율을 위해 필요할 때만 성욕이 생기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영장류의 연구를 통해 설명해 낸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를 보면 성관계는 종족번식의 수단만이 아니라 암수간의 화목과 친밀감 유지를 위해 활용되며 이것이 집단의 단결과 안정에 기여한다. 즉, 짝짓기의 계절처럼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인간의 성욕은 자손의 번식 외에 남녀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미(美)는 예술에서의 그것을 제외한다 해도 다른 영장류를 포함한 동물들 이상으로 복잡하며, 이 복잡성은 놀랍게도 '환경에의 적응'으로부터가 아니라 '환경에서의 독립'으로부터 획득된다.

 

여기서 저자는 진화론을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수동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는 동시에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개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美)는 환경에 적응할 '필요'와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사이의 '여지'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도중에 생성되며,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그 귀한 것도 이렇게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힘과 자유의 바탕에서 성립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환경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인간이 가진 몫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인간은 커다란 자유를 활용해 복잡하고 다양한 형질들을 꾸준히 생성해 간다. 사실 우리가 외모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실상 '중간치(호감과 익숙함을 느끼는 비례의 범위)'에 어느 정도 가까우냐에 불과할 뿐, 수많은 형질들을 대표하는 미(美)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만일 진화상에서의 미(美)도 이렇게 하나의 이상적인 형질을 향해 수렴된다면 인간은 유전적 다양성이 제한되고, 면역 체계의 효력이 약화되어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자연인으로서의 미(美)가 치열한 생존의 부산물이지 결코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처럼 극도로 외모에 집착하는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작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에 이르기까지 미(美)가 존재하는 이유를 밝힌 <미의 기원>은 자연선택과 성선택 간의 모순점을 해결해 주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을 자유와 변화라는 능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도 제안했다. 또한 동물들에 대한 방대하고 치밀한 연구분석과 그것을 너머서는 의미의 해석 역시 사려깊고 탁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개성이라는 것이 단일한 미적 기준에서 이탈하여 건강히 살아남고자 하는 생명의 자유이자 의지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동적이기도 했다. 그동안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약육강식이나 환경적응과 같은 단어만을 떠올렸다면 이제는 자유, 독립, 개성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려 보자. 환경과의 공백을 두고 그 공백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다양한 개성을 만들어가는 세상. 이것은 지금까지 진화론을 통해 그려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의 밑그림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의 유전자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을 경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며 생명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도 철새에서 텃새로, 숲속 동물에서 도시 동물로 변화하며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미(美)를 탄생시킬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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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11-3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제가 좋아할 그런 책이네요!!!
일단 보관함에,,,저 아직도 레미제라블 읽고 있거든요,,ㅠㅠ

탄하 2012-11-30 20:34   좋아요 0 | URL
후후, 나비님(아니, 나비점장님^^)은 관심분야가 참 다양하셔서 좋아요.
대체적으로 과학분야는 별로 관심갖는 분이 드문 편인데...
이 책, 정말 괜찮더라구요. 첨엔 왜 이런 분석까지하나, 짜증내다가ㅡ.ㅡ;
중반 이후에 완전 감동했죠.

이번에 나온 레미제라블은 6권짜리던가..그렇더군요.
저는 아주 오래전 2권짜리로 봤는데, 그럼 원본으로 본 게 아닌가봐요.
에..고민되네요. 원본으로 다시 볼만큼 명작이잖아요..ㅠ.ㅠ
 

한동안 꽤 뜸했다.
<미의 기원>을 다 읽으면 다른 책들도 내리 읽고 한꺼번에 글 쓴다고 벼르다가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감기를 앓은지가 얼마나 됐더라?
보통 감기는 빠르면 1년 반, 대체적으로 2년 주기로 한번쯤 걸리는데
이번에는 3년 전 신종플루를 앓고 난 이후 처음이다.
(흑, 아직도 생생하다. 온 몸이 뻣뻣해지고 고열이 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기억.
그리고 식구들과 격리돼 내 방에서 작은 상을 펴 놓고 혼자 밥먹었던 기억.
것두, 크리스마스에...ㅠ.ㅠ)


감기가 온다 싶을 땐 냉큼 오렌지 쥬스를 한 병을 마신다.
물론, 여기서 한 병이란 200ml가 아니고 1.5리터다.ㅡ.ㅡ;
예전에 이렇게 해서 감기를 초기에 잡은 이후 무슨 비법처럼 꼭 이렇게 한다.
헌데 이번에는 별로 소용도 없고, 결국 닷새동안 매일 1병, 총 5병을 마신 기록만 남겼다.

 

 

 

 

 

 

 

 

 

 

 

 

 

 

이번엔 5권의 책 이야기를 하자.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미의 기원>이다. 처음에는 새들의 짝짓기 방식과 몸무게, 깃털의 성분까지 등장해 이 이야기가 대체 어디까지 갈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후반부의 '미의 해석'이후부터는 점점 내용이 흥미로워지더니 마지막에는 개체의 존엄성,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변형의 의미까지 이어지면서 과학적 분석을 인문학적 사유로 확장해 매우 훌륭한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에 읽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를 한 치의 진부함도 없이, '심연'과 '날개'로 풀어나갔다. 다만 읽는 내내 인칭의 변화가 좀 불편했는데, 이건 1인칭의 '나'가 교체됨으로 인한 혼동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너무 명확해서, 너무 환해서 그랬다. 좀 더 은근하거나 모호하거나 독자가 예측하지 못한 변화가 있었다면 더 큰 감동을 받았을 듯하다. 그리고 요즘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이전작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으므로 후속이 궁금해 펼쳤는데, '위로와 격려'를 표방하는 책들이 넘쳐나는 것이 문제지 딱히 이 책이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구의 책이든 인생의 조언을 담고 있는 책들은 결과적으로 마찬가지 아닐까? 다 각자에게 맞는 조언이 있고, 실천과 어떻게 이어지는가의 문제이지 조언 자체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주는 절대 정답은 아닐 것이다.

 

감기가 들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었다. 특히 이 중에서 <고독을 읽어버린 시간>은 감기가 가장 극성을 부릴 때 읽은 책인데, 곧 죽어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 할 수 있는 것이 책 읽는 것 밖에 없어 그랬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 모두 (주제는 다르지만)느낌이 비슷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인데 학문적으로 분석했다고 해야하나? 도덕이 마비된 시장경제(<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나 SNS를 포함, 유행과 외형에 몰두하는 신세대(<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모두 현상에 대한 서술과 비판은 있는데 특별한 결론이 없다. 물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읽다가 지루해져서 중간에 덮은 책이라 섣불리 '결론'이란 말하기 곤란하지만 각 편지마다 구체적인 매듭이 없어 보이니 그렇게 느껴진다. 감기약땜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몽롱한 상태에서 읽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일단 나중에 다 읽을 때까지 보류.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소개된 내용들은 무척 충격적이었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현상을 거대한 이론의 틀 안에서 해석하는 바우만의 지성은 놀라웠다.

 

 

 


 

 

 

 

 

 

 

 

 

 

바우만의 책을 중간에 덮으면서 다른 책을 뒤적여 봤다.
뭘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세 권을 훑어 보았는데, 이런...다 맘에 든다.
정말 뭘 먼저 읽어야할지 본격적으로 고민되네.

 

먼저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은 푸른 하늘 한 조각과 구름을 만드는 내용에서부터 내 맘을 쏙 빼앗아 갔다. 그냥 '하늘은 왜 파랄까?'에 대해 간단히 과학적으로 답해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데, 이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로 과학을 실제 경험하도록 해주니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시범 가운데 하나는 교실에서 한 조각의 '파란 하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등을 모두 끄고 칠판 가까운 천장에서 아주 밝은 백열등 하나만 비추도록 한다. 이 빛은 너무 넓게 퍼지지 않도록 잘 차단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빛 속에서 담배 몇 개비를 피운다. 담배 연기 입자들은 레일리산란을 일으킬 정도로 미세하며 따라서 파란 빛이 가장 많이 산란되므로 학생들은 파란 연기를 보게 된다. 이어서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이하략)...(p.21)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하얀 구름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어째서 같은 연기가 하얀 구름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결국, 푸른하늘과 흰 구름의 과학적 설명은 이 두 실험의 대조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힌트, 입담배와 속담배)

 

장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권했다는 소설 <고통>은 분량이 길지 않아 빨리 읽어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앞부분을 읽다보니 몇 군데 문장에서 매료되며 책 고르기에 갈등만 더해준다. 물론, 상을 당하고 아들밖에 남지 않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책은 그동안 참 궁금했던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정서 유형을 6가지로 나누고 이것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테스트도 있고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내용도 있다. 게다가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했던 주제이니만큼 내용이 상당히 충실하다. 그런데 이 책과 관련해 몇 가지 더 욕심나는 책이 생겼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 잠시 새 책들을 둘러봤더니 스티븐 핑커 등 16명의 석학들이 공저한 <마음의 과학>, 인간에 대해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마이클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가 눈에 띄고 만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당연히, 북카트로...


휴, 그나저나 어떤 책 부터 먼저 읽을지 아직까지 고민이다.
아...모르겠다. 오늘 밤에 그냥 손에 잡히는 것이 1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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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의 책을 연달아 달리고 있다. <굿바이, 카뮈>, <명랑철학>, <사물의 언어>, <미의 기원>이 바로 그들이다.
<굿바이, 카뮈>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릴 예정이라 패스. <명랑철학>은 좀 급하게 훑어본 책이라 니체의 철학을 명랑과 잘 접목시켰는지 파악하진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인생을 위한 니체의 아홉 가지 키워드' 같은 느낌이었다. <사물의 언어>는 소비주의와 물질만능 시대의 디자인을 되돌아보게 한다. 추천사 중 "...그런데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도 웃는 바람에 자꾸만 읽던 자리를 놓쳐서."라는 문구가 있는데, 나는 읽던 자리를 놓칠만큼 웃지는 않았지만 능청스런 저자의 유머가 나름대로 즐거웠다.

 

밀라노 디자인 박람회에서 이목을 끈 디자이너들은 표면적으로 봐서는 전혀 디자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물건들을 창조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쓸모없고 수효가 적으면 가격은 어마어마한 물건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중략)...그들의 작업은, 16세기에 밀라노의 한 공방에 섬세하게 금으로 무늬를 새겨넣고 소용돌이무늬와 곡선들로 정교하게 장식한 갑옷 한 벌을 주문했으나 화가 났을 때 그 갑옷을 입을 계획은 전혀 없었던 용병 대장이라면 잘 이해할 만한 의미에서, 상당히 디자인답다.(p.262)

 

 

뿐만아니라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는 부분들(더불어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 매우 흡족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원형들(archetypes)만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원형들의 기능적 속성들은 여전히 유동적이므로, 앞으로도 원형이 만들어질 여지가 있는 여러 다른 물건들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형식인 이유는 바로 끊임없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잡다할 정도로 갖가지 기능들을 추가하기 때문이다.(p.123)


우리 시대의 호사에서는, 점점 더 소비자들에게 돈을 쓰도록 설득하는 디테일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호사에 대한, 원래 의미에 더 가까운 또 다른 정의가 점점 더 적절한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그 정의에 따르면 호사란 위협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소유물들의 가차 없는 유입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쉴 수 있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p.190)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는 '원형'과 '사치'에 관한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 디자인이 가진 언어, 예술과 디자인 사이의 미묘한 경계, 소비시대의 디자인을 논하는 책은 많지만 이런 부분(원형과 사치)을 상세히 접할 수 있는 책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 계급론>을 종종 인용하고 있어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나머지 자세한 것은 리뷰에서...


마지막으로 <미의 기원>은 현재 1/3쯤 읽은 책이다. 이름도 생소한 각종 새들(오리나 공작같은 친숙한 새들도 있지만)과 사슴류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들의 짝짓기 방식과 몸무게, 깃털의 성분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다윈도 몰랐던 진실에 도전한다기에 분석에서 결말부분을 학수고대하는 중이지만 좀처럼 새와 사슴 얘기는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흘깃 보니 책의 절반 이후 드디어 2부, '미의 해석'이 등장한다. 그때까지만 좀 더 참고 읽어보자궁..ㅠ.ㅠ

 

 

 

달리기는 책 읽기에서 뿐만 아니라 책 고르기에서도 진행되었다. 어제와 그제, 양일에 걸쳐 그간 둘러보지 못했던 두 달 반치 신간들을 쭉 살펴봤더니 거의 계주를 마친 느낌. 그러다보니 온갖 책들을 마구 쓸어넣어 정리가(그리고 자제도) 필요할 듯하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정말 대단하구나'하는 책이 하나 눈에 띈다. 사진집인데 제목은 <한국의 장터>이다. 사진가는 스물 아홉, 신춘문예에 낙선하면서 사람공부가 부족했다 싶어 장터에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각 지방의 장터 찍기만 수십년, 그 사진들을 모아 무려 480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어냈다. 사진 작가중에 발품팔아 작품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만(연출과 스튜디오작업을 위주로 하는 작가 빼고), 이번 경우는 참 특별하고 귀하다. 처음 의도야 어찌됐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사람들의 온기를 전해줄 것 같다. 물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뭍어나겠지만.

 

 

나물 곁에 모여앉으신 할머니들의 표정이 재밌다. 쪼르르 한 줄로 앉아있는 것이 아이들 같기도 하고. 이 사진은 저자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라 책 속에 실려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정말 무슨무슨 대도록보다 훨씬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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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2-09-19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져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는 참 귀한 것 같아요. 이런 모습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릴 때 다니던 시장의 참맛이 마트에 의해 잠식되고, 동네슈퍼도 편의점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별로라서요.

탄하 2012-09-19 23:06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적 엄마 손잡고 갔던 시장이 그리워요. 아직 그 시장이 남아있긴 하지만 좀 더 시장의 활기를 더해주는 생선가게며, 양계장(이건 제가 무서워했던..^^;)이 사라지고, 정육점대신 목우촌이 들어서고, 유기농가게가 생기면서 반쯤 그 모습을 잃었거든요. 혹시 이 사진작가님, 우리동네 시장 사진 안 찍어 주시려나..안되면 저라도 찍어놔야 하나..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