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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을 권리 - 상처 입은 나를 치유하는 심리학 프레임
일레인 N. 아론 지음, 고빛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 기획안, 별로 신경써서 한 거 아니야’, ’교수님 편견이 워낙 심해서 내 논문을 낮게 평가한 거야’, ’난 상관없어 너 원하는 대로 해’, '난 오직 최고의 배우가 되는 것에 내 생을 다 바칠 거야', ’학벌 좀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 바닥에서 30년 터줏대감인 나는 못 따라오지’, ’나는 저렇게 아무한테나 달라붙는 사람 싫더라’
이것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평범한 말 속에 담긴 심리를 이 책에 따라 분석해보면 각각 ’최소화하기’, ’외부 요인 탓하기’, ’경쟁에서 빠지기’, ’과도하게 성취하기’, ’부풀리기’, ’투사하기’ 라는 6가지 방어기제로 설명할 수 있다. ’방어기제’란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심리적 수단으로 여타 심리학 서적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친숙한 개념이지만, <사랑받을 권리>는 이것을 테스트와 사례 중심으로 심층 분석하여 최종적으로 ’못난 나’에서 ’사랑받는 나’에 이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각종 방어기제에 의존하는 자아(自我)인 ’못난 나’는 원제 <The Undervalued Self>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저평가된 자아’ 정도로 직역할 수 있으며, 흔히 말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나 열등감이 심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은 (의식하지는 못해도) 스스로 자신이 못났다고 여기기 때문에 늘 인간관계 속에서 ’순위매기기’에 열중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오는 친밀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더불어 친밀감과 친구의 숫자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렇게 늘상 순위를 매기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속에서라도 이 ’못난 나’가 높여지길 원하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진짜 못난 모습이 드러날까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숨겨진 ’못난 나’의 다양한 모습들을 확인해보고, 해결책으로 제시된 ‘능동적 상상법’을 참고하여 ’관계맺기’를 배워간다면 보다 바람직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사랑받을 권리>는 ’못난 나’에 관한 새로운 심리학적 관점을 주장하거나 기존 학설에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어기제의 돌파에 중점을 둔 점, ’성인아이’라는 개념과 원가족(자신이 태어난 가족)을 중심으로 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trauma, 심리적 외상)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 외부요인인 트라우마와 함께 타고난 본성도 ’못난 나’에 작용한다는 것을 포괄한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한 ‘능동적 상상법’에 있어 1차에서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2차 방어벽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다.
저자는 1차, 2차 방어벽을 각각 ‘내면의 비판자’, ‘보호자-학대자’라고 부른다. ‘내면의 비판자’는 트라우마로 인해 형성된 자신에 대한 부정적 관점의 목소리이다(예> 넌 파티 때 사회를 맡기엔 너무 말주변이 없잖아? 괜히 실수해서 창피만 당할 거야). 이 내면의 비판자와는 ’관계맺기’의 대화법을 연습함으로써 서로 화해하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더 큰 장애물인 ‘보호자-학대자’의 벽을 뚫어야 한다. ‘보호자-학대자’는 단순한 관계맺기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기나긴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된다. 게임이나 도박, 술 등의 중독이나 헛된 욕망과 같은 것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보호자-학대자의 모습인데, 처음에는 보호자로서 달콤하게 유혹했다가 나중엔 벗어나지 못하도록 희망과 의지를 꺾는다.
이처럼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온전히 사랑받는 자아로 회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나를 기분좋게 만드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을 것이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사랑하는 여인 실비아의 눈동자를 푯대 삼아 기획자의 품을 떠났던 것처럼, 사람에게는 아련히 사랑스러웠던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고 자신의 감옥을 탈출할 힘이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를 기분좋게 만드는 사람’을 떠올려보는 것은 ’순위매기기’에서 ’관계맺기’로 가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당신에게는 이미 사랑받을 권리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사랑받을 권리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권리와 의무가 함께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권리를 요구해야 할 첫번째 상대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받을 의무는 자신의 ’못난 나’를 스스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현재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겸허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나아가자. 이렇게 나를 올바로 알아가려는 노력이 지속될 때 내 마음은 컵에 담긴 물에서 넓은 호수만큼 성장하며, 한 두 방울의 검은 잉크쯤은 품어내고 맑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참을 수 없는 부당함과 억울함, 타인들의 상처까지 감당할 수 있는 너른 바다에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사랑받을 권리의 회복은 개인의 행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위대함에 이르는 첫 걸음임을 기억하며, 이 책의 가치를 충분히 만끽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