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중문화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0월에 출간된 예술/대중문화 서적들을 둘러봤더니 건축 서적들의 대세였다. 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이 점점 활발해지는 듯 여행과 접목시킨 건축서적, 에세이와 접목시킨 건축서적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반면 다른 분야의 서적들은 비교적 균등한 비율로 출간되었고 예술일반 서적들만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았다. 미술 서적에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가 이번엔 명화에 대한 책을 썼다는 점이다. <세계사를 움직이는...>에서 백과사전형 지식인의 시대가 다시 올거라 말하더니, 이 사람이 바로 백과사전형 지식인인가보다. 하지만 전작을 읽은 경험에 비춰 보면 청소들에게 적합할 듯...

결국 이번달은 대세를 이룬 건축분야의 책들과 예술일반, 그리고 조금은 만나기 힘든 주제의 사진책을 골라보았다. 영화분야에도 좋은 책들이 눈에 띄여 한참 고민을 했지만 역시 에세이나 기술서가 대부분인 사진책 가운데 이런 주제를 만나는 일은 드물거라는 생각에 사진책을 선택한다.

10월의 예술분야 도서중 단연 1순위로 눈에 들었던 책이다. 원로, 중견, 신세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다양한 예술분야를 대화형식으로 풀어간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생관이 많이 뭍어나 있다는 점에서 가을의 끝자락에 여운이 될 것 같아 감성의 양식을 위해 골라본다.
 

 


현재 학계와 실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축가들의 글이 담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눈에 띄는 몇몇 저자들을 제외하면 새로운 저자들을 접할 기회가 드문 건축 분야이기에 다양한 생각들을 엿보고픈 욕심으로 챙겨본다. 일반 대중을 위한 건축 서적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생태'와 '디지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점도 특이할만하다. 
 

 

왠지 나는 낯선 이미지들이 좋다. 그들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일으켜 상상해 보는 일들이 즐겁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난해한 현대 사진들을 '극과 극'이라는 컨셉을 통해 소개하고, 각 작품들을 읽어나가는데 초점을 맞췄기에 그동안 낯선 이미지들을 감상하다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아 기대된다.
 



어쩌면 이 책은 전공자들을 위한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전 건축과 음악에 대한 논문을 흥미있게 읽었기에 그동안 이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건축과 음악뿐 아니라 '수'가 등장하고 건축계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의 음악적 건축언어를 다루고 있는 점도 무척 흥미진진하다.
 

 


세계가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그렇다면 중국의 대표도시 북경을 둘러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 책은 여행과 건축을 접목시킨 소재를 통해 북경 올림픽 전후로 왕성하게 성장한 그들의 도시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중국'하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미래로 향한 도시 북경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이밖에도 마지막까지 선정여부를 고민하게 했던 호러관련 영화서적 <죽음의 무도>, 흔히 접할 수 없는 트롱푀이유 작품들이 풍부하게 수록된 미술서적<눈속임 그림>, 역시 미술서적으로 참신한 젊은 작가들의 현대미술이 돗보이는 <미술의 빅뱅>, 개정판이라 선택하지 않았던 <사고와 진리에서 태어나는 도시>, 영화와 영화 이면의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있는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 등도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이번 달엔 건축 책을 읽으며 찬 바람 속에 우뚝 서있는 콘크리트 벽에 기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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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은 늘 가을의 마지막 날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열두달을 사계절로 쪼갠 분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람과 하늘이 가을을 반영하는 정도에 따른 나의 분류이다. 그래서인지 10월이 가는 것이 무척 아쉽다. 남들은 가을을 탄다고 하는데, 나는 가을이 되면 무척 신이 난다. 센치와 멜랑? 말도 안되는 소리다. 가을은 항상 설레이고 어찌보면 봄보다 더 흥분되는 것 같다.

자, 이러한 감정의 고조 가운데서도 책은 열심히 읽었다.
리뷰는 4개를 썼지만 읽은 책은 6권이라 일단 뿌듯하며, 리뷰를 쓴 4권의 책들 모두 괜찮다 말할 수 있어 흡족하다. 그런데 내가 쓴 리뷰를 돌아보니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쌈박(?)하게 1,200~1,500자 이내로 끝내 버렸는데, 어느샌가 1,800을 지나 2,000을 때리더니 이젠 2,500이 넘도록 문장이 길어지고 있다. 대체 뭘 그리 주절거리는지...

글 수의 제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그냥 가는대로 쓰고 말까? 아님 1,800이하로 줄일까?


***   책과 뒷 이야기  ***


이번달은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으로 시작했다. 특히 장정일은 독서가로서 내가 본받고 싶은 점이 많은사람이기에 그의 독서일기를 만난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이 책은 독서력과 명쾌함이 돋보이는 책이었고, 역시 장정일은하고싶은 말을 다 하고 있었다.(비록 예전에 비해 덜해진 듯한 느낌은 있을지라도...)

다음으로는 <아이브레인>을 읽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컴퓨터와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뇌 가소성이란 것이 시나브로 새로운 체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살펴보니 친 기계적이 아닌 친 인간적으로 살아가려면요즘과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은 워크북의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실태 보고와 테스트 문제들이 실려있어 지독히 기계치이거나 지독히 컴퓨터 중독이라면 꼭 봐야할 듯 하다.

<밈>은 정말 뭐라 말하기 힘든 책이었다. 지식의 밀도나 여러가지 학설을 체계적으로 살핀 점과 저자의 논리가 정연한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일단 ’밈’이라는 것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면서도 ’신’이 하는 일과 비슷한 경향이 있어 저자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게다가 밈학은 아직 정립된 상태도 아니며 이 책이 거의 출발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 이후 10년간 밈학에 대해 다룬 책도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결론! 이 책은 사회생물학이나 진화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정도.

마지막으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경제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참 여러가지 면에서 수작이라고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일단 가상 시나리오로 시작하여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다음으로 우리나라 과거의 모습을 상세하게 들춰내어 설명하면서 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리고나서 저자는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이 또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입장을 잘 유지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한 마무리도 신자유주의를 지속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두가지 경우로 나눠 미래상을 예측하면서 대책안을 제시하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향한 메시지를 정중히 선포(?)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이번에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발간되었는데, 이 책도 읽어보고 싶다. 정말 경제에 대해 쉽고도 상세하게, 최상의 정보를 골라 담은 것이 매력적이었다.

이번달 역시 읽은 책들은 많지 않아 한 권만 베스트로 선정해 보려 했으나 읽은 책들이 모두 괜찮아 두 권을 선택해 본다.
그리하여...내가 선정한 10월의 책은?

1. 나쁜 사마리아인들
2.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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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G20 정상회의의 개최를 앞둔 시점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펼쳐보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만일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전후(戰後) 빈곤 국가에서 최단시간에 '한강변의 기적'을 일궈냈던 우리 경제의 역사와 IMF위기를 극복하고 G20의 회원국으로의 위상을 확립한 성과에 대해 큰 감흥없이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오늘날의 경제수준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 마냥 익숙해져있었고 국제적 시류에 휩쓸려 우리 경제를 일궈왔던 힘이 무엇이었는지 망각하고 있었다.

모잠비크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와 우리 경제의 과거사를 되짚어보는 프롤로그 덕에 다시 과거와의 공감대를 회복하며 그 시절의 경제사건들을 하나 하나를 떠올려봤다.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노래를 통해 익숙해진 새마을 운동, 보리밥을 먹으면 더 건강해지며 식량자급을 이룩한다고 홍보했던 혼식하기 운동, 그리고 'KS 마크를 꼭 확인하세요'와 함께 생각나는 국산품 애용 운동까지...그땐 무슨 운동이 이렇게 많냐며 국가의 통제에 대해 썩 달갑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그것이 바로 개발도상국이 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정부주도 경제의 일부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 결과로 영국의 경우 2세기, 미국의 경우 1.5세기가 걸려 달성한 경제성장을 불과 30여년만에 달성했음에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신자유주의자들은 우리의 경이로운 성과의 원천이 되었던 정부주도 경제나 보호무역 등에 제동을 걸고 있을까? 그 이유는 일명 '사다리 걷어차기'로, 이미 경제 우위를 차지한 선진국들이 후발국들의 추격을 막기 위해 고안한 비열한 경제 논리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제일 먼저 최고의 경제 지위에 올랐던 영국도, 지금까지 세계 제1의 부국으로서 오랜 지위를 차지해 온 미국도, 그리고 그밖에 선진국이라 부를만한 나라들 모두 보호무역과 국가의 개입으로 부를 축적해 왔다고 한다. 특히 영국의 경우 19세기 중반까지 45~55%의 관세를 자랑하는 고도 보호무역국가였으며 미국도 자유주의를 버리고 결국 해밀턴 프로젝트(보호관세, 수입 금지령, 보조금, 특허부여 등을 내용으로 함)를 개시했는데, 이런 선진국들이 후발국가들에 대해서는 자유무역과 개방압력을 꾸준히 가하고 있으니 진정'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 부를만하다.

그당시에는 몰랐지만 90년대에 즈음하여 매스컴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던 '지구촌'과 '세계화' 역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경제 식민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내세웠던 신자유주의 책략의 일부였다. 정사(正史)에 따르면 이들이 '세계화'의 기치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개발도상국들의 수입대체산업화(ISI,수입에 의존하던 제품들을 자국에서 생산하여 국산품으로 대체하는 것) 전략이 실패하고 외국인투자와 자유무역을 시행했던 동아시아가 '경제 기적'을 이뤄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측면만을 부각하여 개발도상국에게 세뇌시켜온 내용이며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더 큰 관점에서의 진실과는 다르다.

실제 수입대체산업화에 실패했던 남미의 경우 자체적으로 경제를 좌우할 권한이 없는 식민국가였으며, 자유무역으로 좋은 성적표를 보여줬던 동아시아 국가는 사실 보호무역과 국가관리 하에서 더 좋은 성적표를 받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역사 속에서 경제학자들 조차 '자유주의는 가망성 없는 프로그램'이라 실토했던 사실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저자는 정사(正史)따져 신자유주의의 정통적 견해에 맞게 왜곡된 세계화의 역사를 바로잡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논리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택해 반론을 제기함으로 그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경제의 상세한 내용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그저 매스컴을 통해 이런 것이 경제 대세이구나...라는 것만 인식하며 지내왔던 나로서는 저자 장하준이 따져 밝히는 신자유주의의 숨겨진 모습들이 여간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여섯 살 아들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지시하는 것에 견주며 갓 성장을 시작한 개발도상국에는 자유무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내세운 부분, 외국인 투자가 장기 경제발전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한 부분, 그리고 20년이나 되는 지적소유권 보호 기간으로 독점에 가깝게 이득을 창출하는(그리하여 사실상 자유무역의 원칙에 어긋나는) 선진국의 술수를 파헤친 부분의 경우 그와는 정 반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 나의 상식이었기에 매우 인상깊게 읽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맺으며 장하준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몇가지 경제 대책들도 제시하고 있어 무척 관심있게 보았는데, 그 첫번째 대책은 '대항하라'는 것이었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보호무역과 정부관리 등을 통해 대항해 온 것 처럼 단기적 희생이 따르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밀고 나가라는 것이다. 또한 장하준은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IT강국이라 하여 생산성 높은 서비스 부문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는 제조업의 든든한 뒷받침 없이 서비스 부문만으로 부유해진 나라는 없다는 점을 예시로 설명하며 기초를 다질 것을 당부한다. 반면 선진국을 향해 따끔한 충고가 되는 부분도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기울어진 경기장'에 대한 것이다. 어린이와 성인의 축구 경기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같은 능력으로 뛸 수 있도록 경기장을 조절해야 한다는, 즉 시장의 룰을 개발도상국에도 공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아마도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신자유주의 저서를 살짝 인용해 반론을 제기한 듯 하다.

서구의 독자들을 고려한 탓일까? 장하준은 (적어도 나에겐) 마치 미국 대통령의 호소문 같은 느낌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먼저 그는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할수록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팔 수있는 시장이 넓어져 이득이 됨을 설명했으며, 신자유주 열렬한 신자유주의자였던 레이건이 아시아 금융 위기를 계기로 IMF에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던 사건을 상기시겼다. 그리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진정 탐욕스럽지도, 편협하지도 않다는 사실과 과거에 부자 나라들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던 사실에 희망을 건다고 말한다.

물론 이 책에서 장하준이 제시하는 의견을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전문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팽팽한 반박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세계 저명 인사들의 추천사와 함께 미국판과 영국판으로도 출간된 이 책이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 실상과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무척 큰 공로를 세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 별점 대신 KS 마크를 찍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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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복제자 밈
수전 블랙모어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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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을 읽다보니 CM송 한 곡을 자꾸 반복해 부르는 바람에 그 습관을 떨쳐버리고자 애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저자에 따르면 내가 경험했던 이 현상은 바로 밈에 의해 모방이 이뤄지는 과정이었고, 내가 불렀던 한 곡은 밈의 한 단위가 된다(만일 한 소절만 반복했다면 그것이 밈의 한 단위이며 밈의 단위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나의 뇌는 그 곡에서 느껴지는 어떤 요소를 선호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쉽게 채택하여 되뇌이게 된다는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그 CM송이 맘에 들어 선택하게 되었고, '내'가 그 곡조를 듣는 것이 좋아 지긋지긋하게 반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는 '밈'이 부추킨 노래를 모방한 것이며 '밈'의 숙주가 된 내 뇌는 같은 노래를 무한히 재생시킨 것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은 자아나 자유의지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인간을 '밈플렉스(Memeplex)' 또는 '밈머신(Meme Machine)'이라고 부르는 저자의 견해는 긴 역사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해왔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이기에 한편으로는 호기심에, 다른 한편으로는 반발심에 페이지를 펼쳐보게 되었다.

먼저 밈은 생물학적 유전자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등장시킨 개념이다. 저자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인간행동과 문화전반을 해석하는 틀을 마련했는데, 여기에는 사회생물학, 고고학, 뇌과학, 유전자학 등 다양한 방면의 학문과 지금까지 밈을 언급해온 여러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총 동원되어 밈을 체계화하는 대대적인 노고를 담고 있다.

<밈>은 인간의 '모방'이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 뇌발달, 언어의 발달, 문화의 발달, 유전자와의 관계, 이타성, 자아 등에 관해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모방은 갓난아기때부터 부모의 표정이나 행동을 따라하는데서 시작하여 점차 언어를 통해 받아들이고 퍼뜨려간다. 저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신체 대비) 유난히 큰 뇌를 가지게된 까닭이 바로 언어 능력때문이라고 밝혔는데, 여러 호모미니들 중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은 이유도 바로 모방을 언어를 통해 전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음성형태로 전파되는 언어는 충실도, 다산성, 긴 수명이라는 품질 좋은 '밈'의 요건을 가장 잘 갖추고 있어 매우 강력한 밈 확산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다.

언어를 통해 전달된 밈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집단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행동과 도구들을 전파해왔고 오늘날의 문화를 이룩해 왔다. 더불어 짝짓기에 있어서도 말을 더욱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여 그들이 후손을 낳는데 더 유리하게 함으로써 밈을 잘 퍼뜨리는 뇌로 진화하도록 유전자에 압박을 가하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유전자상으로 자손번식의 기능을 맡는 성(性)은 밈의 압박에 의해 쾌락을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변화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밈이 유전자를 누르고 인간의 복제행위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을 설명한 '목줄이론'의 한 예시라 할 수 있다. 저자가 고안한 이 '목줄이론'은 그동안 독보적이었던 유전자의 수직적, 생물학적 복제를 뛰어넘어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달되는 수평적, 문화적 복제를 설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뿐만아니라 밈은 다른 학문들의 난제였던 인간의 이타성과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저자에 따르면 이타성 역시 타인으로부터 인기를 얻는 유리한 점이 있어 많은 추종자들을 갖게 되고, 밈의 입장에서는 인기있는 이들을 통해 이타적 밈 자체를 포함한 다른 여러가지 밈들을 확산시킬 수 있어 이득이 된다. 이렇게 밈의 입장으로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다른 것은 관심이 없고 오직 복제에만 전념하기에 '이기적'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쉽게 이해가는 것 같다.

그러나 종교를 밈으로 설명한 부분은 그다지 성공적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두려움과 이타성, 그리고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된(그리고 사실이라 믿는 사람들의 힘으로 전달되는) 경전을 통해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밈이라 불리는 종교는 그녀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밈에 의혹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들을 보인다. 먼저 저자는 밈이 언어를 통해 확산되고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고 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신이 말씀, 즉 언어로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저자는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밈의 복제를 위한 도구로 밖에 쓰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역시 성경을 보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다스리는'이라 기록하고 있어 저자의 '밈'이 기독교의 '신'을 모방한 것같은 모순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밈>은 여러가지 예시를 통해 자아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이라는 개념인데, 몰입의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식)을 잊고 완전히 하고있는 일에만 빠져들며 여기서 창조성이 발된다고 한다. 또한 뇌파촬영을 통해 의식의 결정이 행동에 후행한다는 것을 증명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을 읽어보면 인간에게 자아나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될만하다. 그러나 역시 또 한가지의 의문이 떠오른다. 자신을 잊고 뭔가에 몰두한다는 것은 자아가 없다기 보다는 그 작업을 위해 최소한으로 축소되기(물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어릴 적 끊임없이 반복해 부르던 CM송을 그만두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 순간, 그만두려고 애썼던 그 의지는 누구의 의지였을까?

<밈>은 밈학을 구체화하기 위한 첫 시도이기에 아직 의문의 여지가 많다. 물론 방대한 학문을 아우르는 저자의 설명은 경탄할만하며 매우 타당한 논리들이 돗보이지만, 집단심리, 뇌가소성, 성격, 기호, 욕망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친숙한 이야기들을 '밈'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한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도발적이고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에 학문적으로 참고해볼 가치가 있다. 다만, 밈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우리 미래에 반영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밈학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열어준다...영속적이고 의식적인 자아가 내 안에 존재하고,...그것이 나를 나로 만들어 준다는 망상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게 살 수도 있다...복제자들과 환경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서의 삶을 경험하며, 그것만이 전부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살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이기적 자아 복합체의 희생자이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그제서야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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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가 몰고 온 바람 탓인지 잊고 있었던 하루키와 문학의 추억이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오래전엔 내 나이에 맞지도 않는 소설들을 기웃거리며 이문열, 이청준, 조정래의 책들을 읽곤 했는데 지금은 우선순위인 책들이 가로막고 있는지라 탐하고 싶어도 바라보기로 만족해야하는 현실. 그래서 작년에 가지고 있던 책들을 정리하고 올해 초부터 약 70권 남짓되는 책들을 읽었음에도 그 중 문학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게다가 딱 한권을 제외하곤 모두 집에 있던 책들이다.)

하지만 <1Q84>의 등장은 간과할 수 없는 큰 유혹이었다. 이것은 하루키가 처음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갑자기 쏟아진 그의 작품 중 무엇을 먼저 읽어야할지 고민하며 상기되었던 느낌과 흡사하다. 그때 나는 우연히도 (일본 번역가로서 최고인지 혹은 최고가 될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김난주 번역의 <노르웨이의 숲>을 골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큰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 책은 20대 내 배낭 속 한켠을 차지하며 공허와 갈증을 각인시켜주다가 이렇게 모서리에 큰 흠집이 가버려 대단히 안타깝다.

이후 하루키는 <고독한 자유>를 통해 감동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른 작품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은 단편집이지만 나는 유독 이 책이 마음에 남는다. 모진 세파에도 담담히 살아가는 이들을 그린 '치즈케이크 같은 나의 가난', 그리고 서른 다섯을 인생의 반환점이라 정한 것이 퍽이나 인상깊었던 (그때는 삼십대가 너무 멀리 있었기에) '풀 사이드'가 이 책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슬픈 외국어>는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절친한 친구가 선물로 준 책인데 그의 엉뚱, 소탈한 모습으로 잔잔히 웃으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하지만 <1Q84>를 읽고싶은 이유를 간단히 설명할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걸 어쩌나...이전부터 내게 특별했던 작가, 지금은 아련히 먼 곳에 있는 것 같지만 자꾸 훔쳐보면서 떠올리는 작가. 그래서 난 <1Q84>를 첫번째로 선택해야겠다. <1Q84>의 1권을 조금 색다르게 받게 된다면 또다른 하루키와의 추억이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두번째 책은 <세한도>이다.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첫번째 도서! 이 책은 한창 오주석님의 책을 읽고 한국화에 대한 책들을 찾아볼 때 여기저기 서평이 눈에 띄어 알게 된 책이다. 책 한 권을 온통 세한도에 초점 맞춰 쓴 것이라 무척 기대하며 위시리스트에 넣었는데, 우연히 이 시리즈에 대한 브로슈어까지 보게되어 더욱 읽고픈 마음을 부채질한다. 그리고 한국화에 대해서는 조예 깊기로 이름난 몇몇 저자들만 알고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저자의 새로운 시각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세번째는 <예술과 다중>. <제국>의 저자인 네그리의 책이다. 이 책은 정치학자인 줄 알았던 그가 갑자기 '예술'을 들고나와 주목하게 되었다. 그동안 (사실 아직까지는) 예술은 미학적인 관점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었는데 종종 정치와 관련된 책들이 예술을 논하고 있어 매우 궁금해지는 책이다. 먼저 구입해 가지고 있는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과 같이 읽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책은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이다. 바다우 철학의 길잡이 같은 책이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절판되었다가 올해 개정판으로 출간되어 너무 기쁘다. 더욱이 그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의 번역이라니! 눈에 번쩍 띄인다. 현대 철학에 대해서는 하는 일과 약간 관련있는 들뢰즈와 데리다만 대략 알고 그밖에는 문외한이라 이런 종류의 책은 반갑기 그지없다.




여기까지 고른 4권의 책은 <1Q84>를 제외하곤 모두 공부하기 위한 책들이다. 공부라는게 딱히 학교 공부는 아니지만, 올해 어느정도 책장 정리를 마무리하고 서평단의 책들도 맛봤으니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읽고 싶은 책들로 달마다 테마를 정하고 공부를 시작해보고 싶다. 얼마간은 인문학 책들을 위주로 읽으려 작정했기에 문학동네 어귀에서 기웃거리는 처지지만 언젠가 그 안에 정착할 날이 올 것을 믿으며...

1Q84(1권)          : 13,320 원
세한도               :  9,900 원
예술과 다중        : 13,500 원
철학을 위한 선언 : 13,5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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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계               : 50,220 원


(헉!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빨리 자야하는데...ㅠ.ㅠ) 

-----------------     이벤트 종료 후     ---------------------- 

오늘 문학동네 장바구니 이벤트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당첨자'가 되었다.

로그인을 하고 서재에 들어왔더니, 방문자 수가 늘어있다.   



오늘, 이 행운이 내 품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천사가 다녀갔는가?

1004 방문...
이 행운과 딱 어울리는 유쾌한 우연마저 감사하다.^^
* 문학동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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