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속에 담긴, 여러 시대 동안 쌓인 층위를 구별하는데 관심을 갖다보니까, 애초 주역이 작성된 시기인 서주 초기와 서주시대에 집중하게 되고, 바로 직전 시대인 상나라와의 차이점에 호기심이 갔다.
서주시기 주역은 대나무로 만든 시초로 보는 점이라서, 점술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으로 한정되어서 보는 글과 얘기가 많았지만, 그걸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주역이 유일한 시초점은 아니고, 게다가 길흉을 판단하는 유일한 점책도 아니기때문에, 주역형성 전후 상나라와 주나라에서 점술과 점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을 찬찬히 정리해보고 싶었다.
맨처음은 주역에 담긴 내용 중 역전이 형성된 춘추전국부터 진한시대까지 내용을 걷어내는 것이다.
점풀이 내용 중 8괘(건태리진손감간곤)를 이용한 취상설은 춘추시대부터 활발했고, 특히 효에 주목해서 효의 위치나 음효양효의 감응 등을 따지는 것은 역전의 단전에 들어서부터다. 그러니까 서주시기에는 괘나 효에 덜 집중한 점술문화가 있었을 것이다.
여러설이 있지만, 내가 혹하는 내용은, 대나무를 이용한 시초점이었기때문에 대나무조각으로 괘형태를 표시해 점차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다. 그래서 괘나 효에 집중한 점풀이는, 마치 역경에 담긴 한글자한글자를 후대 사람들이 이기론을 비롯한 성리학 토대 같은 것으로 해설해놓은 것처럼, 괘나 효를 가지고 깊은 술수와 체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은나라 시대 정신이 무엇이고 주나라 때는 얼마만큼 변화하고 변모했는지 살핀다.
상나라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신화로 열개의 태양이야기가 담긴 부상신화가 있다. 이와 대비되는 주나라 세계관에서는 열개의 태양 중 아홉개를 쏘아 떨어뜨려 한개의 태양이 중심이 된다. 이를 보여주는 인용은 맹자의 두개의 태양이 뜰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주군을 섬긴다는 말이다.
주역의 뜻인 주나라 역은 단순히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힘을 가졌던 상나라 '제'가 주나라에서는 점차 바뀔 수 있는 여지를 가진 존재로 변모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부상신화에는 상나라 사람들의 우주관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열개의 태양은 동쪽에 있는 부상 나무에 가지에 매달려 있고, 태양속에는 새가 들어있어 하늘을 횡단하고, 해갈 질즈음에 서쪽에 있는 약목에 자리잡고 약목밑에 약수로 내려간다. 약수는 지하세계로 흘러들고 황천에 다다른다. 지하세계를 관통하는 황천은, 아마도, 다시 동쪽 부상 밑 함지에 연결되어, 열 개의 태양은 지상과 지하를 영원히 돌게 된다. 그리고 서쪽 약목 근처에는 모든 혼령이 오르내리는 관목이 자리잡고 있다.
태양새가 날아다니는 천상과 황천이 흐르는 지하세계는 갑골문이 새겨진 소재인 거북과 통한다. 황천과 연관있는 용, 물고기등과 함께 지하세계에 사는 거북은, 지상을 가리키는 네모난 배갑과 천상을 가리키는 둥근 등갑을 지닌 희생물로, 상의 우주관을 잘 보여주는 대상이다. 이 물에 사는 희생물에 홈을 파서, 불로 달군 꼬챙이로 징조를 얻는 거북점의 과정은, 상나라 시대 우주관과 신탁같은 점술과정을 잘 보여준다.
주역 계사전에 담긴 점치는 서법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해석으로 들여다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 계사전 서법에는 하늘과 땅을 만드는 과정, 음과 양을 가리키는 과정에 3변하여 각 효의 노음소음노양소양을 밝히고, 이 과정을 6번 해서 괘만드는 법이 나와있다. 그외에 주역 계사전에 그 설명이 생략된, 변하는 괘를 구하는 과정도 또 있다.
그러니까 점치는 서법에서도, 거북점에서 절대적인 '제'의 징조 대, 주역점에서 시초로 만든 징조 외에 변화의 여지가 포함된 변모가 눈에 띤다.
참고문헌으로 서주시기즈음 역경의 내용에 주목한 이경지 <주역점의 이해>, 상나라 신화와 우주관 등을 밝힌 사라 알란 <거북의 비밀, 중국인의 우주와 신화>, 거북점의 형식을 길지 않지만 확실하게 설명해준 이학근 <고문자학 첫걸음>, 춘추시대 주역점법을 밝힌 김상섭 <춘추점서역>, 그리고 역전에 담긴 층위를 명확히 설명하는 주백곤 <역학철학사1> 등이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