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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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들뢰즈와 과따리의 앙티오이디푸스를 좀 더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일고 난 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후기를 남겨야 할까?’, ‘만약 그렇다면 왜?’였다. 솔직히, 읽어나가면서 중간에 그만 읽으려는 마음을 몇 번이나 다잡았음이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심경이다. (들뢰즈 선생님, 저의 이 마음 꼭 알아주세요~)


가장 먼저 알아야 할 단어 하나를 미리 정리한다. [Vsion: 슈레버가 자신의 환각 체험을 비전이라는 단어로 지칭한 것은 그가 자신의 정신병 증산을 종교 체험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맨 앞부분(1)은 내 머릿속 이해의 그릇이 충분히 받아줄 만하다.[신경들 중에는 감각 인상을 수용하는 신경(시각, 청각, 촉각, 쾌락 신경)이 있는데, 이것들은 빛, 소리, 열기, 냉기, 배고픔, 그리고 쾌락과 고통의 느낌만을 지각한다. 다른 신경(지성신경)은 정신의 인상을 수용하고 보존할 뿐 아니라 의지의 기관이기도 한데,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외부세계에 작용하는 힘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충동을 부여하기도 한다이들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모든 단일한 지성신경은 그 인간의 정신의 개별성 전체를 표현한다고 말이다. 기억의 총체가 단일한 지성신경 각각에 등록되어 있는 것이다.]


2장부터 슬슬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내가 맞다는 말을 주장함이 아니라, 내 이해의 그릇이 슈레버의 이야기를 받아주기에는 너무 작거나, 나의 이해-기관이 나에게 맞도록 특성화되어서 그럴 것으로 판단한다.[영혼 살해현세의 삶을 연장하거나 한 인간의 정신 능력을 자기 것으로 삼거나 일종의 개인의 불사를 얻기 위해 하나의 영혼을 다른 한 인간의 영혼에 양도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슈레버가 말하는 스스로의 증세나 그 현상에 대한 표현이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건강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일종의 신경언어가 존재한다사유강제라는 말은 내안의 목소리가 나에게 준 표현본질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때때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지성신경에 휴식을 부여하려는 인간의 자연권이, 내게는 나와 교류를 갖는 광선들에 의해 처음부터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5. 계속. 신경언어(내부 목소리). 사유 강제. 세계 질서의 요구라는 특정한 상황에서의 탈남성화][하늘 높은 곳 푸른 빛 궁륭 아래에서 쉬면서 지구 천제츨 내려다보았는데,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경신과 함께하는 광경…나는 영혼들의 언어로 영령을 보는 자라고 불렸다. 그것은 영령을 볼 수 있고, 영령들 또는 떨어져 나온 영혼들과 통하는 사람을 의미한다사실상 세계가 생겨난 이래로 나와 같은 사례가 있었던 적은 없을 것이다. , 한 인간이 떨어져 나온 개별 영혼뿐 아니라 영혼 전체 그리고 신의 전능 그 자체와 지속, 다시 말해 더 이상 중단되지 않는 교통에 들어선 경우는 없었다.- 6. 개인 체험 계속. 비전. 영령을 보는 자] [그들은 기계 부착이라는 정보수단을 고안내가 그 기술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대략의 윤곽뿐이다기계부착은 처음에는 광선에 접합이라고 지칭된 느슨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쓰인 광선이란 내게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어떤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그들은 어떤 장부 아니면 그와 유사한 문서에 지난 몇 년간 나의 모든 생각과 말, 내가 사용하는 물건, 그 외 내가 소유하고 있거나 내 주위에 있던 사물, 내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든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누가 이걸 기록하는지는 확신 있게 말할 수 없다.- 9. 존넨슈타인으로의 이송. 광선과의 교통에서 일어난 변화들. 기록 시스템, 대지에 붙들어 매다.] [이 외에도 언급해야 할 것은 하체 전체에 행해진 기적, 이른바 하반신 부패다내 뱃속에 하체를 부패시키는 물질을 집어넣었는데, 그로 인해 내가 산 채로 썩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11. 기적을 통한 육체 통합의 훼손][지옥의 백작이라는 명칭그래서 나는 지옥의 백작이라는 표현이 내게 적용된 것은 어떤 오해에 근거한 것이며, 여기엔 원래 뭔가 추상이 근거로 놓여 있었다고 생각인류의 윤리 타락 또는 지나친 문명화의 결과 생겨난 과도한 신경자극으로 신에게 적대의 힘으로 자랄 수 있었던 어떤 거대한 힘을 지옥의 백작이라 여기게영혼의 이해영혼들이 인간의 삶과 사고에 대해 갖게 된 어떤 이상화된 생각-12. 목소리가 하는 말의 내용. 영혼의 이해. 영혼 언어. 개인 체험의 연속][…빠르게 나는 새들지저귀는 새, 제비, 참새, 까마귀 등이다. 지금까지 내가 몇 년 동안 보아온 이런 종류의 새들 중 말을 하지 않는 새는 단 한마리도 없었다.- 15. 인간 놀음과 기적 놀음. 도와달라는 외침. 말하는 새][…여기에는 처음부터 불완전하게 말하는 시스템이 지배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내 신경이 돌입하게 된 진동 상태와 그것을 통해 생겨난 말은 그 자체로 완결되고 완성된 생각이 아니라 거의 모두 생각의 파편이고, 그것을 통해 그 말들이 어떤 이성의 의미를 지니도록 보충하는 일이 내 신경이 수행해야 할 과제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 더 정확히 말하면 사유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침해-이것이 사유 강제의 본질-16. 사유 강제, 그 형태와 부수 현상][…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와 관련되어 있다-20. 나 개인과 관련된 광선이 자기중심 기반 이해. 개인 관계의 진전 양상][…지금 내 몸이 그 현상에서는 다른 어떤 여성 존재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의 쾌락신경으로 가득 차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날 관찰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따라서 내가 들어서게 된 이 미친 삶의 상황에서 내 삶을 이끌어가는 기술은 양쪽 모두, 곧 신과 인간 모두 기꺼이 따라갈 만한 적절한 중간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길이란 신의 광선들이 내 몸의 영혼 쾌락에 참여해 소멸함으로써 그들에게 그 소멸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고, 나로서는 때때로 밤에 이성 신경을 쉬게 함으로써 정신 욕구에 걸맞은 일에 종사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라도 유지하는 것이다.- 21. 축복과 쾌락 사이의 관계. 이것이 개인 행동에 미치는 결과]


판사라는 일을 할 정도로 그 시대의 엘리트였기에, 슈레버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병에 대해 분석을 기록한다. […처음부터 아직은 더 상세히 설명하기 힘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내 잠을 방해하려는, 그리고 나중에는 불면증으로 인한 내 병의 치유를 막으려는 특정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극단 수준에서 이루어진 불확정 고의-특정한 의도 없이 이루어지는 범법 행위-일 수 있었음)] 이는 외부의 누군가? 무언가?를 끌어들여 그것이 최초 원인으로 작용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방식으로 관점을 가져간다고 파악된다. 그리고 앞서 말한 신경언어에 대해서는 자신이 건강한 사람들과 다른 부류라고 인식하는 것까지는 동의하는 바이나, '건강=정상'이고 '(정신분열을 포함한) =비정상'이라는 근대의 사고에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또한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탈남성화를 상당히 무게감있게 쓰고 있다. […인류를 갱신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탈남성화는 우주 역사의 초창기에 우리 지구에서건 혹은 다른 천체들에서건 실제로 이미 수차례 일어났던 일이다. 또한 나에게 일어난 기적들 중 적지 않은 부분도, 또 내 육체를 쾌락신경으로 채우는 일도 분명한 탈남성화의 징조를 보여준다. 하지만 검증된 영혼들이 출현한 이후 신이 결정한 세계질서에 어긋나는 설비들로 인해, 아직도 정말 탈남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특정한 예언을 하지 않겠다.]


이런 현상에 대한 근본 원인 또는 추동자로 신이 도사리고 있다.[신과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 오늘까지 내 육체는 끊임없이 신의 기적의 대상이었다….내 육체의 어떤 부문도 어떤 기관도 잠시나마 기적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그 어떤 근육도 다양한 목적으로 움직이거나 마비시키려는 의도로 기적에 의해 희롱당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11. 기적을 통한 육체 통합의 훼손] […무언가가 생기기를 원하는 신이 광선을 통해 이 의지를 보내면, 그가 원하는 것은 그 즉시 생겨난다. 성경은 이를 "신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18. 신과 창조 과정. 자연 발생, 기적을 통해 생겨난 곤충들. 시선 이동. 시험 체계] […신은 인간 창조라는 창조 작업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만 기적의 힘을 발휘한다. 이 시점 이후 신은 자신이 창조한 유기의 세계를 그 자체에 맡겨둔 채 아주 예외의 경우에만 가끔 기적을 통해 개입한다. 통상 신은 다른 천체에만 관여하고, 세상을 떠난 인간의 영혼을 천상계로 끌어올리는 활동에 주력한다. 그 자신은 광활하게 먼 곳으로 퇴각했다.- 19. 앞 장의 계속. 신의 전능과 인간 의지의 자유]. 이러한 신에 대해 나름 슈레버는 방어하고 있다. [저주받은 기분 창조내가 경박한 데다가 단지 순간의 향유에만 매달려있는 인간이라는 인상을 만들기 위해 기적을 통해 내 기분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적을 통해 기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연관관계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험의 의미가 갖는 특별함에 대한 확신, 현실의 인식에 대한 객관과 주관의 혼재가 흠뻑 뒤섞여 있다.[…앞으로는 위에서 말한 생각으로 나를 이끌었던 지각을 전달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 목적은 독자들이 여기서 접하는 것이 단지 한 불쌍한 정신병자-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의 공허한 헛소리에 불과한 것잉 k니라, 매우 특별할 뿐더러 다른 사람에게는 본성상 접근 불가능한 경험에 입각해있고, 또 수년간의 성숙한 사유를 통해 얻은 결과라는 것, 나아가 그것이 비록 모든 면에서 완전한 진리를 함축하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수천 년간 이것에 대해 사유하고 기록해온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리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다…하지만 나는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진리애와 비범할 정도로 날카로운 관찰력이라는 이 두가지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특성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마지막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분석과 약한 예측을 행하고[…인류를 갱신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탈남성화는 우주 역사의 초창기에 우리 지구에서건 혹은 다른 천체들에서건 실제로 이미 수차례 일어났던 일이다. 또한 나에게 일어난 기적들 중 적지 않은 부분도, 또 내 육체를 쾌락신경으로 채우는 일도 분명한 탈남성화의 징조를 보여준다. 하지만 검증된 영혼들이 출현한 이후 신이 결정한 세계질서에 어긋나는 설비들로 인해, 아직도 정말 탈남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특정한 예언을 하지 않겠다.] 결론으로서, 고통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 적어도 그 고통이 앞으로 지속은 없어야 한다는 의지[…가장 심한 모욕을 겪고 매일매일 끔찍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여겼던 그 시기에 내가 광선에게 했던 말이 있다. 그것은 이를 보상해줄 정의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윤리상 무결하며 세계질서의 토대 위에 서있는 인간이 그에게 적대한 힘들과의 투쟁으로 인해 몰락하는 일은, 그가 다른 이들의 죄를 대속하는 죄없는 희생자가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와 그 자신의 경험이 앞으로 미래에 종교 변혁으로 될 가능성으로 마무리짓는다.[…나는 내 운명의 미래에 종교와 관련된 생각의 규모가 알려지고 그 올바름을 증거하는 무게 있는 근거가 인류의 종교에 대한 표상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거대한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아니 가능하다고 여긴다….나는 승리에 찬 진리의 힘을 믿는다.]


맨 앞에서 말했지만, 이 글을 읽으며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스스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말해주는데 나와 거리가 너무 커보이고 선뜻 그 거리를 좁히려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인내심의 한계를 많이 느껴왔지만, 다른 책을 읽기 위한 중요한 자료로서, 그리고 슈레버가 겪었을 경험과 고통을 생각해서 끝까지 읽어나갔다. 그리고 글쓴 이가 겪은 특이한 현상 중에는 확신이 부족함을 전제로 적는 사항이 꽤 나온다. 그 특이한 경험은 확신의 단계에 터잡지 못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스스로의 철학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달린, 많은 유명인들의 이 책에 대한 찬사가 내게는 와닿지 않음이, 나도 그만큼 근대의 떼를 타버린 결과일까? 상상력의 부족함일까?


마지막 글을 이렇게 정리해보았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초반 상류층의 인생을 살아간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인권, 자유, 권리 등 근대 정신을 실제 향유할 수 있는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서 그는 불편부당, 부자유, 외부 주체에 의한 강제, 훼손 등을 경험했고 기록했다. 하지만 (아무리 근대가 가장 발달한 유럽이라 해도) 개인의 정신이 아닌 실제 삶에서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해보면 슈레버는 이 책을 쓰는 그 상황에서조차 무언가 진정한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슈레버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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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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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가정은 일부일처(축첩 금지), 독립 공간, 화목한 모습, 많지 않은 아이 등 의 모습으로 표준화되어 사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중요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표준화를 깨는 사람은 외부에 있는 누구건, 내부에 있는 누구던지 제도, , 관습 그 어떤 것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가 되어다. 적어도 가정(가족)의 관점에서는


이 책은 그러한 가정을 깨뜨린 그 누군가의 인생의 일부를 다룬 이야기다. 제목이 조금 어렵게 보이는 이 책은, 주인공인 남자와 그의 곁에 있던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라 불리고 있는 어머니 세명이 나와서, 몇가지 소재에 대한 원곡을 노래(주인공)하거나 변주(여자, 어머니)가 노래된다. 그 원곡이 정말 원곡인지, 아니면 오히려 변주가 더 원곡에 충실한지는 이 책에서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글쓴 이의 다른 책을 먼저 읽다가 말아버린 경험이 있어서인지 선뜻 이 책을 잡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지는 않았지만, 요즘 하태하태로 불리는 분의 책을 읽어봤다는 말을 해보고 싶어서 용기내어 읽었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말을 덜하고 책을 마무리했나 싶은 마음이다. 소제목으로 세개의 소재를 늘어뜨리는 참신성은, 그 의도가 무엇인지 살짝은 느낌이 와도 그 진정성을 100% 공감하기엔 내 상상력이 많이 부족한가보다. 글의 마무리는, 그 형식 측면에서는 갖출 것을 다 갖고 있더라고 (굳이 본질을 구별해보면) 마치 내가 알아서 마무리해야 하는 숙제를 받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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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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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의 하나인 스티븐 호킹이 쓴 우주의 생성에 대한 이야기라서 선뜻 읽게 되었다. 고맙게도 저자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 세가지를 정리했고 이 내용은 계속 이야기의 뿌리로서 자리잡고 나아간다. [우주를 가장 깊은 수준에서 이해하려면 우주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라는 질문 뿐만 아니라 왜라는 질문에도 대답할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 근대 이후 철학이 차지한 자리를 부정한다.[…철학은 이제 죽었다. 철학은 현대 과학의 발전, 특히 물리학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철학자가 아닌, 과학자가 프로메테우스라고 공언을 하며 나온다. [지식을 추구하는 인류의 노력에서 발견의 횃불을 들고 있는 자들은 이제 과학자들이다.] 그 횃불로 M이론을 말한다.[…궁극의 만물 이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런 이론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알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M이론이다. M이론은 궁극의 이론이 갖춰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속성을 모두 갖춘 유일한 모형이며 우리가 지금부터 전개하는 논리의 상당 부분이 의지하는 이론이다.]


암흑의 중세 시대 우주관을 뛰어넘은 이론가로 라플라스의 과학 결정론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라플라스는…태양계는 그처럼 스스로 자신을 재조정할 것이었다. 따라서 태양계가 현재까지 유지된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의 개입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라플라스의 입장이었다.] 이 분의 과학결정론을 들어보자.  [과학 결정론이란, 어느 한 시점에서 우주의 상태가 주어지면, 완전한 법칙의 집합에 의해서 우주의 미래와 과거가 철저히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기적이나 신의 능동 역할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라플라스가 제시한 과학 결정론은 위의 두번째 질문(법칙의 예외, 이를테면 기적은 존재할까?)에 대한 근대 과학자의 대답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모든 근대 과학의 토대이며, 이 책 전체의 중요한 원리가 된다세번째 질문(가능한 법칙의 집합은 오직 하나뿐일까?)은 우주와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법칙이 유일한가에 관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첫번째 질문(법칙의 기원은 무엇일까?)을 받고 신이 법칙을 창조했다고 대답한다면, 세번째 질문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신은 그 법칙들 말고 다른 법칙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과 데카르트와 아인슈타인은 자연의 원리가 필연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의 근거는 지금 존재하는 자연의 원리만이 유일하게 논리상 이치에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추종자들은 자연법칙이 논리에서 기원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연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 법칙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학결정론이란, (기적처럼) 신이 수행할 역할을 과학으로 대체하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종교가 과학으로 변한 것일뿐이라는 극단의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은 모델을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면 좋은 모형이 갖출 조건은 무엇일까? [1.우아할 것, 2.자의 또는 조정 가능 요소를 거의 포함하지 않을 것, 3. 기존 모든 관찰에 부합하고 그것을 설명할 것, 4.만일 틀렸을 경우 모형을 반증할 수 있는, 미래 관찰에 관한 상세한 에측을 내놓을 것 이다.] 그런데 좋은 모형이란? 우아함이란? 책에 설명은 나와있지만 선뜻 와닿지는 않는다.


이미 생명력이 다해가는 이론이지만, 이번에는 고전 물리학으로 눈을 돌려보자. [양자물리학 등 일상 경험과 동떨어진 틀을 기초로 삼은 이론도 고전물리학이 매우 정확하게 모형화했던 일상 사건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단연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와 우리 주변의 사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관찰 가능한 우주에 있는 별들보다 더 많은 원자들로 이루어진 복합물이기 때문이다뉴턴 이론의 예측은 우리 모두가 우리 주위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터득하는 실재관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개별 원자, 분자들은 우리의 일상 경험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 양자 물리학은 그 이상한 원자, 분자들의 우주를 표현하는 새로운 실재 모형이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은 예측력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 아무리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계산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물리 과정의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연은, 어떤 시스템의 초기 상태가 주어졌을 때, 그 시스템의 미래 상태를 불확정 과정을 통해서 결정한다. 자연은, 심지어 가장 단순한 상황에서도, 과정이나 실험의 결과를 명령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은 제각각 실현된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다양한 경우를 허용한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결정론을 정리한다.[ 어떤 시스템의 특정 시점에서의 상태가 주어지면, 자연법칙은 그 시스템의 미래와 과거를 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미래와 과거의 확률을 결정한다.] 이러한 고백은, 맨처음 말한 철학의 죽음, 그리고 물리학의 자리 승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새로운 결정론 대안을 위해 실행한 버키볼 실험을 살펴보자. [우리의 관찰과 관찰 사이에서 버키볼은 모든 경로들을 거친다. (양자 물리학에 따르면) 현재에 대한 우리의 관찰이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관찰되지 않은) 과거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불확정되어있으며 다만 가능성의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우주는 단일한 과거 혹은 역사를 가지지 않는다. 시스템의 과거가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당신의 현재 관찰이 시스템의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영화(백투더퓨처)처럼, 주인공이 과거로 거슬로 올라갔을 때 현재(주인공)가 과거(부모님)에 영향을 주는 게 떠오른다. 타임머신은 이미 운영중인가?


이제 시간을 들여다 보면, 시간의 비절대성이 나온다. [정지와 운동이 절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절대가 아님을, 뉴턴이 생각한 절대시간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모든 각각의 사건에 모든 관찰자가 동의할 시간 좌표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모든 관찰자는 제각각 나름의 시간 척도를 가졌고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두 관찰자의 시간 측정값들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제 시간은 공간과 (개념상) 합쳐져서 시공(space-time)이 된다.[ 광속이 모든 기준 틀에서 동일하다고 전제맥스월 전자기 이론은 시간을 공간의 세 차원과 별개로 취급할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은 얽혀 있다. 그렇다면 좌/, /, /아래에 네 번째 차원으로 과거/미래를 추가해서 한꺼번에 다뤄야 한다. 이렇게 결합된 시간과 공간을 시공이라 한다.] 이후 양자 역학에서 모든 가능하 역사들의 합을 도표로 표현한 파인만 도표, 양자중력이론, 끈이론을 거쳐 M이론이 나온다. [M이론은 10차원이 아니라 11차원 시공을 이야기 한다. 진동하는 끈들과 더불어 점 입자들, 2차원 막들, 3차원 덩어리들, 그리고 시각화하기 더 어렵고 더 많은 차원을 차지하는 다른 대상들까지 수용할 수 있다.] 이러한 M이론은 여러 이론을 끌어 안을 수 있는 메타이론이고, 무언가 이론을 확정하지 못한 유보상태가 아닐까?


두더쥐잡기 식의 논의를 거쳐, 이 책을 쓴 위대한 물리학자는 (마치 정치인처럼)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과학사의 전환점에 도달한 듯 하다. 물리이론의 목표와 조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때가 된 성싶다는 말이다. 가시화된 자연법칙에 등장하는 근본 수들의, 그리고 심지어 자연 법칙의 형태는 물리학의 원리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 것 같다. 자연법칙에 등장하는 매개변수들은 다양한 값들을 가질 수 있고, 자연법칙들은 수학의 일관성만 유지된다면, 어떤 형태라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양한 우주에서 다양한 값들과 형태들을 자유롭게 취한다.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하고 모든 물리법칙을 담은 깔끔한 꾸러미를 발견하기를 원하는 인간에게는 이것이 불만스러울지 모르지만, 이것이 자연의 실상인 것 같다.] 결국 물리학은 메타 학문으로 가겠다는 말일까?


결국 우주가 생기고, 거기에 사람이 생긴 건 행운이라는 (물리학과는 동떨어져보이는 이야기로) 논리를 가져온다. [프레드 호일은 모든 화학 원소들이 수소로부터 형성되었다고 믿었고, 수소는 진정한 원초 물질이라고 여겼다. 수소 원자핵은 가장 단순해서 양성자 하나만으로 이루어졌거나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 또는 둘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원자핵에 양성자가 두개 또는 세개 있는 헬륨이나 리튬도 우주의 나이가 약 200초였을 때에, 비록 훨씬 더 적은 양이나마, 합성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행운은 신이 준 것은 아니다.[ …우리 우주는 각기 다른 법칙을 지닌 수많은 우주들 중 하나일 것이다... 다수의 우주가 있다는 생각은 현대 우주론의 많은 이론과 무경계 조건의 귀결이다만일 다수의 우주가 있다면, 물리 법칙의 미세 조정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 요소의 미세 조정과 지위가 동등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의 우주 거처는, 태양계가 수많은 태양계들 중의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우주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대한 설계란 자발에 의한 창조이다. [자발() 창조야 말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이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신에게 호소할 필요는 없다.]


정리해보면 우리의 존재 이유는 우리 스스로로 말미암음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다시 신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대신 과학으로 이를 증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과학이 신의 입장으로 올라가버린 지금의 현실은, 과학이 종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차례가 왔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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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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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AD를 같이 산 오비디우스가 쓴, 영어로는 metamorphoses는 신과 사람의 다양한 변신의 원인과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처럼,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이라는 존재는 사람과 거의 비슷하게 희로 애락을 비롯한 오욕칠정에 아주 충실한 존재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신은 인간을 대상으로 벌주거나 변신시키는 능력이 있지만, 사람은 신에게 그렇게 할 수 없는 관계의 비대칭성이 있음이다. 그렇더라도, 여기서의 신은 유일신 신앙에서 등장하는, 우리와 동떨어진 그 무엇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책을 보면서 떠오르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여기서의 신이, 주신(主神)인 유피테르가 왕이고, 유노는 왕비, 주신의 형제는 왕족이고 다른 신들이 귀족이라고 본다해도 이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로서 유효할까? 이때 카오스는, 원부족이 살았던 때와 장소이고, 그 엉망인 것(카오스)에 어딘가 새로운 곳에서 흘러온 신과 투쟁을 통해 천지(새 세상, 새 왕국, 새 질서,)이 만들어졌다면? 새로운 왕국이 만들어진 후, 자신들(새 부족)의 전성 시대를 맞아 유피테르는 (때로는 변장을 하면서까지) 수많은 신부감을 찾아 다니고, 왕비인 유노는 그 상대방에 대한 질투에 그치지 않고 적극 응징하는 차원에 이른다. 그 와중에 왕족과 원주민의 피가 섞인 영웅(페르세오스, 테세우스, 멜레아그로스)이 등장하면서, 그 왕국은 점차 안정기를 맞는다. 그 후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아라크네, 니오베, 마르쉬아스)은 신에 의한 철저한 응징으로 일벌백계의 교훈을 인간이 스스로 느끼게끔 만들었다면?

여러 신화를 보면 그 신화만의 독특한 인물/ 배경/ 상황이 있고, 여러 신화에 공통으로 나오는 내용이 있다. 이 신화나 저 신화에 계속 나온다는 건 그 당시 엘리트의 눈으로 그럴듯해보이는 분석이 겹친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무언가 그 당시 지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했을 그 무언가가 있었을 듯 싶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오늘날의 과학이라는 틀과는 분명 다른 관점과 분석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것들이 오늘날 과학이라는 새로운 전지전능한 종교의 기세에 눌려 우리의 관심사 밖에 있음은 매우 아쉽다. 또한 우리의 상상력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몰려온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분께서 일본어의 잔재가 남은 투의 번역을 하심에 대해서 후학으로서 반성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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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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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앞날에 대한 느낌을 구체화해서 나타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렇게 볼 때 이책(누운 배)은 그 이름에 충실하게 본다면 소설 속 나(주인공)를 포함한 회사의 모습에 대한 은유이자 우리 사회의 암울한 앞날에 대한 빗댐이다. 한국이라는 배는 김예슬이라는 21세기 유관순이 몸을 던져 균열을 만들었고, 그 균열이 점점 커져 배꼬리부터 가라앉고 있다. ‘이미 잠긴 곳이 세월호였고, 이제는 산업으로 번져가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조금 앞서간 말일까?


책에 나오는 조선 관련 용어와 업무, 회사에서의 정치 짓거리를 보면서 내 직장 생활의 기억과 겹쳐진다. ‘이윤추구’, ‘정도 경영’, ‘혁신이라는 대의 명분 속에서 정말 난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패거리/왜곡/골탕먹이기/사람 바보 만들기 등 온갖 추악한 모습이 떠올랐고, 그 분탕질 속에서 살아남아 올라가신 최고 경영자를 보면 존경이라는 덕목이 과연 어울리는 말인지 의문시되고 고민되고 괴로웠다. 주인공 문대리는 3년차지만 아주 압축된 직장 경험을 했고, 난 그걸 아는 데 17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회사 내 온갖 암투를, 그리 오랜 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 치고는 꽤 잘 풀어나갔다.


한 권의 소설로 아주 잘 쓰였음은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하나 말하고 싶은 건, 이제 우리 사회의 건강치 못함(‘아프다!’)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져서, 아픔의 다음 단계로 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다. 경기가 나쁜 건, 마치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이다. 하지만, 경기 하강이 지속되면(그래서 호황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마치 1년 내내 겨울이 지속되는 것으로, 그렇게 겨울이 오래 되고, 정치와 사회가 엉망이 되면 우리 인류는 평화의 반대편을 향해 치닫곤 하지 않았던가?


글속 조상무로 대표되는, 믿는 빽이 있는 사람들이 조직의 질서를 해체하고 자기(또는 자기 위의 최종 의사 결정자)에 맞게 조직(시스템)을 쥐고 흔들고 위에 약하고 아랫사람에게는 한없이 강한 그런 사람이 왜 그리 사회의 상층에서 다 눈에 자주 띄는지, 그게 우리의 역사이고 사회생활의 진리일까? 이승만의 이기붕, 히틀러의 요제프, 이세황제의 조고 등 그런 2인자는 역사에 숱하게 나온다.


회사를 그만두고, 마냥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이 책을 우연히 알고 읽다가, 그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엇갈린다. 누군가에 끌려가거나 지시 받지 않고, 내 의견을 입속에 담아 놓기만 하고, 분노를 억누르는 그 노예의 마음을 벗어나려고, 적지 않은 무리와 만류를 감수하고 회사를 나왔고, 회사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차 있다. 그 고민의 흔적을 이렇게 좋은 글로 승화시킨 글쓴 이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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