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최근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어떤종류의 신을 믿었다. 요즘 들어 종교를 믿는 사람이 소수가 된 서유럽을 제외하면,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여전히 신 또는신들을 믿는다. 특히 과학교육을 잘 받지 못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신에 대한 믿음을 다윈주의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않을까? 종교적 믿음, 어떤 종류의 신 또는 신들에 대한 믿음이 우리 조상들이 살아남아 종교적 믿음을 위한 유전자를 물려주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나의 대답은 ‘아마 그럴 것이다‘이다.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그게 사람들이 믿는 신이 어떤 신이든-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건 전혀별개의 문제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써 심지어 목숨도 건질 수 있다. - P289

이제 핵심을 좀 더 전문적으로 표현해보겠다. 인간은 행위자agency를 믿는 경향이 있다. 행위자가 무엇일까? 행위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존재이다. 바람이긴 풀을 바스락거리게 할 때는 행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은 행위자가 아니다. 사자는 행위자이다. 사자는 여러분을 잡아먹으려는 목적을 가진 행위자이다. 사자는 여러분을잡기 위해 정교한 방법으로 행동을 수정하고, 도망치려는 여러분의 노력을 좌절시키기 위해 힘차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행위자는 무서워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괜히 시간과 노력을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행위자인 줄 알았던 것이 실제로는 바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평균적으로 위험할수록 모든 곳에서 행위자를 보는 쪽으로, 그래서 때때로 거짓을믿는 쪽으로 균형이 옮겨가야 한다. - P291

행위자에 대한 두려움은 설령 그것이 비이성적일지라도, 설령이 경우와 같이 적절하지 않더라도 조상들이 살던 과거의 잔재로 우리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내동료앤디 톰슨 박사는 저서 《왜 우리는 신(들)을 믿는가Why We Believe in God(s)》에서, 우리는 그림자를 강도로 착각하기는 해도 강도를 그림자로착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행위자를 보는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심지어 행위자가 없을 때에도 말이다. 그리고 종교는 우리 주위의 모든 곳에서 행위자를 보려는 경향이다. - P292

우리 조상들의 종교는 ‘애니미즘‘이었다. 그들은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행위자를 보았고, 종종 그것을 신이라고 불렀다. 스티븐 프라이의 멋진 책 <미토스Mythos》를 보면 분명히알 수 있듯 그리스 신들은 이렇게 출발했다. 세계 도처에 강의신, 천둥의 신, 바다의 신, 달의 신, 불의 신, 태양의 신, 어두운숲의 신 또는 악마가 존재했다. 태양은 신이었다. 기도와 제물로 간청하고 달래지 않으면 내일 뜨지 않기로 결심할지도 모른다. - P292

야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유대인의 유일신으로 진화했고, 결국 그리스도인과 이슬람교도에게도 유일신이 되었다. 그 전에는 유대인의 뿌리인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많은 신들 중 하나인 ‘폭풍의 신‘이었다. 원래 야훼와 함께 숭배받던청동기시대 가나안 사람들의 신들 중에는 그 밖에 다산의 신바알, 최고의 신 엘과 그의 아내 아세라 여신이 있었다. 몇몇종교사학자에 따르면 야훼는 나중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엘및 아세라와 합쳐져 결국 유대인의 유일신이 되었다고 한다. - P293

가뭄이 들었을 때 우리 조상들이 비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결국 비가 왔다. 아마 그들의 의도대로비의 신을 설득하기까지는 많은 제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뭘 어떻게 하든 비가 오는지 보기 위해 비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는 실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 P299

종교의 번성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비다윈주의적 설명은 왕과 성직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국민의 믿음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 P305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생명체의복잡성, 아름다움, 유목적성은 명백히 지적인 창조자의 손에설계된 것처럼 보였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다른 생각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전투에 임하는 군인이 보여주는 용기와 같은 물리적 용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건 지적 용기이다.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가능성을 심사숙고하고 이렇게 말할 용기. "설마 그럴 리가. 그래도 틀릴 셈 치고 그 가능성을 조사해보자." 대포알과 깃털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확실히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그 가능성을 조사하고 증명할 지적 용기가 있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한때 하나였다가 서서히 멀어졌다는 것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들렸다. 하지만베게너는 그 생각을 따라갈 용기를 냈다. 인간의 눈처럼 명백히 설계된 무언가가 실제로는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다윈은 그 말도 안 되는가능성을 조사할 용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안다. 그가 제기한 가능성은 모든 생명체의 모든부분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옳았다. - P340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간단한 진리는 그 모든 똑똑한 그리스인, 다윈 이전의 그 모든 대단한 수학자와 철학자의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명백해 보이는 것을 거역할 지적 용기가 없었다. 그들은 하향식 창조를 역력히 드러내는 것처럼 (잘못) 보이는 것들에 대한 경이로운 상향식 설명을 간과했다. 진정한 설명이 아주 간단하다는 사실은 그것을끈질기게 조사해 자세히 알아내는 데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자연선택이 그 모든 똑똑한 사람들을 비켜간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기 때문이다. 생명의 그 모든 복잡성과 다양성을 설명하는 힘든 일을 하기에는 너무 간단하다고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P341

요즘 신을 섬기는사람들(어쨌든 그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다)은 창조자가 있다는 증거로 생명 세계를 거론하는 것을 포기했다. 생명에 관한 한 다윈주의 진화가 완전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을 그들도 이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다른 종류의 논증으로 갈아탔다. 다소 절박하게 적어도 내게는그렇게 보인다 그들은 다른 ‘틈새‘로 관심을 돌렸다. 그것은우주론과 물리학의 기본 법칙 및 상수를 포함한 모든 것의 기원이다. - P344

우리가 아는 생명은 액체상태의 물이 필요하다. 물은 오직 좁은 범위의 온도에서만 액체로 존재한다. 너무 차가우면얼음이 되고, 너무 뜨거우면 수증기가 된다. 우리 행성은 우연히 태양으로부터 딱 적당한 거리에 있고, 그래서 물이 액체일수 있다. 우주에 있는 대부분의 행성은 그들의 항성에서 너무멀리 떨어져 있거나(예컨대 명왕성이 그렇다. 물론 명왕성을 더 이상행성으로 분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 해도 이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 가까이 있다(예컨대 수성이 그렇다). 모든항성에는 ‘골디락스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고, 아기 곰의 죽처럼 ‘딱 적당한 곳이 있다. 지구는 태양의 골디락스 존에있다. 수성과 명왕성은 서로 정반대의 이유로 그렇지 않다. 물론 인류 원리는 우리가 지구에 존재하기 때문에 지구가 골디락스 존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행성이 골디락스 존에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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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는 언제 어디서나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고봅니다. 국가나 경제나 모든 것이 인과응보의 선상에서 부침하는 겁니다. 그것이 역사입니다. - P58

그러면 코로나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리스본대지진보다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끼칠 거라고 봅니다. 어떤 영향일까요? 이제 인류가 앞서 말한 인과응보를알고 좀 더 겸허해지고 욕망을 자제하고 나아가 탐.진.치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으로 봅니다 - P60

이 우주는 자비 구조입니다. 평소에 항상 이야기하듯이 이 우주는 참 조화속이고 자비로운 구조입니다. 여러분, 코로나를 우주가 인류에게 자비 구조로서 작용하는 것이라고 봅시다. 그렇다면 우주가 인류에게무엇을 자비롭게 베풀고 있는가? - P61

왜? 인간은 편하게 살고 제멋대로 방자하게 살라고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비 구조인 우주가 그런 식으로 사는 인간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게아닙니다. 인간은 향상을 위해서 노력해야 되고 우주는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인간에게 온갖 성원과 가피를 다 보낸다는 말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말은 곧 ‘인간 향상‘이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요컨대 우주는 인간 향상을 통해 진리를 구현하는 쪽으로향하는 큰 흐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주입니다. - P63

전에 여러 번 말했듯이 ‘인생은 학교입니다. 인간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졸업해야 하지요. 말하자성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 학교인데 지금 공부를 잘못하니까 우주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큰일났다 싶어서, 시간이 없다 싶어서 계속 경책을 주는 것입니다. 인류가 그 경책의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회피해 버리면 우주는 더욱더 경책을 줄 수밖에 없잖습니까 - P65

이번 코로나 사태는 단순하게 매질만 하는 게 아니라 매질 모습이 참 얄궂고 묘합니다. ‘집에 들어앉아있어라, 접촉 좀 그만하고, 나부대는 거 그만하고, 가만히 좀 앉아 봐라.‘ 하니, 이거 강제 공부입니다. 우리는 그 강제 공부를 제대로 하여 큰 계기를 이루어야합니다. 그리하여 인류가 너나없이 자발적으로 앉아보면, ‘가만있으니 참 좋더라, 왜 그동안 그렇게 나부댔는지 모르겠다, 이제 조금 절제를 해보자.‘ 이렇게될 겁니다. - P67

지금 인류가 소위 합리주의를 취하고 있는데, 그 합리주의 극치가 과학입니다. 그런데 과학이 저렇게 극소와 극대라는 극단으로 치달을 뿐이니, 이것 또한 대단히 심각한 일입니다. 그 폐해는 가톨릭 종교재판보다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이 와서 인류가때마침 경책을 받고 향상할 조건은 갖추어졌으니, 여기서 이제 인류가 사고의 성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향상의 방향으로 사고를 트는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합니다. - P69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새로운 아비담마를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불교가 그 시대의 아비담마를 창조하는노력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서기 5세기 무렵에 불법이 상당히 활발하게 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 아비담마들이 그 시대에 나와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는 새로운 아비담마가 못나오고 있어서 너무 오래 조용한 겁니다. 벌써 천오백년이 지났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시고 5세기에 천년 만에 아비담마가 나온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그로부터 천오백 년이 지났는데 아직 이 시대의 아비담마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 P71

게다가 이번에는 새로운 아비담마가 적용될 무대가범지구적으로 엄청 커졌지요. 불교는 글로벌한 시대에 과학이라든가 온갖 학문들과 모든 경향을 다 포용해내면서도 동시에 아비담마라는 기초를 깔아주는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도많이 걸릴 겁니다. 마침 이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새로운 아비담마를 창조할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주의 경책을 받을 때, 향상하기위하여 그동안 해왔던 근본불교 공부를 좀 더 밀도 있게 그리고 열심히 해봅시다. - P72

과학이 현대의 종교라 할진대 문제는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의 행복은 외부 조건들과 내부 능력에 달렸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은 편리라는 외부 조건을 크게신장시켰지요. 그러나 그 지나친 편리는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능력, 즉 내면세계를 성숙시키는 능력을 근원적으로 파괴하여 얕고 피상적인 인격체를대량 생산했습니다. 그 결과 사회 자체가 본질적인 차원에서 경박해졌습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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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탐·진·치중에서도 진심이 극성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경쟁과 갈등을 일삼고 핵무기를 만들고 또 온갖공해를 쏟아내는 등 온통 머리를 나쁜 방향으로 쓰고있습니다. 그런데 핵무기나 공해는 윤리 도덕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세상사 모든 것은 인간의 윤리 도덕 수준에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윤리적으로 타락하다 보면 머리 쓰는게 전부 그쪽으로만 가니까, 핵무기도 만들고 생태계도 파괴하여 자멸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윤리 도덕의 문제, 가치 혼란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생존과 멸망의 문제로 곧바로 이어지는 겁니다. - P38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시대적 혼란에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시공을 초월할 가치 기준은 부처님이제시하신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는 계 · 정 · 혜戒定慧 삼학을 아우르고 있으니 윤리 · 도덕을 모두 포용할 뿐 아니라 이 둘을 바로 세워 줍니다. - P39

《법구경法句經 Dhammapada》에 "칠불통계七佛通戒"10라는유명한 게송이 나옵니다.

일체의 악을 짓지 말고

일체의 선을 받들어 행하고

스스로 그 마음을 맑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핵심 가르침이다. - P40

팔정도를 견지하는한, 초과학 시대든 초우주 시대든 그 어떤 것도 수렴하고 조복 받을 수 있고 나아가 어떤 환경도 지배할 수있습니다. 팔정도를 걸을 때 우리는 도덕적으로 조금도혼란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윤리도덕을 바로 세우고 가치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이때 팔정도가 답입니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생계(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집중 입니다. - P41

바른 견해가 중요한 것은 수행 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몇십 년을 수행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잘못된 수행은 오히려 안 한 것보다 못할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바른 견해를 팔정도 제일 첫머리에 놓으신 이유일 겁니다. 수행을 하려면 성급한 걸음을 멈추고 허리끈을 풀고 한 걸음 척물러앉아서, ‘정말 이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부처님 말씀을 내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 부처님 말씀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합치하는가?를 거듭거듭 점검해야 합니다. - P43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부처님이팔정도 각 항목 앞에 바를 정正자를 붙이셨습니다.
부처님이 <초전법륜경>에서 말씀하셨듯이, 바른 견해는 빠알리어 Pali삼마디티 samma ditthi인데, 삼마samma는 ‘바르다‘는 뜻입니다. ‘바르다‘ 함은 중도中道를 말하는 겁니다. 여기서 ‘바를 정자는 중도를 가리킵니다. 중도가 아닌 것은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르다는 말은 팔정도 항목 하나하나가 치우치지않고 중도를 잘 견지하고 있으며 잘 조화되고 있다는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정도가 중도이고중도가 팔정도입니다. - P45

중도의 묘미는 팔정도 여덟 항목을 유기적으로 조화롭게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히 바른 마음챙김(正念), 삼마 사띠 samma sati는 여덟 가지의 덕성이 바르게 조화되도록 만드는 중요한 축입니다. 견해가 견해를 위한 견해가 아니고, 계율이 계율을 위한계율이 아니고, 선정이 정을 위한 정이 아니 되도록하는 것은 무엇보다 바른 마음챙김입니다. 다시 말해팔정도를 수행하는 사람 누구나 바르게 중도의 길을가도록 이끄는 항목, 그것이 바른 마음챙김입니다. - P46

우리가 팔정도를 수행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결국 인간 향상이요, 인간 완성입니다. 무탐無貪·무진無瞋· 무치無癡의 경지에 이른 아라한이 되는 것입니다. 아라한이 되도록 기여하면서 이끌어가는 것이바른 마음챙김입니다. 요컨대 바른 견해와 바른 마음챙김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우리는 팔정도를바르게 걸을 수 있습니다. - P47

불교 특유의 인간관 때문입니다. 인간은 개개인 모두가 무한한 향상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탐진치 삼독심에 빠져있을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불선한 상태에서선한 상태로 나아가는 도정에 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불선을 극복하면서 마침내 선의 완성을 이루는 길 위에 있다는 겁니다. 그 길은 윤리와 도덕이 지향하는 바요, 인간됨의 완성을 향한 길입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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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인은 이렇게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 하지만 "제가 아홉 달 동안 아기로 발달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이 주신 DNA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무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론 사실이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는 그들의 부모에게서 DNA를 받았고, 그들은 다시 그들의 부모에게서 DNA를받았으며, 이런 식으로 수세대에 걸쳐 DNA를 받았다. 수십억년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은 아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DNA 지시 instruction가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다. 그 지시는 자연선택을 통해 만들어졌다. 즉 연마되고 개선되었다. 아기를잘 만드는 유전자는 그러지 못한 유전자를 이기고 전해졌다.
그리고 만들어진 아기의 종류가 수백만 세대에 걸쳐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변해갔다. - P268

자, 이제 정리해보자. DNA는 컴퓨터 코드처럼 디지털코드이다. 그리고 DNA는 부모의 디지털 정보를 자식과 그 뒤의 수많은 세대로 전달한다. 하지만 전달되는 그 정보는 청사진이 아니다. 그 정보는 어떤 의미로든 아기의 지도가 아니다.
부모의 몸을 스캔한 것이 아니다. 유전학 실험실에서 그 정보를 읽을 수 있지만 아기를 출력할 수는 없다. 인간의 DNA 정보를 아기로 바꾸는 방법은 DNA를 여성의 몸 안에 넣는 것뿐이다! - P271

발생학자들은 DNA가 어떻게 아기를 만드는지 연구한다. 현재 꽤 많은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책 한 권이 통째로 필요한데, 이 책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배아 발생,
즉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상향식이라는 것만 이해하면 된다. 흰개미 언덕이 지어지는 방식, 또는 찌르레기 무리가 조직화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청사진은 없다. 그 대신 발생하는 배아의 모든 세포는 진흙 대성당을 짓는 흰개미 개체처럼, 또는군무를 추는 찌르레기 개체처럼 자신만의 작은 국지적 규칙을따른다. - P277

그리고 그 변화를 일으킨 DNA가 다음세대에 나타날 가능성을 높이거나 낮춘다. 그러므로 세대를거치면서 수천년, 수백만년에 걸쳐 개체군에 살아남은 유전자는 그야말로 ‘유익한 유전자이다. 빨리 달리는 몸을 만들거나 긴 혀를 갖게 하거나, 물 없이 몇 킬로미터를 더 갈 수 있게 하거나,
이것이 바로 다윈의 자연선택이다. 즉 모든 동식물이 저마다 자기 일을 그토록 잘하는 바로 그 이유이다. 무엇을 잘하는지는 종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결국 한 가지 일을 잘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바로 뭘 하든 그것을 잘하게 만드는 DNA를 후대에 전달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이런 자연선택이 수천 세대에 걸쳐 일어난 후 우리는 (충분히 오래 산다면) 개체군내동물들의 평균적인 형태가 변한 것을 알아차린다.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수억 년이 지나면 많은진화가 일어나 물고기처럼 생긴 조상이 뒤쥐처럼 생긴 후손을낳게 된다. 그리고 수십억 년이 지나면 더 많은 진화가 일어나박테리아 같은 조상이 여러분이나 나 같은 자손을 낳게 된다. - P285

살아 있는 생물의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은 방식인 이유는그 조상이 수많은 세대에 걸쳐 그런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인류도 마찬가지이고, 인류의 뇌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적 믿음을 갖는 경향은 음악과 섹스를 좋아하는 경향과 마찬가지로 인간 뇌의 속성인 것이다. - P285

그러므로 종교적 믿음을 갖는 경향도 우리에 관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진화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대단치는 않지만 도덕적으로 또는 친절하게 행동하려는 우리의 경향도 마찬가지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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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고통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치의 혼란과 도덕의 상실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후가 어쩌니 공해가 저쩌니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지만, 또 한편에선 경기를 살려야한다며 소비지상주의를 외치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추종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역설입니까?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그만큼 재화를 많이 생산하고 소비한다는이야기인데 그 재화가 그저 생기는 겁니까? 그렇게하면 할수록 피할 수 없이 따르는 건 자연파괴, 자원낭비 아닙니까? - P21

대통령 후보 나온 사람들도 ‘경제가 잘 돌아가고, 모두 풍족한 생활을 하도록 만들겠다.‘고 공약을 내걸지요.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용납을 안 하니까요. 사람들이 얼마나 그걸 바라면 그런 약속들을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가 물질적 풍요만을 노래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지구가 끝장나도 그만이라는 말입니까? 오늘만 잘 살면그만입니까?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뒤바뀐 사고 성향과 뒤엉킨 가치관 때문입니다. - P22

게다가 이러한 뒤집힌 가치관을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이런 행태는 윤리 도덕과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가치 혼란을 겪고 있는 부모가 자식 키우면서도 자신 있게 이래라 저래라‘ 말 못합니다. 왜? 자식들이 경험하는상황과 부모가 머릿속에 그리는 상황이 현격하게 괴리되어 있는 현실에서 가치관이 흔들리다 보니 자신있게 판단을 못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 된 입장에서도 바른 길을 가르치기는커녕 자식 눈치 살피고 비위 맞추기에 바쁘지요. - P23

여러분, 자식에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소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돈, 돈, 돈하는 배금사상이 온통 가정과 사회에 팽배한 이 시대에 과연 도덕이 들어설 자리가 있기나 한 겁니까? 이렇듯 이 시대가 겪는 온갖 갈등과 고통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가치 혼란과 도덕상실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 P24

경제란 사바세계의 요란하고 혼란스러운 활력 그자체입니다. 경제가 활발하다는 것은 인간들이 대단히 분주하고 맹렬하게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이 물질을 좇아 나부대는 움직임, 그게 바로 경제입니다. 인간들이 나부댈 때는 어떤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요새 ‘산업경제에서 금융경제로 변화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 P25

생산은 효율성이 제일 중요하지요? 산업경제는 효율성을 가장 높은 가치로 생각하니까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고의 선이 됩니다. 그런데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이윤이 한 쪽에 치우쳐 쌓이거든요. 가진 사람은 지나치게 많이 갖고 못 가진 사람들은 점점 가난하게 되어 부익부益富,빈익빈 현상이 심화됩니다. 이런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분배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지요. - P27

분배경제에서는 재화가 어느 한 군데 쌓이지 않고두루두루 나누어지고, 또 그 흐름이 막히지 않고 순조롭게 흐르도록 하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그런데 분배의 수단, 즉 교환 수단이 돈이다 보니까 금융시장의기능이 가장 중심이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산업경제로부터 금융경제로 이동한 것입니다. 분배경제에서는 돈을 모시는‘ 태도, 말하자면 황금만능의 가치가팽배해집니다. 물심物정도가 아니라 금심 사람들 사이에 퍼집니다. - P28

돈과 에너지를 써 가며 자꾸 노예가 됩니다. 언제 어디서도 돈의 통제를 못 벗어납니다. 이처럼 분배경제에서는 금융이 주를 이루면서, 돈에 대한 물신적 선망과 무조건적인 충성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금융자본주의시대에 들면서 꼼짝없이 교환가치, 즉 돈 중심의 가치관이 뿌리내려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모두가 황금만능주의라는 종교의 맹신자들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 P29

현재 지구촌은 산업경제의 가치관과 분배경제의 가치관이 혼재된 속에 돌아가고 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산업경제의 주된 원리는 효율성인데, 효율의 극대화는 다다익선을 부추겨 결국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치를 조작하고 조직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이 점에 대해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해도 그건 본질을 가리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 P30

그러면 분배경제의 가치관은 뭘까요? 분배경제에서는 사회 정의를 강조하니까 평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사회 정의에 어긋난다.‘는 식으로 비판을받게 됩니다. 그래서 분배경제 시대에는 인간의 증오심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경제가 진행되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 결국 인간의 증오심이 커지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불교용어로 보자면, 탐·진·치 중 진심이 지배하는 시대가 됩니다. - P31

그리고 소비경제를 봅시다. 소비를 할 때 ‘내가 이물건을 써서 어떤 이익이 있느냐, 내 몸에 어떤 이익이 있고 내 정신에 어떤 이익이 있어서 내가 이걸 써야 하느냐 하는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합리적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합리적 소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는 것은 불교 용어로 보면탐 · 진 · 치중 치암 때문입니다. - P32

이처럼 경제 구조의 변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가치혼란을 날로 더 심각하게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매사에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바야흐로 시공을 초월한 불교의 도덕이 요청되는 시대적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불교의 도덕은 사람들이 바르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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