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고통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치의 혼란과 도덕의 상실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후가 어쩌니 공해가 저쩌니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지만, 또 한편에선 경기를 살려야한다며 소비지상주의를 외치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추종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역설입니까?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그만큼 재화를 많이 생산하고 소비한다는이야기인데 그 재화가 그저 생기는 겁니까? 그렇게하면 할수록 피할 수 없이 따르는 건 자연파괴, 자원낭비 아닙니까? - P21
대통령 후보 나온 사람들도 ‘경제가 잘 돌아가고, 모두 풍족한 생활을 하도록 만들겠다.‘고 공약을 내걸지요.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용납을 안 하니까요. 사람들이 얼마나 그걸 바라면 그런 약속들을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가 물질적 풍요만을 노래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지구가 끝장나도 그만이라는 말입니까? 오늘만 잘 살면그만입니까?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뒤바뀐 사고 성향과 뒤엉킨 가치관 때문입니다. - P22
게다가 이러한 뒤집힌 가치관을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이런 행태는 윤리 도덕과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가치 혼란을 겪고 있는 부모가 자식 키우면서도 자신 있게 이래라 저래라‘ 말 못합니다. 왜? 자식들이 경험하는상황과 부모가 머릿속에 그리는 상황이 현격하게 괴리되어 있는 현실에서 가치관이 흔들리다 보니 자신있게 판단을 못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 된 입장에서도 바른 길을 가르치기는커녕 자식 눈치 살피고 비위 맞추기에 바쁘지요. - P23
여러분, 자식에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소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돈, 돈, 돈하는 배금사상이 온통 가정과 사회에 팽배한 이 시대에 과연 도덕이 들어설 자리가 있기나 한 겁니까? 이렇듯 이 시대가 겪는 온갖 갈등과 고통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가치 혼란과 도덕상실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 P24
경제란 사바세계의 요란하고 혼란스러운 활력 그자체입니다. 경제가 활발하다는 것은 인간들이 대단히 분주하고 맹렬하게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이 물질을 좇아 나부대는 움직임, 그게 바로 경제입니다. 인간들이 나부댈 때는 어떤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요새 ‘산업경제에서 금융경제로 변화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 P25
생산은 효율성이 제일 중요하지요? 산업경제는 효율성을 가장 높은 가치로 생각하니까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고의 선이 됩니다. 그런데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이윤이 한 쪽에 치우쳐 쌓이거든요. 가진 사람은 지나치게 많이 갖고 못 가진 사람들은 점점 가난하게 되어 부익부益富,빈익빈 현상이 심화됩니다. 이런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분배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지요. - P27
분배경제에서는 재화가 어느 한 군데 쌓이지 않고두루두루 나누어지고, 또 그 흐름이 막히지 않고 순조롭게 흐르도록 하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그런데 분배의 수단, 즉 교환 수단이 돈이다 보니까 금융시장의기능이 가장 중심이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산업경제로부터 금융경제로 이동한 것입니다. 분배경제에서는 돈을 모시는‘ 태도, 말하자면 황금만능의 가치가팽배해집니다. 물심物정도가 아니라 금심 사람들 사이에 퍼집니다. - P28
돈과 에너지를 써 가며 자꾸 노예가 됩니다. 언제 어디서도 돈의 통제를 못 벗어납니다. 이처럼 분배경제에서는 금융이 주를 이루면서, 돈에 대한 물신적 선망과 무조건적인 충성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금융자본주의시대에 들면서 꼼짝없이 교환가치, 즉 돈 중심의 가치관이 뿌리내려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모두가 황금만능주의라는 종교의 맹신자들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 P29
현재 지구촌은 산업경제의 가치관과 분배경제의 가치관이 혼재된 속에 돌아가고 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산업경제의 주된 원리는 효율성인데, 효율의 극대화는 다다익선을 부추겨 결국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치를 조작하고 조직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이 점에 대해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해도 그건 본질을 가리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 P30
그러면 분배경제의 가치관은 뭘까요? 분배경제에서는 사회 정의를 강조하니까 평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사회 정의에 어긋난다.‘는 식으로 비판을받게 됩니다. 그래서 분배경제 시대에는 인간의 증오심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경제가 진행되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 결국 인간의 증오심이 커지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불교용어로 보자면, 탐·진·치 중 진심이 지배하는 시대가 됩니다. - P31
그리고 소비경제를 봅시다. 소비를 할 때 ‘내가 이물건을 써서 어떤 이익이 있느냐, 내 몸에 어떤 이익이 있고 내 정신에 어떤 이익이 있어서 내가 이걸 써야 하느냐 하는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합리적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합리적 소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는 것은 불교 용어로 보면탐 · 진 · 치중 치암 때문입니다. - P32
이처럼 경제 구조의 변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가치혼란을 날로 더 심각하게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매사에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바야흐로 시공을 초월한 불교의 도덕이 요청되는 시대적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불교의 도덕은 사람들이 바르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 P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