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심자가 팔정도를 공부할 땐 당연히 산냐로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지혜가 갖춰져 있는 상태로 공부를 시작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팔정도의 바른 견해(正見]도 바른 집중도 처음에는 산냐에 의존해서 수행합니다. 그런데 산냐의 특성은 바깥을 향하는것입니다. 산냐는 항상 바깥을 향하고, 바깥을 상상하고, 심지어 바깥을 피안으로 동경하기까지 합니다. 산나는 항상 바깥을 보다 보니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일종의 바깥화이고, 자기소외이지요. - P58
바른 마음챙김이란 사념처四念를 챙기는 것입니다. 사념처는 우리가 바른 마음챙김 할 때 염을 두는염처念處인데, 신념처身念處, 수념처受念處,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입니다. 이 사념처는 바른 마음챙김을붙들어 매는 말뚝입니다. - P60
흔히 팔정도를 계·정·혜 삼학에 배대시킵니다. 팔정도의 바른 견해(正見]와 바른 사유(正思는 혜에, 바른말], 바른 행위業] 바른 생계와 바른 노력[正精進]의 전반부는 계에, 바른 노력의 후반부와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집중은 정에 넣습니다. 그런데 사띠를 보통 정에만 넣는데,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띠는 지혜를 유발하는 역할을 하며 지혜에 가깝습니다. 사띠를기반으로 하는 정이 아니고서는 혜를 끌어내지 못하기때문입니다. - P61
그럼 어떻게 해야 바른 마음챙김이 적극적 기능을수행하게 될까요? 부처님은 마음챙김 할 때 사념처 중에서도 신념처를 무엇보다 더 자주 더 많이, 항상 챙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신념처를 자꾸 챙기다 보면 습관이 붙고 탄력이 생겨 항상 바른 마음챙김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념처를 챙기다 보면, 수념처-심념처-법념처도 자연스레 이어서 챙겨지게 됩니다. - P62
부처님이 ‘먼저 신념처를 챙기라!‘고 하셨는데, 이신, 까아야kaya는색, 루우빠rupa와 다릅니다. 우리가 산냐로써 인식하는 몸은 색이지 신이라고 하지않습니다. 우리가 몸을 대상으로 마음챙김할 때 안의경계로서 몸을 챙기면 그것은 신이 되고 밖의 경계로서 챙기면 색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색을 챙기는 것은 산냐 놀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은 내육처에, 색은 외육처에 배치되어 있겠지요. - P63
이렇게 안眼 이耳 비鼻·설·신身의 여섯 감각기6관內六處]에 산냐가 작용할 때는 대경이 되는 것은 색色이고, 성聲이고, 향이고, 미味이고, 촉觸이고, 법法이어서 외육처가 됩니다. 좀더 엄밀히 살피면 산냐는대개식, 윈냐아나와 어울려 활동합니다. 그런데 감각기관과 대경의 거리가 멀수록 산냐가 주역을 맡고 가까우면 나아가 주가 된다고 경에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 P64
색, 성, 향, 미, 촉, 이 다섯 가지는 오욕락欲樂의 세계입니다. 왜 오욕락을 탐하고 집착하는 일들이 벌어지느냐? 그것은 바로 안, 이, 비, 설, 신에 산냐가 주역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해탈·열반마저도산냐로 하는 한, 역시 관념적 해탈·열반밖에 안 되므로 중생 차원의 집착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냐놀음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과제가 막중하게제기되는 겁니다. - P65
산냐에 휘둘리게 되면 마음은 야생 코끼리처럼 날뜁니다. 빠빤짜, 희론에 휘둘리게 되는 겁니다. 이런 날뛰는 마음을 붙들어 매기 위해 중국에서는 화두를 들었습니다. 선종에서 ‘화두를 챙겨라.‘라고 하는데, 화두는 중국인 체질에 맞게 변용된 사념처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화두 공부는 마음을 챙기는 공부인 것입니다. 화두를 제대로 들기 위해서는 의심 덩어리인 의단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의심 일념이 되어 산냐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P66
몸에 대한 마음챙김(念身)이란 내 몸이나 내 몸에서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챙겨서 아는 겁니다. 산냐로 상상하여 아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관하고, 몸을염하면서 몸에 대한 공부를 지어나가는 겁니다. 이처럼 마음챙김 공부가 펼쳐지는 마당이 바로 몸이 되어야 합니다. - P68
부처님이 수행 방법 중 가장기본으로 삼으신 가르침이 <염신경念身經 KayagatasatiSutta> 27입니다. <염신경>은 산냐로 마음챙김 하는 폐단을 막는 대표적인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시종일관몸을 떠나지 말고 몸을 관찰하는 데서 공부를 지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조차 관념의 대상으로 삼아서 공부를 이루려고 애를쓰지만, 그리되면산냐놀음입니다. 부처님은 추상적관념이나 가치는 그것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걸 추구하는 쪽으로 달려가지 말라고 당부하신 겁니다. - P69
호흡관 수행에는 온갖 깊고, 크고, 넓은 의미가 다포함되어 있습니다. 호흡을 알면 알수록 거기에 따라오는 부대 이익이 굉장히 많습니다. 내 몸을 통제할 힘도 생기고, 그래서 내 느낌이나 마음도 어느 정도 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 P70
호흡관이 몸에 대해 마음챙김을 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있습니다. 호흡은 우리가 항상 하는 것이어서 언제나관할 수 있고, 또 조금만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있는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호흡관은 몸과 마음을통제하고, 몸에서 비롯되는 온갖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효과적인 공부입니다. - P71
앞서 말했듯이 같은 몸이라도 외처인 루우빠rupa, 색으로서 몸을 보는 게 아니라 내처인 까아야kaya, 신으로서 보니까, 자연히 마음의 방향을 안쪽으로돌리게 되는 것이 호흡관입니다. 호흡관은 안으로 보는 훈련이요,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 되는 겁니다. - P72
이처럼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호흡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마침내는 바깥 경계도 ‘있는 그대로 볼 수있는 능력이 개발됩니다. 욕심이나 기대를 일으키는산냐 놀음을 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생기면, 바깥으로 뭔가를 찾는 습관이 고쳐집니다. - P72
잘 아시다시피 이 팔정도의 첫 번째 항목인 바른 견해가 바로 불교에 들어서는 문입니다. 바른 견해만 제대로 얻으면 예류과豫流果가 성취됩니다. 29 바른 견해가 서면 우리 공부가 제대로 궤도에 오른 것입니다. - P74
인류 역사도 크게 보면,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적산냐[想]로부터 ‘나‘라고 하는 개체적 윈냐아나로성장해 왔습니다. 과학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검증하는 데서 보듯이 인류는 산냐에서 윈냐아나로 나아간 겁니다. 산냐에서 윈냐아나로 가긴 했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윈냐아나가 극단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인류는 물질 중심적인 과학의 폐단에 직면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의한계에 부딪혀 버렸습니다. - P76
인류가 사람답게 살려면 이 윈냐아나의 극단성과편향성을 일단 중도中道로 바로 잡아서 빤냐 쪽으로나아가야 합니다. 답은 다 나와 있습니다. 윈냐아나가극단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오늘날 크고 작은 온갖 문제에 부딪히게 된 인류는 지혜로운 길을 찾아야겠다고 각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도가 그리운 겁니다. 온갖산냐 놀음으로 치닫는 인류가 참으로 빤냐가 아니고는 달리 살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에 이르고 있는것입니다. - P77
공부를 점검하는 기준이 법입니다. 법을 실천하는이 도道입니다. 여러분, 37조품 들어보셨지요? 부처님은 우리가 해탈열반을 할 수 있도록 돕는37조도품을 시설하셨습니다. 37조도품은 사념처四處, 사정근四正勤, 사신족四神足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 팔정도입니다. 이처럼 37조품도 팔정도로 마무리됩니다. 요컨대 팔정도를 닦아 법을 실천함으로써 빤냐를 키우고 해탈열반을 이룰 수 있는겁니다. - P78
상과 행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색-수-상-행-식에서도 상 다음에 행이 있는 겁니다. 오온의 순서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러면 식, 윈냐아나는 어떤 역할일까? 제일 끝에 있으면서 색-수-상-행을 떠받치고 연출하는 것, 오취온 차원의 세계를 연출하는 것이 식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은 명쾌합니다. 혜, 빤냐를 개발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 P82
부처님이 해탈열반의 필요성을 말씀하시고 거기에이르는 길로 제시하신 것은 오직 한길, 팔정도뿐입니다. 팔정도는 매뉴얼이 아닙니다. - P88
도라는 것은 길입니다. 길은 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라고 바른길을 따라 제대로 가야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러지 않으면목적지에 가지 못합니다. 다시말해 결국 산냐가 만들어내는 ‘술術‘을 벗어나 빤냐가 안내해주는 ‘길[道]에들어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팔정도가 그 길, 그 도입니다. - P89
마음이 안으로 방향을 딱 잡으면, 그다음 수념처-심념처-법념처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기 때문에 무리가 없고 억지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은 양심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마음챙김 하는 것입니다. - P92
수행할 때 오로지 정직해야 할 뿐 다른 건 없습니다.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수행을 하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됩니다. 수행의 관건은정직성입니다. 그렇게 팔정도의 길을 걷게 되면 마침내산냐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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