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인간이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구성되어 있고, 이으로오온은 집착 때문에 오취온五 되고, 오취온 때문蘊이에 인간은 고존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오온에머물지 않고 오취온이 되어버리면, 인간은 고해를사는 존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컨대 집착을 멸한아라한은 오온인데 반해 범부는 오취온인 것입니다. - P10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면이 무엇이겠습니까. 지혜와 자비의 두 특성이 있어 인간이 뭇 생류生類와 구분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특성이 오온 안에 갈무리되어야 오온이 비로소 인간에 대한 설명이되겠지요. 따라서 부처님이 수와 상을 별도로 세우신이유는 인간 존재를 지혜와 자비의 측면에서 파악하신 것이라 보고 싶습니다. 지혜와 자비는 향상의 결과물인 만큼 이 향상을 좌우하는 열쇠이자 관건이 수와상이라고 보신 겁니다. 요는 인간이 향상하거나 퇴보하는 것은 수와 상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 P12

인간이 동물보다 발달한 부분이 뇌인 바, 우리가 항용좌뇌우뇌를 거론하지 않습니까. 그때 좌뇌는 주로 이성, 우뇌는 감성과연관된다고 하는데, 이 말은 좌뇌는 상想, 우뇌는 수와 연관된다는 뜻이 되겠지요. 인간의 향상과 퇴보를좌우하는 것이 이성과 감성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면 수와 상은 인간의 발전과 퇴보의 관건이라고 보겠습니다. 이처럼 오온이 향상 분상의 인간을 파악한 것일진대 수와 상은 오온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기능이라 하겠습니다. - P13

부처님이 ‘인간은 오온‘이라고 하신 말씀을 산냐 중심으로 이해하면, 인간은 헛것보는 존재라는 겁니다. 헛것을 보고, 헛것을 만드느라고 몸과 마음이 그토록 바쁘고 고달프고 분주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오온이라는 말에는 그런 인간 이해가 담겨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상 놀음‘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 P16

그럼 산냐란 무엇일까? 산냐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만큼 산냐를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금강경>에 산냐를 가리키는 말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 수자상이 있습니다. 사족이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산냐를 한문으로번역할 때 ‘생각 상자로 쓰는데, 구마라습鳩摩羅什Kumārajiva(344~413)의 《금강경> 번역에는 ‘마음 심‘ 받침을 빼고, ‘서로 상相‘자로 썼습니다. 이건 또 왜 그랬을까요? - P18

우리가 무엇을 알 때, 사실 ‘있는 그대로 알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아기는 탁자 위의 물건이그릇인지 뭔지 모르지요. 그러다가 ‘이건 그릇이야‘라는 말을 듣고 ‘그릇‘이라는 말을 배우고 그리고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듯 중생은 누구나 무얼 알고 인식할때, 자기 깜냥껏 배운 대로 겪은 대로 과거의 경험을총동원해서 아는 겁니다. 이는 달리 보면 산냐는 ‘이름‘으로 아는 것입니다. 실제 내용이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게 아니라 기억된 이름을 통해 아는 겁니다. - P23

다시 다른 측면에서 산냐를 봅시다. 경에 보면 십이연기에 육처六處가 나옵니다. 육처에는 육내처가 있고육외처가 있습니다.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는 육내처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은 육외처입니다. 이 육처는 ‘상과 식이 노는 마당‘이어서 십이연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큽니다. - P25

다시 말해 육외처, 즉 어떤 세계dhatu를 바깥 경계로인식하는 것이 상, 산냐입니다. 바깥 경계란 내가 아닌, ‘나‘와 상대가 되는 어떤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 세계는 ‘나‘와 다른 것으로 ‘나‘와 합일되는 일은 없이 바깥에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게 참 중요한 이야기가 될것 같습니다. 산냐는 어디까지나 바깥 세계에 대한 인식입니다. 무엇을 바깥에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이를 객관적 대상체로 굳혀 놓는 작용, 이것이 산냐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저기에 그릇이라 불리는 것이하나 있다‘는 것을 알지요. 어디까지나 대상을 ‘나‘와는 다른 객체로서 아는 것, 그렇게 아는 것이 산냐입니다. - P26

마침 논서들에 산냐와 윈냐아나와 빤냐를 대비하여 설명하는 적절한 비유가 나옵니다. ‘산냐는 어린애요, 윈냐아나는 나이 든 마을 사람이요, 빤냐는 숙련된 전문가다."라고. 인간은 산냐 단계에서 윈냐아나 단계로 성숙해 나아갑니다. 윈냐아나는 개개인이대상을 인식하는 것, 즉 개체적인 인식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공통으로 아는 것은 산냐이고, ‘내‘가 개별적으로 아는 것은 윈냐아나이지요. - P27

여러분, 산냐의 한자어 ‘상자가 들어간 단어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감상感想, 추상追想, 추상推想환상幻想, 회상回想, 공상想, 망상妄想, 몽상夢想, 상상 등 거의 모두가 다 자기 취향대로 헛것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라든가 ‘과학‘이라든가 무엇이든 어떤 명칭을 붙이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우리는 상, 산냐에 의해 또 헛것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 P29

요는 헛것이 있어서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을 통해 자기가 헛것을 만들어서 보는 겁니다. 부처님은 인간이 무명에 덮여 헛것이나 만드는 그런 멍텅구리 짓을한다는 것을 통렬하게 지적하신 겁니다. 그리고는 인간의 가장 심각한 병통인 산냐라는 극단 취향의 놀음을벗어나도록 중도, 즉 팔정도 시설하셨습니다. - P29

우리는 색수상행식 오온가합五蘊假合으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그중에 상이 오온 한가운데있어서 오온이 각각 작용할 때 상이 그것들과 일일이결합되어 함께 기능합니다. 가령 수, 행, 식은 거의 언제나 수와 상, 행과 상, 식과 상으로 짝이되어 함께 작동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말입니다. 오온이 그렇게상 중심으로 시설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놀음을좀체 그칠 수가 없습니다. 정신 똑똑히 차리지 않으면상 놀음, 그 짓을 자꾸 되풀이하게끔 되어있습니다. - P31

어떤 주제가 잡혀야 하지요. 그게 ‘위따까‘이고, 그걸 붙잡고 계속 조사 숙고하는 것, 즉 생각을 늘리고 진행하는 게 ‘위짜아라‘인 셈입니다. 그래서 위따까 위짜아라는 ‘생각 과정‘ 입니다. - P33

결국 한 생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꿈속에서까지도구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구행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사람 허울을 쓰고 살면서 무엇을 행하고 있는 것인가요? 신身·구미·심心으로 끝없는 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현상을 빠빤짜라고 부른다는 말입니다." - P34

경우에 따라서는 마음속에서 구행을 하다가 마는가 하면, 그걸 입 밖으로 내서 구업을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행行과 업은 다릅니다. 입밖에 내어서의도적으로 말을 할 때는 구업이 됩니다. 한번 뱉은 말은 나와 남에게 전달돼 버려서 회수불능이니까 구업의 영향력은 결정적입니다. 그러나 구업이든 구행이든산냐 놀음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신·구·심心 삼행三行이나 신·구□·의 삼업三業이나 그 모두가 다름 아닌 산냐 놀음이요, 빠빤짜인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다가 갑니다. - P35

그런데 산냐 놀음에서 헤어나려 할 때 우리는 십중팔구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그 이유는 산냐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일부 대승 경전에서 보듯이 산냐를 넘어 그 이상의 지혜에 대해서는 더 깊이 구체적으로 들어가지 않고 반야(智慧)‘라는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려 일반화해 버립니다. 따라서 산냐를 극복하는 일도 지혜를 증장시키는 일도 어렵게 됩니다. 하지만 길은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에서 정이 나오고 정에서 혜慧가 나온다‘고가닥을 분명히 잡아주신 겁니다. 여기서 정이란 팔정도의 마지막 항목인 바른 집중, 정정을 말합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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