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운동이 민족의 새 역사 창조에 기여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이며, 그것이 한걸음 더 나아가 반외세 봉건 민족해방운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 통치하에서 독립운동으로서 그리고 피식민지해방운동으로서의 학생운동은, 해방 후의 한국 학생운동사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상당한 차이를 갖는다. 일제하의 학생운동의이념이 민족독립이었다면, 해방 후 학생운동의 이념은 반외세 민족주의및 반독재 민주주의였다.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은 전후 냉전의 산물인분단을 해소하기 위한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이다. - P30

1930년대에 성행하던 학생운동의 주요 패턴은 동맹휴학이었다. 그러나 좌우합작의 신간회가 1931년 5월 5일 해체되자 학생운동은 자연히사상운동 중심으로 바뀌고, 투쟁방법에서도 동맹휴학을 버리고 비밀결사를 형성했다. - P36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제강점기 말의 학생운동은 한마디로 반제운동이었고 피압박민족해방운동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운동은 자연히 사상적 훈련과정을 포괄하였다. 일제는 조선 학생운동이 사상운동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자 1936년 1월 31일, 총독부 학생 취체역 전문관을 각도 경찰부에 배치해 탄압과 체포와 투옥을 강행했다.
해방직후 학생운동은 학병으로 끌려갔다온 학생들과 비밀결사에 가담해 투옥된 학생, 사상범 사건으로 투옥된 학생들 등에 의해 식민지하반제투쟁 경험과 무장된 이론이 만발함에 따라 활기를 띠었다. 해방직후의 학생운동이나 청년운동이 더욱 격렬하게 불붙은 것은 단순히 해방직후의 혼란한 상황 때문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말의 학생운동의 지난한 실천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역랑의 계승 발전이라는 운동사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P38

분단 이후 이 땅에 일관해온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으로서 학생운동은 1945년 8월 15일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의미는이 땅에 분단 이후 독재가 온존할 수 있는 ‘안보논리‘를 제공했다. 분단직후 미군정의 3년간 학생운동의 이념이 분단 이후 지금까지 반외세민족주의 및 반독재 민주주의로서 이어져온 가장 중요한 배경도 1945년 8월 15일 바로 그날의 실체에 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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