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의 탑 - 소설 오우치 요시히로
후루카와 가오루 지음, 조정민 옮김 / 산지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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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조선왕조 실록, 특히 조선 초기였던 태조와 정조 실록에는 조선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낯선 이름이 등장한다.

 

일본 대내전(大內殿)의 다다량(多多良)이 사람을 보내서 토산물을 바쳤다. -  태조 4년 

 

대내전(大內殿) 의홍(義弘)은 투구 1개, 장검(長劍) 1개를 바치고, 대상국(大相國)의 모후(母后)는 나무로 조각한 지장 당주(地藏堂主) 천불위요(千佛圍繞) 1좌(座)와 극히 정교한 견(絹) 10필과 호초(胡椒) 10봉(封)을 바쳤다  - 정종 1년 5월

 

백제의 후손으로 일본 좌경대부 육주목인 의홍에게 본관과 토전을 주는 일에 대한 의논. -  정종 1년 7월 

 

처음에 왜구(倭寇)가 명(明)나라의 연해(沿海) 지방을 침략하고 우리 나라 풍해도(豐海道)·서북면(西北面) 등지에 이르렀는데, 육주목(六州牧) 고의홍(高義弘)이 군사를 일으켜 쳐서 섬멸한다는 소문을 듣고, 〈왜구로서〉 삼도(三島)의 도적들은 화(禍)가 저희들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항복하기를 애걸한 것이다. -  정종 1년 11월

 

상당히 관심이 가는 인물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백제의 후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당시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왜)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 했었다. 백제가 멸망할 당시 일본에서 지원군이 올 정도로 말이다. 

 

이 정체모를 인물은 일본에서 떳떳하게 자신은 백제의 후손이라 말하며 조선에 공물을 바쳤다. 또한 조선 역시 이 사람에게 백제의 후계를 뜻하는 고(高)씨 성을 하사했다. 이 인물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 사람은 바로 오우치 요시히로(大內義弘)이란 인물이다. 

 

오우치 요시히로(이하 요시히로)는 일본 남북조시대의 인물로서 오우치 가문 25대 당주다. 요시히로가 태어날 당시 일본의 상황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요시히로 역시 시대에 맞게 치열한 삶을 살게 된다. 

 

책 화염의 탑은 이런 요시히로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처음 책을 받았을때 상당히 호감이 있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백제의 후손, 조선의 호의적이였던 인물

이라는 타이틀이 호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후루카와 가오루라는 사람으로 그의 작품은 처음 접해본다. 언제나 그렇듯이 첫만남은 설레게 된다. 

첫인상이 끝인상이 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 중에 하나가 책이다. 

그 사람의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기호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가들의 대표작을 읽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염의 탑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그럴 의도가 있지는 않았겠지만) 작가는 충분히 대한민국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했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특유의 애국심은 이런 것에서 쉽게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화염의 탑은 독자들을 책에게 소설 속 주인공인 오우치 요시히로에게 나아가 작가에게까지 쉽게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데 거부감이 크게 들지 않았다.

 

소설의 구성은 요시히로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죽음까지 시간적 흐름에 따라 펼쳐진다. 단 권이기 때문에 그 시간적 흐름속에서 그의 인생의 큰 사건들이 등장한다. 아버지와의 대립, 쇼군과의 만남,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전쟁과 난 그리고 사망... 소설을 읽다보면 요시히로는 참으로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그것이 봉건제에 속한 영주들의 숙명이라는 느낌도 받게 된다. 

봉건제는 특유의 제도이다. 중심이 되는 군주와 그 주변의 영주들의 미묘한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특이하기에 하극상, 토사구팽이 이 제도에서는 빈번히 등장하게 된다. 요시히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극상을 겪었고 토사구팽을 당하게 된다. 

 

요시히로는 출전을 두고 아버지인 히로요와 의견차이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평생의 반목을 낳게 된다. 동생이 자신이 출정한 사이에 자국의 영토내에서 난을 일으키고 그 배후에 아버지가 있었을 정도의 큰 반목이였던 것이다. 

 

남북조 시대의 막부는 아시카가였고 요시히로가 활동할 당시의 쇼군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였다.

요시미쓰는 남북조를 통일하고 아시카가의 전성기를 열었던 뛰어난 인물이다. 물론 이것은 역사의 평가이다. 소설속의 요시미쓰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하기 위해 다양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쇼군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에게 해가 될 가문들을 이간(離間)시킨다. 대표적인 가문이 야마나 가문이다. 야마나 가문은 당시 육분일중(66개의 나라중 11개를 차지)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거대한 가문이였다. 이런 야마나를 견제하기 위해 요시미쓰는 이간책을 썼고 이에 야마나는 난을 일으킨다. 이른바 메이도쿠의 난이다. 이 난을 계기로 요시히로는 쇼군 요시미쓰의 신뢰를 얻지만 그 신뢰는 오래가지 못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창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야마나 가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읽으면서 참으로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기에는 작가의 힘이 포함된다. 잘 알지 못하는 일본의 역사, 복잡한 인간관계를 작가는 잘 표현했다. 책의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바로 단어의 사용이다. 일본, 게다가 14세기의 역사이다보니 단어를 이해함에 있어 제약이 있다. 지명, 관직, 시대의 특유의 단어 등이 책의 곳곳에 등장한다. 물론 이것이 책의 전반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단지 100%이해하고 싶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는 없다. 작가 역시 이 점을 아쉬워 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부분은 바로 백제의 후손일 것이다. 나를 포함해 이 책을 읽게되는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은 이 부분을 손꼽을 것이라 생각한다. 

쇼군을 따라 쿄토로 올라간 요시히로는 교토의 귀족모임에서 자신은 백제의 후손이라 말한다. 당시 일본은 겐지나 헤이케를 선조로 삼았다. 그들의 후손이여만 정통성이 있고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떳떳하게 백제의 후손이라 말한 요시히로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란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운 부분이 생기게 된다. 백제의 후손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책 화염의 탑이지만 백제의 후손이라는 것이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못한다. 그게 그럴것이 백제의 후손, 조선과의 관계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시히로는 분명 백제의 후손이라 하였고 그를 바탕으로 조선과는 다른 영주들보다 끈끈한 관계를 유지 했었다. 또한 조선(당시는 고려와 조선의 전환기)과의 무역을 통해 많은 이득을 얻었다. 그것이 그의 세력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즉 그의 삶에서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했었도 될 만한 사건과 역사였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기대감에서 나온 생각이다. 작가가 스토리에서는 백제의 후손, 조선과의 관계를 명시하는 것만으로도 요시히로의 삶에서 큰 사건이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만 한국의 독자로서 약간의 욕심이라면 욕심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화염의 탑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을 가져본다. 작가는 오우치 요시히로라는 이름을 쓰기에는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아니였고 다큐보다는 소설로써 요시히로라는 인물을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제목이 화염의 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시히로가 사망하고 나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다음 당주인 동생 모리하루가 5층탑을 세우게 되는데 이를 루리코지 5층탑이라고 한다. '화염의 탑은 화려했던 요시히로를 상징하는 탑과 그의 불꽃 같았던 인생을 상징하는 화염의 단어를 붙여 만든 제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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