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구?
아니 로버트 레드포드의 개츠비를 보지 않은 사람과는 개츠비를 얘기하지 않겠다.
1974년작, 잭 클레이튼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미아 패로 주연.
재즈 시대의 흥청거림과 퇴폐적인 비윤리성이,
순정한 사랑으로 포장되어 흐르는 미국인의 바이블이 원작인 영화.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로 보이지 않아서 곤혹스러웠다.
시드니 폴락 멜로 3부작에 나오는 레드포드가 더 개츠비적이었던 것은 왜일까?
<추억>의 전투적인 페미니스트 케이트(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사랑을 하고,
작가를 꿈꾸다 헐리우드에 물들어가는 전형적인 프레피,
허먼이 내 눈엔, 개츠비, 아니 피츠제럴드의 화신처럼 보였다.
이래저래 누군가 개츠비를 연기해야 한다면, 피츠제럴드화 해야 한다면,
허먼 풍의 로버트 레드포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개츠비의 영혼의 연인, 데이지를 살펴보자.
개츠비에서 피츠제럴드를 발견하는 우리는 당연히 젤다를 닮은 그녀를 꿈꾼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약간 광기가 흐르지만,
B급 예술가의 기질 때문에 자기 안의 매너리즘에 질식하다 미쳐간,
연인을 파멸케 하는 나른한 미인, 이런 데이지 역에 미아 패로???
나른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남자가 인생을 걸기엔 너무나 빈약해 보이는 존재감.
미녀인 것을 떠나 미아 패로는 미국의 연인, 재즈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말고는 미아 패로가 빛나보였던 영화가 뭐가 있었을까?
우디 앨런???
나는 미아 패로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 1974년의 개츠비에 여전히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미아에 대해 이런 혹평을 퍼부어대는 사이,
다카하타 이사오는 세계명작아니메 <빨간머리 앤>(1979년)을 제작하면서
미아 패로를 모델로 앤을 탄생시켰다.
이래저래 납득하기 힘들지만, 미아 패로는 내 인생에 너무 깊숙이, 스며들어있다.)
그렇다면 데이지에는 누구를 쓰겠는가. 나라면 페이 더너웨이로 하겠다.
<보니 앤 클라이드>에서의 무법자의 여자가 아니라,
우연히도 1974년, 같은 해에 제작된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의 그 페이 더너웨이이다.
잭 니콜슨을 온통 혼란에 빠뜨린 팜므 파탈,
그러면서 근친상간에 희생당한 비극의 히로인이였던 마성의 여자.
(피츠제럴드의 저주받은 역작 <밤은 부드러워>에서도 나오는 부녀간의 근친상간...
페이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피츠제럴드 적인 <추억>의 허먼 역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밤은 부드러워>를 연상시키는 파멸을 부르는 여자, <차이나 타운>의 페이 더너웨이.
내게 있어 이상의, 궁극의 <개츠비>는 이들, 두 사람의 앙상블이다.
1974년이라는 시간상의 우연은 내게 필연이 되어,
페이 더너웨이가 로만 폴란스키에게 묶인 틈을 타,
데이지역이 미아 패로에게 흘러들어간 게 아닐까,
시간 말고는 전혀 신빙성이 없는 추측을 하게 한다.

<세계명작드라마>로 방영된 TV판의 <위대한 개츠비>도 있다.
미라 소르비노는 지성과 미모가 메이저급 영화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인디에 머물 때 가장 빛이 나는 배우이다.
<마이티 아프로디테>를 빼고 딱 들어맞는 역을 한 것을 본 기억이...
킬러로는 영 아니였고, 마릴린 먼로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며,
백치미로 밀기엔 배우의 아우라가 너무 아깝다.
데이지?
그 시리즈에서 폴 루드가 한 닉 캐러웨이를 빼면 다 잊고 싶을 뿐.
그러나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진짜 주인공은 내가 흠모에 마지않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아니라,
로버트 레드포드를 휘감고 나온 랄프 로렌의 의상들이다.
오드리 헵번이 요정풍의 지방시와 만났을 때,
리차드 기어가 지골로적인 아르마니를 빼입었을 때의 시너지처럼,
이 영화에서만큼 로버트 레드포드가 완벽해 보인 적은 없었다!
내 안에서 이렇게 심하게 왜곡된 영상미로 재탄생한 개츠비,
웬지 너무 완벽해서 현실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