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봄은 온다고들 말하지만, 당사자에게 겨울은 너무 길고춥다. 구체적인 아픔을 무화시키고 봉합해버리는 상투적인 결말이거슬렸다.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보다 체온을 나누며 겨울을 나는 법을 노래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마디마디 분절되어 살갗에 닿던 민들레처럼 말이다.

한 움큼 부끄러움을 삼키며 나는 배웠다. 동정이든 차별이든 그아래 깔린 근본 생각은 다르지 않다는 걸. 어떤 대상을 자기 삶의 반경에 없는 분리된 존재로 취급하는 것(고아들이 불쌍하다), 한 존재를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특정한 면만 부각시켜 인격화하는 것(장애인은 무능하다), 자신은 결코 되지 않을 이질적 대상으로 상대를 보는 것(공부 안 하면 노숙인 된다). 하나같이 타자화하는 말들이다.

외로움이 자기 보존에 기여하는 중차대한 감정이구나
생각한다.
인간을 사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야만에서 구제하는 요소이고
관심을 타자에게로 향하게 한다는 점에서
겸손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그렇다. 니체는 악행을 권한다. 속 좁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악행을 저지르는 게 낫다고 한다. 행위의 과정에서 문제를 터뜨리고 해결해주고 다른 지평이 열리기 때문이다.
또 작은 악행의 쾌감이 큰 악행을 막아준다고 했다.더 엄밀히 말하면 니체에게는 악행도 선행이다.‘악행과 선행 사이에 종류의 차이란 없다.기껏해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젊은 날 자유하고 성찰하며 살았던 사람은
자기 삶을 짓누르는 나쁜 공기를 금세 알아챈다.
이것은 위대한 능력이다.

어떤 직업은 노동의 결과물이 보존되고 과정의 수고로움이 기록된다. 존경과 동경을 받는다. 어떤 직업은 아니다. 노동의 성과가 사라지고 고충이 음소거된다. 폄하와 무시를 당한다. 사회적 무지와몰이해, 그것이 직업의 귀천을 만들고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