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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곰이 잠잘 때 - 꿈꾸는 아이 10
제인 채프먼 그림, 카르마 윌슨 글, 홍지택 옮김 / 아이에듀테인먼트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잠자는 아기 곰 그림의 표지를 열면 눈 덮인
자작나무 숲에 작은 동굴이 하나 보입니다.
바로 아기곰이 잠자는 동굴이지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아기곰이 잠자는
동굴 속은 더없이 아늑해 보입니다.
다음 장을 넘기면 몸을 돌돌 말아 포옥 파묻고
두 눈을 꼬옥 감고 낮이나 밤이나 계속 잠을 자는
아기곰이 나타납니다.
동굴 밖에는 차가운 바람이 위잉-윙 불고
태내에서 듣던 엄마의 심장소리처럼 천둥소리도
쿵쿵 울립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직 어린 유아에게는
차갑고 두려운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좀더 큰
아동에게는 현실의 각박함에서 안온함을,
유발시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도 모르게 느껴지는 안온함을
연출해내는 분위기가 이 그림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바깥 세상은 어떤가요?
처음엔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지만 지금은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쌩쌩 불면서 눈가루가
마구 들이치는 그런 날인 것입니다.
그런 날엔 숲 속의 동물들도 안전할 수가 없습니다.
차가운 눈을 잔뜩 맞은 생쥐 한 마리가 무서운 곰의
동굴 속으로 살금살금 들어옵니다.
이 작은 몸집의 생쥐는 눈보라치는 바깥세상에서
겪었던 시련들은 물기를 톡톡 털어 내듯이 털어 버립니다.
무섭고 두려운 아기곰의 집이지만 조용히 쉬었다 간다면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생쥐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를 알기에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웁니다.
그는 그의 삶에 있어서 능동적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빠끔이 동굴 속을 들여다보는 눈동자
두 개가 있었어요.
"누구세요?"
생쥐가 묻자 산토끼 한 마리가 껑충 뛰어 들어옵니다.
"이야! 생쥐야!"
"정말 오랜만이야."
생쥐와 산토끼는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에 팝콘을
튀기고 홍차를 따뜻하게 끓여내어 멋진 식사를 합니다.
모닥불의 불꽃과 생쥐의 컵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마치 독자도 동굴 속에서 그들과 차를 마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잠든 아기곰이 깰세라 조심조심 생쥐는 홀짝홀짝
차를 마시고 산토끼는 끄어어억 트림이 나올 정도로
먹었지만 아기곰은 여전히 세상 모르게 자고 있습니다.
두려운 아기곰이 잔다는 것은 아직은 안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두려움과 안심을
번갈아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뒤이어 오소리가 땅콩을 가져오고, 잠시 후엔 밭 다람쥐와
두더쥐도 바닥에서 구멍을 파고 올라오는데 이들은
눈보라치는 바깥에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도독 우적우적 와삭와삭 땅콩을 맛있게
갉아먹는 소리를 듣고 땅속에서 구멍을 뚫고 나왔습니다.
즉 숨어서 듣기엔 견딜 수 없을 만큼 재미있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굴뚝새와 까마귀는 눈보라치는 밖에서
안전을 위해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안전을 위해서, 또는 위험을 피해서 모인
작은 동물들이 불꽃을 가운데로 둘러앉아서
한 마디씩 합니다.
땅 속에서만 살아온 두더쥐는 그저
"아휴- 추워!" 하고
아주 작은 굴뚝새는
"정말 사나운 폭풍이야!" 라고 합니다.
이 작은 동물들은 안전한 곳에 이르러서야
자기들이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를
실감하는 것입니다.
덩치 큰 아기곰이 잠을 깰지도 모를 위험이 잠재된
곳이지만 이렇게 여럿이 모여 있으니 더없이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모닥불을 가운데로 즐겁게
춤을 추며 밤새도록 파티를 열 수가 있습니다.
작은 동물들은 너무 즐거운 나머지 그만 후추가루가
아기곰에게 푸르르 날아가 버리는 실수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아기곰이 에에에취-이 재채기를 하면서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작은 동물들은 너무 놀라서 갈팡질팡하지요.
두더쥐는 주전자 속으로 들어가고,
다른 동물들은 눈보라치는 밖으로 달아나야만 합니다.
하지만 잠이 깬 아기곰이 둘러보니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며, 땅콩을 담았던 주머니의 냄새를 맡아보면서
자기만 쏙 빼놓고 작은 동물들끼리 신나게 놀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기곰은 으르렁 크르렁 심통을 부리며
펄쩍펄쩍 뛰고 발을 쿵쿵 구릅니다.
작은 동물들이 이제까지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아기곰의 이러한 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놀란 두더쥐는 주전자 속으로 들어가고
다른 동물들은 눈보라치는 바깥세상으로
달아나려고 합니다.
심통을 부리던 아기곰이 말하지요.
"내 동굴에 들어와서 너희들만 신나게 놀았지?
나만 쏙 빼놓고……. 난 아무 것도 한 게 없잖아!"
아기곰은 훌쩍훌쩍 울다가 마침내 큰 소리로
우아아앙! 울어버립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몸집의 생쥐가 용감하게 말하지요.
"그렇게 슬퍼하지 마. 여기 팝콘이 남아 있잖아.
우리가 따뜻한 홍차를 끓여줄게."
여기서 생쥐가 말하는 팝콘이나 따뜻한 홍차는
관계맺음에서 얻을 수 있는 정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공격적이고 큰 몸집의 아기곰은 작은 생쥐에게
위로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즉 외부로 보이는 몸의 크기와 상관없이 관계맺음에
있어선 적절한 타이밍을 알고 돌발 상황에도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기곰의 대처능력도 뛰어납니다.
만약에 아기곰이 자기만 쏙 빼놓고 놀았다는 점에만
집중하여 분노하면서 작은 동물들을에게 분풀이로
공격하였다면 그는 이 작은 동물들과의 관계맺음에서
얻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기곰은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홀로 된 느낌을
작은 동물들에게 말함으로써 그들이 더 이상 아기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맛있는 음식과 즐거움까지
보상받게 됩니다.
이 그림책은 바로 이러한 점을 어린이들에게 속삭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말 부분에 잠든 두더쥐를 안고 있는 아기곰의
표정이 우스꽝스러운 것은 자기가 잠든 동안에
정말정말 재미있었을 놀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