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그림책은 내 친구 2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 장미란 (옮긴이) | 논장 | 2002-09-15




 ‘터널, 이 그림책은 서로 상반된 성격의 남매가 집을 떠나 남다른 시련을 경험하면서,  미숙한 존재에서 독립된 존재로 성장하는 통합된 성격으로의 발달을 보여줍니다.  

 여동생인 로즈는 그의 빨간색 옷처럼 마음이 따스하고 열정적인 아이입니다. 하지만 아직 누구에게 자신의 열정과 따스함을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기 속에 숨어 있는 따스함과 열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로즈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마녀나 괴물이 나오는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거나 공상에 빠져 있습니다.

반면 로즈의 오빠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축구공을 차거나 뒹굴면서 뛰어놉니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오빠가 남성적이고 활달해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단단한 벽돌 담장처럼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중에도 겁 많은 동생 로즈에겐 관심이 있어, 늑대 가면을 쓰고서 잠자는 동생 방에 들어가 동생을 놀래켜주며 장난을 치곤합니다.

밤이면 낮에 활동을 많이 한 오빠는 곤히 잠들지만, 로즈는 말똥말똥 깨어 있습니다. 로즈는 깜깜한 밤을 너무너무 무서워하기 때문이지요. 로즈의 방을 살펴보면 어딘지 모르게 무시무시합니다. 벽에는 빨간모자의 아이가 무서운 늑대와 마주하고 있는 그림 액자(월터 크레인의 그림)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엔 옛이야기에 나오는 오두막집 램프가 켜져 있고, 천정에도 둥근 갓의 스탠드가 걸려 있습니다. 때문에 불이 켜져 있는 데도 옷장에서 비죽이 나와 있는 옷소매나 빨간외투의 소매자락, 그리고 늑대가면을 쓴 오빠의 그림자가 무서운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즈의 이불 위에 펼쳐진 채 놓여져 있는 마녀의 그림이 있는 그림책과 침대 밑에 발바닥이 뒤집혀진 채 벗어놓은 로즈의 신발은 마치 로즈가 너무나 무서워서 황급히 신발을 벗어던지고 침대로 들어간 듯이 보입니다. 
 아무튼 동생 로즈와 오빠는 늘 티격태격 싸웁니다.

서로에게 관심은 있지만 관심을 나타내는 방법을 아직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티격태격하는 남매를 지켜보던 엄마가 어느 날 아침, 화를 내며 남매에게 말합니다. “둘이 같이 나가서 사이좋게 놀다 와! 점심때까지 들어오지 마.”

사이좋게 놀으라니요? 티격태격 싸우면서 놀아도 함께 놀까말까인데 사이좋게 놀으라니요. 때문에 둘은 더욱 같이 놀기 싫습니다. 그런 남매가 찾아간 장소는 바로 쓰레기장이었어요. 쓰레기장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쓰레기장은 어쩌면 ‘버림받음’일지도 모릅니다. 쓰레기장이란 장소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물건들이 버려지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오고 싶어서 왔어? 나도 이렇게 끔찍한데 오기 싫어.”라고 하는 여동생의 말처럼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이 남매는 엄마에게 쓰레기처럼 버림을 받았고, 집을 나왔습니다. 집을 나온다는 것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났음입니다.  

혼자서 여기저기 살피러 다니던 오빠가 조금 있다가 동생을 부릅니다. 즉 터널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 봐! 터널이야. 저 끝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자.” 낯선 일에 미숙한 동생은 마녀나 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싫다고 하지만 오빠는 혼자서 터널 안으로 기어들어갑니다.  

그렇잖아도 겁이 많은 동생은 터널이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하고 오빠가 다시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빠가 나오지 않자 동생은 할수 없이 오빠를 찾아 공포감을 무릎 쓰고 터널 속으로 들어갑니다. 동생 혼자였다면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을 터널을 오빠를 찾기 위해 들어간 것입니다. 자신이 수호령처럼 지니던 마녀 그림책을 놓아 둔 채로 말입니다. 
 

동생이 들어간 터널 속은 마치 로즈가 생명으로 태어나던 최초의 장소(엄마의 아기집)처럼 축축하고 미끄럽습니다. 또 으스스하기도 하고요. 터널 반대편엔 고요한 숲이 있었어요. 오빠는 보이지 않고 숲은 갈수록 컴컴하고 울창했습니다. 동생은 늑대와 거인의 형상을 한 나무들이 무서워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었지요. 하지만 동생의 가슴에 숨겨진 온정어린 마음은 오빠만 버려두고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까지 티격태격 싸우기만 했던 오빠, 동생이 겁 많다고 늑대가면을 쓰고서 놀려주던 오빠, 동생이 검은 후추를 선택하면 하얀 소금을 주장하던 오빠, 그런 오빠를 구하겠다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겁 많은 동생은 늑대의 형상을 한 무시무시한 나무들의 곁을 마구 뛰어갑니다. 
 
얼마나 달렸던지, 숨이 찬 동생이 멈추어서자 빈터가 나타났고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 황량한 그 장소엔 돌로 굳어버린 오빠가 서 있었습니다.

동생은 처음으로 오빠를 위해 혼자서 무서운 숲을 달렸고, 돌이 된 오빠를 마침내 발견했지요. 돌이 된 오빠는 작은 돌들이 원을 이룬 장소에서 달리는 자세로 돌이 되어 있었어요. 돌이 된 오빠를 본 동생은 차갑고 딱딱한 오빠를 와락 껴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많은 신화들에서 사랑의 눈물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아, 어떡해! 내가 너무 늦게 왔나 봐!” 안타까워하는 동생의 따스한 마음에 돌이 된 오빠는 조금씩 색깔이 변하면서 부드럽고 따스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황량하던 주위의 풍경도 서서히 바뀌어갑니다. 돌이 된 오빠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이더니, 어느새 오빠로 변하여 반갑게 말합니다. “로즈! 네가 와 줄줄 알았어.” 이보다 더한 소통이 있을까요? 오빠는 로즈가 올줄 알았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오빠의 주위에 원을 그리고 있던 작은 돌들이 오빠의 모습처럼 데이지 꽃으로 변했습니다.(이 동그라미가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이제까지 한쪽으로 치우쳐 있던 남매의 성격이 비로소 균형을 잡아 통합되었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제 오빠는 동생을 신뢰하게 되었고, 더 이상 겁쟁이 동생이라고 놀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즈가 그 무서운 터널을 지나고, 그보다 더 무서운 늑대형상의 나무들 곁을 지나온 건 절대로 미숙하고 겁많은 로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즉 로즈나 오빠나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동생과 오빠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터널이라는 장소를 통하여 그들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잘 알 수 없었던 자기 안의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서로 상반된 성격이 통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점심을 차리고 있었고, 남매를 본 엄마가 말합니다.
“어서 오너라. 둘 다 아주 얌전하구나. 별일 없었니?”
둘 다 얌전하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이제 더 이상 티격태격 다투지 않는다는 의미이겠지요. 둘은 이제 서로 신뢰함으로 웃음 띤 눈빛 하나만으로도 서로가 통하니까요. 엄마는 참으로 현명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그림책을 읽는다면 각 장면마다 왜? 라는 의문을 제시하면서 그 의문들을 하나 하나 풀어가는 동안 독립된 인격, 통합된 성격으로 한층 더 성장할 것입니다.  ♧








2010. 7. 31. ⓒ金慶子(함초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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