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무엇임의 한 양상이나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라, 모든 물음에 선행하는 것의 상관물이다. 모든 물음에 선행하는 것은 그 나름의 물음이나 선험적으로 소유된 지식이 아니라 욕망이다. 욕망의 상관자인 이 누구qui, 물음을 제기받은 이 누구는 형이상학에서는 무엇임, 존재와 존재자, 그리고 범주들만큼이나 근본적이고도 보편적인 ‘개념‘이다. - P263
즉 타인의 얼굴 앞에 현존함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영광스러운 승리로 삼아 스스로를 속이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존재와 현상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고, 자신의 현상성을, 자신의 충만함에 담긴 결함을, 욕구로 바뀔 수 없는 결함을 깨달을 수 있다. 충만함과 비어 있음 너머의 이 결함은 결코채워질 수 없을 것이다. - P267
가르침이란 스승이 제자에게 제자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가져다줄 수 있는 대화다. 가르침은 산파술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한 관념을 내 안에 가져다 놓는다. - P267
사실상 말은 견줄 만한 것이 없는 현현이다. 말은 기표le signifiant와기의le signifé로 나아가기 위해 기호에서 출발하는 운동을 완성하지않는다. 말은 모든 기호가 닫은 것을 푼다. 기호가 의미된 것으로 이끄는 통로를 여는 바로 그 순간에, 의미하는자를 의미된 것의 이 현현에참석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참석은, 다시 기호가 되고 마는 글로 써진 언어에 대한 말해진 언어의 잉여를 나타낸다. - P270
외재적 존재로의 복귀, 일의적 의미에서의 어떠한 다른 의미도 감추지 않는 의미에서의 존재로 복귀하는 것은 대면의 올곧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거울놀이가 아니라 나의 책임이다. 다시 말해 이미 의무를진 실존이다. 책임은 한 존재의 중력 중심을 그 존재 바깥에 놓는다. 현상적이거나 내면적인 실존의 지양은 타인의 인정을 받는 데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제공하는 데서 성립한다. 자기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타인을 섬긴다는 것이다. 표현의 바탕은 선함이다. 그 자체로kal‘actiro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선하게 존재함이다. - P272
얼굴의 에피파니는 윤리적이다. 이 얼굴은 투쟁으로 위협할 수 있으나, 그 투쟁은 표현의 초월성을 전제한다. 얼굴은 돌발적 사건인 투쟁으로 위협하지만, 이러한 위협은 무한의 에피파니를고갈시키지 않으며, 무한이 건네는 최초의 단어를 정식화하지도 않는다. 전쟁은 평화를 전제하고, 타인의 앞선 현전을, 또 무-알레르기적인 현전을 전제한다. 전쟁은 만남의 최초 사건을 나타내지 않는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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