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의 글 3
에런 코플런드 지음, 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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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청취라는 본분에 충실한 관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실 이러한결핍은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다. 음악 생산의 과정에서는 듣는이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 P34

어쨌든 청취자는 작곡가, 연주자와 함께 음악을 떠받치는 세 솥발 가운데 하나이니 말이다. 수준 높은 음악이생산되고 그것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 훌륭한 작품이 눈부신 연주를 통해 빛을 보길 기대하는 것이 모든 관객의 심사겠지만, 뛰어난 청취 또한 필요하다는 점을이해하는 관객이 과연 그중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 P35

음악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저 감정이라는욕조 속에 들어앉은 채 소리에 둘러싸이는 감각적 차원의 반응에만 안주하고 만다. 하지만 음악에는 질서와 체계가 있음을, 음악은 감각적 호소력뿐만 아니라 지적인 호소력 역시 가지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 P35

하지만요점은, 작품이 가지는 특성과 작품이 지니는 목적 사이에는 결정적인상관관계가 있으며, 그러한 암묵적 목적을 얼마나 성실하고 훌륭하게 실현했느냐 하는 것이 작곡, 연주, 청취 각각의 성패를 가른다는 사실이다. - P36

‘지적인 음악 감상의 기초를 최대한 뚜렷하게 정립한다‘는 것이 이 책의목적입니다. 음악을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그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우쭐댈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음악 감상에 관한 책은 열이면 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교육자나 음악평론가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이 책은 작곡가의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 P39

기회만 주어진다면 아마 모든 작곡가가 진지한 음악 애호가에게 다음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리라 봅니다.
1. 진행 중인 음악에서 모든 걸 들을 수 있습니까?
2. 음악의 진행에 정녕 민감하게 반응합니까?
이 질문은 달리 말하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1. 일단 음표만 놓고 보면 조금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까?
2. 음악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망설여집니까, 아니면 스스로의 감정적 반응을 명쾌하게 납득할 수 있습니까? - P40

진정한 음악 애호가는 옛날 것이건 요즘 것이건 가리지 않고 예술의 모든 형태에 친숙해지고자 하는 압도적인 열망을 가진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 P41

음악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를 만족시키려면 듣는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행위란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 또한 이 책 바깥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에 대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손에 쥐고있는 독자들도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음악을 듣겠노라 굳은 결심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P47

머리를 사용해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사람 혹은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딱 하나있습니다. 어떤 선율을 들었을 때 그것을 선율로서 인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 P49

음악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있다고 믿는 작곡가는 하나도 없습니다. 듣는 이를 위해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작품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하고 그것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것입니다. 나머지는 오롯이 듣는 이의 몫으로 남습니다. - P52

음악을 듣는 가장 단순한 방식은 음향 그 자체가 주는 순수한 즐거움을 좇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음악 감상의 감각적 층위입니다. 다시말하자면 그 어떤 방식의 사고도 배제한 채로 음악을 듣는 것이라 할 수있습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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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현상학 뉴아카이브 총서 6
미셸 앙리 지음, 박영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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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장에 ‘후설의 복귀‘는 방법론의 발명, 특히 철학의 본질이 밝혀지는 질문의 발명에서 유지되는 지성의 힘의 복귀이다. 현상학은 독일 관념론이 19세기에, 경험론이 18세기에, 데카르트주의가 17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와둔스 스코투스가 스콜라 철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전철학에 속하는 것처럼 20세기에 속할 것이다. 이제 현상학도 저 위대한 사유의 모델들처럼 과거에 속하여 찬란하고 지고한 사유들의화랑에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는가? - P9

현상학의 갱신은 오늘날 하나의 조건에서만, 현상학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질문, 그 철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질문 자체가 갱신된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갱신은 확장, 교정, 더 나아가 다른 것을 위해 현상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의존하는 것을 전복해서 모든 것이 변화하는 방식으로 현상학을 근본화하는 것이다. - P10

다시 말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남 그 자체와 관계한다. 이 후자를 통각하고 그 자체를 분석하는 것은 역사적인 현상학에 대한 진정한 기여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상학의 주제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 제기, 즉 고전적인 의식이나 그리스적 진리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 P10

물질 현상학은 이 비가시적인 현상학의 실체를 지시할 수 있다.
이 실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어떤 정감un affect), 더 자세히말하면 모든 정감을 가능하게 하는 것, 궁극적으로 모든 촉발과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물질 현상학의 관점에서 현상학적인 실체는 삶이 자기를 느끼는 정념적인pathétique" 직접성이다. 이런삶은 정념적인 밀착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이런 방식으로 삶은본래적인 현상화의 ‘어떻게‘에 의한 현상성 그 자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 P12

역설적이게도자기 속에서 자기하고만 관계하는 삶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상호주체성을 완성할 수 있는 환경e milieu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역설은, 삶이 자기에 이르고 자기의 고유한 존재를 획득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내재적인 주체성의 시련‘épreuve‘ 에서라는 것을 이해하면 생각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 시련으로부터 자기는 자기이고, 이런 방식으로 자기는 자기로부터 불어나고 성장한다. 이것은 이 장의 두 번째 텍스트에서 다뤄지는 것으로, 특히 타자의 ‘존재‘를 촉발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자기 속에서 본래적으로 도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자아와 타이는 공통의 탄생, 즉 같은 본질을 가진다 - P16

다시 말해 모든 것은 삶으로 기울고 삶 속에 존재하며 모든 것은 살아있다.
물질 현상학의 과제는 거대하다. 그것은 실재를 사유하는 것이문제인 경우, 지금까지 무시된 현상들의 질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실재의 각각의 영역은 새로운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분석은 실재 속에서 그것의비가시적인 영역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또한 결국 살아있는 우주로 우리가 물질적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연관된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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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의 글 3
에런 코플런드 지음, 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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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플랜드는 그 자체로 우리 음악의 역사이자 우리의 집단적 음악 양심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전시와 평시平時를 불문하고 코플런드는미국이라는 나라가 겪고 있는 느낌에 목소리를 부여했다. 그가 쓴 사실상 거의 모든 작품에서 우리는 코플랜드만의 개성이 배어나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코플런드의 음악은 오로지 코플런드만이 쓸 수있었다. - P7

결국 핵심은 음악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압축된다. 코플런드는 음악을 그저 생각없이 흘려듣는 대신 정신을 집중하고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이 특별한 음악가는 본 저작을 통해 작가로서의 또 다른 목소리를우리 모두에게 들려준다. - P11

과거의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지(그리고 무엇을 들어 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쳤고, 습득한 음악적 기술을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음악에 어떻게 접목해낼 것인지를 지도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을 둘러싼세계에서 새로운 음악적 원천을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과거의 모델을 맹종하여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음악을 대량생산해내기보다는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용감하게 발을 내디딜 줄 알아야 한다는가르침이었다. - P13

나디아 불랑제는 문하생들로 하여금 미국이라는 나라의 뿌리를 인식케 했고, 또한 이러한 인식을 위대한 음악에 접목시킬 기술을 길러주었다. 불랑제의 독려 덕분으로 미국 음악은 마침내 본래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중서부 지방의 발라드와 춤곡은 로이 해리스의 교향곡으로 통하는 진입로를 찾았고, 버질 톰슨의 피아노 소품과 풀 스케일 오페라에서는 남부 침례교도의 성가를 들을 수 있다. - P15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알면 더많이 즐길 수 있다. - P29

작곡가가 작곡을 가르치는 경우 본인의 견해를 학생에게 강요하거나 본인의 작곡 기법을 맹종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코플런드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드문 타입의 교사라고 하겠다. 제자의 재능과 궁합이 맞을지 어떨지 불확실한 본인의 기법을 강요하는 법은 결코없고, 제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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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1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637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김준수 옮김 / 아카넷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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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syeong21/223790293572

어느 시점에서든 성장은 필요한 것 같다. 새삼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으며, 청소년판 부제에 붙은 ‘성장 소설’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성장은 10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20대로, 그리고 중년을 향해 나아가는 40대에도 여전히 요청된다.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는 입학식과 졸업식이라는 명확한 ‘마디’가 주어지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는 그런 외부적 이정표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어른에게는 어떤 성장이 필요한가?
어쩌면 자기 삶의 마디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떠올린다. 인간의 의식은 타자와의 대립 속에서 성장하고, 세계를 변형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진정한 성숙은 지배가 아닌 ‘노동’을 통해 세계에 관여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어른의 삶에서 성장을 증명하는 방식은 바로 이 변증법적 자기 형성이 아닐까. 2월, 졸업식과 입학식이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나는 ‘교원 워크숍’이라는 행사를 준비하며 사유한다. 단순한 의례를 넘어서, 이것이 내 삶의 또 하나의 성장의 마디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셈 아닐까. 결국 이런 고민 자체가 내가 자기주도형 학습을 추구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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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의 현상학 우리 시대의 고전 13
메를로 퐁티 지음, 류의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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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토는 우리에게 의식의 존재가 존재한다는 의식과 혼동된다는 것, 따라서 의식의 존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도 그 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것, 역으로 자신이 확실하게 아는 모든 것을 의식의존재는 자기 자신 속에서 발견한다는 것, 결과적으로 경험의 진리성과 허위성은 외부적 실재와의 관계에서 성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존재 속에서 내적 명칭들로서 읽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거니와, 이것이 없으면 경험의 진위성은 결코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 P504

우리는 타인의 상황을 떠맡을 수 없고 과거를 실재성의 과거 그대로 다시 체험할 수 없으며, 병을 병자가 체험하는 그대로 다시 체험할 수 없다. 타인의 의식, 과거, 병은 내가 그것에대해 인식하는 것에 의해 그 존재 그대로 환원되지 않는다. 존재하고 참여하는 한에 있어서의 나 자신의 의식은 더 이상 내가 그것에대해 인식하는 것에로 환원되지 않는다. - P506

환각은 세계 안에 있지 않고 세계 ‘앞에‘ 있는데, 왜냐하면 환각을 겪는 사람의 신체는 현상의 체계에 자신을 삽입하는 것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모든 환각은 우선 고유한 신체의 환각이다. "마치 내가 입으로 듣는 것 같다." "말하는 사람은 나의 입술위에 있다""고 환자들은 말한다. - P509

환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정상적 의미에서 보고 듣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감각적 장들을이용하고 세계로 자연적으로 삽입해 들어가서 그 세계의 편린들로자기 존재의 전 의도에 일치된 인위적 환경을 구축한다. - P512

그러나 우선,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의문화적 세계의 경험, 나의 문화의 경험을 가질 수 있는가를 알지않으면 안 된다. 또 한 번 사람들은 내가 나의 주위의 타인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도구들을 이용하는 것을 본다고. 내가 그들의 행동을, 지각된 동작의 의미와 의도를 나에게 가르치는 나의 친숙한경험과 행동에 유비해서 해석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타인의 행동들은 언제나 나의 것에 의해서 이해될 것이다. 즉 나에의한 ‘사람들‘ 또는 ‘우리들‘이다. - P521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의 동일한 세계에서 의식들이 서로 의사 소통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실상, 타인은세계에 대한 나의 조망에 갇혀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조망 자체는 일정한 한계를 가지지 않고, 자발적으로 타인의 조망에 스며들며, 이것들이 우리 모두가 지각의 익명적 주체들로서 참여하는 유일한 세계에서 하나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 P528

직접적 기술로 이해된 현상학에 현상학의 현상학이 추가되어야 한다. 우리는 코기토로 복귀해서 그 속에서 객관적 사고의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로고스를 추구해야 하고, 이것이 객관적 사고에 상대적 권리를 부여하며 동시에 그것의 자리를매김한다. 존재의 수준에서 보면, 사람들은 주체가 능산자이자 소산자이며 무한자이자 유한자라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주체 아래에서 재발견하고 시간의 역설에 신체의 역설, 세계의 역설, 사물과 타인의 역설을 연결시킨다면, 우리는 이것을 넘어 이해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이해하게 될 것이다. - P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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