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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전쟁 ㅣ 이스케이프 Escape 3
존 카첸바크 지음, 권도희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Escape의 3번째 책으로 하트의 전쟁이 결정되었을 때, 부랴부랴 그의 이전 국내 출간작들을 구해 읽었다.
모클에서 나온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과 대교에서 나온 '에널리스트'...
두 작품 모두 정신병과 관련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골격이 되는 스토리가 꽤 흥미진진했음에도 왠지 허술하고 만족감을 느끼질 못하게 만드는
'한계가 있는 작품' 이었다.
그 한계란 것은 결말부의 아쉬움과 현란하고 어지러운 묘사에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듯한 글솜씨로 대표되는데 '에널리스트' 같은 경우는 말을 빙빙 돌리면서 그럴싸한 말로 시간만 끌고 있는 듯한 인상까지 받을 정도였다.
'하트의 전쟁' 을 읽기 위해 기대감을 높이려고 잡은 책들이 카첸바크에 대한 불신감만 깊게 만들었다.
700여 페이지의 이 두꺼운 책을 손에 들고, 아무리 기 출간작들보다 재밌을 거란 소리를 들어도 의혹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카첸바크 식 700페이지란 도대체 어떤 지옥을 의미하는 것일까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 의문점.
' 아니, 도대체 어떻게 더 예전에 쓴 글이 더 매끈하지?'
하트의 전쟁은 '미사고''에널' 보다 훨씬 전에 나온 책임에도, 훨씬 더 깔끔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가 뛰어나단 느낌을 받게 한다. 군더더기 없이 사건을 진행함은 물론이고 등장인물들이 휴식을 취하는 장면에서 나누는 대화, 내면묘사까지도 사실감이 있어 흥미진진할 정도다. 이전 작품들에서 느꼈던 묘사에 대한 강박 같은 것 없이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재주가 훨씬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흑인 전투기 조종사' 스콧'과 '토미'를 돕는 경찰출신의 캐나다인 '휴', 꿍꿍이를 알 수 없는 게슈타포 '피셔' 등등 매력적인 인물들 틈에서 '호구' 쯤으로 봤던 '토미 하트'가 점점 성장해 나가는 (혹은 진면목을 드러내는) 과정은 보는 이의 콧날을 시큰하게 만든다. 전쟁의 비참함과 패배감 속에서도 긍지를 갖고 우아함마저 느끼게 하는 연합군과 독일군의 서로에 대한 태도 또한 인상깊었다.
자신의 글에 휘둘리지 않는 카첸바크, 왠지 진중한 느낌을 주면서도 쭉쭉 뻗어나가는 글빨.
카첸바크란 작가에 실망을 많이 한 독자일수록 이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굉장히 멋있는 작품이다.
별 다섯에 별 다섯 준다. 솔직히 escape에서 나온 책 중 가장 재밌다. 카첸바크의 책 중에선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