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 기생생물에 대한 관찰노트
로버트 버크만 지음, 이은주 옮김 / 휘슬러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선물을 받는 건 언제나 좋은 것이지만,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받는 선물은 한층 더 기쁘다.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과 더불어 <우리 몸 기생생물에 대한 관찰노트>라는 책이 배달되었다. 내 글 언제나 즐겁게 읽고 있다면서. 그러고보면 열심히 인터넷에 글만 쓰는 게 전혀 무익한 일만은 아니다.


요즘 기생충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기생충’을 검색하면 학생들이 쓰는 교재만 잔뜩 나왔는데, 지금은 <기생충제국>을 비롯해서 대중들을 상대로 기생충을 설명하는 책들이 몇권 눈에 띈다(김미영님이 쓴 <기생충>이란 책은 술따르는 기생인 ‘충’의 이야기이지, 기생충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대통령...>같이 수준이 처지는 책들도 있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기생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니다. 비공개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기생충감염률이 3.7%로 다소 높아졌다고 하니, “21세기는 기생충의 시대다”라고 말하면서 날 꼬셨던 모교 교수님의 말씀이 드디어 실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우리 몸에 기생하는 여러 생물들을 다루며, 당연하게도 기생충이 많이 나온다. 저자는 회충을 가장 성공한 기생충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으로 치자면 회충은 빌 게이츠급이다” 왜? 65억의 인구 중 12억명이 이 기생충에 걸려 있으니까. 그리고 또? “교활한 기생충은 숙주를 지나치게 괴롭히지 않는다” 숙주를 죽이면 다음 세대에 전파가 안될 것이고, 증상이 심하면 숙주가 이 기생충을 멸종시키기 위해 노력할 거니까. 하지만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난 회충을 실패한 기생충으로 규정한다. 모양이 징그럽게 생긴데다 증상도 꽤 잘 일으켜 기생충 박멸의 타겟이 된데다, 오직 사람에서만 성충이 되는 까다로운 특성으로 인해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니까. 그것보다는 간디스토마가 좀더 뛰어난 기생충이 아닐까 싶다. 백마리가 넘지 않으면 증상이 없고, 1센티 정도로 크기가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모양도 귀여워 혐오감도 일으키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고양이나 개 등 다른 동물에도 잘 감염되어 종족보존을 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간디스토마의 감염률이 꾸준히 2-3% 선에서 유지되었다는 것은 이 기생충의 훌륭함을 잘 입증해 준다.


누가 더 훌륭한 기생충이건간에 기생충학자의 목적은 기생충을 이용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 이 책에서도 기생생물을 이용해 인류에게 공헌하는 방법이 몇가지 소개되어 있다. 당뇨병 환자들에게서 잘 오는 발 궤양을 구더기를 넣음으로써 낫게 한다든지, 자가면역 질환으로 알려진 염증성 장질환을 편충을 감염시켜 치료하고,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 환자에 기생충을 감염시킴으로써 증상을 완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백해무익처럼 보이는 것들도 잘만 이용하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 외모가 좀 징그럽게 생겼다고 너무 탄압만 할 건 아니다. 가격이 15000원으로 비싼 것이 흠이지만 독자를 위해 최대한 쉽게 쓰여진데다 저자의 유머가 곳곳에서 빛나며, 기생충과 세균, 그리고 곤충들의 컬러사진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멋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선물해주신 파비아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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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16: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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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1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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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1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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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1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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