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살리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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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으로 유명한 강준만 교수가 또하나의 책을 펴냈다. 이번에 나온 <노무현 살리기>는 20일 전에 나온 <노무현 죽이기>의 속편인데, 속편은 언제나 재미없다는 진리는 이 책에는 맞지 않는 듯하다. 난 이 책을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비결은 수구신문들이 자행하는 노무현 죽이기가 점점 더 유치해져,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탓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노무현이 중국에 갔을 때 '존경하는 중국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

노무현은 '모택동과 등소평'이라고 대답하면서 '한분이 다하기가 벅차 나누어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모택동이 정치를, 등소평이 경제를 이룩했다는 말일텐데, 이건 정상외교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덕담 차원의 수사이리라.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 말조차 '노무현 죽이기'의 용도로 사용했다. 논설위원 양상훈이 쓴 칼럼의 일부다.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국군 전사자들과 그 유가족들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를 도와 피를 흘렸던 유엔국과 참전 노병들은 또 무엇이 되는가. 중국인들조차 이를 어떻게 생각할지 부끄러울 뿐이다...]

이에 대한 강준만의 말, [이 양반들 개그 하는가?...노무현이 뭐라고 답하기를 원한 걸까?... 이들은 어쩌면 '존경하는 정치인은 없고, 모택동과 등소평을 증오한다'고 답했더라면 박수를 쳤을지도 모르겠다...그런 사고방식이라면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없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까? (53-54쪽)]

[나를 진짜로 웃게 만든 건 전 대통령 김영삼이었다...;.한나라당 대표 최병렬을 만난 자리에서 '노대통령이 수백만명을 죽이고 공산혁명을 한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노무현을 비판했다. 김영삼이 대통령 시절 중국을 방문해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징기스칸'이나 '달라이 라마'라고 답하는 묘기를 선보일 능력이 충만한 분인지라 생각만 해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57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난 소리내서 웃었다. 이런 촌철살인의 유머까지 겸비했기에 그가 두터운 매니아층을 갖게 된 것일게다. 강준만 매니아, 이 책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강준만의 다른 저작들을 한두권씩은 읽어본, 수구신문의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왜나빠?'라며 봉창을 두들기는, 그러니까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사람들은 결코 이 책을 읽지 않는다.

빈익빈 부익부는 비단 경제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지라, 아는 사람은 점점 많이 알고, 무식한 사람은 계속 무식한 채로 남아있다. 수구언론을 무작정 감싸기만 할 게 아니라 남들이 왜 욕을 하는지 한번쯤 귀를 기울여 보면 안될까? 97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 한권만 읽어본다면 그들에게도 새로운 세계가 열릴 텐데 말이다. 진실은 보려고 하는 자만이 볼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 책의 제목을 왜 하필 '노무현 살리기'로 했을까? 수구언론의 노무현 죽이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 책도 계속 시리즈로 나올 텐데. '죽이기'와 '살리기'를 모두 써먹었으니, 다음 책은 '때리기', 그 다음 책은 '달래기', '꼬집기'... 이런 식으로 나갈 셈인가? <노무현 죽이기 2>라고 하는 게 훨씬 나았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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