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경험
김종광 지음 / 열림원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김종광이란 작가를 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러 유치하게 만든 듯한 표지와 책날개에 실린 작가의 선한 웃음은 나로 하여금 <첫경험>을 읽게 만들었다. 맹세컨대 난 <첫경험>이란 제목에서 어떤 성적인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가 "너 요즘 야한 책 읽는구나?"라고 얘기했을 때 비로소 난 '아, 이게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첫경험>은 이미 여러 편의 책을 펴낸 중견 소설가 김종광이 자신의 대학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비유를 하자면 <배트맨 비긴스>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배트맨 비긴스가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어야만 하는 사연을 꽤 설득력 있게 그려놓은 반면, <첫경험>은 저자가 술과 방탕에 빠졌던 젊은날의 기록을 책으로 옮긴 무용담에 불과하다. 왜, 이런 거 있잖은가.

"난 말야, 학생 때 늘 새벽 서너시까지 퍼마셨지. 아침 수업은 들어간 적이 없고. 참, 기숙사에서 고스톱 치다가 쫓겨나기까지 했어. 어머니가 사준 시계 맡기고 당구도 치고, 가게에서 술 훔쳐오다가 도둑으로 몰리기까지. 어때? 나 정말 대단하지 않아?"

이런 얘기를 한번 이상 듣지 않은 사람은 없을거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내용상으로 전혀 새로울 게 없었으며,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분당 1장을 넘지 않았다.

'이왕 읽기 시작한 책은 끝장을 본다'는 내 신념이 아니었다면 다 읽기가 힘들었을텐데, 더 안좋았던 건 인터넷소설처럼 주인공 이름이 '곰탱' '활짝꽃' '척척보이' '바위공' 이런 식이라는 거다. 난 도대체 이게 왜 책으로 나와 내게 읽혔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는 넌 잘쓰냐? 넌 이보다 더한 책도 썼잖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평론가는 이명원 씨다. 이인화의 말도 안되는 이상문학상 수상에 항의하며 '우상화한 권위에 정을 박아라'라는 멋진 글을 쓰기도 했던 그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웃음에도 사회적 맥락이 개입된다면, 그의 웃음은...짙은 허무를 동반하고 있는 소극적 아이러니에 가깝다....곰탱의 슬랩스틱에 가까운 삶의 소극이 오히려 기막힌 서늘함을 뿜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이 책에서 읽어낸 사회적 의미를 내가 해독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역시 그가 그토록 줄기차게 비판하던 주례사 비평의 대열에 동참한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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