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개들 -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이 땅에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문학상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문학동네 작가상을 눈여겨보게 된 것은 초대 수상자인 김영하 때문이다. 그가 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나를 읽는내내 몽환적이고도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이끌었는데, 그 이후에도 문학동네 작가상은 박형욱과 박민규 같은 괜찮은 작가를 내게 소개해 줬다. <내 머릿속의 개들>이라는 작품을 읽게 된 건 그게 제11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어서는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문학동네 작가상에 더욱 신뢰를 갖게 됐다.


실업자인 고달수는 대학 때 친구인 마동수로부터 전화를 받는데, 이유인즉슨 자기 아내와 이혼하게 도와 달라는 거다. 마동수는 설치미술을 전공하는데, 그의 아내는 마동수에게 "너 유명해지면 나같은 거 버릴 거지?"라며 그에게 총구를 들이밀기 일쑤였고, 그 불안감을 설탕 먹는 걸로 푸느라 살이 엄청나게 쪄버린 인물이었다.

"마동수의 어마어마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숨막히고 처참하게 뚱뚱한 아내 장말희였습니다 (25쪽)."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었다. 작가가 풀어놓는 말들은 하나같이 재기발랄해, 난 시종일관 웃음을 참아가며 책장을 넘겼다. 굳이 웃음을 참은 이유는 내가 책을 읽은 장소가 대부분 공공장소였기 때문인데, 이런 문구들을 읽으면서 어떻게 웃음을 참았는지 스스로가 대견하다.

"세계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에너지의 끝없는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 책의 핵심적인 구절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가 여전히 모르는 척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마동수의 전시회 제목

"저의 은사이자 떠나간 애인의 아버지이고 동료 철학도이면서 인생 선배인 김팔봉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이 김팔봉 씨는 계속 나오는데, 늘 그럴 듯하면서 남는 거 없는 말만 한다.


책날개에 있는 사진에서 그가 만만치 않게 살아왔음을 느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저자는 8년간의 시간강사 생활을 경험했단다. 아내가 출근하고 자신은 살림을 하며 글을 쓰는 생활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저자는 위트와 유머를 잃어버리기는커녕 더 날카롭게 벼려 온 것 같다.

"강사 생활을 접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게 십년 전이다. 십만 독자를 기대했건만, 역시 커뮤니케이션이란 지독하게 어려운 것임을 절감했다."

작가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긴 하지만 일단 말이 통하면 그때부터는 고속도로 아니겠어요? 저는 이제 작가님 팬이 되었습니다. 힘내시고, '사기'를 주제로 한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상의발명품 2008-07-1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몇 구절만 보더라도 상당히 재치있고 유머가 넘치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